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18)
◈ 218화. 팔기의 집념
용솟음치는 바람과 함께 인근에 머물던 표사들이 충돌에 휘말렸다.
“크아악!”
전신을 파고드는 철시 파편에 시뻘건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나머지 한 대의 화살은 표사들이 밀집한 자리에 혜성처럼 떨어졌다.
콰앙!
순식간에 다섯 명의 표사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이놈!”
자존심이 뭉개진 안사독이 노기를 여과 없이 드러내며 시위를 당겼다.
“죽여 버리겠다!”
패앵!
안사독의 화살이 공간을 찢어발기며 쏘아질 무렵, 반대편에선 화룡채주 마일관이 힘겨운 싸움을 이어 가고 있었다.
‘칫! 이러면 내가 제일 약한 거 같잖아.’
봉존 영군천을 상대하는 마일관은 상대와의 상성이 좋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중거리에서 초식을 전개하는 상대가 간격을 절묘하게 활용하며 달라붙는 통에 좀처럼 반격의 기회가 보이지 않는다.
슈우욱!
잠시 고개 돌린 사이 눈앞으로 희뿌연 봉영이 짓쳐 들었다.
“약한 주제에 집중력도 형편없구나.”
마일관은 다급하게 두 손을 교차해 일격을 받아 냈다.
쾅!
“큭.”
화살처럼 튕겨 나가는 마일관의 뒤로, 낙전표국 철표대의 정예들이 매섭게 검을 찔러 왔다.
“죽어라!”
“이런!”
낭패한 마일관의 눈에 다급한 기색이 비칠 때였다.
“바꾸십쇼.”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차가운 목소리가 오늘따라 유독 반갑게 들려온다.
“중경!”
고개 돌린 곳에는 철표대를 휩쓸어 가는 검산채주 대중경이 있었다.
공간을 확보하고 마일관을 받아낸 대중경이 그와 자리를 바꿨다.
“저자는 내가 상대합니다.”
봉을 어깨에 척 걸친 영군천이 히죽 웃었다.
“낯빛을 보아하니 다 죽어 가는 놈 같은데 본좌를 상대할 수 있겠느냐?”
그의 말처럼 대중경은 백면혈소(白面血笑)라는 무명이 붙었을 만큼 창백한 낯빛을 하고 있었다.
“내 얼굴은…….”
왼발을 슬쩍 뒤로 뺀 대중경이 무릎을 굽혔다.
“원래 이렇다.”
쾅!
말이 끝나는 순간 대중경의 신형이 전방으로 폭사한다.
대중경의 신형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영군천의 간격을 파고들었다.
‘이놈이?’
순식간에 접근하는 대중경이 부릅뜬 영군천의 눈동자에 빨려들 듯 확장된다.
“그대는 우쭐할 만한 실력을 가졌는가?”
슈욱!
크게 당겨진 대중경의 주먹이 망치질하듯 영군천을 후려쳤다.
콰앙!
“큭!”
단 일격에 영군천의 거구가 포탄처럼 튕겨 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대중경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마일관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저놈이라면 안심해도 되겠지.’
그는 자신과 같은 골짜기 출신이다.
적의 습격에 쫓기고 도망칠 때마다 후미를 지키는 대중경이 있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언제나 전신에 크고 작은 상처를 달고 살던 작은 아이는 진무립을 만난 뒤 누구보다 든든한 무인으로 성장했다.
‘그래. 이제 한 걸음 남았다.’
고개 돌린 마일관의 두 손에 단전의 엄청난 내력이 모여들었다.
“오늘도 살아남자꾸나. 오늘도 해내자꾸나. 그날처럼 말이다!”
달려드는 철표대를 향해 두 줄기 장력이 태산 같은 거력을 품고 폭사했다.
콰쾅-!
간격을 확보한 마일관의 장력은 경천동지할 위력을 품고 적진을 관통했다.
“크아아악!”
