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62
월요일.
결전의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난 김현성은, 나름대로 경건한 마음을 갖고서 아침을 차렸다. 전날 끓여 둔 된장국에 흰 쌀밥. 근처 반찬가게에서 사 온 나물과 젓갈류.
고기반찬은 없는 단출한 식사. 김현성은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설거지까지 끝내고. 물을 마셔서 입가심을 하고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오전 7시가 조금 넘었다. 카타레나가 말하기를, 졸코트가 정산을 위해 경매장에 들르는 시간은 보통 정오라고 했었다.
보통의 경우가 그렇다는 말이다. 변수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미리 가서 대기하고 있는 편이 낫지. 김현성은 치약을 듬뿍 묻힌 칫솔을 입 안에 쑤셔 넣었다.
10월 10일, 월요일. 발할라를 시작하고서 거의 세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고, 다음 달은 김현성의 생일이다.
‘생일 선물로 대박이나 터지면 좋겠네.’
가르르, 퉤. 입 안을 헹군 거품을 뱉어내고, 세수를 하고 나와 스킨과 로션도 발랐다. 수분은 충분히 섭취했고, 식사도 끝냈다. 긴 시간 캡슐에 들어가 있는 동안 생길 수 있는 변수는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체크를 끝냈다.
이제부터는 실전이다. 김현성은 캡슐로 향했다.
*
경매장은 알제른 번화가의 중심에 있다. 근처에는 으슥한 골목도 없고, 탁 트인 곳에 있는지라 매복의 여건도 안 좋다.
하지만 아무리 탁 트인 곳이라도 그림자가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셰도 케이프의 특수 스킬인 그림자 밟기와 그림자 뛰기. 졸코트 암살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두 스킬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우선, 라덴은 경매장 근처를 쭉 돌아보았다. 이미 몇 번을 돌아보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변수가 생길 지도 모른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매장의 옆에는 퀘스트 하우스가 붙어 있다. 대로를 지나서 조금 나가면 커다란 분수 광장이 있고, 한가한 플레이어나 NPC들이 모이는 장소로 쓰인다. 경매장의 맞은편에는 플레이어와 NPC 모두가 이용하는 식당들이 붙어 있고, 그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여관이 있다.
결국 유동인구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경매장이 위치한 대로는 알제른의 중심이라 해도 좋을 곳이다. 굳이 플레이어뿐만이 아니라 NPC들도 많은 곳.
‘조건은 나쁘지 않아.’
유동인구가 많다는 것은 변수의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를 이용한다면 치고 들어가는 것과 몸을 빼는 것이 유리해 진다.
우선, 라덴은 높은 고지를 점령했다. 주변인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은 없었기에, 이동은 그림자 뛰기를 활용했다. 경매장의 바로 옆, 퀘스트 하우스의 옥상으로 올라 온 라덴은 난간 쪽 그림자에 바짝 붙어서 그림자 밟기를 사용했다.
시간은 오전 9시가 조금 지났다. 이제부터는 인내와의 싸움이다. 쓸데없는 움직임 없이, 이곳에 죽치고 앉아 기다린다. 목표가 올 때까지.
암살 퀘스트. 발레르 패밀리의 주인인 졸코트 발레르의 암살. 거물 NPC인 졸코트를 죽인다면, 발레르 패밀리의 주인 자리는 카타레나에게 계승된다.
‘암살 퀘스트는 판타지아에서도 몇 번 해봤지만..’
발할라에서의 암살 퀘스트는, 뭐라고 해야 할까. 마음 가짐이 조금 달랐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NPC가 진짜 인간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라덴의 머릿속에서 몇몇 NPC가 스쳐지나갔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역시 백호 무술관에서 만났던 관주 백설과 사형들이었다.
‘아니, 달라.’
라덴은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까지 와서 미혹에 헤매어서는 안 된다. 결심이 무뎌지면 손이 무뎌진다. 괜히 실수를 범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어 진다.
