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3
13. 기선제압
주말리그 전반기 1차전.
수도권 강호 북성고와 재창단한 신생팀 경원상고의 경기가 펼쳐진다.
“오랜만이네, 박 감독?”
“형님. 감독은 무슨, 편하게 하세요.”
북성고의 감독 박광윤은 이형호와 친분이 두텁다.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었고 프로에서도 마주친 선수였다.
이형호는 수비형 선수로 제법 오래 활동했고 박광윤은 부상으로 조금 더 일찍 은퇴했다.
서로 고등학교 감독이 된 두 사람은 선의의 경쟁을 약속했고 이렇게 주말리그 첫 경기에 맞붙게 되었다.
“그래서 좀 괜찮은 선수 있어요?”
“뭐, 없다고는 말 못하지.”
박광윤이 시작부터 경원상고의 전력을 떠본다.
당연히 이형호는 웃으며 조심스럽게 넘어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박 감독은 배가 부르겠어. 이주영, 아주 잘 컸던데?”
이주영이 언급되자 박광윤의 얼굴이 활짝 폈다.
“하하, 말해 뭐합니까. 이 감독님도 보기만 해도 배부른 선수 있잖아요. 민현웅.”
하하하.
호탕하게 웃으며 이형호가 박광윤의 등을 두드렸다.
두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화기애애했지만, 속은 경기 생각으로 가득했다.
서로 이길 생각만 하고 있다.
물론 여유가 있는 건, 선수풀이 풍부한 북성고였다. 박광윤은 오늘 경기를 손쉽게 잡을 생각이었다.
‘신생팀 정도는 가볍게 이겨야지.’
신생팀 상대로 고전한다는 건 북성고 자존심이 긁히는 일이다.
박광윤은 그런 속마음을 숨기고 웃는 얼굴로 이형호를 보았다.
“그나저나, 오늘 경원상고 응원이 대단한데요?”
“아, 총동문회에서 응원 왔거든.”
한국에서 고교리그는 그리 주목받지 못한다.
하지만 오늘은 목동 경기장에 사람이 제법 있었다.
경원상고 재창단 첫 경기를 기념하기 위해 총동문회에서 응원을 왔고 야구부 가족들도 경기장을 찾았다.
“완전 경원상고 홈 같습니다?”
“애들 마음이 좀 편해지면 그걸로 충분하지.”
박광윤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좋은 경기 해보자고.”
가볍게 악수를 한 두 사령탑은 뒤도는 그 순간, 승부욕에 불타올랐다.
“아, 감독님.”
박광윤의 목소리에 이형호가 걸음을 멈춘다.
“참고로 오늘 선발 투수, 이주영입니다.”
허.
이형호가 눈살을 찌푸린다.
자신만만한 목소리.
이주영이 등판한다는 건, 경원상고에게 여지를 남기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건방진 새끼, 네 뜻대로 되나 보자.”
은근하게 박광윤이 자존심을 긁었다.
이형호가 이를 갈며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 * *
“이주영 선발?”
상대 라인업을 확인한 경원상고 야구부가 술렁인다.
“30구 이내로 끊겠다는 생각이네.”
그리고.
박광윤이 신생팀에게 이주영을 선발 투수로 낙점한 이유가 있었다.
“싹을 밟겠다는 거지. 쉽게 말하면 기선제압?”
민현웅은 정확히 상대 감독의 의중을 파악했다.
박광윤은 이주영을 통해 기선제압에 나섰다.
이주영이 압도적인 투구를 보여줄 거라고 굳게 믿었고 짧게 끊고 다음 투수를 준비할 생각이었다.
“이주영이 언제 나오든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하면 돼.”
유행운이 배트 손잡이에 스프레이를 뿌리며 말했다.
“투수는 말이야. 아무리 좋은 선수라고 해도 매번 잘 던질 수는 없어. 컨디션에 따라 영점이 안 잡힐 수도 있고 이상하게 안 풀리는 날도 있고. 우리는 그냥 우리가 준비한 걸 보여주면 돼.”
만약 이주영이 선발 투수로 낙점되지 않았다고 해도 경원상고가 선전하면 언제든 상대 에이스를 마운드로 끌고 올 수 있다.
“오늘 우리는 이주영을 두들겨 패면 돼. 내일 경기에도 나가지 못할 만큼, 오래 마운드에 붙들고 있음 된다고.”
그렇게 하면.
“북성고의 계획이 모두 흔들릴 거야.”
상대는 이미 경원상고를 우습게 보고 있다.
