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83)
◈ 183화. 정해진 결말
역이광이 미간을 좁혔다.
‘설마 유운천예검(流雲千銳劍)까지?’
그때 육병흑궤를 확인한 역이광의 눈이 부릅떠졌다.
“마, 말도 안 된다!”
살짝 열린 흑궤 안에서 무기들을 발견한 것이다.
그 순간 진무립의 신형이 빗살처럼 늘어졌다.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그 눈으로 확인해라.”
시꺼먼 흑광이 흔들리더니 세 줄기로 갈라진다.
쐐애액!
늘어지던 흑광이 다급하게 피하는 그들의 뒤를 추격한다.
서걱!
살짝 반응이 늦은 청금환의 소매가 길게 갈라졌으며.
다급하게 몸을 비튼 역이광의 손은 허공에 둥근 원을 그렸다.
쾅!
원선지벽에 가로막힌 흑광이 기파를 흩날렸고 남은 한 줄기 섬광이 정사륭의 주먹에 충돌했다.
콰직!
흩어지는 흑광 사이로 주먹에 새겨진 길쭉한 혈선이 보인다.
시리도록 차가운 주먹의 통증에 정사륭은 경악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조화냐?’
고작 검광에 부딪친 정도로 다칠 만큼 자신의 내력은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급히 검격에서 벗어나는 사이 자영이 명을 내렸다.
“저놈들을 잡아라.”
“예!”
주변을 포위한 철사대가 단려화들을 향해 뛰어드는 순간.
뒤로 미끄러지는 진무립의 검이 육병흑궤로 들어간다.
쉬익!
뒤이어 무섭게 튀어나온 흑궁이 진무립의 손에 빨려들며 허공에 철시가 떠올랐다.
턱!
잔뜩 당겨진 활시위로 순식간에 네 대의 철시가 걸렸다.
“움직여도 좋다고 허락한 적이 없다.”
세상을 발밑으로 깔아보듯 오연한 눈동자에 쏘아지는 네 줄기 흑광이 떠올랐다.
슈슈슈슉!
벼락 치듯 날아간 철시는 반응할 틈도 없이 선두의 철사대원들을 꿰뚫었다.
“컥!”
신음이 터지는 사이 흑궁을 집어 던진 진무립의 신형이 맹렬하게 회전한다.
탁! 타타타타탁!
내지르는 손과 발이 주변의 철시를 거칠게 후려친다.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연탄폭시(聯彈爆矢)의 초식이 멈칫한 철사대원들을 폭격했다.
쿠콰콰콰쾅!
“크아악!”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엄청난 공격.
순식간에 열 명의 철사대원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자 그들은 거짓말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이것이 무면산왕이란 말인가.’
거칠게 흔들리는 눈빛은 그들의 충격이 얼마나 큰지 반영하고 있었다.
지면에 착지한 진무립의 손으로 시꺼먼 도가 빨려들었다.
“내게 거역할 생각은 버려라.”
지독한 살광을 뿜어내는 두 눈.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모두의 귀에 선명하게 틀어박힌다.
공격에 대비하던 백하진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서 그 누가 이토록 오만한 말을 내뱉을 수 있을까.
‘나도 저분처럼 되고 싶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열망이 끓어오른다.
역이광은 눈앞의 상황을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정말 팔천영신공이란 말인가.’
팔성의 무공과 팔천영신공은 시전자의 재능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무공이었다.
천하대전의 패배 이후, 탁월한 무재를 가진 아이들을 선별해 무공을 가르쳤음에도 세 가지 이상을 동시에 익힌 자들은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천하에서 오로지 자신의 주군만이 시전해야 할 무공이 진무립의 손끝에서 나오고 있으니 견딜 수 없이 당혹스러웠다.
도파를 움켜쥔 진무립에게 정사륭과 청금환이 달려들었다.
[이 자리에서 반드시 죽여야 할 놈이다!]정사륭의 강렬한 전음이 청금환의 귓속을 파고든다.
무면산왕은 대계의 변수로 작용할 만큼 위험한 인물이다.
그 사실은 청금환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악계화! 백표대를 데려와라!”
거센 외침이 터져 나오는 순간 진무립의 도신에서 시꺼먼 흑광이 줄기줄기 솟구쳤다.
진무립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번진다.
“이 몸을 앞에 두고 어디 감히 눈을 돌리나?”
솟구친 흑광의 다발은 두 사람의 전신으로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팔천영신공의 가장 무서운 점은 달라진 무공에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콰콰콰콰콰쾅!
강렬한 폭음이 터져 나오며 그들의 전신에 거미줄 같은 혈선이 그어진다.
“크윽!”
권법과 치열하게 싸워온 두 사람의 보법이 쏟아지는 흑광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후방에서 움직이던 역이광이 외쳤다.
“접근하지 말고 물러나게! 전투를 길게 끌어가야 하네!”
그나마 한 가지 병기를 오래 보는 것이 팔천영신공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제법 머리를 굴릴 줄 아는 늙은이로군.’
전투가 벌어진 시점부터 지금까지, 줄곧 두 사람의 뒤에서 요소마다 지시를 내리는 것은 저 노인이었다.
