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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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가 공작저에 조력하겠다고 약속한 이후, 공작 운영은 훨씬 더 매끄럽게 굴러갔다.
그녀는 아직 초췌한 얼굴이었지만, 병약해 보이는 인상과는 다르게 성안의 고용인들을 지휘하는 데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했다.
“이, 이건 저쪽으로 옮겨, 가구를 다시 배, 배치하도록 해. 거기 화병은, 복도로 오, 옮겨서 심심해 보이지 않게, 하고.”
아멜리아는 한때 중독되었던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말을 더듬었다.
그것 때문에 은연중에 하녀나 하인들에게 얕보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런 염려는 아멜리아와 한 하인이 일으킨 소동으로 인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거, 거기 너. 아까 명령한 일을 하, 하나도 해두지 않고서. 여, 여기서 게으름을 피, 피우다니.
-하지만 아까 시키신 일 말고도 아른트 님이 부탁하신 일이 많습니다, 아가씨.
-……아, 가씨?
-저희는 공작가에 새로운 분이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경칭을 무어라 불러드려야 할까요?
-그, 그렇구나. 너, 너는 이름이 무, 무엇이지?
-하멜입니다.
아멜리아는 ‘하멜, 하멜.’하고 입속으로 되뇌어보더니 손을 들어 하인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불시에 기습당한 하인은 뒤로 나동그라지기까지 했다.
-이, 이게 무슨!
-하, 하르트만 고, 공작가에 주제 모르고 까, 까부는 하인은 필요 어, 없어. 언제까지 그렇게 건, 건방지게 굴 수 있는지 보, 보지!
소란을 듣고 달려온 아른트와 레안드로스가 그 모습에 아연실색했음은 물론이다.
레안드로스가 말리려고 했지만, 아멜리아는 분노해서 카랑카랑하게 외쳤다.
-공작가의 위신을 떠, 떨어뜨리는 조, 종자를 언제까지 봐, 봐주어야 합니까! 마땅히 돼지우리에 던지고 채, 채찍질해야 하, 합니다!
그 말을 들은 하인과 하녀들은 사색이 되었다.
그 자리에서 잘못한 하인은 물론, 그렇지 않은 하녀들도 함께 무릎을 꿇고 용서해달라고 비는 광경이 펼쳐졌다던가.
그 후로 고용인들은 아멜리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늘 죽은 듯이 다녔다.
“공작가가 조용한 건 좋지만.”
“아놀드 영애가 나타나면 고용인들 전부 도망부터 간답니다. 영애는 좋든 싫든 살아있는 채찍이 된 셈이죠.”
“그럼 아른트, 네가 고용인들의 당근이 되었겠네. 둘이 잘 어울려.”
“그런 의미는 아니었어요!”
아멜리아가 고용인들을 쥐 잡듯 잡고 다닌 덕분인지는 몰라도, 아른트는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저녁 만찬의 준비와 같은 자잘한 일부터 성의 전반적인 운영에 이르러서 든든한 지원군이 나타난 셈이니.
“어쨌든, 지금은 손님들에게 집중해야지. 다들 상태는 어때?”
“다들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에이슬링 상단만 제외하고요. 다만, 그중 몇몇은 은밀히 다른 상단과 접선할 방안을 찾는 모양입니다.”
“다들 공정한 경기를 펼치면 좋겠지만, 상단의 이익이 달려 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이쯤이면 상단마다 계획의 윤곽이 나왔을 터.
임대료를 지불하고 산맥에 둥지를 트느냐,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 동부로 돌아가느냐.
왕실과의 계약을 중단하려면 계약 해지 위약금도 물어야 하는데,
그것도 만만치 않은 액수일 것이다.
아른트는 내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
“이대로 다들 사업은 없던 일로 하자고 하면 어쩌죠?”
“그런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이미 몇 년 치 계약이며 임대가 끝난 장비와 인력을 가지고 어딜 갈 수 있겠어? 이대로 동부로 돌아가는 건 자살행위야.”
“그런가요. 하지만 너무 강경하게 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이러다가 반발을 사기라도 하면.”
“흠.”
아른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상인들 사이에서 고작 땅만 가지고 유세를 부리려고 한다는 이미지를 가지게 될 수도 있지.
그러면 청렴결백, 완전무결해야 할 레안드로스에게 지저분한 오명이 따라붙을 수도 있고.
에휴.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레안드로스 경, 지도 제작자의 위치는 보고 받았나?”
“성을 떠난 지 칠 주야가 지났습니다. 길이 닿는 곳까지는 얼추 둘러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돌아올 때까지는 좀 시간이 걸리겠군.
어쩔 수 없지.
“아른트, 가서 에이슬링에게 내가 좀 보잔다고 전해줘. 그리고 레안드로스 경은 지도 제작자와 용병을 마중 나가줄래?”
