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17)
◈ 217화. 팔기 對 팔존
쉬익!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설지량의 검극이 오싹한 예기를 쏟아 냈다.
희뿌연 서기를 머금은 판천라마의 장심이 날아드는 검극에 충돌한다.
쾅!
판천라마의 신형이 허깨비처럼 주르륵 미끄러진다.
설지량은 간격을 좁히고자 지면을 박찼다.
‘빨라.’
장법은 일격에 온 힘을 쏟아부어야 위력을 발휘하는 까닭에 권법보다 내력 발출에 시간이 더 걸린다.
그러나 판천라마의 대응은 어지간한 권사를 상회할 정도로 신속했다.
‘그래도 서장의 절대자라 그건가요?’
그뿐 아니라 판천라마가 시전하는 보법도 범인의 범주에선 말도 되지 않았다.
불상이 움직이듯 우뚝 선 채로 미끄러지는 보법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돌진하는 설지량의 두 눈이 좌우를 빠르게 훑었다.
‘좋다.’
두 사람의 간격이 일 장 안쪽까지 좁혀졌을 무렵, 설지량의 발이 주르륵 미끄러지며 위협적인 검초가 장대비처럼 쏟아져 나왔다.
슈슈슈슈슉!
검성의 무공, 유운천예검 수라비(壽邏批)의 초식.
만발하는 꽃잎처럼 수려한 검광의 바다가 판천라마의 전신으로 들이닥친다.
“이건 검성의 무공이로구나.”
판천라마의 손이 허공에 원을 그리듯 회전한다.
“아는 것도 많군요.”
경험해 본 적이 없을 텐데도 알아보는 것을 보면 제법 많은 연구를 한 모양이었다.
새하얀 빗줄기가 희뿌연 원반에 사정없이 틀어박혔다.
쾅! 콰콰콰콰쾅!
소매를 휘둘러 기파를 해소한 판천라마가 미간을 좁혔다.
일격을 가한 설지량이 어느새 눈앞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여인인가.’
자신을 공격하는 척하더니 결국 당초의 목적을 이루고자 뒤로 빠진 것이다.
그때 단려화는 중검문 대주들의 합공에 맞서 한 치의 양보 없는 팽팽한 승부를 펼치고 있었다.
‘서둘러 끝내야 해.’
후방에서 상천의 무인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조급해진 마음처럼 휘두르는 검초가 점점 가속한다.
“죽어라! 광녀!”
움찔한 단려화의 눈꼬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아니 그건 어떻게 알았대. 제발 입 좀 다물어요.”
텁석부리 사내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악을 썼다.
“네년의 악명을 모르는 자가 있을 거 같으냐!”
“악명이라니!”
울컥한 단려화가 두 발에 내력을 밀어 넣을 때였다.
지잉.
순간 뇌리에 강렬한 경종이 울리며 등 뒤가 따끔거렸다.
‘뭐야?’
발끝으로 땅을 찍은 단려화의 신형이 번개같이 회전했다.
따다다당!
기습을 가했던 설지량의 눈에 놀란 빛이 떠올랐다.
‘막아?’
덩달아 단려화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막았어?’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지난번 은수련과 함께 태산표국에 잠입했을 때 발동했던 감각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제법이군요.”
“고마워요…… 가 아니잖아!”
저도 모르게 싱긋 웃던 단려화가 눈에 쌍심지를 켰다.
‘자꾸 먼저 반응하지 말란 말이야.’
쉬익!
그녀는 호선을 그리며 날아드는 공격을 사선으로 비껴 쳤다.
치잉!
그 순간 설지량의 발이 그녀의 복부에 작렬했다.
퍽!
“악!”
설지량이 미끄러지는 그녀를 향해 달려들 때였다.
“아미타불.”
현기 짙은 불호와 함께 우측에서 거대한 장력이 노도와 같이 밀려들었다.
‘귀찮은 자로군.’
설지량의 눈썹이 불만스럽게 꿈틀거린다.
‘방도를 바꾼다.’
왼발을 땅에 틀어박은 설지량은 쏟아지는 장력에 검면을 들이밀었다.
쾅!
강렬한 충격에 이어 화살처럼 튕겨 나간 설지량이 무인들 사이로 사라졌다.
단려화의 앞을 막아선 판천라마가 금빛 눈동자로 사방을 훑었다.
‘놓쳤는가.’
