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56
‘교주.’
황혼 교가 모시는 신은 아득한 고대에 봉인되었다는 신, ‘네브람’이다. 먼 옛날에 네브람은 주신 오딘과 반목하였고, 끝내는 오딘에게 패배하여 봉인되었다.
그리고 황혼의 교주는 현재까지 살아있는 네브람의 유일한 신도이며, 몇 백 년을 살아 온 괴물이다. 라덴은 제노미아에서 키아미르에게, 그리고 또 흑성에게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황혼의 목적은 각 도시를 장악, 신전에 있는 신을 소유하는 것. 그들의 최종 목적은 네브람을 부활시키는 것이라고.
‘다크 엘프를 끌어들인 것도 황혼이야.’
폭염타를 이용해서 브라셀에게 정보를 얻어냈다. 브라셀이 사실을 말했는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확신은 없다.
하지만 라덴은 브라셀이 내뱉은 정보들이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반 년 전. 다크 엘프들이 유폐되어 있던 제베른 숲에 한 남자가 찾아왔다. 로브를 깊이 눌러 쓴 남자였다. 그는 드래곤들이 숲의 몬스터를 봉인하기 위해 직접 쳐놓은 용언결계를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왔고, 다크 엘프들과 접촉했다.
그는 자신을 ‘교주’라고 소개했다. 다크 엘프의 장로는 그를 탐탁치 않게 여겼지만, 젊은 다크 엘프들은 달랐다. 그들은 교주의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젊은 다크 엘프들은 제베른 숲에서 태어났고, 평생을 제베른 숲에서 살다가 죽을 운명이었다. 숲속 깊이만 들어가지 않는다면, 제베른 숲에 다크 엘프를 위협할 적은 없다.
다크 엘프는 숲을 나갈 수 없다. 숲 전체를 감싸고 있는 용언결계 때문이었다. 강제로 나가려 한다면 결계에 흐르는 강력한 마력 때문에 몸이 터져 버린다. 다크 엘프가 유폐되고서 탈출을 시도했던 다크 엘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공한 다크 엘프는 단 한 명도 없다.
제베른 숲에 용언 결계가 펼쳐진 이유는 이것이다. 숲 안에서 살아가는 강력한 몬스터들을 바깥으로 내보내지 않기 위해서. 따지고 보면 크게 문제는 되지 않는다. 제베른 숲에는 인간이 없고, 인외 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을 위한 결계다. 그 안에 살아가는, 몬스터가 아닌 인외종족은 용언결계에 가로막혀 숲 밖의 세상을 모르고 자란다.
그런 상황이니, 젊은 다크 엘프들에게 ‘교주’의 제안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숲 밖으로 나가게 해주겠다. 대신에 수하가 되어라. 선동된 젊은 다크 엘프들은 앞 다투어 지원했다. 수하고 뭐고, 이 지긋지긋한 숲을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교주와 함께 나온 다크 엘프들은 40명. 마을 대부분의 젊은 다크 엘프들이 따라 나선 것이다. 그 중 절반이 수도 근방 루그 마을에 배치되었다. 교주가 그들에게 내린 명령은 간단했고, 이미 그를 위한 준비는 끝나 있었다. 다크 엘프들은 숲에 설치 된 수정 탑을 통하여 숲의 몬스터들을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다크 엘프들은 교주의 명령에 따라, 수정구를 사용해 마을을 습격했다. 마을의 주민들은 최대한 죽이지 마라. 기사단이 찾아 온다면 죽여라.
다크 엘프들은 교주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애초에 다크 엘프들은 ‘기사’나 ‘인간’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교주, 교주… 교주라.’
라덴은 눈썹을 찡그렸다. 다이렉트로 황혼 교의 교주와 관련되어 버렸다. 스토리 퀘스트가 갱신되는 것을 기대하였지만, 퀘스트는 갱신되지 않았다. 그것이 내심 아쉽기는 하지만.
문제는 스토리 퀘스트가 아니다. ‘교주’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라덴은 흑성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교주의 강함. 아라포니아는 교주가 자신보다 강하다고 말했었다. 애초에 스케일이 다르다. 고대 신이니 뭐니. 그래봤자 게임 속의 설정이라고는 하지만.
‘오딘’은 발할라를 지탱하는 메인 시스템이다. 오딘이 없다면 발할라는 돌아가지 않는다. 발할라가 뭇 많은 가상 현실 MMORPG 게임 중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 있는 것이 오딘 때문이다. 수십억 플레이어들의 뇌파를 스캔, 랜덤으로 특성을 부여하는 말도 안 되는 처리 능력. 당장 이벤트 타워의 랜덤 던전만 해도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된다. 즉석에서 입장하는 플레이어의 수준에 맞추어 던전을 만들어낸다니.
황혼 교가 부활시키려는 네브람은, 그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자 이 세계의 주신인 오딘과 적대했다는 괴물이다. 스케일이 너무 크다.
“…잠깐.”
