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82
82. 연습 효과가 이렇게 바로 나온다고?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
경기를 미뤄 비가 그치길 기다린다고 해도 경기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라운드 정비만 해도 한 시간은 소요될 것이며 애초에 그 시간 내에 정비가 될 것인지도 미지수였다.
결국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에 우천 취소 공지가 올라왔으며 연달아 원정을 떠나느라 지친 대전 호크스 선수단은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촤아아아악!
“윽.”
우천 취소 세리머니가 진행된다.
제일 먼저 방수포에 몸을 던진 선수는 지선호였다. 주장을 시작으로 유행운이 선배들 손길에 등 떠밀린다.
젖는 건 딱 질색이다.
그리고 괜히 몸을 썼다가 어디 하나 다칠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유행운은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았다.
충청도식 느린 파도타기가 유행운을 따라 시작된다.
– 우와아아아아!
느린 파도타기와 함께 함성이 터진다.
유행운이 파닥파닥 세리머니와 함께 방수포를 향해 달려들었다. 방수포에 고인 물줄기가 사방에 튀며 주르르르륵 몸이 미끄러진다.
비 때문에 경기를 할 수 없게 되었지만, 홈 관중을 위한 서비스였다. 괜한 발걸음이 되지 않도록 나름 노력한다.
“어후, 좀 춥네요.”
유행운이 홀딱 젖은 몸을 타월로 닦으며 말했다.
“이 정도면 뭐, 여름이지.”
백유진은 슬라이딩은 하지 않았지만, 그라운드를 가볍게 산보하며 손을 흔들었다. 잘생겨서 그런지 특히 여성 팬들이 자지러진다.
└ 대포들 존나 많더라
└ 비오는데 사진을 어케 찍음???
└ 방수 기능 있나 보지 ㅋ
└ 얼굴 하나는 최대어 뺨치네
└ 대전요정 남동생이잖아?
└ 백유진 최대 업적이 유정님 동생이란 거임 ㅋㅋ 개존예 여신님
└ 내일 직관가면 요정님 볼 수 있냐???
└ 몰루?
현재 유니폼 판매량 1위는 당연히 유행운이다.
팀 성적이 하늘 위로 치솟으면서 팀 내 인기 선수들의 마킹지가 매진될 정도였는데, 유행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1위는 유행운.
2위는 강우성.
3위는 지선호.
4위는 다름 아닌 백유진이었다.
‘얼굴이 최곤가……?’
유행운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살아가는 데 얼굴은 생각보다 더 중요한 것 같다고.
* * *
“처남.”
“뒤진다.”
“집에서 쉬지 뭐 하러 나와.”
“심심하니까.”
“그래, 처남.”
백유진의 눈에 살기가 돈다.
유행운은 일부러 백유진을 놀리고 있었다.
사실 유행운은 백유진의 누나에게 그 어떤 생각도 없었다. 물론 작은 호감이 생기긴 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백유진이 친누나 이야기에 과하게 반응하는 게 재밌어서 툭툭, 놀리듯이 ‘처남’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너 아직도 운전 못 하냐?”
“운전면허 딸 시간도 없었어.”
유행운은 운전 경험자였다.
그렇기에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고 따로 연수를 받지 않아도 바로 운전이 가능했다.
“처남, 나중에 내가 알려 줄까?”
“너 한 번 더 그 소리 하면 죽인다.”
“재밌네.”
우천 취소가 되었고 유행운은 개인 훈련을 마치고 서산으로 이동 중이었다.
서산도 자연스럽게 우천 취소가 되었는데, 월요일에 방문해 달라던 이승현의 말이 기억나 오늘로 약속을 바꾸었다.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이승현은 아예 서산에 눌러앉았나 보다.
요즘 대전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이승현이었다.
“어, 너 온다 그래서 나도 맞춰 왔지. 유진이도 왔네?”
“안녕하세요.”
아마 이승현 생각대로 올해 은퇴를 한다면 서산에서 코치직 하나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에, 2군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걸지도 몰랐다.
“정우는 처음 보지?”
“네.”
