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age member of the mandol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블랙시즌 포장마차 개장
어나더 멤버 하나가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합니다. 옆에 와 계시는지 몰랐네요.”
이름이 수하라고 했던가.
창법도 그렇고, 여러모로 지호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기억하고 있던 멤버였다.
“저희가 음악 방송은 오늘이 처음이라서 긴장을 좀 했나 봐요.”
어나더는 YMJ 엔터테인먼트에서 야심 차게 내놓은 신인답게 이미 완성형 아이돌이었지만, 변명에는 능숙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도겸이 형은 웃는 얼굴로 어나더를 반겼다.
“이해해요. 데뷔 무대라…… 제가 다 떨리네요. 저희는 뒤에서 열심히 응원할게요. 파이팅!”
친화력 만렙. 얼어붙은 심장마저 녹이는 따스한 미소에 어나더 멤버들은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러곤 슬며시 움직여 우리와 거리를 뒀다.
“하하, 낯을 많이 가리나 보네.”
……형, 그거 아니야. 우리 무시당한 거야.
저 멀리, 제작진과 대화를 나누던 민수 형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분위기가 왠지 좀 싸하네. 무슨 일 있었어?”
역시 일당백 매니저답다.
민수 형은 멤버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도 빠르게 알아차렸다.
내가 대답했다.
“아뇨, 별일 없었어요.”
“그래? 저쪽은 YMJ 신인 보이 그룹인데, 오늘 데뷔한다나 봐”
“그렇지 않아도 인사 나눴어요.”
“아, 이제 알겠다.”
민수 형은 내 귓가에 대고 소곤소곤 속삭였다.
“라이벌, 뭐 그런 거야?”
“……그렇지도 않아요.”
아이돌이 되겠다 마음먹은 순간, 치열한 경쟁은 정해진 숙명이었다.
데뷔하자마자 시리우스와 팬 카페 회원 수를 두고 겨뤄야 했고.
《아이돌 전쟁》에 참전하여 여러 그룹과 부딪혔지만.
“사실 저는 크게 의식 안 해요. 어나더도, 메테오도.”
“왜?”
“저희한테 중요한 건 경쟁보다는 생존이니까요.”
미니 1집이 망하면, 그다음 컴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
내 손에 블랙시즌의 미래가 달려 있었다.
“……살아남는 게 목표예요.”
그리 말하는 사이에 어나더의 사전 녹화가 시작됐다.
데뷔곡 제목은 《Red Smoke》.
도입부부터 쿵쿵 때리는 강렬한 사운드가 인상적인 힙합 댄스곡이었다.
– 낮과 밤의 경계가 없는
이곳 숨을 크게 들이켜면
폐를 쥐어짜는 통증만
별생각 없이 감상하다가 흠칫 놀랐다.
영상으로 보고 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비슷했다.
마치 회귀 전 블랙시즌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 붙여진 이름 따윈 없는걸
그들이 나를 부를 땐
Hey Runaway
디렉터 프렘은 자신이 만든 세계관의 중심이 되는 멤버를 정해 두곤 했는데, 블랙시즌의 경우에는 지호였다.
그리고 그 역할을 어나더 멤버 중에서는 수하가 하는 듯했다.
정말이지 한결같은 취향이었다.
– 피어올라 Red Smoke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오직 본능에만 의존해
Run and Run Again
무대 의상은 미래 지향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 패턴이나 트임이 심상치 않다. 팬들은 썩 반기지 않을 디자인이었다.
어나더는 그러한 무대 의상을 꿋꿋이 소화해 내고 있었다.
– 아무도 잠들지 않아
누구도 꿈꾸지 않아
늘어만 가는 Dark Circle
휴식은 언제쯤인가
메인 댄서로 보이는 찬웅이 무대 중앙으로 향하고, 안무는 점차 격해졌다.
긴장감이 고조된다. 무언가 팡 터질 것 같던 그때.
템포가 느려지면서 메인 보컬 수하가 목소리를 냈다.
– Oh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이 땅에 구원이 존재하긴 한 걸까
죽어서야 비로소 안식을 찾을 수 있다면
이젠 내 손으로 찾아내겠어
woo woo woo Yeah
가슴이 뻥 뚫리는 고음과 함께 각 맞춘 군무가 따라붙는다.
양발을 벌리고, 펀치에 체중을 실었다.