반동을 이용해 거리를 벌린 설지량은 어느새 십 장 밖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참으로 영악한 인물이다.
추격을 단념한 판천라마가 단려화에게 물었다.
“괜찮은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불시의 일격을 당하긴 했으나 그리 큰 충격은 없었다.
판천라마가 말했다.
“그대는 광룡의 여인이다. 전투가 끝날 때까지 절대 방심해선 안 될 것이다.”
만일 단려화가 인질로 잡히는 일이 생긴다면 전투의 향방이 복잡하게 돌아갈 것이다.
“내가 광룡의…….”
순간 단려화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혹시 광녀라고 할 참이에요?”
“……아니다.”
슬그머니 고개 돌린 판천라마가 무령사자 손야탁을 불렀다.
“그대는 전투가 끝날 때까지 이 여인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불존.”
고개를 끄덕인 판천라마가 발을 내디뎠다.
“믿고 맡기겠다.”
말이 끝나는 순간 판천라마의 신형이 허깨비처럼 주르륵 미끄러졌다.
‘패를 쥐고 있는 것은 분명 그자일 것이다.’
그가 본 설지량은 전투의 향방을 결정할 만큼 불길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판천라마에게서 벗어난 설지량은 진무립과 운화결에게 다가가며 부하들의 전투를 살폈다.
‘역시 이 숫자 차이는 죽었다 깨어나도 어쩔 수 없겠지.’
중원삼가의 수장들을 비롯해 진대천과 상천의 무인 일부가 표사들을 필사적으로 막아 내고 있었다.
그러나 적절한 지시를 내린 대표두들은 조금씩 틈을 파고들어 점차 포위망을 갖춰가고 있었다.
몸을 숨긴 살존의 싸움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다른 네 명의 팔존은 상천팔기와 경천동지할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역시 무면산왕이…….’
순간 설지량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게 무슨 일이지?’
무면산왕이 아니면 적수가 없을 것 같던 팔존이 상천팔기와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던 것이다.
“흐아압!”
맹수의 포효처럼 거친 일갈을 토해 낸 연길상이 흑도를 내리찍었다.
시꺼먼 도광이 부챗살처럼 갈라지며 박위문의 전신을 내리찍었다.
콰콰콰쾅!
간발의 차이로 물러난 박위문은 흐트러진 윤건을 벗어 던졌다.
‘이 정도였단 말이냐?’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강렬한 일격이다.
연길상이 씩 웃으며 말했다.
“도망치지 말고 정면에서 붙자고. 흑무진천도가 아깝지 않은가?”
“허허허.”
너털웃음을 터트린 박위문이 도파를 움켜쥐며 물었다.
“자네에게 흑무진천도를 가르친 자가 누구인가?”
상대의 나이를 고려할 때, 그의 스승은 분명 자신과 비슷한 연배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모를 리 없다.
연길상의 대답은 간결했다.
“내 스승은 주군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자신에게 흑무진천도를 전수한 것은 진무립과 더불어 그와 함께 나타난 이름 없는 노사부였으니까.
열댓 살도 안 되는 어린아이가 나타나 자신을 가르치겠다고 했을 땐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진무립은 고작 십여 초식 만에 자신을 압도하고 목에 도신을 들이밀어 실력을 증명했다.
기나긴 도피 생활에서 온 가족을 잃은 연길상에게 진무립과 그의 스승은 한 줄기 빛 같은 존재였다.
그날 연길상은 자신의 미래를 진무립에게 걸었다.
자신만이 아니었다.
상천팔기 대부분이 그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진무립을 받아들였다.
‘내색하진 않으셨지만 참으로 고독한 길이었을 것이다.’
약관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수천이 넘는 사람들의 기대와 꿈을 짊어지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진무립은 그 모든 부담을 작은 몸에 끌어안고 이날까지 훌륭히 상천을 이끌어 왔다.
‘그분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여기서 반드시 승리하는 길밖에 없다!’
움켜쥔 도파에 활화산 같은 내력이 밀려들어 간다.
“여기서 승리하지 못하면 어찌 사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우렁찬 포효와 함께 연길상의 도극에서 시꺼먼 흑광이 일직선으로 쏟아져 나왔다.
흑무진천도 흑살일도(黑殺一刀)의 초식.
반달처럼 휘어진 한 줄기 흑광이 박위문을 두 동강 낼 기세로 뚝 떨어졌다.
콰아아앙!