이주영은 오래 던지지 않을 것이다. 30구 이내로 끊고 내일 경기를 준비한다.
그렇다면 이주영이 오늘 선발로 나온 이유는 단 하나, 민현웅의 말대로 기선제압이었다.
“됐고.”
민현웅이 배트를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내 앞에 밥상만 차려 놔. 내가 홈런 갈겨줄테니까.”
아주 넘치는 자신감이었다.
유행운은 혀를 차며 시선을 돌린다.
오늘 경기장에는 고교 유망주를 확인하기 위해 하위권 구단이 모두 모였다.
민현웅을 면밀히 체크하는 대전 호크스와 이주영을 고민 중인 부산 마린스.
그 외 구단은 북성고의 투수진을 확인하기 위해 목동 경기장을 찾았다.
‘몸값 올릴 기회네.’
경기 시작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유진아, 가자!“
1회 초, 북성고의 타선을 백유진이 요리한다.
선발로서는 아직 미지수였지만, 세안고에서 필승조로 활약했던 백유진의 구위는 살아 있었다.
“굿 피칭!“
언제나 그렇듯 선발투수에게 1회는 굉장히 중요하다.
영점이 잡히지 않아, 1회에서 흔들리는 선발이 제법 많았다.
그리고.
“이주영이다.“
1회 말, 마운드에 이주영이 등장했다.
* * *
이주영.
강속구를 던지는 전도유망한 옆구리 투수.
그리고 마린스가 데려갈 거라 예측되었던 이 선수는 공교롭게도 순번이 밀려 서울 스타즈에 입단했다.
마린스는 이주영을 오랫동안 유심히 지켜보았다. 갑자기 마린스가 이주영을 포기하고 다른 선수를 픽한 이유는 갑작스러운 사고 때문이었다.
마린스의 백업을 담당하고 있는 유망주 포수가 사고로 은퇴하게 되었다.
다시는 선수생활을 하지 못할 만큼 심각한 부상이었다.
즉, 포수를 다시 처음부터 육성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1라운드 지명 계획을 바꾼 것이다.
‘욕을 바가지로 먹었지.’
유행운의 기억으로는 이 선택은 마린스의 악수였다.
이주영을 픽하지 않자 마린스 팬들에게 욕을 얻어 먹은 것은 물론, 그 결과도 이주영을 선택한 스타즈의 승리였다.
유행운은 마운드에서 포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주영을 바라보았다.
“오늘 컨디션 어때?”
“긁혀. 제대로 긁혀.”
“내가 봐도 그래. 오늘 30구로 3이닝 청소도 가능할 듯.”
“1이닝 당 10구인가?”
“그치.”
북성고 배터리는 화기애애했다.
포수는 상대 타자를 모두 확인했고 미리 분석까지 했다. 하지만 분석지를 아침에 보면서도 필요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민현웅 외에는 모두 신경쓸 만한 타자가 없었다.
“오늘 체인지업은 민현웅에게만 던질게.”
“그래?”
“어, 결정구로.”
이주영은 올해 체인지업을 새로운 무기로 들고 왔다. 지명 순번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쉽게 말하면 1지명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근데 감독님이 민현웅 웬만하면 거르래.”
“뭐?”
“알잖아. 저기 민현웅 아니면 식물타선인 거.”
이주영이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더그아웃을 돌아 보았다.
박광윤 감독이 팔짱을 끼고 이주영을 보고 있었다.
“어차피 1회에는 민현웅 볼 일 없잖아.”
“그렇지.”
“그럼 2회에는 선두타자인데, 그걸 피하라고?”
당연히 이주영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긁히는 일이었다.
박광윤 입장에서는 강타자를 거르는 일은 당연했다. 이주영은 오늘 짧게 끊고 가야하기에, 민현웅에게 힘을 쓰는 것보다는 아끼는 것이 더욱 현명했다.
“됐어. 내가 이따 감독님께 말씀드릴게.”
“알았어.”
포수가 한 박자 느리게 고개를 끄덕인다.
민현웅과의 맞대결은 이주영의 자존심이 걸려 있다. 결코 물러설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 스카우터도 오지 않았는가.
“1회 가볍게 처리하자.”
이주영은 오직 민현웅만 경쟁상대로 생각하며 경기 준비를 마쳤다.
* * *
“아오, 초구충이 여기에도 있네.”
김주연이 두 손으로 얼굴을 싸맸다.
민현웅을 보기 위해 찾은 목동 경기장.
그리고 1번 타자 강수현이 초구를 노려 땅볼 아웃이 되는 걸 지켜 보았다.
