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65)
◈ 165화. 시작하겠습니다
땡! 땡! 땡!
정문 위에 매달린 종이 깨질 듯이 요동쳤다.
하루를 마무리하던 표사들이 일제히 전각 문을 박차고 달려 나온다.
“무슨 일인가!”
“정문이다!”
그들이 우르르 빠져나가는 사이.
구렁이처럼 은밀하게 담장을 넘은 단려화가 머릿속으로 내부 구조를 상기했다.
‘우선 백표대의 연무장부터 가야 해. 분명 북서쪽이었지.’
백표대의 무위를 확인하는 것은 그녀가 맡은 두 가지 임무 중 하나.
다른 하나는 길어질 전쟁의 흐름을 확실하게 아군의 것으로 가져오기 위한 비책이었다.
정문에서 시선을 끄는 사이 그녀가 잠입한 것은 이 계획의 핵심이었다.
생각을 마치고 움직이던 그녀가 발을 멈췄다.
‘기관?’
별안간 누군가 머리를 두드리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녀의 뒤에 바짝 붙어있던 은수련이 움찔하며 물었다.
[아가씨?] [기다려요.]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발밑을 쳐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엔 검게 칠해진 실이 수풀 밑으로 숨겨져 있었다.
그녀는 즉시 은수련에게 전음을 보냈다.
[발밑에 기관이 있어요. 조심해서 내 뒤만 따라와요.]발밑을 확인한 은수련은 그녀의 예리한 감각이 적잖이 놀라웠다.
‘이걸 알아채다니.’
놀란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내가 이걸 어떻게 알았지?’
생각해보니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이다.
고민하는 사이 병장기를 착용한 표사들이 어느새 정문 앞까지 도달했다.
‘나중에 생각하자.’
단려화와 은수련이 은밀히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절대 무리는 하지 말고 위험할 것 같으면 돌아와.’
진무립의 당부가 귓가에 어른거리자 저도 모르게 기분 좋은 미소가 떠오른다.
‘사천검화(四川劍花)는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구요!’
어둠 속에서 연이어 도약한 두 사람은 순식간에 전각의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처마 끝에서 두 걸음을 움직인 순간이었다.
손을 뻗어 약속된 수신호를 한 단려화가 지붕에 넙죽 엎드렸다.
그녀와 거의 동시에 엎드린 은수련이 빠르게 사방을 살폈다.
‘좌측 전각의 지붕 위.’
무려 십 장이나 떨어진 곳의 지붕 위로 흐릿한 그림자가 보인다.
‘이 사람……. 대체 뭐야?’
단려화의 예리한 감각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반대편 처마로 넘어간 두 사람은 몸을 바짝 낮추고 빠르게 전진했다.
순식간에 처마 끝에 도착한 단려화는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좌우에 한 명씩. 길이 없어. 이건 처리해야 해.’
오 장 밖의 전각, 양쪽 처마 밑의 그림자에 두 명의 무인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숨을 고르며 은수련을 돌아봤다.
[보이죠?] [네.] [저길 돌파하지 않으면 안 돼요. 한 명씩 제압해야 하는데 가능하겠어요?] [먼저 움직이시면 제가 우측을 맡겠습니다.] [부탁해요.]타탓!
단려화의 움직임과 거의 동시에 은수련도 몸을 날렸다.
쉬익!
지붕에서 비조처럼 하강한 두 사람이 지면에 착지할 무렵, 은수련은 전방의 처마를 향해 비침을 날렸다.
탁.
비침이 나무를 파고드는 미약한 소리와 함께 감시자들의 시선이 위로 향한다.
그사이 지면을 박찬 두 사람이 은밀하게 쇄도하더니 순식간에 감시자의 혈도를 제압했다.
퍼퍽.
그들을 어둠에 숨긴 두 사람은 절묘한 호흡으로 두 번째 전각을 통과했다.
빠르게 질주하는 그녀들의 시야에 일 장 높이로 치솟은 담장이 보인다.
속도를 줄이는 단려화에 맞춰 은수련의 걸음 또한 느려졌다.
‘이 너머가 바로…….’
미약한 쇳소리와 지면을 박차는 소리.
바람에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온다.
담장 너머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기세는 결코 경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딛는 단려화의 걸음에 왠지 모를 떨림이 느껴진다.
[아가씨?]전음에 고개 돌리는 그녀의 눈동자도 짙은 떨림을 보이고 있었다.
은수련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잉!
그와 동시에 단려화의 뇌리에 강렬한 경종이 울렸다.
[돌아가요!]두 사람이 백표대의 담장 앞에 도착했을 때, 정문 앞은 쏟아져 나온 표사들로 가득했다.