가까스로 일도를 막아 낸 박위문이 억눌린 신음을 토해 내며 튕겨 나간다.
“큭.”
손목이 찢어질 듯 아려온다.
내력이 아닌, 물러나지 않겠다는 상대의 기백과 패기에 밀린 것이다.
“노존!”
흑표대 수십 명이 순식간에 박위문의 앞을 가렸다.
“그래. 전부 오너라.”
시퍼렇게 눈을 빛낸 연길상은 거침없이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모조리 죽여 주마!”
콰콰콰쾅!
연길상이 한 치의 양보 없는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좌측으로 십 장 떨어진 자리에선 두 명의 궁사가 팽팽한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핑!
동시에 날아간 화살이 허공에서 충돌한다.
쾅!
부서진 화살과 파편이 기파에 섞여 사방으로 흩어진다.
“컥!”
충돌에 휩쓸린 표사 일부가 신음을 내며 휘청거렸다.
궁존 안사독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좋지 않다.’
상대하는 대별채주 송조광이 무서운 게 아니다.
신경 쓰지 않고 상대하기엔 주변에 아군이 너무 많았다.
일시가 충돌할 때마다 비산하는 파편에 다치는 아군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송조광의 나직한 전음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안사독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그러나 상대의 제안은 거절하기 어려울 만큼 매력적이었다.
[따라오너라.]돌아선 그가 담장을 향해 움직일 때였다.
쏴아아아!
등 뒤에서 엄청난 기운이 느껴지더니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콰콰콰쾅!
“크아악!”
“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속았다는 걸 깨달은 안사독이 고개를 휙 돌렸다.
“이, 이놈이!”
치켜뜬 두 눈에 불똥이 튄다.
“이런 비겁한 자가!”
“비겁?”
먼발치에 선 송조광이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목숨이 오가는 전장이오. 수단과 방법을 가려서 쓰겠소?”
진무립의 가르침이다.
무공이라곤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내공밖에 수련하지 않았던 자신이다.
언젠가 세상이 자신들을 잊는 날이 오면, 관직에 나아가 형제와 가족의 울타리가 되고자 붓을 들었다.
그런 자신의 손에 철궁을 쥐여 준 이는 다름 아닌 진무립이었다.
‘장담할 수 없는 미래는 멀고 숨통을 옥죄어 오는 적의 칼날은 가깝다. 너는 그때까지 붓으로 가족을 지킬 수 있겠나?’
그날부터 붓을 쥐던 손으로 철궁을 들고 수도 없이 화살을 쏘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우리가 도착하고자 하는 길은 이것저것 가려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상념에서 벗어난 송조광은 시위에 두 대의 화살을 걸었다.
‘늘 머릿속에 담아 두고 있었습니다. 주군.’
지옥 같은 어둠 속에서 자신들을 꺼내 준 진무립이다.
지금까진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그가 걸어온 족적만을 뒤따라왔다.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준 것처럼, 이번엔 우리가 당신의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압도적인 수적 열세 속에 전투가 시작된 것은 진무립이 자신들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훌륭한 주군이다.
그 믿음에 반드시 보답하고 싶다.
지이익.
잔뜩 당겨진 시위 너머로 벼락같이 날아드는 분노의 화살이 담긴다.
“이놈!”
안사독의 날카로운 고성이 귓전을 스치는 순간.
부풀어 오른 송조광의 가슴이 푹 꺼졌다.
“우리가 바라던 꿈이 이곳에 있다! 어찌 악귀가 되길 마다하겠는가!”
탱!
시위를 떠난 두 대의 화살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안사독의 화살을 덮쳐 간다.
안사독의 눈동자에 확신이 떠오른다.
‘되겠느냐!’
백화천궁 광일천시(光一天矢)의 초식을 시전한 자신은 한 대의 화살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반면 양엽관시(兩葉貫矢)를 전개한 상대는 두 대의 화살에 힘을 분산했다.
그는 자신의 화살이 상대의 초식을 분쇄하고 날아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쐐애액!
맹렬한 기세로 치닫던 양측의 화살이 중간 지점에서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목에 핏대를 세운 송조광이 거친 일갈을 토해 냈다.
“일생의 꿈이 걸린 화살이다! 야욕에 사로잡힌 노인네의 화살 따윈 뭉개 버려라!”
번쩍하는 빛무리가 터져 나오며 웅장한 뇌성벽력이 전장을 내리찍었다.
콰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