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age member of the mandol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82)
82화 트라우마 이벤트 발생!
“지호 부모님이 뭐라고 하셔요? 본가에 있대요? 괜찮은 거 맞죠?”
연이어 질문을 쏟아내자, 김 대표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본가에도 없대요?”
“그래도 짐작 가는 곳이 있다나 봐. 이른 새벽에 전화로 외조모 집 주소를 물어봤다고 하더라.”
“외조모 집…….”
어디론가 영영 떠나 버린 건 아니었구나.
긴장이 풀려서 무릎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나는 사무실 책상에 이마를 박고서 중얼거렸다.
“주소 불러 주세요. 그리로 가서 만나 볼게요.”
“너희는 예정대로 스케줄 뛰어야지. 오늘 오후만 해도 행사가 두 개인데.”
김 대표의 무정한 발언에 진절머리가 났다.
“메인 보컬이 사라졌는데 아무렇지 않게 행사나 뛰라고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멤버 하나 때문에 스케줄이고 뭐고 다 펑크 내겠다고? 메인 보컬 없이는 《아이돌 전쟁》도 불참할 생각이야?”
“그건…….”
“아니면, 행사는 불참하고 방송에만 얼굴 비치겠다고? 이제 막 무명 딱지 뗐으면서 거만 떨지 마.”
맞는 말이라서 반박하지 못했다. 나는 피가 나도록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김 대표는 커피가 반이나 남은 종이컵을 통째로 쓰레기통에 내던지며 이야기했다.
“나라고 이런 말만 골라서 하고 싶은 줄 알아? 나는 너희 보호자이기도 하지만, 소속사 대표로서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을 의무가 있어.”
“…….”
“당분간 지호는 건강 상태 악화로 스케줄 불참한다는 공지 올릴 테니까 그렇게 알고.”
“……네.”
그늘진 얼굴로 사무실 밖으로 나서자, 문 앞에서 기다리던 병철이와 하준이가 슬금슬금 내 눈치를 봤다.
나는 의식적으로 싱긋 웃어 보였다.
“지호 말이야. 외할머니댁으로 간 것 같아.”
“음, 일탈치고는 건전하네.”
“대표님이 직접 가서 지호랑 대화해 본다니까, 우리는 차질 없이 스케줄 소화하자.”
“지호 형 없이 우리끼리?”
나는 병철이와 하준이의 어깨에 팔을 걸며 대답했다.
“지호 녀석이 나중에 마음 다잡고 돌아왔는데, 블랙시즌이 망한 상태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 지호한테도 돌아올 곳이 있어야지.”
“하긴, 우리가 망돌 되면 돌아온 의미가 없긴 하죠.”
“그건 그렇고, 도겸이 형은 아직 안 돌아왔어?”
형은 지호의 부재를 확인하자마자 퍽 심각한 얼굴로 숙소를 나섰다. 그것도 정장까지 쫙 차려입고서.
“김부각 축제 행사 뛰려면 곧 돌아오지 않을까요?”
“그랬으면 좋겠네. 넷은 몰라도 우리 셋이서 공연하는 건 버겁잖아. 노래는 누가 해? 아하하!”
“……올해 들은 말 중에서 제일 끔찍했어요.”
싱숭생숭한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금 일상으로 복귀해야 할 때였다.
* * *
지호의 소식이 들려온 건 닷새가 지난 후였다.
예상대로 지호는 외조모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바로 어제 김 대표가 지호를 찾아갔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되돌아왔다.
《아이돌 전쟁》 촬영을 하루 앞두고 재정비를 위해 스케줄을 비워 뒀던 오늘.
드디어 지호를 만나러 가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구, 구웨엑……!”
“병철아, 괜찮느웨에엑!”
“으악, 매니저 형! 선우 형이랑 테오 형 토해요!”
경상북도 영천시 ○○동.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달려 지호에게 가는 길.
병철이의 구토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웩웩 구역질이 일었다.
“매니저 형, 잠시 쉬었다 가자고요! 이 형들 숨넘어가요!”
하준이의 절박한 외침은 얼마 안 가 비명이 되어 메아리쳤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매니저의 고개가 맥없이 꺾여 버렸기 때문이다.
