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19)
◈ 219화. 역전의 발판
백채륜의 등장은 지쳐가는 아군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단순히 고수 한 명 늘어난 게 아니다.
등장과 동시에 전투를 중단시킬 만큼 엄청난 초식으로 봉존 영군천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그야말로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꿔버린 것이다.
무거운 정적 속, 백채륜의 뱀 같은 눈동자가 먹잇감을 노리듯 사방을 훑어본다.
“망자의 망령이 생각보다 많군요.”
천하대전에서 패배한 팔황문을 망자로 치부한다면 저들은 분명 망령이 맞다.
영군천의 시신에서 검을 뽑아 든 백채륜이 싱긋 웃으며 피를 핥았다.
“망령은 제자리를 찾아가야겠지요.”
지척에 서 있던 금표대 조장 조기륭이 불같이 화를 내며 달려들었다.
“감히 누굴 망령이라 부르는 것이냐!”
슈아악!
솟구친 발뒤꿈치가 벼락 치듯 떨어질 때였다.
“물론 당신들입니다.”
탁.
순식간에 자세를 낮춘 백채륜의 신형이 용수철처럼 솟구친다.
서걱!
부릅뜬 조기륭의 눈동자에 불신의 빛이 떠올랐다.
‘말도 안 돼!’
전신 내력을 쏟아부은 종아리가 마치 종잇장처럼 잘려나간 까닭이다.
솟구친 백채륜의 싸늘한 미소가 조기륭의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판다.
“복령천에선 초식을 전개하기에 앞서, 상대의 실력부터 파악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빙그르르 회전한 백채륜의 검이 구름 위로 드러난 달빛에 반짝였다.
“이건 너무 쉽군요.”
쌔애액!
치솟은 검극이 초승달 같은 궤적을 그려간다.
‘아아.’
저항할 틈도, 누군가 도울 여지도 없이 뚝 떨어진 검신이 조기륭의 백회혈을 파고든다.
콰지지지직!
오싹한 소음을 자아낸 일격은 순식간에 그의 몸을 절반으로 갈라버렸다.
악계화의 눈동자가 짙은 떨림을 보인다.
‘무슨 저런 자가…….’
보이는 것만으로 보면 누가 악인인지 분간이 안 갈 지경이다.
“언제까지 지켜만 볼 생각입니까? 시작하시지요.”
조금 전까지 영군천을 상대하던 대중경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영악한 놈.’
깔끔한 것을 좋아해 백의만 입고 다니는 녀석이다.
그런 이가 몸에 피를 묻히길 마다하지 않고 평소답지 않게 피까지 핥는 것은 상대에게 공포를 심어주기 위한 연출이 분명하다.
‘어쨌든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강렬한 등장부터 지금까지의 행보는 적에게 두려움을 선사하기 충분했다.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분위기를 내줄 지경에 이르자 도존 박위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전투가 벌어지고 반 시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창존과 봉존이 죽었다.
남은 팔존은 자신을 포함해 셋에 불과하다.
분하지만 상천팔기는 결코 자신들보다 하수가 아니었다.
특히나 구유비를 죽인 여인은 다른 자들과 궤가 다른 고수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
저들을 보고 있자니 과거 팔황문을 막아섰던 화령의 젊은 고수들이 떠오른다.
‘대계에 크나큰 위협이 될 자들이다. 자존심을 버리더라도 이 자리에서 끝을 내야 할 것이야!’
그는 맹렬하게 달려드는 연길상에게 일도를 내리쳤다.
쉬익!
“어딜!”
우측으로 미끄러진 연길상의 도가 사선으로 치솟는다.
이제까지 온 힘을 다해 맞서던 박위문이 뒤로 훌쩍 물러났다.
비어버린 두 사람 사이로 흑표대의 정예들이 쏟아져 나왔다.
‘칫!’