유행운은 이승현을 따라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강우성을 보낸 값으로 200억을 손에 넣은 대전은 1군 경기장 펜스를 뒤로 미는 것과 동시에 서산 인프라도 정비했다.
유행운 역시도 강우성 몸값으로 정비된 이곳에서 1군에 대한 꿈을 키웠었다. 오랜만에 방문하는 장소라 유행운은 뭔가 마음이 뭉클했다.
따악!
불 꺼진 배팅장에서 경쾌한 타격음이 울렸다.
이정우가 배팅볼을 후려치고 있었다. 유행운이 훈련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히 다가가 이정우의 타격폼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이제 막 타자 전향을 한 이정우는 레벨 스윙을 몸에 입히고 있었다.
배팅볼의 구속은 140km/h에 맞춰 있었고 이정우는 리듬감 있게 공을 치고 있다. 확실히 투수 재능만큼이나 타격에도 재능이 있었다. 벌써 자신만의 타격폼을 만들었다는 그 사실이 증명하고 있었다.
만약 이정우의 어깨가 혹사로 망가지지 않았다면 타자 전향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이 세상은 만약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정우야.”
뒤늦게 이정우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승현이 피칭 머신을 끄고 이정우에게 다가갔다. 그 뒤로 유행운과 백유진이 졸졸 따라간다.
“또 혼자 훈련하냐?”
“이게 편해서요.”
“코치님께 공 좀 던져 달라 하지.”
“바쁘세요. 저 말고도 봐줘야 할 후배들 넘치는데…….”
이 대화만 들어도 지금 이정우가 얼마나 눈칫밥을 먹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대전 호크스는 만년 최하위를 전전했다. 전면 드래프트를 시행한 지 꽤 됐으니, 질적인 유망주를 독식했다.
그 과정에서 키워야 할 유망주가 넘쳐나게 되었다.
이정우는 부산에서 시작한 선수였고 뒤늦게 대전에 트레이드로 합류했다. 팀 입장에서도 선수 입장에서도 이정우가 그리 탐탁지 않을 것이다.
기회를 줘야 할 젊은 선수가 늘어서 있는데, 갑자기 타자 전향 한 이정우에게 기회를 나눠 줘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해서, 이정우는 쉽게 코치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배팅볼을 던져 주는 투수에게도 다가갈 수 없었다.
“여기 행운이. 옆에 잘생긴 친구는 유진이. 알지?”
“네, 알죠. 경기 매일 챙겨 보니까.”
이정우가 미소를 지었다.
이승현은 사람이 좋다. 아직 낯선 구단에서 혼자 묵묵히 운동하는 이정우를 챙기고 있었다. 그래서 이정우도 왜 유행운이 여길 왔는지, 눈치로 알고 있었다.
“선배님, 몸이 좋으시네요?”
사실 유행운은 이정우의 탄탄한 몸이 더 눈에 들어왔다.
“저보다 몸이 좋으시네요…….”
괜히 뭔가 부럽기도 하고 박탈감도 느꼈다.
이정우는 이제 막 타자 전향을 하고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직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태가 나고 있었다.
살은 물론 근육도 붙었다.
타격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하체가 단단해서 타구에 힘이 실리고 있었다.
“아니야. 너도 좋, 좋아…….”
이정우가 괜히 칭찬한다.
하지만 말을 더듬는 걸 보니, 진심은 아닌 듯했다.
각설하고.
“네가 행운이 폼 참고했다고 해서, 직접 그 실물을 데리고 왔어.”
“형,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그럼 그냥 데려가?”
“그건 아니죠.”
이정우가 정색한다.
유행운이 한 걸음 이정우에게 다가갔다.
“선배, 요즘 조급하죠?”
짧게 이정우의 타격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었다.
“경기 나가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타격 되게 신중하게 하시죠?”
유행운은 지나간 과거를 떠올렸다.
이정우의 타격을 보면 잊고 싶은 과거가 생각나게 한다.
“그게 보여?”
“네.”
“맞아, 나 지금 선발 출장하거나 대타로 타석에 서면 뭐라도 하려고 해.”