울부짖는 괴로운 비명이 하늘로 솟구친다.
일직선으로 쭉 뻗어 나가던 장력이 흩어진 곳은 바로 이하빈의 지척이었다.
치열한 전장의 중심에서, 오롯이 선 그녀의 주변만큼은 무거운 고요함으로 가득했다.
마주 선 창존 구유비는 숨이 턱 막히는 긴장감 속에 창대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이런 아이가 있었다니.’
그녀와 마주치고 고작 두 번 충돌했을 뿐이다.
상대는 고작 그것만으로 누가 더 위에 있는지 확실히 각인시켜 주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구유비의 뇌리에 강렬한 경종이 울린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이하빈의 나직한 일침에 구유비는 이를 갈며 말했다.
“존장에 대한 예의가 부족한 아이로구나.”
“존장?”
이하빈의 입가에 냉소가 깃들었다.
“곧 죽일 자에게 존장이라 부를 만큼 본인은 자비로운 성격이 아니다.”
왼발을 지면에 단단히 틀어박은 구유비는 전방을 향해 창두를 겨누며 투기를 끌어 올렸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하빈의 눈동자가 시퍼런 빛을 토해 냈다.
“내게는 쉬운 일이다.”
쌔액!
부릅뜬 구유비의 눈동자에 흐릿한 섬광이 스쳐 갔다.
‘말도 안 된다!’
초식을 전개하기 위해선 그에 따른 예비 동작이 필요하다.
그런데 안력만큼은 누구보다 앞선다고 자부하는 자신이 상대의 미세한 움직임조차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구유비는 다급하게 창대를 휘저었다.
쾅!
“큭!”
부르르 떨리는 창대와 함께 그녀의 한쪽 무릎이 꺾인다.
“복령천?”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싸늘한 목소리에는 지독한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쉬익!
휙 돌아간 구유비의 눈동자에 짓쳐 드는 발등이 확장된다.
그녀는 다급하게 창대를 끌어당겼다.
쾅!
화살처럼 튕겨 나가는 구유비를 따라 이하빈의 신형이 폭사한다.
“네놈들이 헛된 꿈만 꾸지 않았더라면…….”
창끝에서 피어나는 어둠과 함께, 부친과의 마지막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아버지. 어머니가 많이 아프십니다.’
죽립을 눌러쓴 이립은 하나뿐인 딸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계획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내가 빠지면 일이 되지…….”
울먹이는 이하빈을 본 이립이 실소를 흘렸다.
“네게 말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 계획이 어머니보다 소중합니까?”
“이백 년의 숙원이 걸린 일이다. 아비에게 선택을 강요하지 말거라.”
“어머니가 죽어 가요! 세상을 손에 쥔들 기쁨을 함께 나눌 자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허리춤에도 오지 않는 작은 아이의 외침에 이립은 의외라는 듯 쳐다봤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이냐?”
“다 알아요! 패천성에 잠입해 음모를 꾸미는 것도, 강남 무림을 내부에서 무너뜨리려는 음모도 다 안다구요!”
이립은 반갑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피는 못 속인다더니 역시 내 딸이로구나.”
이하빈은 눈에 독기를 품고 말했다.
“이대로 어머니를 두고 떠나시면 나는 더 이상 당신의 딸이 아닐 겁니다.”
“천륜은 그리 쉽게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올 터이니 얌전히 기다리거라.”
싸늘한 말과 함께 멀어지던 부친의 등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
현실로 돌아온 이하빈의 전신에서 지독한 살기가 줄기줄기 솟구쳤다.
‘네놈들만 없었더라면!’
부친 이립이 야망을 좇아 가족을 버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모친이 그리 허무하게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부친이 속했던 팔황문은 없으나 그 야망을 계승한 복령천이 눈앞에 있었다.
복령천을 지우는 것은 가족마저 버리고 부친이 꿈꿔 온 세상을 짓밟는 것과도 같다.