‘못해도 알제른은 두 번 다시 올 수 없겠지.’
어쩌면 카타레나에게도 영향이 갈 지도 모르고. 라덴은 숨을 삼켰다. 이후의 보상을 생각해라. 암살이라고는 해도 결국은 퀘스트.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라고 해 봐야 NPC를 죽이는 것뿐이다. 몬스터와 다를 것도 없다. 차이는 죽어도 다시 부활하지 않는 것 정도.
‘졸코트 암살에 성공한다면 보상 골드로만 오천. 경매장에서의 수수료 면제, 텔레포트 링.’
사실 다 버리고 텔레포트 링 하나만으로 이 퀘스트는 반드시 수행해야 할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잘 판다면 몇 억 골드에도 팔리는 물건이니까.
‘애초에 퀘스트 개방 조건도 히든 수준이었고.’
발할라가 오픈하고서 이 년이 다 되어 가는데, 퀘스트의 개방 조건을 클리어 한 것은 라덴과 루카스 뿐이었다.
그리고 루카스는 퀘스트를 실패했다.
*
커다란 도시인 알제른은 무척 넓다. 라덴은 발로 직접 뛰는 편이었지만, 돈 많고 성격 급한 이들은 돈을 내고서 마차를 이용하곤 한다. 도시 내에서 마차는 현실에서의 택시처럼, 돈만 지불한다면 도시 내의 원하는 목적지까지 이동시켜준다.
경매장 앞에서 커다란 마차가 두 대 멈췄다. 라덴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차는 크게 화려하지도 않았고, 알제른의 전용 도로를 달리는 다른 마차들과 비교해도 뚜렷한 특색은 없었다.
마차의 문이 열렸다. 라덴은 자세를 낮추고 열린 마차의 문을 보았다. 가장 먼저 내린 것은, 검은 정장을 입은 거구였다.
‘왔다.’
튀어나올 뻔한 목소리를 삼킨다. 마차에서 내린 것은 딱 봐도 발레르 패밀리의 조직원처럼 보이는 마피아였다. 가장 먼저 내린 놈은 주변을 쓱 둘러보더니, 마차의 옆으로 가서 호위하듯이 섰다.
계속해서 사람이 내린다. 보아하니 마차 안 뿐만이 아니라, 마부 역시 발레르 패밀리의 마피아였다.
두 대의 마차에서 열 명의 마피아가 내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린 것은, 긴 코트를 입은 장신의 남자였다. 라덴의 눈이 가늘어졌다.
‘졸코트 발레르.’
그에 대한 목격 정보는 제법 있었다. 자연스럽게 졸코트 발레르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도 웹상에 떠돌았었고, 라덴은 그를 통해 졸코트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었다.
흰색 코트를 입은 졸코트는 겉으로 반 백의 머리를 뒤로 넘긴 중년인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품 안에서 시가를 꺼내 물었고, 그의 곁에 서있던 마피아 중 하나가 즉시 졸코트의 시가에 불을 붙여 주었다.
뭐라 대화를 나누는 것 같기는 했지만, 이 거리에서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라덴은 혀를 차면서 그림자에 바짝 붙었다. 그림자 밟기는 은신한 그림자의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은신이 해제되지 않는다.
‘12시보다는 이른데?’
지금의 시간은 오전 10시를 조금 지나 있었다. 단순한 변덕인가? 아니, 어쩌면..
‘습격을 알고 대비하고 있는 걸 수도.’
상황은 최악을 가정해 두는 것이 속이 편하다. 라덴은 졸코트 발레르가 암살 사실을 알고, 대응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아, 그러면 여기서 어떻게 한다..’
졸코트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오기는 했지만, 암살 자체에 문제는 없다. 라덴은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었으니까. 시간이 일러졌다고는 하지만 대응은 충분히 가능하다.
