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174
ⓒ 목마
리벤지-1
커다란 함성이 귀를 때린다. 여러 번 PVP를 해보았고, 여러 번 주목을 받아 왔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이렇게 직접적인 관심의 직격은 라덴으로서는 처음이었다. 라덴이 호응을 얻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인터넷 안이었고, 사람들이 보이는 관심의 증명은 끝없이 올라가는 조회수와 갱신되는 댓글들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경기장의 관중석은 모조리 매진되었다. 오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경기장을 내려 보고 있다. 오만 쌍의 눈동자가 이쪽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조금, 묘한 기분이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해야 할까. 라덴은 가볍게 숨을 고르고서 경기장 위로 올라갔다.
함성이 커진다. 라덴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는 목을 좌우로 꺾고서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커다란 경기장. 그보다 조금 먼 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쪽을 내려 보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갑옷을 입은 사람들, 로브를 입은 사람들… 현실이 아닌 게임 속의 사람들.
“…후우.”
다시 한 번. 라덴은 한숨을 뱉었다. 시선을 들어 올리니 맞은편에 서있는 레이크가 보인다. 레이크는 영상 속에서 보았던 것처럼, 금색으로 빛나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보하미르에서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십니까”
질문은 갑작스러웠고, 레이크는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걸치고 있었다. 보하미르에서의 첫 만남. 레이크에게 관심을 끌고 싶었던 어중이떠중이들이 별 이상한 트집을 잡아서 라덴에게 시비를 걸었었다.
“그때, 저는 당신이 라덴이라는 것은 몰랐지만… 그때의 당신이 했던 말은 저로서는 퍽 인상 깊었던 말이었습니다. 잘 치는 무투가를 만나면…”
“투구를 쓰라고.”
“예.”
레이크가 씩 웃었다. 레이크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투구를 들어 올렸다.
“영상은 잘 봤어요.”
레이크가 투구를 쓰는 동안, 라덴이 말했다.
“…고유 특성이 너무 사기 아닙니까”
“라덴님의 고유 특성도 충분히 사기 범주에는 들 것 같던데요. 다만, 저와 라덴님 사이에 있는 차이는 고유 특성의 방향성이겠죠.”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는 말이었다. 라덴도 자신의 고유 특성이 크게 못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 상황에서는 레이크의 고유 특성보다 라덴의 고유 특성이 나을 수도 있다.
“대처법은 생각하셨습니까”
“전혀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레이크님의 고유 특성을 어찌 상대할 지는 감이 안 잡히더라고요. 그러니까…”
라덴은 아래로 내린 손을 쥐었다.
“일단 한 번 부딪혀 보려고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안면 가리개 너머에서 레이크의 눈이 가늘게 뜨여졌다.
“저도 나름대로 궁리를 해 보았지만, 라덴님과 실제로 싸워 보았을 때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해 봐야죠.”
라덴의 특성은 난전에 특화되어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것은 레이크의 고유 특성에 대해 어느 정도 상성의 우위를 갖는 것이 가능했다. 레이크의 고유 특성인 ‘병력 소집’은 열 명의 사역마를 불러들이는 것. 라덴의 유혈과 폭혈 특성을 사용하기에 제격이다.
‘문제는 유혈이 금제당하는 것.’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이다. 라덴은 슬며시 발을 들어서 뒤로 물러섰다.
아직 PVP는 시작되지 않았다.
“이야. 설마 이 싸움을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요.”
V-스포츠의 캐스터, 박용준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잔뜩 실려 있었다. 6년 전. 2037년 10월 11일. 그 날, 박용준은 라덴과 레이크의 PVP의 캐스터를 맡았었다.
전설적인 시합이었고, 승자는 레이크였다. 패배한 라덴은 자신이 걸었던 약속 대로 캐릭터를 삭제하고 5년 동안 세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6년. 무대가 바뀌었습니다. 6년 전에 세계 최고의 가상현실게임이었던 판타지아는 뒤로 물러섰고, 2년 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발할라가 최고의 가상현실게임 자리에 올랐지요. 그리고… 바로 오늘. 2043년 7월 22일. 6년 전 판타지아에서 싸웠던 투왕 라덴과 엠페러 레이크가, 다시 싸우게 된 겁니다.”