족히 수백은 되어 보이는 표사들, 먼 곳의 골목과 담장 위는 긴장한 눈빛으로 가득하다.
소란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귓속으로 서진환의 전음이 은밀하게 스며든다.
[주군. 준비가 끝났습니다.] [수고했다. 이후의 판단은 네게 맡긴다.] [오차 없이 완수하겠습니다.]주변을 살핀 진무립은 가면 속으로 미소를 감췄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포위망의 한가운데 선 한천유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우와! 하하하.”
한천유가 시평을 돌아보며 말했다.
“채주님. 나오라는 국주는 안 나오고 잡졸들만 수두룩한데요?”
집채만 한 체구의 사내가 눈에 불을 켜고 나섰다.
“네놈이 청옥공자 시평이냐?”
시평은 느긋하게 팔짱을 끼고 물었다.
“넌 누구냐?”
“내가 바로 본 표국의 수문장표(守門將慓) 염자공이다.”
흑철권(黑鐵拳) 염자공은 산동 무림에서도 제법 이름난 고수였다.
그러나 시평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혀가 긴 놈이구나. 문지기가 그렇게 거창하게 설명할 자리야?”
투툭.
염자공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불거졌다.
“산에 처박혀 살아서 그런지 세상 물정을 모르는 놈이로군. 네놈의 알량한 이름이 이곳 제남에서도 통할 것 같으냐?”
시평의 입꼬리가 길쭉하게 올라갔다.
“통할지 안 통할지 궁금한가?”
솨아아아!
말이 끝나는 순간 시평의 전신에서 서릿발 같은 기세가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염자공의 전신을 압박해갔다.
상상 이상의 강렬한 기세에 염자공의 부릅뜬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이, 이 정도라니…….’
마주 선 것만으로도 전신이 난도질당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시평은 그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기회를 주마. 내 이름이 여기서 통할지 안 통할지 직접 시험해봐라.”
“…….”
순식간에 사방을 잠식한 시평의 기세.
그 강렬한 눈빛에 압도된 표사들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주변을 둘러본 시평이 차갑게 말했다.
“천하십대고수. 칠경과 칠군. 천하에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곤 그런 명성은 내 앞에선 허명에 불과하지.”
쏟아지는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시평은 수레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수레 한쪽에 숨겨져 있던 철봉이 그의 손으로 빨려들었다.
쉬익- 턱!
시평은 새까만 철봉을 지면에 강하게 내리찍었다.
쾅!
굉음과 함께 지면이 거미줄처럼 쩍 갈라진다.
표사들을 담은 시평의 눈이 시퍼런 안광을 토해냈다.
“천하가 우습게 보이는데 고작 네놈들 따위가 내 눈에 차겠느냐? 다섯 셀 때까지 국주를 데려오지 않으면 네놈들을 전부 죽여버리겠다.”
시평의 곁에 선 한천유가 활짝 펼친 손을 높게 들어 보였다.
하나씩 접혀가던 손가락은 두 개가 남았고 시평의 보폭이 슬며시 벌어질 때였다.
“물러나라.”
포위망 뒤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표사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갈라진 표사들 사이로 염자공보다 더 큰 체구를 가진 근육질 사내가 걸어 나왔다.
“국주님을 뵙습니다!”
표사들이 일제히 예를 갖추는 가운데 앞으로 나선 청금환이 시평과 마주 섰다.
“청옥공자 시평. 겁도 없이 죽을 자리로 올 줄은 몰랐구나.”
호리호리한 체구의 미공자와 산적을 방불케 하는 거구의 청금환.
마주 선 두 사람의 절묘한 대비에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됐다.
시평은 수레를 가리키며 말했다.
“죽을 자리로 온 게 아니라 죽은 놈들을 데려왔지.”
죽은 은표대의 시신을 본 청금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상황이 하나같이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충돌을 피할 줄 알았는데 은표대를 죽였을뿐더러 대담하게 시신까지 직접 가져왔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치욕스러운 상황.
청금환의 두 눈이 짙은 살광으로 번들거렸다.
“물론 각오는 하고 왔겠지?”
시평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고작 네놈 따위를 상대로 무슨 각오까지.”
“크크크큭.”
보폭을 넓힌 청금환의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파지지지!
“제법 대가리를 굴렸다만.”
전신에서 발산하는 태산 같은 기세가 시평의 기운과 충돌할 무렵, 그의 입이 다시 열렸다.
“행여 인질을 잡고 도망칠 생각이라면 버려라. 내부에 잠입한 두 년은 곧 죽을 테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면을 박찬 청금환이 벼락같이 일권을 내질렀다.
쐐애액!
