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He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18
◈ 화려한 꽃
오뢰진기를 품은 백일태는 안기남 등을 거치며 차례대로 수련을 받기로 했다.
기초가 너무 안 되어 있기에 상급 무공을 가르칠 때가 아니었다.
그나마 지도해 본 경험이 있는 안기남이 첫 번째를 자처했다.
“흐음. 자질은 평범한 편인데. 오뢰진기라는 것이 그리도 대단한 건가?”
막하금은 백일태를 평범으로 평가했다.
무의 자질로는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는 몸이었다.
“오뢰진기는 특정 상황에서 사람을 희생시켜서 힘을 얻는다. 어떤 면으로는 사람을 잡아먹으며 키운 힘이라고 할 수 있지.”
“환사교나 혈교 등의 고법과 유사하지 않나?”
“아니, 수준이 다르다. 여타의 고법이 생명을 앗아서 기운을 축적하는 수준이라면 이건 폭증이다. 방법은 모르겠으나 무공을 수련한 자를 하나의 단처럼 연단하고 있다. 쌓일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그 힘이 세지지.”
“으음. 그럼 지금의 오뢰진기는?”
“셈법으로는 어려우나 족히 천 년 내공을 넘어선다.”
“처, 천 년? 그렇게는 느껴지지 않는데?”
“진기를 구성한 특별한 형태가 외부의 간섭을 방해하고 있다. 일종의 진법. 그것도 상상할 수 없는 고등 진법이다.”
천마가 이를 누를 수 있던 건 오로지 천마진기의 압도적인 힘 때문이다.
오뢰진기의 특별함은 입이 닳도록 말해도 부족하다.
“혹시 이런 진기가 하나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나?”
“필시 여럿이겠지.”
“음…….”
“천마진기만 해도 같은 형태를 지녔다. 이를 인위적으로 만든 자가 있다면 다수를 실험했다고 보는 편이 옳겠지.”
“그 정도의 힘을 여럿이나 만들려고 한 건가? 어째서?”
“확신은 없다. 다만.”
“다만?”
“아니다. 아직은 섣불리 뱉을 단계가 아니야.”
스쳐 가는 생각은 깊이 눌러 두었다.
상황은 복잡하고 주변 정세는 거칠었다.
섣불리 꺼내서 혼란을 부추길 필요는 없었다.
“그럼 앞으로는 어쩔 생각이냐?”
“슬슬 반응이 나올 때가 됐다.”
“반응이? 아……시기 한번 적절하구나.”
천마의 턱짓에 막하금이 끄덕였다.
부둣가 저편에서 은밀하게 접근하는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용은 쓰고 있지만 실로 미약했다.
“환락궁이군.”
“채아, 그 아이를 불러와야겠네.”
한채아의 전 직장.
환락궁의 방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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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곤은 긴장을 감출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손짓하여 뒤따르는 조원들을 인내한 뒤, 몇 걸음을 힘겹게 이동했다.
바스락거리는 풀잎 소리마저 거슬렸다.
“조장, 어디까지 들어가야 합니까?”
“쉿. 쉿. 조용히 해라, 이 멍청한 놈아.”
“하지만 이미 안뜰입니다. 인적도 없는 곳에서 왜 그렇게 긴장하는 겁니까?”
“모자란 새끼. 여기 천마도가 어디 흔한 섬인 것 같으냐? 여긴 범의 아가리라고. 까딱 잘못하면 그대로 목이 날아갈 수도 있어.”
으름장에도 조원은 이해하지 못했다.
애초에 환락궁은 무력 쪽에 특화된 집단이 아니다.
무력대의 인원들도 마찬가지고, 가진 정보 역시 굉장히 제한적이다.
천마도에 침투하는 일을 평범한 임무 정도로 여겼다.
“다들 잘 들어. 천마도는 신교의 본거지라고. 이곳에는 천마는 괴물 말고도 위험한 놈들이 여럿 있어. 마창 안기남, 마녀 이지아, 흑뢰 윤서나……걸리면 우리는 그날로 끝이야.”
“그, 그렇게 위험한 임무입니까?”
“그렇다고, 이 빡 대가리야.”
숨죽여 욕을 하며 벽곤이 이를 갈았다.
이런 위험천만한 임무에 무력 조를 투입했다는 것 자체가 도박 수.
되면 말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행동이었다.
애초에 환락궁은 무력이 중심이 아니니까.
‘시팔, 서러워서.’ 벽곤이 혀끝을 씹으며 바닥을 기었다.
“……찾았다.”
그렇게 바닥에 붙은 쥐새끼처럼 기어가기를 십여 분.
마침내 원하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호개방 당시 미리 침투했던 정보원이 전해준 내부 지도로 기반한 장소였다.