요는 어떻게 하느냐. 졸코트를 죽이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고, 어떻게 하느냐. 지금 즉시 졸코트를 덮칠까? 아니면 졸코트가 나오는 것을 기다릴까.
주변을 쓱 둘러 보던 졸코트의 손이 품 안에 들어갔다. 라덴은 낮게 숨을 쉬면서 졸코트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지켜보았다. 품 안에 들어갔던 졸코트의 손이 밖으로 나왔다.
졸코트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라이터 같았다. 라이터? 불은 이미 붙였을 텐데. 그런 의아함 뒤로, 졸코트가 라이터의 불을 당겼다.
파앗! 라이터의 끝에서 터진 빛이 한 번 번쩍인다. 그 즉시,
[탐지 마법에 노출되었습니다!] [그림자 밟기의 은신이 해제되었습니다!]시스템이 그런 경고음을 발했다. 라덴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탐지 마법. 졸코트의 눈이 라덴이 서있는 퀘스트 하우스의 옥상으로 향했다. 라덴은 굳은 얼굴로, 졸코트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것을 보았다.
“니미.”
헛웃음과 함께 욕설이 나왔다. 설마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셰도 케이프의 특수 스킬인 그림자 밟기. 이 스킬은 그림자 속에서 은신을 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눈과 감각에서 모습을 속이는 것 뿐이다.
마법이 개입한다면 은신은 해제된다. 너무 안일했나? 아니, 설마 마법을 사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을 뿐. 그것이 안일했던 것이다. 발레르 패밀리. 단순 마피아가 아니다.
이 세계는 발할라. 마법과 몬스터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 마피아 짓을 하며 도시 하나를 지배에 두었다면, 당연히 마법 같은 것도 사용할 수 있겠지.
빙글 몸을 돌린 졸코트가 경매장 안으로 들어선다. 일곱은 졸코트를 따랐고, 셋이 남았다. 그 셋은 라덴이 서있는 퀘스트 하우스 쪽으로 다가갔다.
“하, 나. 좆됐네.”
라덴은 일단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예 빠질까? 아직은 도망칠 수 있다. 아니, 여기서 도망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결국 다시는 알제른에 올 수 없게 될 테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정면으로 부딪히는 수밖에. 다행히 이쪽으로 오는 것은 셋뿐이다. 일곱은 졸코트를 따랐다.
차라리 아래로 내려가 졸코트를 쫒을까? 결국 추격당하겠지. 그리고 경매장은 발레르 패밀리의 소유다. 안에는 모르긴 몰라도 다른 마피아들도 있을 터.
‘일단 여기서 셋을 끊는다.’
그런 생각을 했을 때, 퀘스트 하우스의 아래까지 왔던 마피아들이 도약했다. 도약 한 번으로 퀘스트 하우스의 옥상까지 온 마피아들은 라덴을 힐긋 보면서 묵묵히 입고 있던 정장 상의를 벗었다.
“..거, 뭐라 말이라도 하시지.”
라덴은 상의를 집어 던지고, 셔츠마저 벗어버리는 마피아들을 보고서 중얼거렸다. 모두가 라덴의 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을 정도로 높았고, 덩치가 좋았다. 육체 개조를 받았다고 했지. 라덴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쓰게 웃었다.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는데..’
라덴이 그런 생각을 했을 때, 마피아 중 하나가 달려들었다. 라덴의 눈이 부릅 뜨였다. 긴장은 충분히 했었지만, 마피아의 접근 속도는 라덴의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큭!”
돌진과 동시에 휘두른 주먹이 라덴의 상체를 두드린다. 라덴은 급히 팔을 들어 마피아의 주먹을 막아냈지만, 방어에 쓴 팔이 찡하고 울렸다.
‘무겁잖아..!’
육체 개조를 받은 마피아. 이 정도였을 줄이야..! 라덴은 숨을 삼키면서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다행히 무기나 다른 마법은 쓰지 않는 듯 했고, 근접 박투라면 라덴의 장기다.
