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173
ⓒ 목마
탐색-3
영상은 끝났지만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잠깐 입을 다물고서 방금 보았던 영상의 내용을 곱씹었다. 김현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습관적으로 턱을 어루만지면서 눈가를 찡그렸다.
‘사기야.’
그런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레이크가 보내 준 영상에서 그가 공개한 고유 특성은 전부 다섯 개. 병력소집, 생크추어리, 독선, 금제, 신벌.
‘전부 다 사기야.’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레이크의 고유 특성의 밸런스는 완벽할 정도다. 김현성도 자신의 고유 특성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있었지만, 솔직하게 비교하자면 레이크가 가진 고유 특성이 자신의 것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레이크의 베이직 클래스는 크루세이더. 성기사다. 성기사는 그리 공격적인 직업은 아니다. 각종 버프 마법을 두르면서 최전방에서 방패를 드는 탱커형 직업이다.
탱커형 직업의 어쩔 수 없는 딜레마는,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기동성이 좋은 것도 아니고 공격력이 높은 것도 아니다. 체력과 방어력은 훌륭하지만 몬스터에게 많이 맞을 수 있을 뿐,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것은 힘들다. 솔로 플레이에 있어서는 절대로 좋을 수 없는 직업이다.
하지만 레이크의 고유 특성, ‘병력 소집’은 그런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한다. 자신의 레벨, 스탯과 비례하는 사역마를 불러들인다. 집사와 마부로 부리던 것을 보아 유지하는 것에 딱히 시간제한이 붙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혼자 다니면서 병력 소집으로 딜러 진을 유지할 수 있는 거야.’
레이크가 레벨을 어떻게 그리 빨리 올릴 수 있는 것인지 납득이 될 정도였다. 일반 필드 던전에서는 남 눈을 신경 쓰느라 사용을 못했겠지만, 인스턴트 던전이라면 남의 눈을 신경쓸 것을 없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이점이 된다. 레벨과 스탯에 비례하여 능력치가 결정된다는 것은, 사역마들에게 따로 레벨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뜻 아닌가. 경험치를 나눌 필요 없이, 사역마와 함께 던전을 돈다면 인스턴트 던전의 경험치와 아이템을 독식할 수 있다. 일반 파티의 경우에는 최소 네 명이 경험치를 나누는데, 레이크는 그들과 똑같은 효율을 내면서 경험치를 독식하는 것이다.
‘그러니 레벨 오르는 속도가 빠를 수밖에. 어쩐지 랭킹 1위나 되면서도 레벨 오르는 속도가 어마어마하더라니…’
병력 소집뿐만이 아니다. 생크추어리.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특성이다. 주변 지역을 성지로 삼아 전투를 불가하게 만든다. 거기에 레이크 본인만은 독선 특성을 연계하여 혼자 전투가 가능해진다. 이쪽의 공격에는 완전히 면역이 되면서, 정작 저쪽에서는 공격을 할 수 있는 엿 같은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금제 특성도 문제야.’
타격했을 때 상대의 특성 중 하나를 무작위로 금제한다. 지속시간은 5분에 쿨타임은 10분. 사기적인 특성이었다. 몬스터를 상대로는 쓸 수 없는 것 같지만, 같은 플레이어를 상대로는 이보다 좋은 특성은 없을 것이다.
레이크의 공격을 모두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번 맞을 때마다 특성 하나가 금제된다. 그 후 5분 동안 그 특성은 사용할 수 없다.
김현성의 고유 특성 중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유혈’과 ‘폭혈’이다. 폭혈의 중첩 버프가 5분간 금제된다면 유혈의 체력 회복 속도가 금제 된다면 김현성 쪽이 절대적으로 불리해 지게 된다.
그리고 레이크가 공개한 특성 중의 마지막인 ‘신벌.’ 이 특성도 만만치 않다. 방어를 무시한 타격에 무조건적인 경직을 부여한다니! 상태 이상 중 최고봉이라는 경직이 무조건 걸린다는 말이다. 경직의 지속 시간이 얼마나 될 것이고, 신벌의 쿨 타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안 되겠는데.”