창가에 딱 붙어서 안을 살폈다.
“맞습니다. 환락궁에서 도망친 한채아입니다.”
“빌어먹을 년. 감히 궁을 배신하고 이런 곳에서 호의호식하고 있어?”
“당장 때려잡읍시다.”
“씁. 가만히들 좀 있어라.”
분기탱천하여 날뛰려는 조원들을 진정시키며 벽곤이 창 너머의 인물을 확인했다.
조용히 앉아 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여인.
궁을 배신하고 도망친 한채아가 확실했다.
“좋아, 이제 넘어…….”
“그렇게 숨어 있지 말고 다들 넘어오시죠?”
“!!”
벽곤이 그래도 얼어붙었다.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때 궁에 속해 있던 몸. 손님으로 대접할까 합니다.”
“……어떻게 알았지?”
“냄새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냄새가 섞여 있더군요.”
“끄응. 분이라도 칠했어야 했나.”
더는 발뺌할 수 없었다.
벽곤이 조원들과 함께 창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제법 잘 꾸며진 방 안에 사내 다섯이 꾸역꾸역 자리를 차지했다.
“궁에서 보내서 온 거겠죠? 이유를 들어도 될까요?”
“널 죽이러 왔다.”
“설마요.”
“내 말이 허풍 같더냐?”
“저 하나를 죽이기 위해 궁의 인력을 던질 이유는 없습니다. 게다가 그럴 거였다면 이미 예전에 실행했겠죠. 다른 용무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차분한 답에 벽곤이 뒷머리를 긁었다.
나름대로 주도권을 잡을까 해서 던진 수였는데, 전혀 통하지 않았다.
코끝을 찡그리며 본론을 꺼냈다.
“궁에서 네게 일을 하나 맡기려고 한다.”
“제게 말인가요? 배신자에게 시킬 일이 있을까 싶네요.”
“이번 일만 잘 해결하면 배신은 없던 일로 해 준다고 했다. 네 천형에 대한 해결책도 빠르게 찾아 준다고 하더군.”
“그렇습니까.”
한채아가 가볍게 웃었다.
그림 그리던 붓을 내려놓고 벽곤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용이나 한번 들어보죠. 자존심 높은 궁주께서 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큼. 궁주께서는 네가 밀정이 되어 주기를 원하신다. 신교의 정보를 몰래 빼내오는 거지.”
“왜 지금이죠? 접촉할 기회라면 과거에도 많았는데.”
“상황이 변했으니까.”
“벽력궁 말이군요.”
“그래. 설마 12궁 중 하나가 변절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 널 통해서 신교에 대한 정보를 더욱 깊이 알아낼 필요가 있는 거다.”
환락궁 내부도 그리 평화롭지는 않다.
벽력궁의 배반 이후로 궁내에서 의견이 갈렸다.
슬슬 산과의 관계를 끊고 신교 측에 선을 대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말들이 나온 것이다.
궁주 측에서는 대번에 일축했지만 이미 나온 말이었다.
수군거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궁의 입장은 이해했습니다.”
“그럼 받아들이는 거냐?”
“아뇨.”
벽곤의 얼굴이 빠르게 굳었다.
“깊이 생각하고 답을 해라. 네가 궁에 억하심정이 있는 건 이해하나, 이건 대국적인 시점이 필요하다. 네 천형을 생각하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
“퍽이나 신경 써 주는 척을 하는군요.”
“너……!”
“궁은 제가 몸담았던 시절 내내 이용만 했습니다. 제 천형인 환락지체를 사용해서 궁의 이득만을 취했죠. 그리고는 제가 떠날 것을 두려워하여 의각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이런대도 제가 궁을 도와야 할까요?”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미래를 봐야지.”
“푸……푸후후후.”
“뭐, 뭐가 그리 우스운 거냐!?”
갑작스러운 웃음에 벽곤이 목소리를 높였다.
“궁의 버림 패로 던져진 분들이 미래 운운하는 것이 우스워서 웃었을 뿐입니다.”
“시끄럽다! 우린 궁의 명령을 따를 뿐이다.”
“네, 네. 평생 그렇게 사세요. 전 사양하고 싶습니다.”
“거절하면 죽음뿐이다.”
설득이 안 된다면 협박뿐이다.
벽곤이 무기를 뽑아서 한채아를 겨누었다.
다른 조원들도 일제히 무기를 뽑아서 주변을 포위했다.
“허튼짓할 생각 따위는 버려라. 네 환락향에 대해서는 이미 대비하고 있다.”
“환락향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미 향을 거두어 힘으로 사용하는 경지에 올랐으니까.”