조수석에서 운전대를 붙잡고 있던 도겸이 형이 창백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얘들아, 매니저 형 기절했어.”
“끼야아악!”
결국, 도로변에 승합차를 세우고 나서야 마음 놓고 토할 수 있었다.
“……하마터면 인생 하직할 뻔했네.”
깨끗한 공기를 들이켜니 메스꺼운 속이 좀 가라앉는 듯했다.
입을 벌리고 멍하니 앉아 있던 찰나, 하준이가 휴대전화를 쓱 내밀었다.
“이거 맞죠? 진혁이 형이 말했던 거.”
A 본부에서 운영 중인 《아이돌 전쟁》 공식 홈페이지였다.
홈페이지 상단에 버젓이 올라온 투표 하나가 눈에 띄었다.
1위 메테오(METEOR)
2위 킬링퍼스트(K.F)
3위 더엠페러(THE EMPEROR)
4위 하이스쿨락(HIGH SCHOOL ROCK)
5위 블랙시즌(BLACK SEASON)
투표가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1위인 메테오의 득표수가 327.8k. 다시 말해 327,800표였다.
그에 반해 우리는 고작 7.6k였다.
“패자부활전…….”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두 팀이나 탈락한 마당에 글로벌 투표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선 씨게 넘네요. 누가 봐도 메테오 관짝에서 꺼내려는 거잖아요.”
다국적 그룹인 메테오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투표였다.
당장 리더인 잭슨만 해도 한국과 뉴질랜드 복수 국적자였다.
그 밖에도 태국, 대만, 일본 멤버가 각 한 명씩 소속되어 있었다.
“우리는 파이널 라운드 진출했으니까 상관없지만, 하이스쿨락은 또 이용만 당하는 거네.”
“진짜 졸렬 그 자체예요.”
제작진과 메테오를 싸잡아서 신나게 씹던 도중 어디선가 구수한 트로트가 들려왔다.
승합차 주위에서 휴식을 취하던 우리는 일제히 언덕 위를 올려다봤다.
“지호 목소리 아니야?”
“진짜다. 지호 형 목소리야.”
“지호 형 외할머니댁은 여기서 좀 더 가야 하는 거 아니었어요?”
우리는 홀린 듯 언덕 위로 향했다.
담장 너머로 펼쳐진 그곳은 마을 회관, 아니 아이돌 콘서트장이었다.
– 찐, 찐, 찐, 찐 사랑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는지
기다린 시간만큼 진한 사랑을
나 당신과 함께 이 밤
문지호는 마이크도 없이 쇠숟가락 하나를 손에 쥐고 노래하고 있었다.
성량이 마을 회관 지붕을 뚫자, 어르신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 안권순, 창창한 나이 아흔일곱. 살아생전 이토록 꾀꼬리 같은 목소리는 처음이다.”
“나 황용석, 내일모레 환갑인 귀염둥이 막내.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뭐지, 어르신들이 차례로 독백하기 시작했다.
“혹시 지금 꿈꾸는 건가?”
“형, 근데 꿈을 다 같이 꾸기도 해요?”
“비포장도로에서 사고 나서 생사를 넘나드는 중 아니야? 하하.”
사색이 된 병철이가 마당에 놓인 고무 대야를 집어 들었다. 그러곤 셀프로 자신의 정수리를 후려갈겼다.
팍, 팍, 팍.
“벼, 병철아! 이게 무슨 짓이야!”
“깨어나야 해.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아.”
소란이 일자, 지호의 목소리가 딱 멎었다.
지호는 턱을 바짝 당기며 우리를 노려봤다.
“여긴 왜 왔어. 당분간 찾지 말랬잖아.”
반응을 보아하니, 우리의 방문이 썩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잘 지내나 걱정돼서 찾아왔지.”
솔직히 말하자면, 외조모 집에 틀어박혀 숨만 겨우 쉬고 있을 줄 알았다.
설마 농촌 아이돌이 됐을 줄이야.
“걱정돼서 찾아온 거 맞아? 《아이돌 전쟁》 때문이 아니고?”
“그게 무슨 소리야.”
“메인 보컬 없이는 파이널 라운드 진출해 봤자 개쪽만 당할 테니까. 네 체면 차리려고 찾아온 거 아니냐고.”