“설마 라덴이 당시 중학생일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입을 다물고 있던 가람이 입을 열었다. 그는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고, 그 감정은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는 다리를 꼬고 앉고서 바로 앞을 노려보았다. 널찍한 화면에 라덴과 레이크가 대치하고 선 것이 보였다.
“나이가 그렇게 어릴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기는 했지만. 뭐, 나이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루아노스가 말했다. 그 말에 가람이 루아노스를 향해 눈을 흘겨 떴다.
“그러고 보니 재미있는 소문이 돌던데요. 루아노스. 당신과 라덴이 아주 친밀한 사이라는.”
“…별 시답잖은 가십거리를 떠드시네. 왜요 내가 라덴과 사이가 좋으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요”
“제법 흥미로운 소문 아닙니까”
“라덴과 루아노스, 그리고 나는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것이고요. 그것에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루벡이 끼어들었다. 그 말에 가람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의 눈은 새턴을 향했다.
“그 유명한 서리여왕과 이곳에서 만나게 되는 군요. 그러고 보니 당신도 라덴과는 제법 인연이 있었지요”
“라덴과는 친구예요.”
새턴이 망설임없이 말했다. 그 뜬금없는 말에 순간 가람의 말문이 막혔다.
“제 사촌이 현실의 라덴과 친구라서, 예전에 소개를 받았었죠. 그때는 설마 같이 술을 마셨던 사촌의 친구가 판타지아의 라덴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지만.”
“…한국은 좁은 나라니까요.”
가람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묘해지는 분위기에 박용준이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라덴과 사이가 좋은 분들이 많았군요. 아, 그러고 보니. 알케나씨. 갑작스레 발할라에 복귀하셨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라덴님 덕분이었어요.”
알케나는 알게 모르게 새턴과 루아노스를 힐긋거리면서 보고 있다가 대답했다.
“라덴님이 처음 발할라를 시작하셨을 때, 저도 서량에서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었거든요. 우연찮게 소개를 받았고, 그렇게 알게 되었었습니다. 아마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는 제가 가장 먼저 라덴님과 알게 되었을 거예요. 그 이후에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었죠. 본래 게임에 그리 흥미가 없었는데… 라덴님에게 많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건 또 뭐야’
알케나의 대답에 가람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나 빼고 서로 다 알고 지냈던 거야’
뭐냐 이 기분은. 왕따라도 당하는 것 같잖아.
가람이 그런 소외감을 느끼고 있을 때, 루아노스와 새턴, 알케나는 서로 매섭게 시선을 나누고 있었다.
‘뭐야 저 핏덩이들은’
‘아줌마.’
‘친한 여자가 이렇게 많았어’
서로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루벡은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서 세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건… 진지하게 부럽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루벡은 한숨을 삼켰다. 나도 PVP나 좀 열심히 해 볼걸. 그런 후회를 하면서, 루벡은 화면을 힐긋 보았다.
“…슬슬 시작하는군요.”
“…아, 네. 어… 드디어! 드디어 투왕 라덴과 엠페러 레이크의 시합이 시작됩니다!”
똑같이 당황했던 박용준이 금세 페이스를 되찾았다.
영상 속에서 라덴과 레이크가 움직이고 있었다.
‘먼저 들어갈까’
라덴은 발 뒤꿈치를 살짝 들어 올리면서 생각했다. 무투가인 이상 접근해야 한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접근하다고 해서 이득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
‘레이크의 특성은 까다로워.’
솔직히 사역마를 불러들이는 병력소집은 크게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난전은 라덴의 장기다. 조급해 하지 않고 침착하게, 그렇게 상대한 다면 열 명의 사역마는 쓰러트릴 자신이 있다.
문제는 따로 있다.