순간. 라덴은 멈칫 굳을 수밖에 없었다. 기묘한 위화감을 느낀 탓이었다. 현재 수도와 제노미아를 제외한 도시들을 장악한 황혼은 ‘황혼교’다. 고대 신인 네브람을 모시고 있는 이교도다. 흑성은 네브람과 황혼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해 라덴에게 경고를 주었다.
그렇다면 환룡은?
환룡은 왜 모르고 있지?
드루고라 공작의 얼굴이 라덴의 머릿속을 스친다. 드루고라 공작은 ‘용안’을 가지고 있다. 그 용안을 사용하여, 라덴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라덴의 머릿속을 읽었다. 드루고라 공작은 ‘황혼 교’에 대한 기억도 읽었을 것이다. 황혼 교가 사실 무엇을 위한 단체인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일까.
납득이 되지 않는다. 황혼은 악이다. 당장 이번 일만 해도 황혼이 연관되어 있고, 실제적으로 피해가 생기지 않았나. 아, 이 일을 드루고라 공작이 알고 있지 않으니까? 그래도 납득은 되지 않는다. 드루고라 공작은 제국 유일의 공작이다. 황제가 정신을 잃은 지금, 황제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 드루고라 공작이란 말이다. 그런 위치에 선 제국 제일의 권력가가. 왜 수도를 제외한 도시가 황혼에 장악되는 것을 내버려 둔 것이지?
*
“플레이어의 악과 NPC의 악은 다르니까.”
드루고라 공작의 표정은 큰 동요가 없었다. 라덴은 굳은 얼굴로 드루고라 공작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루그 마을에서 돌아오고, 라덴은 곧바로 드루고라 공작의 호출을 받았다. 알크레토 후작에게 보고를 올릴 새도 없이 드루고라 공작의 저택으로 왔다.
라덴이 굳이 설명을 할 필요도 없었다. 드루고라 공작은 그 용안을 사용하여, 지난번과 똑같이 라덴의 머릿속을 들여 보았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침묵 끝에 드루고라 공작이 내뱉은 말은 저것이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말 그대로일세. 플레이어의 악과 NPC의 악은 달라. ‘황혼’은 분명, 플레이어에게 있어서는 악의 단체일지도 모르네. 실제로 제노미아, 키아미르에서 황혼은 그렇게 행동했지. 플레이어를 적대하는 방향으로.”
드루고라 공작은 그렇게 말하면서 찻주저잔를 들어 올렸다.
“마실텐가?”
“…아, 예.”
라덴은 머뭇거리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드루고라 공작은 표정없는 얼굴로 라덴의 잔에 홍차를 따라주었다.
“하지만 NPC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가. 애초에 이 세계의 구조가 부조리하기 짝이 없지. 이 세계에서 태어나고 자란 NPC는 플레이어의 재미를 위한 부속품에 지나지 않아. 알라베스 산 너머 도시의 NPC들은 그런 삶에 익숙할 걸세. 그들은 처음으로 플레이어를 받아 들였고, 어쩌면 ‘그렇게 받아들이도록’ 조작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쪽은 어떤가?”
드루고라 공작이 찻잔을 들어올렸다.
“이쪽 도시의 NPC들은 달라. 플레이어는… 이쪽 NPC들에게 있어서는 이방인일세. 달갑지 않은 이방인 말일세. 부조리하다.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플레이어는 2년도 되지 않아 대부분의 NPC들을 추월해 버렸네. 머지 않아 이 세계의 주축은 NPC가 아닌 플레이어가 되겠지.”
라덴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게 뭐 어때서?’ 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루고라 공작은 피식 웃었다.
“그래. 자네의 그런 생각은, 자네가 NPC가 아닌 플레이어이기 때문이야. 아. 비난할 생각은 없네. 플레이어인 자네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네의 생각이 옳을 테니까. 결국 플레이어가 보기에 이 세상은 ‘게임’이고, NPC는 그 게임의 부속품 아닌가?”
“…그런 것이 아니라…”
“알고 있네. 자네는 NPC를 단순 부속품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제로 자네는 그런 식으로 몇몇 NPC들과 인연을 맺었고, 자네에게 떠넘겨진 제노미아와 제노미아의 영지민들을 위해 귀족이 되려 하고 있어.”
“…예.”
“하지만 모든 플레이어가 자네같은 것은 아닐 거야. 안 그런가?”
라덴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맞는 말이다. 플레이어 중에서는 단순 재미로 NPC를 죽이는 자도 많다. 가상현실 속에 존재하는 NPC의 인권을 챙겨야 하는가? 그에 관련된 기사도 꾸준히 나온다.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네. 오딘은, 우리의 신인 오딘은. 이 세계를 관장하는 시스템인 오딘은… 우리를 너무 잘 만들었어.”
드루고라 공작이 쓰게 웃었다.
“우리가 차라리 부속품에 걸맞게 만들어졌다면,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그렇지도 않지. 우리는 너무 잘 만들어졌고… NPC라는 처지에 납득할 수가 없는 것일세.”
드루고라 공작이 찻잔을 내려 놓았다.