“그게 지금 문제예요.”
과거 유행운은 이 신중함에 발목을 잡혔다.
물론 뒤늦게 야구를 다시 시작하면서 몸이 망가진 이유도 있었지만, 제한된 기회를 잡기 위해서 타석에서 과한 신중함을 보였던 것도 화근이었다.
그 당시 유행운은 수비에서 결점을 보였다.
발목 부상 이후로는 수비 범위까지 좁아져서 2루수로서 타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큰 약점을 보였고 결국 1루수로 활동해야 했다.
1루수는 거포가 한다.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힘이 좋은 타자가 1루수를 한다. 그러니 유행운은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똑딱이가 무슨 1루순가?
“현실적으로 선배는 외야를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야도 힘들잖아요. 1루수나 지명타자를 노려야 하는데, 그 포지션은 대부분 거포예요.”
“어, 그렇지.”
“지금 선배 안타는 종종 치죠?”
“응.”
“히팅 포인트를 극단적으로 뒤로 두고 툭툭 밀어서 단타를 생산하는 폼인데, 지금 이대로는 안 돼요.”
이정우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마운드에서 공만 던지다가 한순간에 외야수가 될 수는 없고 내야수가 될 수도 없다.
기껏해야 1루수나 지명타자일 텐데,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 포지션은 한 방이 있는 거포가 주로 하는 포지션이었다.
“히팅 포인트 앞에 두세요.”
“앞에?”
“네. 그래야 장타가 나와요.”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이었다.
과거 유행운은 이런 자신의 단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단점을 극복할 시간이 없었다. 사실은 겁이 났다.
1군에 콜업되어 타석에 서는 그 순간, 출루하지 못하면 바로 기회를 박탈당할 것만 같은 두려움. 그래서 히팅 포인트를 극단적으로 뒤로 두었고 단타 위주 타격을 했었다.
“지금 타격폼은 괜찮아요. 선배 몸에 잘 맞는 거 같아요.”
유행운이 배트를 들고 시범을 보였다.
배트를 허리 앞에 두고 그 상태에서 멈춘다.
“여기서.”
이정우의 시선이 배트에 닿는다.
“여기에서 공이 맞아야 장타가 나와요.”
고개를 끄덕인다.
유행운의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모두 맞는 말이다. 조급한 마음에 공을 길게 보기 위해서 히팅 포인트를 뒤에 두었다.
성과를 보여 주지 못한다면 기회는 점점 없어질 것이다.
이정우의 목표는 계속 야구를 하는 일이었다. 이대로 야구 인생에 종지부를 찍기에는 아쉬움이 너무나 크다.
“삼진 먹으면?”
이정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원래 야구는 도박이에요. 모 아니면 도. 거포는 홈런 아니면 삼진, 똑딱이는 안타 아니면 땅볼.”
유행운이 미소를 지었다.
이정우는 어딘가 과거의 자신을 많이 닮아 있었다. 과거 유행운은 실패했지만, 이정우는 자신의 자리를 만들었다.
이정우는 부산 1차 지명자였고 그만큼 유행운보다는 좋은 조건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쉬운 길을 걸은 건 아니었다.
“어차피 선배, 지금 도박 건 거잖아요.”
“그렇지. 나 지금 도박 중이지…….”
도박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새로운 팀에서 용기를 내어 도박을 시작했다. 투수에서 타자로. 고교 시절만 하더라도 천재 소리를 들었던 이정우에게는 일생일대의 도박이었다.
이정우는 그 도박을 시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혼자 타격 연습을 하고 여러 타자들의 타격폼을 참고했다.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타격폼은 유행운의 것이었다.
간결하고 힘 있는 타격.
“오늘 우취여서 저 체력 남아도는데, 오늘 좀 봐드릴게요.”
그 말과 동시에 이승현이 피칭 기계를 가동했다. 이정우가 배트를 든다. 유행운의 조언을 상기하고 히팅 포인트를 조절했다.
부웅!
마음과 달리 배트가 헛돈다.
“타격 포인트를 갑자기 앞으로 두니까 어색해서 그래요. 계속해 보세요.”
