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78
가람이 원래 저런 인간이라는 것은 안다. 가람이 고문하고 있는 것이, 진짜 사람이 아닌 NPC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가람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NPC니까, 진짜로 고통을 느낀다. 죽는다면 진짜로 죽는다. 라덴은 입술을 꾹 다물고서 앞으로 나섰다.
“그렇다면 제가 하죠.”
“고문을?”
“어린 애잖아요.”
“그래 봐야 NPC야. 아니면 너도 그건가? NPC의 인권이 어쩌고.. 뭐 그런 놈들.”
발할라의 NPC는 너무 사람과 똑같다. 그들은 스스로가 NPC임을 자각하고 있고, 이 세계가 실제 하는 것이 아닌 게임 속의 세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세상의 주역은 자신들이 아닌 플레이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이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진짜 인간과 똑같이 사고하는 NPC가, 자신들이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자신들의 삶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더 말이 안되는 것은, NPC들은 그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순응하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NPC들은 플레이어를 위한 기관에서 근무하고, 일부 NPC들은 플레이어를 위한 퀘스트를 전해주고, 또 일부 NPC는.. 자신이 퀘스트의 사냥감이라는 것을 알고 죽기도 한다.
그 가혹한 환경 속에서 NPC가 미치지 않고, 플레이어와 어울리고 있는 것은 그들이 어디까지나 NPC, 히어로 사에 의해 발할라 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간과 똑같다고는 해도 최소한의 통제는 필요한 법이니까.
사실 발할라 NPC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말이 많다. 현실에서는 NPC들이 진짜 사람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이유로 두고, 그들을 위한 인권단체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 거창한 것은 아니고. 그냥.. 애잖아요?”
“그래서 NPC가 아닌가?”
“NPC기는 하지만 애는 애죠. 나는 악당이 아니라서, 그러니까.. 눈앞에서 어린 애가 아프다고 울고 있는 걸 보는 것은 기분이 좀 그렇네요.”
“이거 웃기는 놈이네.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데?”
“고문하지 말고, 어르고 달래자고요. 내가 할 테니까.”
“빠른 길을 내버려 두고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
“어차피 당신은 거짓말을 간파하는 마법을 펼치고 있잖아요. 진실을 듣는 것에 고문까지 병행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 말에 가람이 낮게 웃었다. 라덴의 말이 사실이었다. 지금 가람은, 꼬마의 말이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알 수 있는 마법을 펼쳐 둔 상태였다. 이 마법은 시전자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혹은 정신 방비책을 갖지 못한 NPC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려주는 편리한 마법이다. 실제 플레이어에게는 사용할 수 없는 마법이지만,
가람의 말대로, 발할라 세계에 존재하는 마법 중에서는 플레이어에게는 아니어도 NPC를 상대로 유효하게 작용하는 마법은 넘치도록 있었다.
“뭐, 좋아. 네가 한 번 해봐.”
의외로 가람은 순순히 물러나 주었다. 가람이 설마 NPC를 상대로 인정이 동했을 리는 없고.. 라덴은 가람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왜 그래? 나도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야. 어린 아이를 고문하는 것은 죄책감이 든다고.”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개뿔이. 라덴은 그것을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라덴은 훌쩍거리는 꼬마의 앞에 주저앉았다.
“사슬이나 좀 치워줘요.”
“얼씨구.”
가람은 그렇게 비꼬면서도 사슬은 없애 주었다. 사슬이 풀리자 꼬마는 제대로 서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냈다.
“뭐 하려는 거냐?”
“일단 상처를 치료해 줘아죠.”
“채찍 다음에 당근이라는 건가? 대단하시군.”
가람이 이죽거렸지만, 라덴은 그 말을 무시하고 꼬마의 발등에 포션을 몇 방울 떨어트려 주었다. 비싸게 주고 산 포션은 NPC의 상처에도 유효하다. 꿰뚫린 상처가 즉시 회복되었다.
“자, 자. 진정하고.”
라덴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부들거리는 꼬마의 어깨를 잡고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가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서 라덴이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꼬마가 정신을 차렸다.
“네.. 네. 저, 저는.. 그러니까.. 제발.. 절 죽이지 말아주세요..”
꼬마가 덜덜 떨면서 말했고, 라덴은 그런 꼬마의 반응을 보면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보다 못해 나서기는 했지만, 라덴에게도 뚜렷한 방안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네 이름은 뭐지?”
“루.. 루이에요.”
“그건 사실이군.”
가람이 중얼거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람이 거짓말 탐지 마법을 쓰고 있다는 것 정도인가. 라덴은 루이의 어깨를 잡고서 겁에 질린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 말 잘 들어. 네가 사실을 말 한다면, ‘우리’는 절대로 널 해치지 않을 거야.”
“저.. 정말요?”
