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20)
◈ 220화. 하나의 목표
둥실 떠오른 머리통이 툭 하고 떨어진다.
“궁존!”
좌익을 지휘하던 박위문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이게 함정이었단 말이냐?’
상대는 수적 열세를 만회하고자 함정을 파고 자신들을 중앙으로 끌어들였다.
그것을 간파한 자신은 담장을 부수고 전선을 길게 확장했다.
제갈문의 당황한 눈빛을 보아 자신의 전략은 분명 성공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상천의 무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전선을 돌파해 안사독의 목을 가져갔다.
‘무음광검 백채륜.’
저자가 등장한 뒤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번 계획 역시 백채륜의 생각임이 분명하다.
‘다음은…….’
돌아보는 박위문의 머리칼을 불어온 찬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다.
‘나인가.’
문득 고독함이 느껴지며 기묘한 한기가 발바닥부터 거슬러 올라온다.
살존 표설중이 상대의 살수와 보이지 않는 싸움을 이어가는 지금, 상대는 분명 자신을 노려올 게 분명했다.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즉시 대표두 무환에게 전음했다.
[포위는 중지다! 상천팔기를 비롯한 고수들에게 백 명씩 붙여 차륜전을 전개하라! 놈들의 힘이 빠질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백여 명에 달하는 은곡의 고수가 차륜전을 가한다면 제아무리 팔기라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빠르게 움직인 무환이 즉시 조장들에게 명을 하달했다.
적의 움직임이 빠르게 변해갈 무렵, 서진환과 단려화는 안사독에게 당한 두 사람을 데리고 물러난 상태였다.
“괜찮으냐?”
금성우가 핏기 가신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는 견딜만합니다. 그런데…….”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엔 뻥 뚫린 가슴에서 피를 콸콸 쏟아내는 주인환이 있었다.
가장 먼저 미끼가 되었다가 안사독의 철시에 당한 것이다.
‘점혈이 통하지 않아.’
울상이 된 단려화는 두 손으로 환부를 강하게 압박했다.
‘제발 멈춰줘!’
그녀의 간절한 바람이 무색하게 억누른 손가락 사이로 쉴 새 없이 피가 쏟아져 나온다.
주인환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만…… 하십시오.”
“조금만 참아요. 금방 멈출 테니까.”
“제 상태는 제가 압니다.”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 입에서 내뱉는 말과 함께 피가 잔뜩 흘러나온다.
단려화는 그제야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인환은 흐려지는 의식을 가까스로 붙잡으며 차분히 말했다.
“대주.”
서진환이 곁으로 다가와 자세를 낮췄다.
“그래.”
“주군을 부탁합니다.”
“……그래.”
담담한 대답에서 짙은 습기가 묻어난다.
주인환의 입꼬리가 힘겹게 씰룩거린다.
“모두가 바라던.”
가물가물해지는 의식 속에 동료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곳에 닿기를…….”
간절한 마지막 목소리를 끝으로 그의 의식은 영원한 안식에 빠져들었다.
살갗이 저밀 듯한 살기와 끔찍한 비명이 오가는 전장과 달리, 맹의 북쪽 숲에선 심해의 밑바닥처럼 고요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살존 표설중은 울대의 흔들림마저 억누른 채 천천히 마른침을 삼켰다.
‘바람의 흐름마저 이자의 육신을 비껴가는 듯하구나.’
음혼귀영공을 익힌 자들은 은연중에 서로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눈앞의 상대는 달랐다.
죽산마호 왕유는 정말 음혼귀영공을 익혔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숨결조차 노출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왕유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달빛이 눈동자에 반사되는 것까지 막기 위함이다.
‘일 장 반 정도.’
피부로 느껴지는 상대와의 거리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 충돌을 거듭한 결과, 표설중은 자신이 일 장 안쪽에 들어갔을 때 확실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반면 자신은 그보다 반 장 더 먼 거리에서 상대를 감지할 수 있다.
은잠술 대결에선 왕유가 분명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반응이 빠른 자야. 검을 뽑으면 늦겠어.’
상대의 간격으로 들어섬과 동시에 숨통을 끊어놔야 한다.
검파에서 손을 뗀 왕유가 극도로 주의하며 발을 내디딜 때, 삼 장 밖에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인물이 있었다.
‘당신은 죽어야겠습니다.’
어느새 연무장을 빠져나온 설지량이었다.
