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2
12. 오다 주웠다
“타라.”
유행운은 감독이 보는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트레칭을 했다. 어찌나 꼼꼼하게 푸는지 이형호가 감탄할 정도였다.
현재 유행운의 몸은 장시간 운동을 쉬었다.
갑자기 운동을 하는 몸이었기에 아무리 젊은 몸이라 하더라도 탈이 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몸을 키우는 동시에 스트레칭을 꼼꼼하게 해주었다.
“차가 참 아담하고 예쁩니다.”
“경차라고 돌려까냐?”
“아닙니다. 정말 큐트해서 그렇습니다.”
아주 아담하고 귀여운 경차였다.
그것도 오래된 낡은 경차였다.
“감독님은 프로에서 성공했는데, 왜 경차 끄십니까?”
유행운이 진심으로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었다.
이형호가 수비에 특화된 선수였지만, 내야 유틸로 경기에 자주 출전했고 FA경험도 있었다.
비싸게 팔린 선수는 아니었지만, 10억 초반대 계약을 이뤄낸 걸로 기억했다.
“난 반쪽 짜리지.”
이형호가 시동을 걸며 말했다.
“내가 봐도 나는 수비를 참 잘했어. 유격수로만 800경기 정도 출전했고 2루수로 100경기 좀 안 되게, 아무튼 통산 출전 기록은 1000경기를 넘긴 했는데, 내가 타격만 됐으면 FA 대박 쳤을 거다.”
그 말은 사실이다.
이형호가 10억 초반대 FA 계약을 한 것은 타격이 모자란 유격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를 필요로 하는 팀은 있었다.
포수 제외 내야 전 포지션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다는 건, 예상치 못한 틈을 메꿀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시즌을 보내다보면 부상은 꼭 뒤따라 온다.
내야 전 포지션을 볼 수 있는 이형호는 훌륭한 백업 자원이었다.
“내 커리어하이 성적이 어느 정돈 줄 아냐?”
“잘 모릅니다.”
“주로 유격수 출장했고 그때, 처음으로 타율 2할 5푼 찍었다. 그때가 가장 잘 치던 때야. 그러니까, 나는 반쪽짜리 야구선수가 맞지.”
“그래도 국가대표도 하셨잖습니까.”
“야, 그건 그냥 대수비 자원으로 나 뽑은 거야. 수비로는 나만큼 하는 유격수가 없었거든.”
이형호가 웃는다.
“뭐, 수비 외에도 장점이 하나 더 있다면 역시 강철 몸이지. 내가 유리 몸이었으면 FA 해보기나 했겠냐.”
차가 정지 신호를 받고 서서히 멈춘다.
이형호가 지난 일을 생각하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유행운을 응시한다.
“내가 가장 아쉬웠던 건 역시 타격이야. 난 정말 재능이 없었어.”
유행운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이형호가 타격 재능이 없는 건 명백한 사실이라 뭐라 말을 얹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유격수에게는 수비가 가장 먼저지. 타격이 조금 떨어져도 수비를 잘하는 유격수를 선호해. 그런 유격수에게 공격력이 탑재된다? 그건 정말 신이 내린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홈런을 빵빵 터트릴 수 있는 대형 유격수.”
차가 다시 움직인다.
“여러 선수를 봤지. 미국에서 날고 긴다는 유망주도 구경했고 대학 감독 하면서 다양한 선수를 접했어. 이번 스카우트 작업 하면서 실링이 높은 유격수 자원 여럿 접촉했었고.”
“그래서 영입 성공하셨습니까?”
“됐겠냐? 유격 자원을 쉽게 놔주는 팀이 어디있겠냐. 귀하지, 유격수.”
웃음을 터트린 이형호가 곁눈질로 유행운을 보았다.
“이제는 괜찮아. 우리 팀에도 좋은 유격수가 있거든.”