결국 연길상은 적에게 둘러싸이기 전에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숨을 돌린 박위문은 궁존 안사독에게 전음을 보냈다.
[일대일을 고집하지 말고 무인들을 이용하세! 숫자의 우위를 살리는 게야!]안사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일세.]상대하는 송조광은 주변 환경까지 서슴없이 이용해 자신을 압박하고 있다.
상대가 그렇게 나오는데 여기서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는 없다.
가슴을 잔뜩 부풀린 안사독이 일갈을 토해냈다.
“두려워할 것 없다! 본 천의 가르침에 따라, 적 앞에서 한 치의 물러섬 없는 당당함을 보여라!”
“예!”
안사독의 외침에 주춤했던 무인들이 냉정을 되찾았다.
대표두 무환이 검신을 높게 치켜들고 외쳤다.
“포위망을 갖춰라!”
예상치 못하게 팔존 두 명이 죽었다곤 하나 개개인의 무공도, 숫자도 자신들의 우위임에는 변함이 없다.
궁존 안사독의 한마디에 정신을 차린 그들은 기세를 올려 전투를 재개했다.
“모조리 쓸어버리자!”
후방에 선 비각주 제갈문의 눈동자에 밀물처럼 쏟아지는 적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고수 한 명이 아쉬운 상황에서 일선에 선 가주 제갈경에겐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제갈문의 머리가 비상하게 회전했다.
‘포위망이 완성되면 필패다. 상천의 지휘관은 누구지?’
이곳에서 적과 정면 승부를 할 수 있는 무인은 많지 않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자들은 상천팔기를 비롯한 상천의 고수들, 그리고 중원무림맹의 수뇌부였다.
[맹주님! 중앙을 비워야 합니다. 우측을 막아주십시오!]위사영은 대답 대신 몸을 날려 그의 목소리에 화답했다.
그의 연이은 전음에 진대천을 비롯한 중원의 고수들이 전선의 우측으로 움직인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제갈문은 종횡무진 적진을 누비는 이하빈을 찾았다.
[상천의 고수들에겐 좌측을…….]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하빈을 비롯한 상천의 고수들이 어느새 좌측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휘둥그레진 제갈문의 눈동자에, 미소 짓는 백채륜의 얼굴이 담긴다.
‘아. 알아챘구나.’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챈 백채륜이 동료들을 움직인 것이다.
고강한 무인들이 넓은 대연무장의 좌우를 지키자 표국의 고수들은 자연스럽게 중앙으로 몰리기 시작한다.
제갈문은 중천대주 선우빈에게 전음을 보냈다.
[형님. 우곡진(雨谷陣)입니다!] [알았다!]선우빈은 제갈문의 목소리에 화답하듯 검신을 치켜들었다.
“삼원(三院)! 우곡진을 전개한다!”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중천대의 고수들이 셋씩 짝을 짓더니 전선 중앙에 방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좌우가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수적 열세를 만회할 수 있는 견고한 진이 빠르게 만들어졌다.
밀려나던 전선이 안정을 찾자 백채륜은 서진환을 찾았다.
[은무대주.]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 사투를 펼치던 서진환이 잠시 뒤로 물러나며 돌아본다.
“무슨 일이오?”
“저 영감들부터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백채륜이 가리킨 곳에는 후방으로 물러나 지시를 내리는 박위문과 안사독이 있었다.
가늘어진 눈으로 전장을 살핀 서진환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상태에서 암습은 쉽지 않소.”
차라리 적이 포위망을 갖추며 전선이 얇아졌다면 모를까, 밀집한 적을 뚫고 후방까지 가는 것은 제아무리 서진환이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압도적인 수적 열세 속에서도 백채륜은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바보가 아니라면 곧 길을 열어줄 겁니다.”
서진환이 영문 모를 얼굴로 쳐다보고 있을 때, 백채륜의 눈동자는 후방의 제갈문을 담고 있었다.