“뭐?”
“여전히 거절이라는 말입니다.”
쾅―!!
순간, 강력한 충격과 함께 벽곤의 몸이 방 밖으로 튕겨 나갔다.
황급히 바닥을 짚으며 몸을 추슬렀지만, 충격은 여전했다.
수 미터를 밀려난 뒤에 겨우 자세를 추슬렀다.
가슴팍에 손가락 반 마디 깊이의 자국이 찍혀 있었다.
“으, 으아아아!!”
“검이 안 통해!”
“젠장, 이게 무슨 힘이냐!?”
곧이어, 나머지 조원들도 모조리 튕겨 나왔다.
철퍽 철퍽 땅에 처박히는 소리가 어딘가 우스웠다.
뻥 뚫린 벽을 건너 한채아가 걸어 나왔다.
“궁이 천형을 가지고 장난질을 칠 때, 문주님께서는 친히 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이 힘은 그저 작은 편린에 불과합니다.”
한채아의 손바닥 위로 붉은 기운이 맺혔다.
꽃향기와 닮은, 아주 달콤한 냄새를 풍기며.
얼핏 보기로는 장난 같은 수였다.
하지만 그녀가 손을 앞으로 내밀었을 때.
결과는 겉보기와는 달랐다.
“크, 크아아아아!!”
벽곤의 장기인 금호갑을 순식간에 깨트리고 몸을 짓눌렀다.
무릎이 바닥에 닿고 고개가 꺾였다.
전신의 뼈가 부러지고 오장육부가 순식간에 뒤틀렸다.
역류하는 피에 코와 눈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그만이 아닌 모든 이들이 그러했다.
“당신들을 죽이는 건 쉬워요. 손짓 하나면 충분하겠죠. 하지만 약자를 괴롭히는 건 옳지 않아요. 전 이제 신교의 사람이니까요.”
“끄으윽. 끄윽.”
“그러니 망가진 몸을 이끌고 돌아가서 전하세요. 신교와 대화를 하고 싶다면 정문으로 찾아와서 고개를 숙이라고. 그 어떤 계책도 그 어떤 수작도 통하지 않는다고.”
한채아가 힘을 거두고 벽곤 등을 풀어주었다.
바닥에 쓰러져 피를 토하는 모습은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구, 궁에서 받아들일 리 없다.”
“그건 궁이 알아서 할 일이죠. 그 오만한 콧대를 꺾을 수 있는지 기대가 되네요.”
“……물러가겠다.”
“배웅은 하지 않겠습니다.”
벽곤이 겨우 몸을 추슬러 물러났다.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이미 궁의 꽃은 신교의 무인이 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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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로 충분하더냐?”
벽곤 등이 물러가고 난 뒤.
멍하니 서 있는 한채아의 옆으로 천마가 나타났다.
“문주님, 지켜보고 계셨나요?”
“집에 벌레가 기어들어 왔는데 주인이 모르면 되겠느냐.”
“후후. 그렇긴 하네요.”
한채아가 가볍게 웃었다.
어딘가 많은 것을 털어버린 웃음이었다.
“그래도 많이 시원해 보이는구나.”
“네. 궁에게는 언제나 요구만 받던 처지였으니까요. 벗어날 수 없는 형틀이라고 해야 할까. 그걸 이렇게 걷어찰 수 있다니……후련하네요.”
“그렇다면 되었다. 혹시나 네가 티끌이 두려워 저들을 그냥 보내준 거였다면 본좌가 환락궁을 통째로 태워버렸을 것이다.”
“태워도 제가 직접 태울 겁니다.”
“본좌의 제자답구나.”
씩씩한 웃음에 천마가 가볍게 머리를 다독였다.
한채아의 얼굴에서 요염함이 사라지고 새끼고양이 같은 미소가 달렸다.
“문주님. 환락궁에서 또다시 접근해 올까요?”
“네 생각은 어떠하더냐?”
“제가 기억하는 궁주는 엄청나게 자존심이 강했어요. 쉬이 굽히려 들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굳이 사람을 보내 절 회유하려 했다는 건 궁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겠죠. 그 상황이 자존심을 꺾을 정도라면, 그 잘난 얼굴을 들고 찾아올지도 모르겠네요.”
“그래. 만약 그때가 온다면 네가 직접 맞이해 주도록 하거라.”
“그래도 되나요? 궁의 궁주라면…….”
“너는 본좌의 제자니라. 부족함은 없다.”
약한 말은 천마가 불식했다.
그 말이 옳다.
한채아가 한결 다부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궁의 궁주가 별거인가.
자신은 무려 천마의 제자였다.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 문주님.”
어느 때보다 어여쁜 얼굴로 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