– Red Smoke
깨부숴 (Hoo)
Red Smoke
깨부숴 (Hoo)
한점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다.
이러나저러나 YMJ는 YMJ였다.
대한민국 3대 기획사답게, 괴물 같은 신인을 내놓았다.
역량으로만 비교하자면, 메테오보다 훨씬 뛰어날지도 모른다.
– 피어올라 Red Smoke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오직 본능에만 의존해
Run and Run Again
지금이야 우리도 《아이돌 전쟁》을 통해 어느 정도 성장한 상태지만.
만일 데뷔 초에 어나더와 맞닥뜨렸다면, 겨뤄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 점멸하는 불빛을 따라
Run Way 멈추지 마
어나더의 첫 녹화가 끝이 났다.
굳이 두세 번 촬영할 필요는 없어 보였으나 어나더 멤버들은 모니터링을 위해 걸음을 옮겼다.
“와, 어나더 멤버들 내려오는데 함성 들었어요? 저 고막 터지는 줄 알았어요.”
하준이의 말대로였다.
오늘이 데뷔 무대인데도 불구하고, 어나더를 응원하러 온 팬들이 객석에 가득했다.
YMJ 유스 2기 시절, 메테오와 싸잡혀 구설에 시달렸던 어나더였다.
그럼에도 어나더를 믿고 따라와 주는 팬들이 있다는 건…….
“무조건적인 지지라는 거지.”
그런 팬들 덕분에 어나더는 데뷔와 동시에 정상을 향해 달릴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주면 음악 방송 1위 후보 자리를 차지한 어나더를 볼 수 있는 건가 싶던 그때.
띠링!
[메인 퀘스트 – 위 공기 마시기]블랙시즌 미니 1집 타이틀곡 《IDENTITY》로 공중파 음악 방송 1위를 달성하십시오.
실패 시 페널티: 다음 컴백까지의 공백기를 1년 6개월로 확정
완료 보상: 능력치 강화 카드
“허억!”
강 건너에서 불구경하고 있었는데요. 그 불이 느닷없이 저한테 옮겨붙었습니다.
미니 1집 활동 종료 후 다음 컴백까지의 공백기가 1년 6개월.
1군 아이돌이면 또 몰라. 우리 같은 초소형 기획사 소속 신인에게는 너무도 긴 공백기였다.
겨우 끌어모은 팬분들마저도 기다림에 지쳐 증발해 버리고 말 것이다.
‘……그건 그냥 망돌로 만들겠다는 뜻이잖아.’
나는 반쯤 체념한 얼굴로 상념에 잠겼다.
공중파 음악 방송이라면 현재 우리가 대기하고 있는 A 본부의 《히트차트》.
또 MC 면접을 봤었던 B 본부의 《뮤직탱크》.
마지막으로 T 본부의 《온리뮤직》이 있지만, 아직 우리에게 출연 제의가 오지 않았다.
‘음악 방송 1위가 뉘 집 개 이름이냐고. 이제야 겨우 제대로 된 곡 받고 컴백했는데…….’
한숨을 푹 내쉬자, 병철이가 내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형, 우리 차례야.”
“응? 어나더는?”
“무슨 소리야. 형이 멍 때리는 동안에 두 번 더 녹화하고 무대 세팅까지 끝났어.”
“……그렇구나.”
제작진이 다가와 리허설 때 지적했던 동선을 다시 한번 짚어 주었다.
그렇게 무대에 오르려는데.
“선우야!”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객석에서 열렬한 함성과 응원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는 건 어나더뿐만이 아니었다.
휴대 전화 화면 너머로 만나는 것만으로도 소중하고, 또 소중한 팬분들이.
꼬박 밤을 새워 가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블랙시즌!”
그 순간, 가슴 안쪽에 침전됐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거짓말처럼 녹아내렸다.
그 어떠한 일도 이뤄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무모한 용기가 치솟는다.
나는 환한 빛줄기 아래에서 옅게 미소 지었다.
블랙시즌의 무대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 * *
A 본부 공개홀 인근 공원.
《히트차트》 사전 녹화가 끝난 뒤, 조촐한 미니 팬 미팅이 이루어졌다.
타 그룹은 일명 ‘역조공’이라 하여 팬들을 위해 커피 차를 보내기도 한다지만, 우리는 재정상 불가능했다(참고로 커피차를 알아보던 김 대표는 가격을 듣자마자 5초 만에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하여 내린 결론은…….