‘후후. 제법 정확한 판단이었다만, 과연 제갈가의 공자께서는 어디까지 보고 계실까?’
서진환이 백채륜의 의도를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밀어붙이던 흐름이 고착되자 박위문은 상대의 노림수를 간파했다.
“연무장에 구애받을 것 없다! 담장을 허물고 전선을 확장해라! 숫자의 우위를 살리는 게야!”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후방의 싸우지 못하던 무인들이 일제히 좌우의 담장을 부수고 나아갔다.
제갈문은 즉시 입을 열었다.
“좌우의 대응 범위를…….”
말을 하던 그의 눈에 당혹감이 번진다.
부챗살처럼 벌어지는 상대를 모두 감당하기엔 워낙 전력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침없이 적을 유린하던 상천의 고수들도 적의 차륜전에 발이 묶인 상황.
제아무리 고강한 무공을 가졌다지만 사용할 수 있는 내력에는 한계가 있다.
이미 팔존을 상대로 큰 힘을 소모한 탓에 최대한 내력을 아끼며 효율적인 전투를 시작한 것이다.
‘대응할 수 없단 말인가?’
거칠게 흔들리는 제갈문의 눈빛에 백채륜은 시선을 거뒀다.
‘경험이 부족하군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만한 전투를 경험한 것은 처음일 터.
제갈문은 비각의 수장에 오를 정도로 능력 있는 인물이었으나 전투를 지휘하는 경험이 부족했다.
슬며시 웃은 백채륜은 서진환을 붙잡고 말했다.
“보시지요. 전선이 벌어지며 넘어갈 벽이 얇아지지 않았습니까?”
그의 말처럼 열 겹에 달하던 인의 장막은 고작 세 겹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얇아진 상태였다.
“하지만 포위망이 갖춰진다면 팔존을 암살한다 한들 이쪽이 더욱 위험해지게 되오.”
“팔존만 없다면 얇아진 벽의 한쪽을 돌파해 다시 전선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서진환의 눈이 한 박자 늦게 휘둥그레진다.
“아아!”
운화결은 진무립에게 단단히 묶여있다.
팔존이 아니라면 상천팔기를 막을 고수는 없을 터, 포위망을 갖춘다 해도 얼마든지 뚫고 나갈 수 있다.
‘역시 부곡채주다.’
상천팔기 중 가장 고강한 무인을 꼽자면 당연히 이하빈이었으나 가장 두려운 인물은 역시 백채륜이다.
“먼저 시선을 끌지요.”
검파를 움켜쥔 백채륜이 앞으로 나설 때였다.
“나도 돕겠어요.”
어느새 다가온 단려화가 비장하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내내 그녀를 호위하던 무령사자 손야탁이 당혹감을 표출했다.
“소저. 그게 무슨 말이오? 위험한 일에 나서지 말고 이곳에 계시오.”
판천라마가 그녀를 지키게 한 것은 단려화가 진무립에게 매우 소중한 인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려화의 단호한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 어찌 내 안위만 챙길 수 있겠어요. 내겐 서대주를 도울 힘이 있어요.”
“그렇지만 너무 위험…….”
“아니오.”
서진환이 그의 말을 자르며 포권을 취했다.
“소저께서 함께해 주신다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담장을 부수고 나간 적이 좌우로 넓게 움직이며 중천대의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것저것 재고 따질 만큼 여유가 없다.
그녀가 익힌 소완공은 검황 천영의 독문무공.
은밀함만큼은 음혼귀영공에 뒤지지 않는 신공인 만큼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손야탁이 어쩔 바를 모르는 사이 서진환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준비는 되었느냐?”
채비를 마친 금성우와 주인환이 비장하게 눈을 빛냈다.
“예.”
서진환은 이어서 백채륜에게 말했다.
“시작하시오.”
“여유가 많지 않습니다. 서둘러야 한다는 걸 명심하시지요.”
“물론이오.”