침묵하고 있던 이근성이 입을 열었다. 그는 식은 커피를 홀짝 마시면서 김현성을 힐긋 보았다.
“고유 특성의 세팅이 너무 좋아. 병력소집 특성이 있는 한, 너는 성기사인 레이크 한 명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열 한 명의 대형 파티와 싸우게 되는 거야.”
“…그렇겠죠.”
김현성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다수의 상대와 싸워 본 경험은 많다. 문제는 이번 상대가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레이크의 레벨과 스탯에 비례한 능력치를 가진 사역마들. 대체 어느 정도의 수준일 지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생크추어리와 독선의 연계가 너무 좋은데… 생크추어리의 지속시간이 얼마나 될 지는 모르겠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네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아 죽게 될 걸. 성기사가 공격력이 낮을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좋아. 6년 전에 배웠지”
“아이템이 좋으면 성기사도 딜이 충분히 나오죠.”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신벌 특성도 너무 좋아. 당장 생각할 수 있는 콤보는 이건데. 신벌로 너에게 경직을 걸고, 생크추어리와 독선 특성을 연계해. 그리고 경직에 걸려 우두커니 서있는 너를 레이크가 두들겨 패는 것이지.”
“금제 특성은 어쩔 거야 네 핵심 특성이 금제 된다면 엄청나게 불리해 질 걸”
연민서가 말을 덧붙였다. 생각을 거듭해 보아도 가능성은 그리 보이지 않는다. 레이크의 특성은 좋아도 너무 좋았다. 김현성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태블릿PC를 내려 놓았다.
“…죄송한데.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세요.”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는 편이 좋지 않아 아직 광고도 시작 안 됐잖아. 지금이라도 레이크와 히어로 사 측에 말한다면 큰 망신은 피할 수 있을 거야.”
“싸울 겁니다.”
김현성이 힘을 주어 말했다.
“이렇게까지 밸런스를 맞춰주는데 안 싸울 수도 없잖아요.”
“…왜 굳이 손해를 보려는 것인지 모르겠어.”
연민서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착잡한 얼굴을 하고서 김현성을 내려 보았다.
“넌 바보야.”
“맞아요.”
김현성은 연민서를 올려 보면서 쓰게 웃었다.
“난 바보죠.”
‘그냥 사귀면 안 되는 걸까.’
그런 연민서와 김현성을 보면서 이근성은 내심 그런 생각을 했다.
옆구리가 시렵고 외로움이 사무쳤다.
레이크가 영상을 보낸 다음날부터 광고가 시작되었다. 투왕 라덴 VS 엠페러 레이크. 6년 전의 PVP의 리벤지. 그런 촌스러운 타이틀이었지만, 전 세계가 열광하기에는 충분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레이크와 라덴의 싸움에 대해 떠들었고, 과연 누가 이길지에 대해 토론을 나누었다. 승부 결과를 두고서 불법 토토까지 횡행하고 있었으니, 이번 싸움이 얼마나 세간의 이목을 끄는지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여태까지 라덴의 PVP는 아스가르드와 버추얼 피버 쪽에서 협조를 얻어 방송을 했었다. 이번에도 똑같았다. 생방송으로 히어로 사의 TV 채널에 방송하면서, 동시에 아스가르드와 버추얼 피버 쪽에도 방송한다. 그 말은 즉, TV가 없는 곳에서도 라덴과 레이크의 PVP를 관람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히어로 사는 이번 빅 매치를 위해 특별한 경기장을 만들었다. 발할라 내에서 직접 PVP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경기장이었고, 관람 티켓은 오픈되고서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모조리 매진되었다.
“부담스럽게.”
그리고 오늘.
라덴은 대기실에 서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바깥에서 함성이 들린다. 발할라 경기장에 수용되는 인원은 5만명.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기 내용이 야구나 축구도 아니고 PVP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보는 사람은 더 많겠지.’
이미 TV에서는 해설진들이 떠들고 있을 것이다. 한국 방영에 초빙 된 해설위원은 루벡과 루아노스, 가람,
그리고 알케나와 새턴.