“마중……입니까.”
“멀리 나가도 돼. 바람도 쐴 겸, 산맥에서 내려오는 마수도 해치울 겸.”
레안드로스는 어리둥절한 모양이었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고 허리를 숙였다.
아른트와 레안드로스가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든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절 찾으셨다고요! 설마 너무 좋은 조건으로 땅을 빌려준 것 같다고 후회하시는 건 아니십니까? 철회는 안 됩니다! 절대로요!”
“누굴 소인배로 아나.”
아이든은 나를 대체 뭘로 생각하고 있는 거지?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여기 머물러 있는 상단 중에 그대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상단은 없어?”
“얼마나 개인적으로 친해야 하는 겁니까? 한 서너 명 정도면 될까요?”
“그 정도면 좋지.”
“그런데 갑자기 그들을 찾으시는 이유가 뭔지 여쭈어도 됩니까?”
“주판알 튕기라고 풀어줬더니 아예 내 눈이 안 닿는 곳에서 담합을 하려고 들잖나. 그래서 나도 비겁하게 어른들의 비리를 저질러주려고.”
“아? ……아! 자리 좀 만들어볼까요?”
“저녁 식사 후에 허심탄회하게 대화 좀 해보자고 전해줘.”
에이슬링은 저만 믿으라며 든든하게 가슴을 쳤다.
그리고 그날 밤, 에이슬링과 더불어 그와 ‘절친한’ 세 명의 대리인이 모였다.
생각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차니 술이니 하는 것들이 오가며 서로를 추켜세워주기 바빴다.
그들이 떠날 때 즈음 내 손에는 신규 임대 계약서 세 장이 들려 있었다.
전형적인 한국식 날치기 계약이었다.
* * *
레안드로스는 공작이 친히 내어준 검은 말을 타고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용병까지 딸린 제작자의 마중을 나가보라니.
다른 기사라면 하찮은 일에 동원되었다며 투덜거릴 법도 하지만, 레안드로스는 아렌하이트의 말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렌하이트는 허투루 자신을 떨어뜨려 놓을 사람은 아니었다.
용병과 지도 제작자가 마수의 습격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신 건가?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깊은 곳에 들어갔을 리도 없는데.
레안드로스가 막 말머리를 돌리려 하던 참이었다.
여태까지 얌전히 있던 공작의 애마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말의 귀가 쭝긋하며 돌아갔다.
어디지? 저쪽인가?
레안드로스도 말과 함께 귀를 가만히 기울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지저귀던 새가 조용해졌다.
음산한 바람 소리.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그 너머에서…….
희미하게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이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레안드로스는 곧바로 소리의 근원지로 달려갔다.
공작의 말은 신속하고도 민첩하게 그의 명령을 수행했다.
그 앞에 막아서는 장애물이 무엇이든, 가볍게 뛰어넘어 달리는 말은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신수만큼 빨랐다.
그리고 말이 커다란 나무 사이를 비집고 착지한 곳에는,
“요나스! 아빠 뒤로 오거라! 어서!”
마수와 대치하는 용병이 보였다.
수염이 잔뜩 난 그는 도끼를 들고 마수를 찍어 내리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용병의 옆구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며 발치의 낙엽과 풀을 적시고 있었다.
마수는 중형종에 가까운 크기로, 보통 사람보다 세 배는 더 큰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하반신은 마치 뱀 같았고, 상반신은 근육이 많은 원숭이 같았지만, 머리만은 늑대를 닮았다.
마수는 도끼를 입으로 막은 채 용병과 힘을 겨루고 있었는데, 도끼의 날을 물고 있는 이빨이 섬뜩하니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저 멀리 조그만 아이가 나뒹굴고 있었다.
아마 아이를 노린 마수가 덮쳐왔지만, 용병이 밀치면서 대신 공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승산이 없었다.
어느 정도 대등하게 보이던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몰리고 있었다.
용병의 발은 조금씩 뒤로 밀려났으며, 그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와직!
오래된 도끼에서 불길한 소리가 났다.
용병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마수가 징그럽게 웃었다.
승패가 갈리는 순간.
용병은 눈앞에 덮쳐드는 섬광을 목격했다.
마수의 이빨이나 안광에서 반사된 빛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를 구하기 위해 휘두른 검이었다.
부서진 도끼 대신 갑작스레 날아든 검에 분노한 마수는 육중한 몸을 날려 불청객을 향해 도약했다.
몸으로 짓눌러 으스러뜨린 후 희생자의 뇌수를 빨아먹는 습성을 가진 놈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전략은 이번만큼은 먹히지 않았다.
용병의 앞을 가로막은 이는 위에서 덮쳐오는 마수를 피하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대신 슬쩍 옆으로 비켜나 걷어찼을 뿐이었다.
