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83
183. 미국에서 뭘 배운 거야?
브라이언 그랜트는 땅볼 유도형 투수였다.
포심과 체인지업을 섞어 쓰고 필요할 때는 포크볼로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것과 동시에 헛스윙을 유도한다.
최고 구속은 156km/h였으며 볼끝이 지저분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는 밀워키에서 자리 잡은 불펜 투수였지만, 어딘가 애매한 선수였다.
이제 리빌딩을 시작하는 밀워키 브루어스는 그를 내주고 질적인 유망주를 받았다. 브라이언에게는 트레이드 거부권이 없었기에 군소리 없이 보스턴으로 와야 했다. 물론 브라이언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새롭게 팀에 적응해야 하지만, 특급 선수도 아니었고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 가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밀워키보다는 보스턴에서 더 중용될 투수였기 때문에, 심적으로 크게 부담 가지는 않았다.
물론 팔려 간 입장이라 초반에는 잔뜩 긴장했지만, 서서히 적응을 마치고 있다.
따악!
브라이언이 던진 체인지업을 타격한 타자가 부러진 배트를 집어 던지고 1루로 내달린다. 빗맞은 타구. 유격수가 빠르게 대시하고 맨손으로 잡아 1루로 강하게 송구했다.
깔끔한 수비.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대체로 재능은 물론 실력도 갖추었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선수라고 해도 매 순간 최고의 플레이를 할 수는 없었다.
브라이언이 보스턴 레드삭스에 와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유행운이었다. 땅볼 유도형 투수가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건 수비였다. 실수 하나가 나오면 계산이 모두 무너진다. 상대의 기세가 올라가는 건 물론, 투수의 멘탈도 흔들리기 마련이었다.
“나이스!”
브라이언이 뒤를 돌아보며 유행운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지금까지의 유행운은 실수라는 것이 없고, 수비가 깔끔하고 간결했다. 그는 유행운이 실책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유행운 역시도 사람이었기에 시즌을 치르다 보면 자잘한 실책이 나오겠지만, 아직까지는 완벽한 모습이었다.
“이지 타구였는데.”
유행운이 피식 웃으며 함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주었다.
이제 보스턴 레드삭스의 필승조에는 새롭게 등장한 신인 오클리 캐럴과 새로 합류한 브라이언에 백유진까지 가세했다. 여전히 마무리 투수는 불안했지만, 확실히 한결 나아진 모습이었다.
따악!
내야에 볼이 떴다.
유행운이 두 팔을 벌리며 전진해 자신이 직접 잡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정리한 유행운이 미소를 지었다.
아주 오랜만에 잘 던진 불펜 투수가 깔끔하게 이닝을 마무리하며 내려갔다. 더그아웃에 들어오니, 백유진이 바로 포수를 붙잡고 대화를 하고 있었다.
백유진은 영어를 아예 못하지는 않았지만, 아직은 통역 없이는 매끄러운 대화는 어려웠다. 사실 처음부터 미국 진출을 생각했던 유행운과 달리 백유진은 KBO에서 살아남는 것이 먼저였다.
만약 이렇게 MLB에 진출하게 될 거라는 걸 알았다면 미리 준비를 했을 텐데, 이미 늦은 일이었다.
“헤이, 백!”
어깨에 아이싱을 한 오늘의 선발 투수 캠린이 백유진에게 다가간다.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
그러더니 수줍게 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낸다.
“이거 내가 아끼는 건데…….”
백유진이 의아한 얼굴로 캠린을 보았다.
“오늘 데뷔전이니 하나 선물로 줄게.”
어느새 백유진의 손에는 부적이 들렸다. 알 수 없다는 눈으로 부적과 눈앞에 보이는 파란 눈의 백인을 번갈아 보았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이건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사실 한국에서도 흔치 않은 물건이었는데 이걸 백인이 가지고 있다.
“너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거야.”
대체 왜?
백유진이 고개를 돌려 유행운을 보았다. 유행운에게는 이제 익숙한 모습이라 아무 말 없이 어깨만 으쓱였다.