‘생크추어리. 이 특성이 엄청 까다로워.’
주변을 성지로 삼는다. 성지 내에서는 전투가 불가능하다. 다만, 레이크만은 ‘독선’ 특성을 통해서 성지 안에서 전투가 가능하다.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특성. 거기에 신벌과 금제의 연계. 폭혈이나 유혈 특성을 금제 당한다면…
‘불리해져.’
일단 레이크의 반응을 볼까. 라덴은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올린 상태에서 멈췄다. 언제든지 앞으로, 뒤로 물러서기 위해서였다.
우두커니 선 레이크는 천천히 방패를 들어 올렸다. 전면을 막는다. 탱커로서는 당연한 동작이다. 그 상태에서 랜스를. 방패로 앞을 막고, 랜스의 끝은 앞으로 향한다. 탱커에게 있어서는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최적의 자세다.
거기서 레이크의 특성이 펼쳐진다. 그의 몸을 중심으로 환한 빛이 퍼져 나간다. 빛 속에서 몸을 일으키는 레이크가 계승한 이름과 연결 된, 열 명의 사역마들. 레이크의 레벨과 스탯이 조정된 탓에 그들의 능력치도 낮아지기는 했지만, 레이크의 사역마들은 그 능력치를 떠나서 모두가 전투에 능숙하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무장을 끝낸 사역마들이 입을 열었다. 레이크는 랜스의 끝으로 라덴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정중하게. 깔끔하게. 상대는 최고이고 최강의 무투가입니다. 충분히 예를 다해 주십시오.”
말이 끝난 즉시 사역마들이 움직인다. 라덴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사역마들을 보면서 자세를 낮췄다.
‘일단은 견제. 가늠해보고 싶다 이건가’
레이크가 먼저 뛰어 들지는 않는다. 생크추어리를 비롯한 특성을 아끼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라덴과 정면승부를 피하고 싶은 것일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사역마를 먼저 보낸다면 나야 좋지.’
일단 수를 줄여 볼까. 바로 앞에서 휘둘러지는 검을 피해 몸을 비튼다. 사역마들의 무장은 각각 다르다. 얇고 긴 검을 사용하는 놈도 있었고, 커다란 대검을 사용하는 놈도 있었다.
[살기에 노출되었습니다!]원거리 공격까지. 라덴은 머리 위로 떨어지는 화살을 피해 크게 뒤로 뛰어 올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법사가 없는 것일까. 그를 감안한다고 해도, 열 명의 사역마들은 하나의 파티라고 하기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밸런스가 잘 맞춰져 있었다.
‘반응과 공격이 날카로워. 레이크의 레벨과 스탯에 비례한 능력치를 갖는다더니…’
저 정도 수준이라면 레벨 100 이상은 될 것이다. 역시 사기야. 라덴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공중에서 몸을 빙글 돌렸다.
흑염룡이 떨어진다. 콰아아아! 시커먼 화염이 지면을 집어 삼킨다. 이 한 방으로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라덴은 아래로 떨어지면서 하얀 빛에 휘감긴 손을 활짝 펼쳤다.
호환백섬이 불길을 꿰뚫는다. 아슬하게 그 궤적을 비껴간 사역마의 오른 팔이 사라진다. 우선 하나. 라덴은 그를 확정지었다.
‘아니, 틀려.’
관중석에 있던 류가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레이크와 한 번 싸워 보았고, 저 특성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저 특성을 겪고 나서, 류가미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레이크는 성기사보다는… 네크로맨서 같다고.
“뭐야!”
사라졌던 오른 팔이 다시 복구된다. 시체를 일으켜 세우는 네크로맨서의 흑마법처럼. 상처를 회복한 사역마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냥 라덴을 압박해 온다.
고유 특성. 불굴의 맹약.
레이크가 라덴에게 밝히지 않은 패시브 특성이다.
특성의 내용은 간단하다.
확실하게 죽이지 않는 한, 레이크의 사역마들은 계속해서 상처를 회복한다.
리벤지-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