치켜뜬 이하빈의 눈동자가 복수심에 불타오른다.
“존재 자체가 역겨운 자들.”
잔뜩 끌어당긴 창대로 서릿발 같은 살기가 빨려 들어간다.
“내 손으로 지워 주겠다.”
쐐애액!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창두에서 시꺼먼 흑광이 줄기줄기 쏟아져 나간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구유비가 이를 악물었다.
“네년은 굴욕으로 점철된 우리의 세월을 모른단 말이냐!”
카랑카랑한 외침과 함께 그녀의 창두에서도 같은 색 창광이 날카롭게 솟구쳤다.
이백여 년 전, 천하를 거머쥐었던 여덟 명의 절대자 팔황.
천룡 한사운과 화령의 등장으로 무너진 그들의 세상은 후손인 자신들이 되찾아야 한다.
팔황문은 실패했다.
그러나 복령천은 다를 것이다.
쏴아아아!
내지르는 구유비의 창대에 참아온 이백 년의 울분이 고스란히 깃들었다.
순식간에 간격을 좁힌 흑무(黑霧)가 지근거리에 도달할 무렵, 두 여인은 동시에 창대를 흔들었다.
화르륵!
흑천비류창 사망벽궤(死網壁櫃)의 초식.
두 개의 흑무가 아가리를 쩍 벌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다.
콰콰콰콰콰!
거친 충돌의 여파로 시꺼먼 기파가 사방으로 흩어져 간다.
두 여인은 동시에 창대로 온 힘을 쏟아부었다.
콰지지직!
그러자 아가리를 벌린 흑무가 서로를 집어삼키고자 점점 덩치를 키워 가기 시작했다.
흑요석처럼 빛나는 이하빈의 눈동자가 지독한 어둠 너머로 구유비를 직시했다.
“이백 년 따위 내가 알 게 무엇이냐?”
날카로운 외침과 동시에 이하빈의 흑무가 순식간에 상대를 집어삼켰다.
콰직!
상대를 가두며 구체로 변한 흑광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한다.
투둑! 투두두둑!
뼈마디가 분쇄되는 오싹한 소음에 이어서 괴로운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캬아아악!”
이하빈은 구체의 중심으로 창두를 거침없이 쑤셔 박았다.
“컥!”
단말마의 신음과 함께 흑무가 안개처럼 흩어지더니 검붉은 핏방울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이하빈은 차갑게 고개를 돌렸다.
“전부 죽여야 한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처죽여야 할 것들은 지천에 널려 있었다.
집념에 불타는 그녀의 신형이 적진의 한복판으로 쏘아졌다.
콰아아앙!
강렬한 일격이 밀집한 적을 관통하며 굉음을 터트렸다.
“크아악!”
바로 옆에서 쏟아지는 비명에 움찔한 사내가 있었다.
‘시벌. 맞을 뻔했잖아.’
눈앞에서 상대를 잃고 침을 꿀꺽 삼키는 이는 바로 용추였다.
‘내가 채주한테 실수한 건 없겠지?’
등골이 서늘해진 용추의 어깨를 누군가가 거칠게 잡아당겼다.
콰직!
간발의 차이로 뚝 떨어진 도가 지면에 틀어박힌다.
“칫.”
낭패한 상대를 향해 시꺼먼 도광이 날아들었다.
콰쾅!
상대를 밀쳐낸 악계화가 용추를 쏘아봤다.
“정신을 어디에 놓고 있는 거냐?”
용추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이 정도엔 안 죽는다.”
얼마 전까지 적이었던 자의 도움이 그다지 반갑게 느껴지진 않는 모양이었다.
“그럼 그냥 여기서 죽어라.”
차갑게 대꾸한 악계화가 적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뒤로 자영을 비롯한 태산표국 출신 표사들이 거침없이 질주했다.
좌우를 살핀 악계화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한다.
‘이 정도면 승산이 있다!’
상천팔기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팔존을 막아 내고 있었다.