그와 거의 동시에 시평의 뒤에서 흐릿한 그림자가 움직이더니 짓쳐 드는 청금환을 향해 쏘아졌다.
쩌저저적!
강렬하게 몰아치는 북풍한설과 함께 사방의 지면에 살얼음이 번져 나갔다.
부릅뜬 청금환의 두 눈에 눈구멍만 두 개 뚫린 가면이 확장되듯 빨려들었다.
‘이놈은?’
단전에서 쏟아진 엄청난 내력이 물 흐르듯 주먹으로 쏟아진 순간.
콰아앙!
귓전을 후려치는 굉음과 함께 조각난 기파가 사방으로 비산한다.
‘큭! 이게 무슨 힘이냐?’
신력을 타고난 자신이 정면충돌에서 밀려나리라곤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부딪친 주먹은 마치 얼음물에 쑤셔 박은 듯 시려온다.
신음을 억누른 청금환은 가까스로 밀려나는 발을 멈췄다.
콰아아아아!
그의 앞에 오연히 선 진무립은 가공할 기세를 줄기줄기 흩뿌렸다.
“조금 전에 했던 말을 다시 해봐라.”
손목의 시큰함보다 더욱 싸늘한 음성.
요동치는 대기의 흐름에 청금환의 눈빛이 달라졌다.
‘격이…… 다른 놈이다.’
마주 선 것만으로도 전신에 소름이 쫙 돋을 만큼 위험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네놈은 누구냐?”
눈에 불을 켜고 청금환을 노려보던 진무립은 활짝 열린 정문 너머를 쳐다봤다.
치이잉.
먼 곳에서 들려오는 미약한 쇳소리가 귓속으로 스며든다.
“만일 그녀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다면 담장 안에 살아있는 모든 것을 죽일 것이다.”
섬뜩한 경고와 함께 살짝 들어 올린 발끝이 지면에 닿는 순간.
콰아앙!
굉음과 함께 지면이 으깨지며 진무립의 신형이 빗살처럼 쏘아졌다.
“멈춰라!”
이를 악문 청금환이 다급히 그를 막아서려 할 때였다.
“어딜 가시나?”
쐐액!
불쑥 튀어나온 흑철봉이 청금환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칫!’
눈앞에서 방향을 튼 흑철봉이 찌푸린 청금환의 가슴으로 매섭게 짓쳐 든다.
청금환은 즉시 장심을 밀어쳤다.
쩌엉!
반동을 이용해 빙글 회전한 시평은 흑철봉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거세게 내리쳤다.
쌔애액!
그 맹렬한 속도와 힘에 곧장 반격하려던 청금환이 눈을 부릅떴다.
‘안 된다.’
치기 전에 먼저 당한다.
발끝으로 지면을 박찬 청금환이 좌측으로 길게 미끄러졌다.
간발의 차로 뚝 떨어진 봉 끝이 지면을 거칠게 때려 박았다.
콰앙!
폭음과 함께 들썩이는 지축, 비산하는 기파와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린다.
“산동거사. 부하들 앞에서 처참하게 당하고 싶지 않으면 힘 좀 써봐라.”
시평의 도발적인 말과 함께 흙먼지를 뚫고 장대비 같은 봉영이 쏟아진다.
쏴아아아아!
두 주먹을 움켜쥔 청금환이 이를 바드득 갈았다.
‘안에서 싸웠어야 했거늘.’
골목과 골목, 담장과 담장 너머로 지켜보는 눈들이 너무 많았다.
저들을 모조리 죽이지 않는 이상 이곳에서 모든 것을 쏟아낼 수는 없었다.
‘안은 백표대와 대표두들에게 맡긴다.’
청금환은 설령 신룡이 올지라도 백표대 백오십을 당해낼 순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타탓!
청금환의 거구가 갈지자로 움직이며 쏟아지는 봉영을 피해냈다.
“염자공!”
“예!”
“시야를 차단해라.”
“명을 받듭니다!”
일사불란 움직인 염자공과 위사들이 골목과 담장 위를 점거하고 양민들을 돌려보냈다.
“유창!”
다부진 체구에 베일 듯 날카로운 눈매의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예. 국주님.”
“뒤의 두 놈을 죽여라. 누구도 살려 보내지 않을 것이다.”
“예.”
포위망이 견고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표두 유창과 일급표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시평이 두 사람을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자신 있어?”
이번 임무에서 두 사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두 손을 품에 넣은 한천유가 능글맞게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루했던 참입니다.”
이어서 백하진의 두 손을 새하얀 빛무리가 휘감았다.
인의 장막을 눈에 담고, 잔뜩 자세를 낮춘 백하진이 서릿발 같은 살기를 발산했다.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