“문지호.”
“맞잖아. 나나 도겸이 형 말고는 노래할 사람도 없잖아. 너, 남병철, 최하준. 실력 미달인 거 온 세상 사람이 다 아는데!”
문지호는 가시 돋친 말을 서슴지 않고 쏟아부었다.
가만히 있다가 욕을 얻어먹은 병철이와 하준이는 금세 또 풀이 죽었다.
나는 문지호의 어깨를 꽉 붙들며 외쳤다.
“문지호!”
“헉!”
고작 이름 한 번 불렀을 뿐인데, 지호는 크게 놀라며 몸을 사렸다.
“지호 너, 괜찮은 거 맞아?”
“……미안.”
“우리가 도와줄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래.”
“나, 역시 아이돌 관둘래.”
아이돌을 그만두겠다고……?
갑작스러운 탈퇴 선언으로 멤버들은 물론이고, 마을 회관에 계시던 어르신도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아니, 이렇게는 못 그만둬.”
문지호의 마음을 돌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고, 머지않아 떠올렸다.
‘스탯 포인트를 쓰면…….’
일반 퀘스트 ‘따뜻한 냉커피’의 완료 보상으로 받은 스탯 포인트가 떠올랐다.
어디 까지나 가능성에 지나지 않지만, 손을 놓고 있는 것보다야 백배 천배 나았다.
“돌이켜 보니까, 난 그냥 노래하는 게 좋았던 거야.”
지호는 멤버들을 향해 옅게 미소 지었다.
‘성공한 건가?’
자만한 순간, 귀청이 찢어질 듯한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WARNING! WARNING! WARNING!]나는 손바닥으로 양쪽 귀를 틀어막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발밑에서 붉은 불빛이 치솟아, 순식간에 내 몸을 집어삼켰다.
[트라우마 이벤트 발생!] [※ 블랙시즌 멤버들의 갱생 가능성 항목이 잠금 됩니다.] [시스템을 통한 어떠한 이득도 취할 수 없습니다.]“뭐, 뭐야…….”
[※ 플레이어 능력치 항목이 잠금 됩니다.] [시스템을 통한 어떠한 이득도 취할 수 없습니다.] [외모(S) 잠금 완료!] [가창(C) 잠금 완료!] [춤(C) 잠금 완료!] [랩(D) 잠금 완료!] [연기력(D) 잠금 완료!]사방에 펼쳐진 경고 창에 넋을 놓고야 말았다.
시스템을 통한 어떠한 이득도 취할 수 없다.
즉, 지호를 포함한 멤버들을 갱생시키지 못하며.
능력치를 강화해 빠른 성장을 이뤄 내지도 못한다.
“안 돼애애액!”
[시스템 메시지! 아무리 그래도 외모 너프는 좀;] [시스템 방어 기전 ‘얼굴 빼면 시체’ 발현] [시스템이 온 힘을 다하여 플레이어 외모를 수호합니다.] [외모(S) 해금 완료!]“살았다아악……!”
아차, 안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뒤늦게 주위를 둘러보자, 멤버들은 느닷없이 바닥에 구르고 포효하는 나를 벌레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지호 형 말이 충격이었다지만, 그건 좀…….”
“그게 아니야아악!”
거기다 한술 더 떠, 어르신 한 분이 어디선가 팥과 소금을 가져와 나를 향해 뿌리기 시작했다.
“훠이, 귀신아 물러가라!”
“사람, 사람이에요!”
문지호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시선을 보내왔다.
“내가 말이야. 뭔가 진지하게 탈퇴를 선언하려고 했거든?”
“어? 응.”
“너 때문에 분위기가 다 깨져 버렸으니까 썩 꺼져.”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마을 회관 밖으로 쫓겨났다.
멤버들은 구시렁구시렁 불평을 늘어놓았고, 나는 여전히 시스템 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트라우마 이벤트로 인해 어떠한 명령도 실행할 수 없습니다.]“언제까지 지속되는 건데?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트라우마 이벤트를 진행하시겠습니까? Y/N]나는 홀린 듯 ‘YES’에 손끝을 가져다 댔다.
[시간의 문을 통과하기 위한 아이템이 필요합니다.] [보따리장수와 접촉하여 아이템을 구매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