-쾅!
인간의 발이 걷어찼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굉음이 울렸다.
마수는 옆으로 튕겨 나가 굴러가다가 바닥을 긁으며 자세를 잡았다.
흥분한 녀석의 입에서 용병의 피가 섞인 침과 거품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신중히 보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럽군.”
마수가 포효하며 두 앞발만으로 달려왔다.
남자는 들고 있던 검을 바로 잡으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분께서는 이런 것도 다 내다보셨단 말인가. 고역이셨겠군.”
그리고 단 한 번.
남자가 검을 휘두른 것은 단 한 번이었다.
아니, 휘두른 것도 아니었다.
육중한 몸을 이끌고 달려오는 마수가 제대로 궤도를 틀 수 없다는 것을 파악한 후,
딱 한 발짝 옆으로 물러나 그대로 횡으로 그었을 뿐.
괴이한 울음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마수의 체액이 튀었다.
순식간에 몸이 위아래로 나뉜 마수의 앞다리가 혼자 달려 나가다가 거대한 나무에 박고 고꾸라졌다.
모든 것이 끝났다.
남자는 그 광경을 보다가 검을 휘둘러 체액을 털어냈다.
그 광경을 보며 막스는 몸을 떨었다.
단순해 보이는 동작이지만, 마수의 질긴 가죽과 뼈를 그 자리에서 양단할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이었다.
자신이라면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마수의 살에 도끼가 박히는 순간, 자신도 함께 질질 끌려갔으리라.
남자는 검을 집어넣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이를 향해 다가갔다.
“잠시!”
용병이 외쳤지만 남자는 묵묵부답이었다.
남자는 놀라서 딱딱하게 굳은 아이를 안아 들고 용병에게로 다가왔다.
“일어날 수 있겠소?”
“그, 일단은 가능합니다만.”
“깊은 상처는 아닌 것 같아 다행이군. 공작저로 돌아가서 의원을 보면 될 거요.”
“공작저? 혹시 하르트만 공작저에서 오셨습니까?”
“그렇소. 공작님께서 산맥에 있던 마수가 흉포하다는 걸 아시고 염려되어 보내셨소.”
“아아……!”
용병은 감동을 받은 표정으로 남자를 올려다봤다.
세간에서 용병들을 보는 시선은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돈만 주면 무엇이든 하는 놈들’.
용병은 그 자체로 철저하게 값이 매겨졌다.
그러니 의뢰주는 의뢰금을 준 이후로는 용병의 신병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하르트만 공작은 다른 이들과 달랐다.
한낱 용병이 걱정되어서 가문의 기사를 보냈다니.
게다가 그 기사가 이렇게나 강하다니.
용병은 남자가 내민 손을 잡고서 천천히 일어났다.
“기사님, 기사님의 존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레안드로스. 성은 없소.”
“레안드로스 기사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기사님이 아니었다면 제 아이와 저는 여기서 끝났을 겁니다. 공작님께도 면목이 없습니다. 고작 용병 나부랭이가 뭐가 귀하시다고.”
“그런 말 마시오. 공작님께서는…….”
레안드로스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온후하신 분이시니. 그대들을 걱정하셨겠지.”
평민을, 용병을 굽어살피는 공작이라니.
용병은 눈물을 글썽였다.
공작의 인품이 이렇게 좋은데, 공작을 따르는 기사는 말해 무엇하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들을 구한 것부터, 기사 작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손수 자신을 일으켜주지 않았나.
용병은 이렇게 고명한 기사는 다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거듭 감사를 표했다.
자신을 레안드로스라 밝힌 기사는 아이를 내려다봤다.
“……네가 공작님께서 말씀하신 지도 제작자겠군. 다친 곳은 없나?”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안드로스는 아이를 내려놓으려 했지만, 아이는 쉽게 내려가지 않았다.
용병이 쩔쩔매며 아이를 받아 안으려고 했지만 레안드로스가 거절했다.
“됐네.”
“하지만 어떻게 기사님께 이렇게 안겨서 가겠습니까? 버릇없는 녀석, 제가 단단히 혼을 내겠습니다.”
“아이니까 다리가 풀렸을 수도 있지. 안고 가겠다.”
용병은 여기서 다시 감동해서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지경까지 갔다.
이미 제 옆구리의 상처는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레안드로스의 품에 안긴 아이도 아비와 마찬가지로 레안드로스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봤다.
아빠가 다치고, 자신도 도망갈 수 없어서 무서웠을 때 나타나 준 기사님.
얼굴은 무섭지만, 행동은 다정했다.
아이는 말할 수만 있다면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꼭 동화책 속에 나오는 영웅 기사님 같다고.
그날, 레안드로스는 본의 아니게 두 명의 추종자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