유행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끔 창밖을 내다보고 어떨 때는 운전하는 이형호를 보기도 했다. 사실 어느 순간에는 굉장히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이 그렇다.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형호의 차를 타고 퇴근하는 지금 이 순간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너만큼 대형 유격수 자질을 갖춘 선수가 없었다.”
이형호가 계속 말을 이었다.
“아쉬울 정도야. 너를 조금 더 일찍 만나지 못한 걸.”
오늘 이형호는 유행운과 대화가 하고 싶었다.
훈련 중에는 주변 시선 때문에 쉽게 사적인 대화가 불가능했다.
이미 유행운을 양아들처럼 대하는 걸 선수들이 알고 있다. 그렇기에 조절하고 있는 감독이었고 이렇게 일부러 유행운을 데려다주며 대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행운아, 너는 나보다 더 대단한 선수가 될 수 있어.”
“제가요?”
“그래, 나처럼 반쪽이 아니라 공수 완벽한 그런 유격수 말이야.”
이형호가 낡은 빌라 앞에 차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
“너를 만난게 내 지도자 인생의 큰 업적이 될 거다.”
유행운은 묘했다.
선수로서 처음 받아보는 신뢰였다.
쉽게 유행운은 입을 열지 못했지만, 이형호 감독은 상관없다는 투로 말했다.
“들어가라. 푹 쉬고 내일 보자.”
* * *
주말리그가 코 앞까지 다가왔다.
아직 KBO 정규리그가 시작되기 전이었고 하위권을 전전하는 팀팬들은 고교 리그에 시선을 돌린다.
– 근데 경원상고 신생팀 아니야? 민현웅 뭘 보고 거길 감;;
└ ㅋㅋㅋㅋ 꼴칰가기 싫어서 태업하는 거라고
└ 꼴칰 피하려고 타격 죽쓸 생각인가?ㅋㅋㅋ
└ 존나 웃곀ㅋㅋㅋㅋ
└ 만약 여기서 민현웅 날라다니면 진심 이 팀에서도 날라다닐 애다
아직 야구 시즌 전이라, 심심한 나머지 고교리그에 관심을 두는 셈이었다.
– 지금 민현웅이 최선인가? 다 좋긴 한데 얘 빠따라서 1라는 투수 국룰아니냐고요
└ 꼴칰 주전 타율 보고 와라
└ 팀타율 꼴찌, 팀홈런 꼴찌, 팀OPS꼴찌, 뭐 다 꼴찐데 될 싹 보이는 빠따 뽑아야 함
└ 전면 드래프트 하고 나서 최대어 많이 먹음 투수 최대어 물면 뭐하냐? 1점도 못 내서 지는 경기 못봄?
└ 야알못 지금 실링 민현웅이 최고임
└ 이주영은 1픽할 만 한데 이 팀 옆구리 ㅂㅅ임
현재 가장 첫 번째로 고교 선수를 지명할 대전 호크스 팬은 민현웅을 비롯한 유망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고교 선수에게 프로 지명은 굉장히 중요하다.
현재 역대급 타자 최대어로 불리는 민현웅에 대한 반응이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투수였다.
지금까지 투수가 1픽으로 지명되는 경우가 숱했지만, 올해만큼은 분위기가 제법 달랐다.
“유행운.”
민현웅은 혼자 타격 연습을 하고 있는 유행운에게 다가갔다.
“너 배트 뭐 쓸 거야?”
부웅.
배트를 휘두르던 유행운이 숨을 고르며 민현웅을 보았다.
“학교에서 주는 거 쓸건데.”
그 말에 민현웅이 미간을 좁혔다.
이윽고, 유행운이 들고 있는 나무배트를 응시한다. 학교에서 연습용으로 지급하는 나무배트는 그 질이 좋지 않았다.
연습용으로 사용하는데, 당연히 실전용보다 좋지 않은 건 당연했다.
“에바야.”
민현웅이 혀를 찬다.
유행운도 알고 있었다. 연습 배트로 주말리그에 나서는 건 고장난 총칼로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걸.