계획이 조금 틀어지긴 했으나 상천팔기는 훌륭하게 팔존을 줄여가고 있었다.
상대의 힘을 고려할 때, 팔존의 세 명이 죽은 이상 만약에 대비해 표설중은 살려둬야 한다.
왕유의 움직임을 빠짐없이 눈에 담던 설지량이 씩 웃었다.
별안간의 전음에 왕유의 턱이 움찔하는 순간.
검파에 손을 올린 표설중은 그 미세한 떨림을 놓치지 않고 솟구쳤다.
쉬익!
‘아차!’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한 것은 왕유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팟!
옆구리가 길게 갈라지며 어둠 속에 혈꽃이 피어난다.
‘큰일이다!’
상대의 수준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은 피 냄새는 치명적이다.
“놓치지 않겠다.”
시리도록 차가운 목소리가 귓속에 틀어박힌다.
왕유는 쓴웃음을 머금고 달려들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오.”
상처 입은 상태에서 은잠술로 겨루는 것은 불리하다.
날카로운 검극이 수레바퀴 같은 궤적을 그리더니 상대를 향해 거침없이 쏟아진다.
표설중은 물러나지 않고 검신을 흔들었다.
카카카캉!
섬전 같은 쾌속 공방에 날카로운 쇳소리와 불꽃이 연이어 터져 나온다.
‘다행이로군.’
왕유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감췄다.
은잠술 대결에서 고전하던 표설중은 겨우 자신을 포착했다는 생각에 이점을 살릴 생각조차 못 하는 게 분명하다.
‘어리석은.’
설지량의 눈썹이 불만스럽게 꿈틀거린다.
기껏 기회를 만들어주었더니 정면에서 붙는 미련한 짓을 벌인다.
무공의 재능은 분명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은 설지량의 기준에선 한심할 정도였다.
‘나서는 수밖에.’
설지량이 은밀하게 접근하고 있을 때, 표설중과 접전을 펼치는 왕유는 오감을 개방해 자신에게 전음을 보낸 자에 대비하고 있었다.
‘분명 나타날 것이다.’
표설중을 눈앞에 둔 왕유는 노련하게 함정을 팠다.
‘뒤를 비워주마. 어디 노려봐라!’
상대의 전음이 들려온 간격은 어림잡아 삼 장 밖.
왕유는 눈앞에 집중하며 모험을 걸었다.
‘아마도 이 장.’
진무립조차도 몸을 숨긴 채 자신의 일 장 안쪽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상대가 누구든 일 장 안에 들어오는 순간 감지할 자신이 있다.
뒤를 비우고 자신의 반사신경에 모든 것을 건다.
슈슈슈슉!
송곳처럼 예리한 표설중의 공격이 점점 맹위를 떨치며 왕유의 전신에 자잘한 생채기를 만들어간다.
‘전형적인 살수로군.’
은잠술 대결에서 고전한 만큼 한번 포착한 상대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정면에선 내 상대가 아니다.’
표설중은 끈질기게 왕유를 따라붙었고, 왕유는 물러나지 않고 상대의 공격을 받아냈다.
따다다다당!
순식간에 삼십여 합을 주고받았을 때였다.
스르륵.
등골이 서늘해지며 전신 솜털이 쭈뼛거린다.
‘왔다!’
왕유는 찔러오는 일검을 피해 몸을 비틀며 상체를 회전했다.
서걱!
표설중의 공격이 어깨를 스쳤으나 개의치 않았다.
“네놈인가!”
돌아선 왕유의 눈동자에, 거침없이 쇄도하는 설지량의 검극이 떠오른다.
설지량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예측했다? 아니, 감각인가?’
상대는 정확하게 자신의 간격을 읽고 기다렸다는 듯이 검을 뻗어왔다.
쉬익!
달빛마저 집어삼킨 묵빛 검신이 소리 없이 수평하게 그어진다.
설지량은 온 힘을 다해 상체를 숙이며 팔을 쭈욱 내뻗었다.
스팟!
왕유의 검신이 그의 머리칼을 가르는 순간, 설지량의 검극은 상처 난 왕유의 옆구리를 스쳐 갔다.
‘큭!’
이를 악문 왕유의 등 뒤로 표설중의 공격이 재차 쏟아진다.
‘여기서 쓰러질 것 같은가!’
평생을 꿈꿔온, 도무지 불가능할 것만 같던 그 세상이 목전에 있다.
자신이 단념했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진무립이다.