아마 백유진도 서서히 익숙해질 것이다.
백유진은 대충 부적을 뒷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일단 동료 선수에게 받은 첫 선물이었으니, 이상해도 일단 챙긴다.
캠린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거 진짜 효과 좋아.”
포수 랭글리가 백유진에게 이야기했다.
“나도 갖고 있어.”
랭글리의 부적은 다름 아닌 헬멧에 있었다.
본드로 붙인 부적은 하도 땀에 젖어서 어딘가 모양이 이상했다. 백유진의 얼굴이 뜨악해진다. 쪼그라든 부적을 보는데, 뭔가 여기가 보스턴 레드삭스가 아니라 이상한 사이비 단체 같았다.
“왜……?”
“왜긴. 야구를 하다 보면 마음 둘 곳이 필요하니까. 이거 헬멧에 붙인 후로는 나 몸에 맞는 공 거의 없어. 파울 타구에 맞는 것도 좀 줄었고.”
“……그게 부적 덕분이라고?”
“단순히 루틴?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쉬워.”
여전히 백유진은 의아한 눈치였다. 가만 보니, 보스턴 선수치고 캠린이 나눠 준 부적이 없는 선수는 없었다. 심지어 일본 선수인 아카치마저 부적을 소중히 몸에 지니고 있었다.
“보스턴의 상징이지.”
“이게……?”
“어. 행운. YU가 이 구단에 입단한 것도 모두 운명이었던 거야.”
뭐야.
보스턴 레드삭스 교주가 유행운이었어?
* * *
8회 초.
보스턴 레드삭스의 공격은 득점 없이 끝났다.
순식간에 백유진이 마운드에 오를 시간이 되었다. 계속 포수와 대화를 나누며 상대 타자에 대해서 머리에 되새겼다.
운 좋게 하위 타순이다. 하지만 이곳은 MLB였기에 방심은 금물이었다.
“처남! 편하게 해! 쫄지 말고!”
로진백을 주무르고 있는데, 등 뒤에 자리를 잡은 유행운이 강하게 소리쳤다.
백유진이 마른침을 삼킨다. 손에 쥐고 있던 로진백을 떨어뜨리고 손바닥을 후 분다. 로진이 사방에 퍼진다.
[오, BAEK. 정말 잘생겼군요. 야구 선수에게 얼굴은 아무 쓸모가 없겠지만, 마운드 위에 서 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하하, 얼굴이 정말 쓸모가 없겠습니까? 조지, 얼굴은 잘생기면 잘생길수록 좋아요.] [그건…… 맞죠.]백유진은 고교 시절 말랐던 몸을 최대한 몸을 키우려 노력했고, 지금은 보기 좋은 몸이 되었다. 그 몸이 자세를 잡는다.
꿈의 무대에서 완벽한 초구를 던지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훅!”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공을 강하게 던졌다. 손가락 끝으로 공을 채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따악!
몸쪽을 공략한 패스트볼을 가볍게 타격한 타자가 땅에 맞고 뒤로 넘어가는 공을 지켜보았다. 구속은 평범했지만, 구위가 묵직했다. 가볍게 밀어 칠 생각이었는데, 배트가 뒤로 밀리는 느낌이었다.
‘살짝 떨어뜨리자.’
랭글리가 체인지업을 주문했다.
같은 투구폼에서 나오는 체인지업은 공의 속도가 그만큼 줄어든다. 오늘 처음으로 백유진을 상대한 타자는 패스트볼의 구속을 머리에 새긴 상태였다.
백유진이 망설이지 않고 바로 투구 자세에 들어갔다. 발을 차올리고 집중하여 공을 던진다.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던 지점과 동일한 위치였기에 타자 역시도 배트를 강하게 돌렸다.
홈 플레이트 근처에서 궤적이 살짝 떨어지는 체인지업. 타자가 본능적으로 공을 따라가며 헛스윙이 아니라 걷어 낸다.
딱!
커트를 해 낸 타자가 심호흡을 하며 계산한다.