다시금 공이 날아왔다.
이정우는 배트를 휘둘렀고 그때마다 유행운의 조언이 귀에 닿았다. 연거푸 타격을 진행한다.
헛스윙 비중이 줄어들고 빗맞는 것도 점점 잦아든다.
점차 타이밍을 맞추며 정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비록 배팅볼이었지만, 히팅 포인트를 조절한 만큼 의미가 있었다.
“뒷발 꽉 고정하세요. 무게 중심 이동을 잘 해야 해요.”
따악!
이정우가 집중하며 타격을 한다. 확실히 타구에 힘이 실렸다. 히팅 포인트 앞에 두는 것만으로도 타구의 질이 달라진다.
“허억…….”
이정우는 연달아 백 개를 타격하고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확실히 좋아졌어요. 어차피 현대 야구는 타구 속도예요. 날아가는 타구 속도가 빠르면 안타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잠시 이정우가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동안, 유행운은 생각에 잠겼다.
대전 호크스가 상승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역시 무더운 여름이 중요하다. 제대로 된 2루수가 없는 것도 문제였고 대타감도 없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사실상 지명타자도 이제 막 데뷔한 신인에게 주어지고 있다. 나름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는데, 사실상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차라리 2군에서 수비까지 겸하며 경험치를 주는 게 낫지, 1군의 반쪽짜리 선수로는 한계가 있었다.
“선배, 어제는 대타로 한 타석 먹었고 오늘은 우취잖아요.”
이정우가 배팅 장갑을 고쳐 끼며 유행운을 보았다.
“그럼, 오늘 힘이 좀 남아도시겠네요?”
“어, 어?”
“아직 8시니까, 시간도 좀 있고.”
유행운은 독종이다.
과거 경원상고에서 강수현을 쥐 잡듯이 잡았던 경력이 있었다.
“여기서 백 개만 치고 넘어가서 특타 할까요? 제가 공 던져 줄게요.”
살짝 당황했던 이정우가 작게 웃었다.
항상 어둠 속에서 혼자 운동했던 이정우였기에,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모여 있으니 기분이 상쾌했다.
혼자 있다 보면 깊은 심연의 어둠에 갇힐 때가 많았다. 외롭다는 감정과 외줄 타기를 하는 것 같은 두려움이 찾아온다.
인간은 혼자서 모든 걸 다 해낼 수 없었다.
처음으로 이정우는 대전에 와서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고맙다.”
“고맙긴요.”
열심히 해서 1군 올라와야죠.
* * *
“선배.”
유행운은 차에서 배트 두 개를 챙겨 나왔다.
“이거요.”
오늘 미친 듯이 타격 훈련을 한 이정우가 넋이 나간 얼굴로 유행운을 보았다.
“제 배트에는 행운이 있대요.”
민현웅은 유행운에게서 선물 받은 배트로 마이너리그 첫 홈런을 생산했다.
그는 유행운의 배트를 아끼고 있었는데, 중요한 순간에는 선물 받은 배트를 들고 타석에 섰다.
유행운의 이름은 말 그대로 행운이 가득하다.
과거에는 제 이름이 죽기보다 싫었던 유행운은 요즘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한번 써 보세요.”
이정우가 배트를 받았다.
“고맙다.”
마음이 묘했다.
아직 한참 어린 후배에게 받는 배트 선물은 조금 부끄러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후배의 마음이 고맙기만 했다.
“이걸로 꼭 홈런 칠게.”
다음 날, 유행운은 스트레칭을 하며 2군 경기를 보았다.
이정우가 오랜만에 선발 출장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포지션은 지명타자였다.
이승현에게 듣기로 이정우는 후배들이 돌아간 후에도 혼자 타격폼을 다듬었다고 했다.
이정우의 타순은 3번.
첫 타석에 들어선 이정우는 연습 스윙을 하며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있다.
‘연습 효과가 바로 나오지는 않겠지만.’
[따아아아악!]“엥?”
유행운의 눈이 커진다.
“미친 거 아니야?”
연습 효과가 이렇게 빠르게 나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