“유행운이 3번이네?”
김주연은 전광판을 보며 중얼거렸다.
딱히 유행운을 보러온 건 아니었다. 유행운은 이유 모를 자신감을 보여주었지만, 아직 실력을 모르는 김주연이었다.
“쯧, 이번 이닝은 글렀어. 현웅이는 다음에나 나오겠는걸.”
이주영은 전국구 투수답게 구위가 남달랐다.
자연스럽게 이주영이 주자를 내보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 타이밍에.
“쟤는 삼구삼진이냐.”
2번 타자가 배트를 휘두르지도 못하고 그대로 아웃당했다.
형편없는 경기력이었다.
삼구삼진인 것도 화가 나는데, 심지어 루킹 삼진이었다.
“사람이냐.”
쯧쯧.
김주연이 혀를 차는 그 순간, 유행운이 등장했다.
유행운은 배터박스에 들어가기 전에 가볍게 배트를 휘두르고 있었다.
타석에 서서 야구장갑을 고쳐 끼고 신중하게 배트를 쥔다.
김주연은 유행운에게 딱히 기대감은 없었지만, 같은 반이라는 동질감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스트라이크!”
이주영이 선택한 초구는 몸쪽 바짝 붙이는 직구였다.
유행운은 그 공을 지켜만 보았고.
“참나, 보여준다면서 루킹삼진 당하게?”
김주연은 존에 꽂히는 공을 그대로 두는 유행운을 헐뜯었다.
유행운은 흔들림이 없었다.
다시 헬멧을 고쳐 쓰고 배트를 든다.
“초구충보다 낫나?”
그거나 그거다.
김주연은 점차 유행운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대기타석에서 배트를 들고 투수가 던지는 공에 타이밍을 맞추는 민현웅을 본다.
대전 호크스에 올 유망주를 보는 김주연의 눈에는 꿀이 뚝뚝 떨어졌다.
“다음 이닝에나 보겠다, 우리 현웅이는.”
빠아악!
“엥?”
그 순간, 갑자기 터진 강렬한 타격음.
당황한 김주연이 시선을 황급히 유행운에게 돌렸을 때는 이미 타구가 멀리 뻗어나가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김주연의 넋나간 목소리가 사방에 흩어졌다.
* * *
“흐음.”
유행운은 앞서 이주영의 투구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초구는 몸쪽 바짝 붙인 직구.
강수현 같은 경우는 배트를 성급하게 냈다가 내야 땅볼로 물러섰고 두 번째 타자는 대응을 못해 배트 한 번 제대로 내질 못했다.
‘힘으로 누르겠다?’
그렇다.
지금 이주영은 경원상고 상대로 변화구는 사치라는 듯 직구만 팍팍 꽂아 넣고 있었다.
옆구리 투수가 던지는 직구는 단순하지 않다. 초구를 지켜본 것도 타석에 섰을 때, 이주영의 직구가 얼마나 더러운지 보기 위해서였다.
‘패턴 변화가 없네.’
생각을 가다듬고 다시 타석에 선 유행운이 자세를 잡았다.
지금까지 투구 패턴을 보아, 이주영은 다시 몸쪽에 바짝 붙일 것이다.
지금 유행운이 몸쪽 공을 아예 공략조차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을테니.
“이익!”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주영이 공을 뿌렸다.
인터벌도 짧았고 한치의 고민도 없었다.
유행운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몸쪽에 애매하게 붙으면 배트를 낸다. 깊숙하면 참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애매하네?’
부웅!
‘그럼 쳐야지!’
빠아악!
이미 백유진 상대로 몸쪽 공을 충분히 연습한 유행운은 이번에도 옆구리에 팔을 바싹 붙이고 배트를 호쾌하게 돌렸다.
이주영은 경원상고를 우습게 보았다.
유행운도 마찬가지였다.
유행운은 과하게 세리모니를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를 우습게 본 투수에게는 참교육이 필요했다.
“갔다.”
휙!
보란 듯이 배트를 멀리 던졌다.
유행운이 높게 던진 배트 사이, 이주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유행운이 박수를 경쾌하게 치고 그라운드를 돌았다.
포수가 마스크를 벗고 한숨을 쉰다. 그리고 이주영의 고개가 힘없이 떨어졌다.
“와아아아악!”
북성고는 기선제압을 위해 에이스를 마운드에 올렸다. 하지만 기선제압에 성공한 건-
“유행운 이 미친놈아!!”
바로 경원상고 소속 유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