“네 하기에 달렸어. 네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알겠어? 직접 당해봐서 알겠지만, 우리는 네 거짓말을 간파하는 마법을 쓰고 있거든.”
“네.. 네.”
루이가 훌쩍거리면서 말했다. 루이도 아주 바보는 아니었다. 가람의 자비없는 손속은 루이에게 있어서 좋은 본보기가 되었고, 루이는 자신이 거짓말을 늘어놓는 순간 다시 그 아픈 통증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는 여기 왜 왔지?”
질문.
“어떤 아저씨가.. 돈을 줬어요. 이곳에 와서 사람이 있나 없나 확인을 해 보라고..”
“사실이야.”
대답과, 가람의 확인.
“어떻게 생긴 아저씨였지?”
“로브를 쓰고.. 키가 큰 아저씨였어요.”
“어떤 로브였지?”
“자홍색 로브.. 벼, 별로 특이한 로브는 아니었어요.”
“그 아저씨를 어디에서 만났지?”
“노.. 노래하는 염소 여관이요. 전 원래 노래하는 염소 여관의 점원인데..”
“그 아저씨와 언제 만났어?”“삼십분 전쯤..”
“확인한 뒤에는 어떻게 하라고 했는데?”
“아.. 아무도 없다면 다시 돌아와서 301호인 자신의 방으로 오라고 했어요. 돈을 더 주겠다면서..”
“만약 누가 있다면?”
“모르는 척 하고.. 301호로 돌아오라고 했어요.”
라덴은 가람을 힐긋 보았다. 가람이 머리를 끄덕거렸고, 라덴은 몸을 일으켰다.
“어쩔 셈이냐?”
가람이 물었다.
“노래하는 염소 여관으로 가 봐야죠.”
“이 꼬마는?”
“들을 것 다 들었는데, 따로 뭐 할 건 없잖아요? 입막음이 필요한 일도 아니고.”
“내가 왜 네 하자는 대로 순순히 있어줬는지 알아?”“모르죠. 당신이 관대해서?”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군. 하는 꼴이 웃겨서야. 꼬마든 뭐든 NPC는 NPC고, 우리는 플레이어거든. 플레이어가 NPC를 죽이는 것이 뭐가 이상하지? 알아? 발할라를 즐기는 수많은 플레이어 중에서 NPC를 장난삼아 죽이는 녀석들이 얼마나 많은지? NPC 살해 전문 길드도 있는데, 알기나 해?”
“잘 알죠. 그래서 한때 발할라가 폭력성을 키운다 뭐다 이런 얘기도 많았잖아요?”
“그렇지. 잠재적 살인자들을 양산한다면서 말이야. 여론 몰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묻히기는 했지만 말이야. 오히려 가학성을 게임 속에서 풀어 현실에서는 얌전하다나? 그런 개소리도 없지.”
가람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과한 자유도, 과한 완성도. 오픈 이후 발할라는 수많은 이슈에 휘말려 왔다. 하지만 가상현실게임이 유발하는 위험성 얘기 따위야, 가상현실게임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있었던 말이다. 그리고 발할라를 표적으로 삼은 이슈들은 모두가 오래가지 못하고 달아오른 냄비가 식듯이 꺼지곤 했다.
“가람. 나는 당신이 NPC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NPC는 죽여도 된다, 이런 논리에 공감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내가 하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요.”
“그래서?”
“이미 얻을 것은 다 얻었어요. 죽일 필요는? 없죠. 들은 것은 다 들었으니까. 당신도 쓸데없이 NPC를 죽이고 싶지는 않을 것 아니에요? 가진 것도 없어 보이고, 경험치를 많이 줄 것 같지도 않은데.”
“좋아, 아주 좋아. 네가 그렇게 말하니 별로 죽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군. 운이 좋구나, 꼬마야. 이름이 루이라고 했나? 너도 바보가 아닌 이상 알겠지만, 저 얼간이 같은 놈이 없었다면.. 우리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자리에 주저앉은 루이가 몸을 덜덜 떨었다.
“..어린 애 겁주지 말고, 가기나 하죠.”
“좋아. 그런데.. 너는 내 이름을 부르는데, 나는 네 이름도 모르는 군. 이름이 뭐지?”
“..해리.”
“좋아, 해리. 가보자고. 노래하는 염소 여관으로.”
가람이 빙긋 웃으면서 말했고, 라덴은 그런 가람을 향해 맞춰 웃어 주었다.
‘싫은 녀석이라니까.’
그런 속내를 숨기려 애쓰면서.
*
노래하는 염소.