하지만 유행운에게 시급했던 건 글러브였다. 중학시절에 쓰던 글러브는 사이즈가 작았고 유격수로 포지션을 옮긴 만큼 더더욱 글러브가 필요했다.
현재 육성회비라던가, 차량 대절 비용 등에 대한 금액은 감독이 지원해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차마 배트까지 바랄 수는 없었다.
“이리와 봐.”
민현웅은 보름 전에 진행한 연습 경기에서 유행운이 사용하던 배트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아무리봐도 실전용으로 쓰기에는 모자랐다.
유행운이 타격 솜씨가 좋고 마른 체구에도 강한 손목 힘으로 홈런을 날린다고 해도 배트는 중요했다.
“장인은 도구를 안 가린다? 난 그거 개소리라고 생각해.”
유행운은 타격 훈련을 하다 말고 민현웅에게 질질 끌려갔다.
“담장을 맞고 떨어지는 장타를 바꿀 수 있는 게 배트의 힘이야. 좋은 배트가 괜히 비싼 게 아니거든.”
장비에 대해서 민현웅이 자신의 생각을 구구절절 이야기했다.
“알지, 아는데. 내 사정에는 좋은 배트를 가질 수가 없다니까.”
프로까지 경험한 유행운이 장비의 중요성을 모를 리가 없었다.
차라리 고등학생에게도 신용카드 발급이 된다면 눈 딱 감고 할부로 배트를 지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어느새 민현웅은 유행운을 끌고 탈의실로 들어왔다. 자신의 캐비넷을 열어 젖힌 민현웅이 곱게 세워 있는 배트를 꺼냈다.
“빌려주려고.”
스윽.
나무배트를 내민다.
딱 봐도 고가 브랜드였다.
“너 프로 갈 거잖아.”
유행운은 대답 없이 멀뚱멀뚱 민현웅을 보았다.
“계약금으로 충분히 이 배트값 갚을 수 있잖아? 아니야? 너 그 정도 그릇도 안 되는 놈임?”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오다 주웠다.”
“개소리.”
“그니까, 넌 그런 식으로 적선 받는 건 싫잖아.”
아니, 좋은데?
유행운은 속마음을 숨기고 표정 관리를 했다.
사실 다시 인생을 시작하면서 자존심 따위는 곱게 접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자존심 때문에 거절하는 것보다는 받는게 낫다.
이미 감독에게도 불쌍한 척을 하며 지원을 끌어왔던 유행운이었다.
금수저에게 배트 몇 개 얻어도 괜찮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충분히 갚을 수 있는 정도의 도움이었다.
“빌려줄게.”
“대출 같은 개념인가?”
“응, 나중에 갚을 때 나 좋은 배트 하나 사주라.”
“배트로?”
“네 이름이 유행운이니까. 네가 주는 배트로 프로 진출하면 운이 막 붙을 것 같아서.”
유행운이 씁쓸하게 웃었다.
민현웅은 아무것도 모른다. 유행운이 프로 시절에 별명이 뭐였는지.
유행운의 별명은 유불운이었다.
불운이 따라다니는 야구선수 유행운.
“그래.”
유행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배트를 받았다.
“네 호의 고맙게 받을게.”
유행운이 생각하기에 민현웅은 나쁜 놈은 아니었다.
재능을 타고나서 한없이 가볍고 진중하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유행운에게는 득이면 득이될 선수지 해가 아니었다.
“오늘 이겨야 되잖아.”
민현웅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래, 이겨야지.”
사실 민현웅은 올해 팀 성적이 죽을 쒀도 프로에 간다.
1라운드 첫 번째 지명이 아니더라도 결국 간다.
하지만 나머지 팀원들은 아니었다.
팀 승리가 곧 프로를 향한 길이 될 것이다.
최대한 좋은 성적을 거둬야 유행운도 프로로 직행할 수 있었다.
“잘해보자.”
그렇게 주말리그 전반기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