변수가 될 만한 것은 압도적인 숫자의 표사들뿐이다.
‘저들이 승리할 때까지 표사들을 틀어막아야 한다.’
그때 악계화의 우측에서 벼락같은 일도가 떨어졌다.
카아앙!
오싹한 쇳소리와 함께 악계화의 신형이 좌측으로 주르륵 미끄러진다.
“악 표두님!”
철사대주 자영이 다급하게 악계화의 빈자릴 채우며 상대를 확인했다.
“역겨운 버러지들. 우릴 배신하고 겁도 없이 죽을 자릴 찾아왔구나.”
기습의 주인공은 금성표국의 대표두 장공표였다.
자영이 검파를 움켜쥐며 투기를 끌어올렸다.
“먼저 우릴 배신한 것은 네놈들이었다.”
“대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숭고한 희생을 거부한 네놈들의 잘못인 것이다.”
그때 악계화가 자영의 어깨를 잡으며 앞으로 나섰다.
“눈앞에서 운화결의 목이 떨어져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겠나?”
장공표는 도파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물론이다. 우린 그저 대계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사심을 우선시한다면 어찌 큰 뜻을 이룰 수 있겠느냐?”
“네놈은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라.”
자세를 낮춘 악계화가 지면을 박찼다.
“나는 기필코 국주님의 복수를 완성할 테니까.”
슈아악- 콰앙!
부딪친 도신에서 불꽃이 튄다.
악계화와 부하들이 사력을 다해 적에 맞서가고 있었으나 전선은 점점 뒤로 밀려나는 형국이었다.
악계화들을 포함해 고작 오십이 안 되는 숫자다.
이천이 넘는 적을 지금까지 막아 낸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백하진이 적에게 둘러싸일 기미가 보이자 한천유는 다급하게 비도를 출수했다.
카카캉!
우측으로 짓쳐 들던 적이 물러나며 백하진에게 운신할 공간이 생겼다.
“죽고 싶어? 너무 앞서 나가지 마!”
하얗게 물든 백하진의 두 손에 적의 검병이 빨려들었다.
“엇!”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적의 얼굴에 백하진의 백라자수가 틀어박힌다.
퍼퍽!
두 개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터져 나간다.
혈수를 흠뻑 뒤집어쓴 백하진이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이 정도에 죽을 거라면 그곳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말은 잘하지.”
한천유는 빠르게 사방을 살폈다.
‘이대로는 못 버텨.’
창잡이를 잡아낸 이하빈과 화룡채주 마일관이 좌우를 지키기 시작했으나 숫자에서 너무 차이가 난다.
진무립은 이들과 다른 세상에서 상대의 수장과 치열한 접전을 이어 가고 있었다.
‘방도를 찾아야 해.’
한천유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갈 때, 등 뒤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
“표국의 악적을 몰아내자!”
마침내 중소방파 무인들을 정리한 삼가의 무인들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한천유는 초조한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미안하지만 저들이 와도 숫자의 열세는 달라질 게 없어.’
그때였다.
쏴아아아!
어느새 붉게 물든 하늘에서 시뻘건 혈우가 쏟아지더니 적진을 장대비처럼 폭격했다.
쿠콰콰콰콰쾅!
“크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지축이 들썩이며 솟구친 장석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혈옥비? 대체 누가?’
운화결과 소리 없는 싸움을 이어 가는 진무립은 아니다.
부릅뜬 한천유의 눈이 피어오른 흙먼지의 중심으로 향했다.
치열한 전장에 일순 고요함이 깃들더니 불어온 바람이 먼지를 걷어 간다.
“후후후. 고작 이 정도 상대에게 고전하고 있었던 겁니까?”
넝마가 된 봉존 영군천의 시신을 짓밟고 올라선 인물은 바로 부곡채주 백채륜이었다.
회남의 임무를 위해 떠났던 그가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아아.”
한천유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조금씩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