어린 루이의 걸음으로 30분 정도.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라덴과 가람은 20분도 되지 않아 노래하는 염소 여관의 앞으로 도착했다. 3층 건물인 여관의 외형은 제법 깔끔했지만, 외곽진 곳에 위치한 여관이다 보니 손님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여관 안으로 들어 간 라덴과 가람은, 따라 붙는 종업원을 무시하고서 바로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의 첫 번째 방. 문의 위쪽에는 301호라고 적혀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라덴은 가람을 힐긋 보면서 물었다. 가람은 대답 없이 인벤토리에서 데모니언을 꺼내 들었다. 라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뒤로 몇 걸음 물러섰고, 가람이 데모니언을 앞으로 내밀었다.
“자, 잠깐! 당신들 무슨 짓을..!”
“문제 생기면 배상할 테니까 닥치고 있어.”
당황한 얼굴로 외치는 종업원을 향해 가람이 내뱉었다. 데모니언의 끝에서 시커먼 어둠이 맴돌았다. 손을 댈 필요도 없었다. 데모니언에서 흘러 나온 어둠이 문고리를 감쌌고, ‘철컥’하는 쇳소리가 났다. 마법이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소리였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문의 안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람의 얼굴에 짜증이 실렸다. 그는 데모니언을 여전히 세우고서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하나 있는 침대에는 이불이 말끔하게 깔려 있었고,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이 방에 누가 묵었었나요?”
라덴은 종업원을 향해 물었다.
“아.. 니오. 최근 이 방을 쓴 손님은 없는데..”
“뭐?”
종업원의 대답에 가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즉시 데모니언을 휘둘러 종업원을 겨누었다. 시커먼 어둠이 종업원의 머리 주위를 맴돌았다.
“뭐, 뭐에요? 나한테 왜 그러는 거예요?”
“..사실이잖아. 이 방을 쓴 사람이 정말 아무도 없었나?”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자, 자홍색 로브. 자홍색 로브를 입은 남자는? 이 여관의 종업원인 루이에게 심부름을 시켰다는데..?”
“루이? 그건 또 누구야?”
겁에 질린 얼굴을 한 종업원이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 여관의 종업원은 나 혼자입니다! 루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종업원은 없어요!”
그 말에, 가람과 라덴의 표정이 굳었다. 라덴은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가람을 바라보았다.
“..말도 안 돼.”
가람이 중얼거렸다.
“내가 마법으로 확인했어. 그 꼬마의 이름은 루이였고, 노래하는 염소 여관의 종업원이지. 꼬마는 노래하는 염소 여관의 301호에 묵고 있는 자홍색 로브의 남자에게 심부름을 받고서 레하브의 집으로 갔었어.”
중얼거리던 가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데모니언을 잡은 가람의 손이 부들거리며 떨렸다.
“..거짓말..? 아니, 아니야. 이건.. 씨발!”
버럭 욕설을 내뱉은 가람이 데모니언을 크게 휘둘렀다. 살기에 노출되었습니다! 라덴의 머릿속에서 그런 경고가 울렸고, 라덴이 대처하기도 전에 데모니언의 어둠이 라덴을 덮쳤다. 콰앙! 어둠에 부딪혀 뒤로 날아간 라덴의 등이 벽에 부딪혔다.
“그 꼬마가 우리를 속였잖아!”
가람이 고함을 질렀다. 거짓말 탐지 마법은 NPC에게 유효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것은 아니다. 시전자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하거나, 정신 공격의 방어기재를 갖추고 있는 상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전자인 가람이 그를 눈치 채지 못했다면? 역으로 술수에 걸린 것이다. 루이는 가람의 마법을 이용했다. 마법이 간파하지 못하도록 술수를 부려 거짓말을 사용했고, 라덴과 가람을 노래하는 염소 여관으로 보내버린 것이다.
“평범한 꼬마가 아니었어. 평범한 꼬마가 아니었다고! 이 개자식, 너 때문에..!”
“진.. 정해요!”
라덴은 몸을 짓누르는 압력 속에서 저항하며 내뱉었다.
“당신의 마법을 역이용하고 술수를 부릴 정도라면, 루이는.. 아니, 진짜 이름이 루이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꼬마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그 새끼는 당신보다 뛰어난 마법사였다는 거잖아요! 그 새끼를 죽이려 들었다가는 분명..”
“입 닥쳐! 그 새끼가 레하브였을 지도 몰라. 네가 괜히 자비를 베푼답시고 나댔다가 이 꼴이 난 거라고!”
“나한테 화풀이할 시간이 있으면 다시 돌아가자고요!”
체력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몸을 옭아 죈 마력이 라덴의 체력을 빼앗는 것이다. 라덴의 외침에 가람은 크게 숨을 내뱉으면서 데모니언을 바닥으로 내리 찍었다. 쿵! 어둠에서 벗어난 라덴의 몸이 땅을 뒹굴었다.
“..그래, 좋아.”
가람은 씨근거리면서 라덴을 노려 보았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보자고. 그 개새끼가 병신이 아닌 이상 그 집에 남아있지 않겠지만 말이야.”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