주먹과 주먹이 부딪히는 소리, 뼈와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뒤섞인다. 마피아가 조금 뒤로 물러섰고, 라덴은 참고 있던 호흡을 크게 뱉어냈다.
그리고 다른 마피아들이 가세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 온 셋이 라덴을 압박했다. 미리 연습이라도 했던 것인지, 놈들의 연계는 쉽게 끼어들고 끊어낼 수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확실히.’
포식감지가 살기를 느끼고, 밀어닥치는 공격은 양자택일로 민첩에 스탯을 몰아 회피한다. 일단은 급하게나마 탐색으로 간다. 라덴은 위빙과 백스텝 위주로 회피 동작을 펼치면서 마피아들의 공격을 피해냈다.
‘강해. 검은 저택에서 죽였던 플레이어 이상이야.’
검은 저택에서 라덴이 마주했던 플레이어들. 레벨 컷을 최저로 잡아도 60은 넘었을 것이다. 아니, 사실은 그보다 높을 것이다. 보스 레이드를 목적으로 하고서 던전에 입장, 파티원은 고작해야 네 명. 벨로크가 이전 시즌의 보스라고는 하지만, 처음 공개되었을 때 벨코브를 처음 공략하는 것에 성공한 파티는 평균 레벨 60의 10인 파티였다.
네 명이서 보스 레이드를 하려 했다는 것은, 못해도 레벨이 65는 되었다는 것. 이런 저런 칭호와 장비의 버프를 받는다면 실 레벨은 그보다 높았겠지.
발레르 패밀리 소속의 마피아, 육체 개조를 받았다고는 해도.. 이렇다 할 장비 착용도 없고, 칭호의 버프도 없다. 그런데도 그 플레이어들 이상가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도대체 뭐하는 흑마법사가 이런 괴물들을 양성한 거야?’
발레르 패밀리는 어떤 흑마법사와 결탁해 있다. 그 흑마법사의 지원으로 발레르 패밀리의 마피아들은 육체 개조를 받았다. 육체 개조만으로 NPC에게 이만한 강함을 부여하다니. 라덴은 경악을 삼키면서 쉼없이 움직였다.
공격 일변. 라덴은 살의를 듬뿍 담아 자신을 몰아치는 마피아들을 상대하면서 그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무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주먹과 발을 쓸 뿐. 단지 그것뿐인데도 육체가 육체다 보니 위력에 장난이 없다. 제대로 맞는다면 뼛속까지 아프리라.
‘좋아.’
파악했다. 무기에 스킬을 쓴다면 상대가 까다롭겠지만, 그런 것 없이 단순히 육체만 앞세워서 싸우는 것이라면.. 라덴의 입꼬리가 실룩거리며 올라갔다.
놈들은 라덴을 모른다. 라덴이 어떤 사람인지. 라덴의 양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무기와 스킬 없는 근접 박투. 1:3의 불리한 상황. 사실 라덴에게는 크게 불리한 상황도 아니다.
오히려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플레이어와 NPC의 결정적인 차이. 스킬의 유무와, 고통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는 것. 체력 포인트만 남아 있다면 죽지 않는다는 것.
서량 백호 무술관에서 배웠던 것들은, 사실 몬스터를 상대로 싸우는 것보다는 사람을 상대로 싸우는 법이다.
휘두른 주먹을 턱 끝을 들어 피한다.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무릎을 낮추고, 아래로 늘어트렸던 오른 손을 들어 주먹을 잡는다. 잡는 것과 동시에 관절을 비틀고, 왼 손으로 놈의 등허리를 잡아 아래로 내리면서,
팔을 아예 뒤로 꺾는다. 라덴은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저항감에 망설임없이 힘을 내리 찍었다. 양자택일로 민첩 스탯이 힘으로 바뀐다.
“끄아악!”
관절이 박살나는 소리와 비명이 뒤섞였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