고개 돌린 백채륜의 눈동자가 인의 장막 너머에 있는 궁존 안사독을 향했다.
‘포위에 갇힌다면 가장 위험한 자는 역시 저 노인이겠지요.’
백채륜은 망설임 없이 지면을 박찼다.
쾅!
요란한 소음과 함께 장석이 으깨지며 사방으로 돌가루가 비산한다.
궁존 안사독이 전방으로 폭사하는 백채륜을 발견하고 외쳤다.
“놈을 막아라!”
낙전표국의 정예, 철표대원들이 순식간에 움직이며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백채륜의 뱀 같은 눈매가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나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움켜쥔 검파로 단전 속 내력이 노도와 같이 밀려든다.
검극에 맺힌 뿌연 연기가 짙은 검광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적을 목전에 둔 백채륜은 전방으로 유운천예검 경천검무(驚天劍舞)의 초식을 전개했다.
슈슈슈슉!
마치 웅크린 고슴도치가 가시를 잔뜩 세우듯.
보법이 가미된 장대비 같은 공격이 사방으로 쏟아지며 전장에 혈꽃이 피어오른다.
“크아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이 쏟아져 나오며 주변의 무인들이 백채륜을 향해 달려들었다.
벽을 치던 이들이 한쪽으로 몰리니 자연스럽게 빈틈이 생긴다.
‘지금!’
아군의 그림자에 숨어있던 네 사람이 은밀한 전진을 시작했다.
“차륜전이다! 덤벼드는 놈에겐 차륜전을 전개해라!”
목에 핏대를 세운 안사독은 즉시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놈! 봉존의 곁으로 보내주마.’
가늘어진 눈동자에 폭풍처럼 검초를 쏟아내는 백채륜이 들어올 때였다.
‘암습!’
전신 솜털이 쭈뼛 설 만큼 은밀한 예기가 좌측 사각에서 느껴진다.
순간적으로 반응한 안사독이 짓쳐 드는 주인환을 발견했다.
“쥐새끼 같은 놈!”
팅!
시위를 떠난 화살이 그의 정면으로 빨려 들어간다.
주인환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진다.
‘역시 이 노인네들은 달라.’
지금까지 상대하던 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반응속도다.
피할 겨를은 없다.
주인환은 즉시 검신을 끌어당겼다.
쾅!
둘 사이에서 강렬한 폭발이 터져 나오는 순간.
쉬이익!
반대편에서 지면을 박찬 금성우가 검신일체로 달려들고 있었다.
그러나 안사독은 그의 미세한 기척을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불나방이로구나! 껄껄껄!”
광소를 터트린 안사독이 거침없이 철궁을 휘둘렀다.
콰아앙!
번쩍하는 빛무리가 사라진 자리에 시뻘건 핏방울과 돌가루가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안사독이 철궁을 회수하는 순간, 서진환이 흙먼지를 뚫고 번개같이 튀어 나갔다.
“죽어라.”
번뜩이는 서진환의 안광에 안사독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앞선 두 사내와 달리 서진환의 존재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까닭이다.
‘이놈들이!’
우수에 쥔 철궁을 다급하게 끌어당기며 좌수의 철시를 교차할 때였다.
푹!
서진환의 공격이 닿기도 전에, 등 뒤에서 투명한 검신이 그의 가슴을 꿰뚫고 삐져나온다.
‘언제?’
믿기지 않는 얼굴로 고개 돌린 곳엔 차갑게 눈을 빛내는 단려화가 있었다.
앞선 세 사람이 계획대로 미끼 역할에 충실하는 동안 은밀히 돌아간 그녀가 암습에 성공한 것이다.
촤르륵!
뽑혀 나온 검신에서 시뻘건 핏방울이 꽃잎처럼 흩날린다.
“먼저 가서 기다리시오. 그대의 부하들도 차례로 보내줄 것이니.”
번뜩이는 서진환의 검이 안사독의 목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서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