“커피차는 못 부르지만, 커피는 타 드릴 수 있어요!”
팬분들에게 손수 커피를 타 드리기로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대에서 반짝반짝 빛나던 아이돌이 이동식 포장마차 수레를 끌고 나타나자, 팬분들은 적잖게 당황한 눈치였다.
“도겸아, 포장마차는 또 어디서 가져온 거야?”
“이거 진짜 비밀인데, 철거 예정이던 황금 붕어빵 포장마차 사장님한테 7만 원 드리고 하루 빌렸어요.”
“너무 귀엽다. 사진 찍어도 돼?”
“그럼요. 포장마차도 같이 나오게 찍어 주세요. 하하.”
이 상황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계시는가 하면.
“지호야, 이런 거 안 해도 돼. 왜 네가…….”
“바, 밤새 기다리셨잖아요.”
“그래도, 그래도 나는 이거 못 받아…….”
“차 한 잔 정도는 대접…… 대접하게 해 주세요.”
궂은일은 하지 말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분들도 계셨다.
“저희 진짜 괜찮으니까 마음 편히 드세요!”
그러고 보니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팬분들과 소통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팬 카페 분위기만 봐선 4050 팬분들이 대다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연령층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저희 오늘 컴백 무대는 어떠셨어요?”
“좋았어요!”
“사전 녹화 기다리면서 사실 좀 긴장했는데, 응원해 주신 덕분에 힘이 났어요. 와 주셔서 감사드리고…….”
도겸이 형의 신호에 맞춰 우리는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렸다.
“사랑합니다!”
여기저기서 “나도 사랑해!”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때마침 물이 끓기 시작했고, 우리는 분주히 손을 움직였다.
“붕어빵하고 어묵이 있었으면 딱인데, 시간 관계상 따뜻한 차로 통일했어요. 너무 아쉽네요. 그렇죠?”
“아쉽긴. 언제 또 하준이가 타 주는 차를 마셔 보겠어.”
“그렇게 말씀하시면 이번이 꼭 마지막 같잖아요. 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준비해서 올게요.”
따뜻한 차 한 잔. 기다림의 보답이라기엔 너무 소소했다.
“누나, 왜 안 드시고 쥐고만 계세요. 혹시 커피 못 드시면 유자차로 바꿔 드릴까요?”
“병철아, 그게…… 아까워서 못 마시겠어.”
“어, 그럼 어떡하죠? 다 드시면 종이컵에 같이 그림 그리려고 펜도 가져왔는데…….”
“……마실게. 당장 마실게. 누나 지금 원샷 한다.”
어느덧 길었던 줄이 줄어들고, 팬분들의 손에는 종이컵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이제 마지막 차례.
“선우 군, 안 뜨거워요? 손 델라.”
“괜찮아요. 왠지 모르게 적성을 발견한 것 같기도 하고요. 뭐로 드시겠어요?”
“나는 커피.”
“네, 커피 여기…… 허억!”
맞닿은 손이 따뜻하다.
다정한 목소리를 가진 남팬인 줄로만 알았는데…….
“바, 박 기자님?”
히든포토 박 기자가 여기서 왜 나와?
박 기자는 자신의 입술 위로 검지를 가져다 댔다.
“쉿. 지금은 일이 아니라 취미 생활 중이에요.”
“취미 생활이요?”
“선우 군 쫓아다니면서 사진 찍기.”
“……일과 취미의 경계가 모호하잖아요.”
락커로 분장하지 않고 대면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뭐, 박 기자는 내 정체를 진즉에 알아차리고 있었지만.
“……그때는 감사했습니다.”
“언제?”
“《아이돌 전쟁》 파이널 라운드 때요. 오토바이 타고 있는 사진 찍어서 올려 주셨잖아요.”
아주 잠시지만, 내가 동정표를 얻기 위해 기절한 척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 나돌았다.
논란을 잠재운 건, 박 기자가 히든포토 파랑새 계정으로 업로드한 사진 한 장이었다.
“하마터면 일이 커질 뻔했는데, 박 기자님 덕분에 수월하게 넘어갔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커피를 받아 든 박 기자는 고개를 까딱이며 포장마차에서 멀어졌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토록 잔인하게 우리를 괴롭히던 그 박 기자가 맞나 싶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먼발치서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박 기자의 얼굴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