체인지업의 구속이 생각보다 더 느려서 당황했지만, 못 칠 수준은 아니었다. 백유진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바로 공을 던질 준비를 마쳤고 눈높이에 맞춰 패스트볼을 던진다.
[투 앤 투. 하이 패스트볼에 이어서 바깥으로 빠지는 유인구를 던졌지만, 타자 미동도 없습니다. 신중하게 투구를 이어 가는 BAEK.]백유진이 포수에게서 공을 받고 사인을 주고받았다.
‘컷 패스트볼.’
백유진이 원한 구종은 컷 패스트볼이었고 포수도 동의했다. 두 차례 유인구를 던졌으니 이제 승부를 할 시간이었다.
풀카운트까지 가는 건, 이제 데뷔하는 신예 투수에게는 부담스럽다. 타자 역시도 타격을 준비하고 있기에 횡 움직임을 보이는 컷 패스트볼로 배트를 끌어내겠다는 계산이었다.
“후우.”
크게 심호흡을 하고 와인드업을 한다.
강우성에게 열심히 배웠던 컷 패스트볼을 던진 백유진이 타자의 배트가 움직이는 걸 확인했다.
따악!
홈 플레이트 부근에서 아웃라인으로 급격히 꺾이는 커터를 타자가 타격했다. 하지만 배트 끝에 맞아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은 공이 1루수 방향으로 느리게 굴러갔다. 대시하며 공을 잡은 1루수가 달려오는 타자를 터치했다.
타자 주자 역시도 1루수 정면 타구를 보고 주루를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포수가 마스크를 벗으며 백유진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잘했다! 계속 그렇게 쫄지 말고 해!”
등 뒤로는 매형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전히 백유진의 심장을 쿵쿵 뛰고 있었다.
[커터 움직임이 좋네요. 조지, BAEK이 뛰었던 대전 호크스에 우성 강도 있었다는 걸 알고 있나요? BAEK이 방금 던진 컷 패스트볼이 KANG에게 배운 구종이라 하더군요.] [잘 알고 있죠. 미국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한국인 메이저리거니까요.]따악!
두 번째 타자에게는 안타를 허용한 백유진이 인상을 찌푸린다. 1루수 옆을 스쳐 지나가는 단타로 주자가 출루했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손바닥에 땀이 찬다. 로진백을 주무르고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지른 백유진이 타자를 본다. 등 뒤에는 유행운이 있으니 땅볼 유도만 제대로 한다면 잘 막아 줄 거라 믿는다.
“흡!”
공을 강하게 던진 백유진이 타자의 배트가 헛도는 걸 지켜본다.
초구에 스트라이크를 잡은 백유진이 투수에게 공을 받고 로진백을 주워 드는 순간, 타자가 주심에게 뭐라 이야기를 했다.
“?”
백유진이 로진백을 주무르며 마운드에 방문하는 주심을 본다.
“손.”
미간을 좁히며 백유진이 로진백을 떨어뜨리고 손을 내밀었다. 꼼꼼히 손바닥을 살핀 주심이 이번에는 허벅지를 확인했다.
이쯤 되니, 타자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겠다.
오늘 데뷔전을 갖는 투수를 흔들기 위해 부정 투구를 확인해 달라 요청한 거였다. 백유진은 제 몸을 한 바퀴 돌며 꼼꼼히 확인하는 주심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백유진! 신경 쓰지 마! 네 공이 좋아서 헛수작 부리는 거야!”
주심이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제자리로 돌아가자, 유행운이 크게 소리쳤다.
“나도 알아.”
백유진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슬슬 열이 받는다. 타자가 실실 웃으며 백유진을 보고 있었다. 야구를 하다 보면 별일이 다 있을 수 있다.
“후.”
백유진이 손바닥을 분다.
가볍게 손을 털고 자세를 잡는다.
곁눈질로 1루 주자를 확인한 백유진이 이번에는 딜레이를 조금 길게 가져간다. 그러다 몸을 틀어 1루 견제에 들어갔고, 리드폭을 살살 늘리던 주자가 베이스에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