그렇다면 이용할 만하다.
‘계획을 추가한다.’
빠르게 회전하는 진무립의 머리는 즉시 계획을 수정했다.
주춤거리는 두 사람 사이로 역이광의 장력이 물줄기처럼 쏟아진다.
장력을 향해 달려드는 진무립의 눈이 지독한 광기로 번들거린다.
“한두 수라면 모를까 이만큼 압도적인 무력의 간극이 그런 잔수로 좁혀질 것 같은가?”
진무립은 정사륭이 월천지망을 피한 직후 했던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쏴아아!
뚝 떨어지는 흑광이 역이광의 장력을 찢어발기며 전방으로 치닫는다.
역이광의 다급한 손놀림이 허공에 원선지벽을 그려갔지만 짓쳐 드는 흑광은 그보다 조금 빨랐다.
쾅!
“쿨럭!”
가슴을 강타한 흑광에 역이광이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다.
“노존!”
어느새 달려온 백표대가 눈에 불을 켜고 진무립에게 달려들었다.
그사이 진무립의 손에는 시꺼먼 흑봉이 쥐어진 상태.
“불나방이 많구나.”
진무립의 두 눈이 차갑게 빛나는 순간, 수레바퀴처럼 회전하는 흑봉이 사방의 공격을 모조리 받아쳤다.
따다다다다당!
장대비가 철판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에 이어 달려든 백표대원이 그 이상의 속도로 튕겨 나온다.
악계화와 백표대는 이를 악물고 공격을 퍼부었으나 그 어떤 공격도 진무립의 방어를 파고들지 못했다.
간격을 확보한 진무립의 흑봉이 백표대를 향해 장대비 같은 봉영을 쏟아낸다.
쿠콰콰콰콰쾅!
태산표국의 정예답게 가까스로 봉영을 막아낸 자도 있었으나 진무립의 가공할 내력에 밀려나지 않는 자는 없었다.
추풍낙엽처럼 튕겨 나가는 백표대원들이 순한 양이라면 전장을 휘젓고 다니는 진무립은 한 마리 맹수와 같았다.
어느새 도착한 시평과 녹사대, 이가장의 무인들은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신(戰神)이 강림한 듯한 진무립의 싸움에 압도된 것이다.
이가장주 이웅의 목소리가 짙은 떨림을 동반했다.
“저것이…… 정녕 우리와 같은 사람의 무공이란 말이오?”
시평은 허탈한 듯 헛웃음을 흘렸다.
“우리와 같지는 않습니다.”
천음지체를 타고난 진무립의 무재는 독보적이다.
시평의 가늘어진 눈이 전장을 살폈다.
‘계획이 수정된 모양이군.’
쓰러지는 자는 있을지언정 절명한 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거기서 언제까지 놀고 있을 거냐?”
진무립의 말에 움찔한 시평이 손을 들었다.
“갑니다.”
담장에서 뛰어내리는 시평의 귀에 묵직한 전음이 틀어박힌다.
[발만 묶어둬라. 쓸모가 있다.] [하나쯤은 제가 상대할까요?] [내게 맡겨라.]단호한 한마디에서 흔들리지 않는 거목의 든든함이 물씬 느껴진다.
이것이 상천을 이끌어온 진무립이었다.
시평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예.]진무립이 노인들을 향해 달려가는 사이 시평과 녹사대가 백표대를 막아섰다.
“우리 아이들에게 당한 벽력도는 어디에 계시는가?”
아직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한 악계화는 한 걸음 물러나 있던 상태.
좌우로 갈라진 백표대 사이로 악계화가 걸어 나왔다.
“이렇게 몰린 이상 관망할 수도 없군.”
“다쳤으니 조금은 봐주마.”
“개소리는 저승에서 해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흑무진천도의 시꺼먼 도광이 시평의 정면으로 뚝 떨어진다.
“성격 한번 급하군. 이래서 벽력도인가?”
후려친 흑봉이 도광을 단숨에 튕겨냈다.
카앙!
선명한 쇳소리에 이어 백표대와 녹사대 사이에 수십 개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카카카캉!
단려화의 빛나는 눈동자가 전황을 살폈다.
‘여긴 맡겨도 되겠어.’
전투를 벌이는 무인들로 인해 진무립과 육병흑궤 사이에 벽이 생겼다.
눈치 빠르게 육병흑궤를 챙겨 이동한 그녀는 세 사람을 거칠게 몰아붙이는 진무립을 볼 수 있었다.
‘스승님이 이 자리에 계셨다면 분명 놀라셨을 거야.’
세 사람 중 두 노인은 혈마 무천극을 뛰어넘는 엄청난 기도를 풍기고 있었다.
그런 이들이 협공까지 가하면서도 시종일관 밀리고 있으니 세 사람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춤을 추듯 날아드는 시꺼먼 봉영에 정사륭의 주먹이 같이 흔들렸다.
쾅!
일격을 가까스로 막아낸 정사륭이 분노 섞인 혼잣말을 내뱉었다.
“천하대전이 끝났을 때 적극적으로 유인해서 씨를 말렸어야 했는데.”