“황혼을 묵과하고 있었던 이유도 그것일세. 황혼 교는… 적어도, 내가 파악하고 있기에는. 여태까지 NPC에게 크게 악한 짓을 하지 않았었거든. 제노미아의 경우를 보지. 악덕 영주의 탐욕을 끊고, 도시 주민들을 위한 정책을 펼쳤던 것은 누구인가? 사리사욕으로 가득찼던 영지의 창고를 열고, 유지들의 재산을 사용하면서 주민들을 위한 복지를 펼쳤던 것은 누구인가?”
황혼이다.
“그것은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일세. 키아미르도 그렇고, 베로니카, 데나비스, 록산, 부슈뢰트, 마론드도 그래. 황혼에 장악된 도시는 분명히 ‘예전보다’ 나아졌네. 본래 그 도시를 관장하던 신전들과도 큰 마찰은 빚지 않았고.”
“하지만, 황혼은 네브람을…”
“자네는 네브람에 대해 아는가?”
불쑥 질문이 날아왔다. 라덴은 머리를 가로 저었다.
“…아니오. 모릅니다.”
“네브람. 오천 년 전에 존재하는 고대의 신일세. 오딘의 성경에 이름만 등장하는 신이야.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주지. 오딘의 성서에는 말일세. 네브람이 딱히 악한 짓을 하였다고는 적혀있지 않아. 단지 이렇게 적혀있을 뿐일세. 위대한 주신 오딘이 네브람을 봉인하였다. 그 두꺼운 성서에 네브람이 나오는 것은 이것이 끝일세.”
드루고라 공작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그것이 끝이란 말이야. 네브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황혼 교를 묵과한 것일세. 그들이 부활시키고자 하는 네브람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네브람의 부활이 확실한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수도 경비 기사단에 피해가 생기지 않았습니까. 황혼은 무언가를 노리고 있습니다.”
“맞아. 그러니 이번에 자세히 알아봐야겠지. 황혼이 무엇을 노렸는가. 왜 황혼 교주가 다크 엘프와 접촉하였고, 왜 다크 엘프를 이용하여 토벌 기사단을 몰살시켰는지. 그에 대해서 말일세.”
“다크 엘프는 왜 제베른 숲에 갇혀 있는 겁니까?”
“악희.”
드루고라 공작이 말했다.
“이백 년 전. 악희는 다크 엘프와 다른 이종족들을 이끌고서 전쟁을 벌였었네. 물론, 전쟁은 악희가 패배했어. 애초에 그 전쟁이라는 것은, 그 성격 나쁜 괴물에게 있어서는 단순 재미에 지나지 않았거든. 전쟁 도중에… 질려버린 악희는 사라졌고, 다크 엘프와 이종족의 군대는 인간에게 패배하였네. 그 후 다크 엘프와 악희를 따랐던 종족들은 제베른 숲에 유폐되었지.”
시답잖은 해프닝이었네. 드루고라 공작이 중얼거렸다.
“전쟁 도중에 사라진 악희는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멋대로 살았지. 그리고 십 년 전에 봉인되었고… 다시 풀려났고. 악희와 황혼이 결탁하고, 황혼이 다크 엘프를 끌어들이려 하는가? 흠, 제베른 숲에도 사람을 보내야겠군.”
“…공작님은 내 기억을 읽었습니다. 악희와 황혼이 결탁한 것은 이미 알고있었을 거에요.”
“그렇네. 자네의 기억을 통해 황혼이 악희를 구출한 것. 황혼이 악희와 결탁한 것을 알고 있어. 하지만 그것만으로 황혼을 압박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했지. 오늘 전까지는.”
드루고라 공작이 라덴의 얼굴을 들여 보았다. 라덴은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공작의 금색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자네는 나를 의심하는군.”
“…뭐, 그렇죠.”
“타당한 의심일세. 하지만, 내가 위하는 것은 제국이야. 일이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나는 공작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할 것일세.”
그렇게까지 말하니 라덴은 더 이상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의심은 어쩔 수가 없다. 공작의 말이 NPC의 관점에서는 옳다고 하여도, 라덴은 플레이어다.
“그보다는 이번 일의 보상을 해 줘야겠지.”
공작이 몸을 일으켰다.
“자네에게 백작의 작위를 주지.”
“…예?”
공작의 말에 라덴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제노미아는 대영지일세. 그 정도 영지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백작의 작위를 갖추어야 해. 모르고 있었나?”
“모, 몰랐는데…”
“사실 중요한 사실은 아닐세. 중요한 것은 이것이야. 자네는 백작이 되었다는 것. 제노미아는 정식으로 자네가 관리하는 영지가 될 것일세. 이것이 자네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나?”
라덴은 입을 반쯤 벌리고서 대답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라덴이 귀족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제노미아 영지를 정식으로 자신의 영지로 삼기 위해서였다.
“또한. 루그 마을의 음모를 파헤친 자네에게 추가로 보상을 부여하도록 하지.”
드루고라 공작이 몸을 일으켰다.
“추… 추가 보상이요?”
“레어에 대한 출입권.”
드루고라 공작이 라덴을 내려 보면서 말했다.
“드래곤의 레어. 알고 있나?”
턱이 빠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라덴의 입이 벌어졌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