6년 전과 똑같다. 그때의 PVP를 의식하고 재현하고 싶은 것이리라. 한국 랭킹 1, 2, 3위에 나란히 선 루벡과 루아노스, 가람이 해설위원으로 붙었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 셋에 알케나와 새턴이 추가되었다.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알케나와 새턴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핫한 여성 플레이어이며, 투기장에서 주로 활동하는 PVP 유저였으니까. 최상위 랭커는 아니지만 랭킹도 상위에 들 정도이고, 인지도가 높으니 해설로 불러들일 조건은 충분한 것이리라.
“뭐. 그쪽의 사정은 모르니까.”
그리 신경쓰지 않으려고 했다. 해설위원들이 이번 PVP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누가 유리할 것이라 점치고 있는지. 뭐, 생각할 것도 없다.
레이크가 유리하다고 말하고 있겠지. 라덴은 주먹을 쥐었다. 6년 전에는 55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그때보다 사정이 좋지 않다. 레이크의 스펙이 조정되었다고는 하지만, 레이크의 고유특성이 너무 좋으니까. 라덴과 함께 레이크의 고유 특성을 보았던 루아노스와 루벡은… 라덴이 접속하기 직전까지, 라덴이 불리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나도 인정해.’
영상을 보고서 공략법을 탐색해 보았지만,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이것저것 시도는 해 보았지만 애매하기 짝이 없다. 결국 직접 부딪혀 보는 것으로. 라덴은 그렇게 답을 내렸다.
“지고 싶지는 않은데.”
라덴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언제나 그랬다. 지고 싶지 않았고, 질 생각은 없었다. 이번이라고 해서 특별히 달라지지는 않았다.
‘안 져.’
쪽팔려서라도.
“조정에는 만족하십니까”
상태창을 들여 보는 레이크를 향해 앨리스가 빙글 웃으면서 물었다. 그 질문에 레이크는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어떤 이유로”
“제 스펙이 너무 높습니다. 레벨을 40 가까이 떨어트렸는데도 총 스탯은 그리 변하지 않았잖습니까. 장비의 옵션 조정 수치도 애매한 것 같습니다.”
“그럴 리가요.”
레이크가 그렇게 물을 줄 알았다는 듯이, 앨리스는 피식거리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레이크님의 아바타는 라덴님의 아바타와 동일한 스탯으로 맞춰져 있습니다. 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완벽하죠. 다만… 라덴님의 스펙이 레벨이 맞지 않게 너무 높을 뿐입니다.”
그 말에 레이크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앨리스가 한 말은 레이크로서도 크게 놀랄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말은 즉, 현재 라덴의 스펙이 랭킹 1위인 레이크와 아주 크게 차이가 없을 정도로 높다는 말 아닌가.
‘레벨이 40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
레이크의 장비는 모두가 에픽 등급에 최상위 레벨들이다. 그런 장비로 무장한 레이크이지만, 지금 조정된 스펙은 본래 스펙에서 레벨이 15정도 떨어진 수준이다.
‘레벨 104에 그 정도 스펙이라니. 도대체 무슨 아이템을 끼고 있는 거야…’
그대로 성장해서 더 아이템의 일부를 갈아 끼우고, 성장 스탯을 올린다면. 조만간 어지간한 랭커 이상의 스펙을 갖게 될 것이다. 레이크는 헛웃음을 흘리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알겠습니다. 당신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겠죠.”
“당연하죠. 저희 임원들은, 레이크님이 말한 ‘공평한 승부’에 깊은 감동을 얻었거든요. 이 승부가 공평해지기 위한 지원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한 말씀이지만, 더 이상의 지원은 필요 없습니다. 이 이후부터는 저와 라덴님의 문제니까요.”
레이크가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 앨리스가 눈을 반짝였다.
“혹시 괜찮다면 질문 하나 해도 될 까요”
“얼마든지.”
“이 PVP에서 레이크님. 당신이 이길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직설적인 질문이었다. 그 질문을 듣고서, 레이크는 낮은 웃음을 흘렸다.
“그건 해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탐색-3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