확실하게 온건파를 짓밟지 못한 것이 더없이 한스러웠다.
‘유인해서 씨를 말려?’
주어가 없는 짧은 말이었으나 진무립의 영민한 머리는 그 의미를 곧장 파악했다.
“그렇군. 네놈들이었군.”
백 년이 넘도록 드러나지 않았던 은곡이 갑자기 적의 습격을 받은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일순 주변 공기가 차가워지더니 진무립의 전신에서 지독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두두두두…….
진동하는 대지, 요동치는 기류 속에 진무립의 흑봉이 지면을 내리찍었다.
콰아앙!
땅거죽이 뒤집히며 자욱하게 솟구친 흙먼지가 시야를 차단한다.
육병흑궤에서 튀어나온 흑검이 진무립의 왼손으로 빨려들었다.
파악은 끝났다.
저들에게 청금환보다 강한 고수는 아마도 여덟 명이 있을 것이다.
전신 내력을 남김없이 끌어올린 진무립은 흑검을 던져 올리며 먼지 속으로 뛰어들었다.
쿠콰콰콰콰쾅!
먼지 속에서 고막이 터질 듯한 폭음이 연신 터져 나왔다.
단려화의 빛나는 눈동자에 허공에 번져가는 핏빛 운무가 떠올랐다.
‘혈옥비(血獄飛).’
과거 사천에서 혈천수라를 마무리했던 그 무공이 이곳 제남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때와 다른 것은 더 이상 자신이 놀라지 않아도 된다는 것뿐이다.
먼지에 시야가 차단된 채 수세에 몰린 세 사람은 핏빛 구름을 확인할 수 없었다.
보법을 극성으로 전개한 정사륭이 쏟아지는 봉영을 피해 주먹을 내질렀다.
“무면산왕!”
주먹에 운집한 강렬한 내력이 진무립의 봉 대에 직격했다.
쾅!
뿌연 먼지 속, 화살같이 튕겨 나가는 진무립의 광기가 그의 가슴을 섬뜩하게 파고든다.
이윽고 미끄러지던 그의 신형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시뻘건 벼락이 세 사람의 머리 위를 바위처럼 찍어눌렀다.
콰콰콰콰콰쾅!
전장을 지배하는 뇌성벽력과 몰아치는 일진광풍에 거짓말처럼 전투가 멈췄다.
‘방금 그것은 분명…….’
입을 벌리는 자영에 이어 악계화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혈옥비다!’
주변을 맴돌던 바람이 흙먼지를 밤하늘로 걷어 올렸다.
“아아.”
악계화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들의 눈앞에 드러난 결과는 처참했다.
단전이 으깨진 청금환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고 그의 곁에 누운 정사륭은 가슴에 흑검을 박은 채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나마 역이광이 두 발로 서 있었으나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내 판단이 틀렸는가.’
셋이서 협공을 가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자는…… 주군과 같은 수준이다.’
무면산왕은 신룡을 제외하면 적수가 없을 것만 같던 주군과 같은 경지에 올라 있었다.
피에 젖은 역이광은 결국 무너지듯 무릎을 꿇었다.
진무립이 그에게 오연한 눈길을 던지며 말했다.
“내가 정한 결말이 마음에 드는가?”
검을 움켜쥐며 예고한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고, 그 말에 감히 대꾸하는 이도 없었다.
진무립의 압도적인 무위가 모두의 입을 닫게 만든 것이다.
슬며시 내뻗은 진무립의 손으로 정사륭에게 박힌 흑검이 빨려들었다.
‘피곤하군.’
긴장된 시선 속, 나직이 숨을 고른 진무립은 태연한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빛을 잃어가는 정사륭의 눈동자가 진무립을 담는다.
“클클클…….”
“잘 들어라.”
자세를 낮춘 진무립이 나직이 속삭였다.
“네놈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지금부터 네놈들의 모든 것을 빼앗아갈 것이다. 저승으로 동료들이 찾아오면 꼭 지금처럼 웃는 낯으로 반겨줘라.”
뭔가 말하려는 듯 힘겹게 입을 벌리던 정사륭은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시선을 거둔 진무립이 청금환을 쳐다봤다.
‘죽지는 않겠군.’
여기서 죽이지는 않는다.
기다리면 지금보다 참담한 죽음이 청금환을 찾아올 것이다.
그것이 백표대를 살려둔 이유였고 역이광을 살려둔 이유이기도 했다.
무거운 고요 속, 천천히 일어난 진무립은 역이광을 바라보았다.
“늙은이. 이름이 무엇이냐?”
완전히 패배한 역이광은 차마 대답을 거부할 수 없었다.
“역이광일세.”
“역이광. 오늘은 보내주지.”
“보내…… 준다고?”
손끝 하나 들어 올릴 힘조차 없는 자신은 완전한 무방비 상태였다.
그런 자신을 보내준다고 하니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오래 살고 싶다면 돌아가서 머리를 열심히 굴려봐라.”
돌아선 진무립을 향해 수하들의 자랑스러운 눈빛들이 쏟아진다.
“돌아가지.”
“예!”
전투의 끝을 알리는 우렁찬 함성이 밤하늘을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