자신들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그를 위해서라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하압!”
살수의 입에서 터져 나온 우렁찬 포효가 대적들의 가슴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순간.
쾅!
지면에 쑤셔 박은 왼발을 축으로 왕유의 신형이 소용돌이치듯 회전했다.
콰지지지직!
용천혈로 쏟아지는 가공할 내력에 으깨진 돌가루가 암기처럼 비산한다.
슈슈슈슉!
그 위력이 결코 무시할 만한 게 아니다.
표설중과 설지량은 즉시 돌입을 멈추고 검신을 끌어당겼다.
따다다다당!
검신에 막힌 돌가루가 안개처럼 흩어지는 순간, 지면을 박찬 왕유가 표설풍의 품으로 돌진했다.
“놈!”
표설중은 예리하게 베어오는 검신에 역수로 쥔 검을 들이밀었고.
등 뒤에 선 설지량은 거침없이 검을 내던졌다.
콰앙!
검파를 쥔 손이 바깥으로 흘러가자 표설중의 눈이 부릅떠졌다.
‘아니?’
왕유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끝이다.’
상대의 방어를 사정없이 튕겨낸 왕유가 그의 가슴으로 소검을 찔러넣을 때였다.
푹!
등을 꿰뚫은 검신이 가슴으로 튀어나오며 왕유의 균형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서걱!
쏘아지던 검극이 간발의 차이로 표설중의 겨드랑이를 스쳐 지나간다.
‘아아.’
왕유의 눈에 낭패한 빛이 스쳐 지나간다.
“놈!”
부러질 정도로 이를 간 표설중이 벼락같이 다리를 휘둘렀다.
쾅!
옆구리에 작렬한 강렬한 일격에 왕유의 신형이 화살처럼 튕겨 나가 고목에 처박혔다.
콰직!
“죽여버리겠다!”
표설중이 지체 없이 몸을 날리려 할 때였다.
설지량이 다급하게 그의 어깨를 끌어당겼고 두 사람 앞을 금빛 장력이 휩쓸고 지나갔다.
콰콰쾅!
“아미타불.”
나직한 불호가 두 사람의 가슴을 묵직하게 두드린다.
설지량을 쫓아온 판천라마가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궁주가 왔습니다. 여기선 물러나지요.”
금강적사안을 펼치는 판천라마는 살수에게 있어 최악의 상대다.
잠시 멈칫한 표설중은 주먹을 부르르 떨며 몸을 돌렸다.
“가자.”
두 사람이 사라지기 무섭게 판천라마가 도착하며 왕유를 살폈다.
“음.”
짓이겨진 옆구리의 피부가 시꺼멓게 죽어가고 있었고, 등에서 가슴을 관통한 검신에선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좋지 않다.’
판천라마는 즉시 혈도를 찍어 피를 멈추고 왕유의 가슴에 장심을 붙였다.
우우우…….
웅혼한 내력이 물밀 듯이 쏟아지며 왕유의 전신 세맥으로 스며들었다.
숲속의 전투가 일단락될 무렵, 연무장의 치열함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촤르르륵!
지면으로 길게 미끄러지는 운화결은 흐트러진 머리칼을 잘라버렸다.
서걱.
흩날리는 머리카락 너머로 맹렬하게 짓쳐 드는 진무립이 떠오른다.
“흐아아아!”
기합을 토해낸 운화결은 역수로 쥔 도신을 사선으로 그어 올렸고.
뚝 떨어진 진무립의 흑도가 그 위를 빗줄기처럼 강타했다.
쿠콰콰콰콰콰쾅!
‘큭!’
손끝의 떨림이 점점 심해지며 감각마저 앗아가려 한다.
‘이게 정말 현실이란 말인가?’
전투가 시작되고 반 시진이 훌쩍 지났다.
그럼에도 진무립의 힘과 움직임은 점점 강렬해지며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아니. 놈이 강해지는 게 아니라 내가 느려지는 것이다.’
분명 초반에는 자신의 움직임이 상대를 능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진무립의 날카로움이 점점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지치지도 않는단 말이냐?’
주르륵 미끄러지는 운화결의 동공에 진무립의 도신이 빨려들 듯 확장된다.
“이제 슬슬 끝을 보자. 아직 상대할 적이 많거든.”
“뭐라고?”
치솟은 진무립의 흑도로 단전 속 거력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다.
쏴아아!
이윽고 강렬한 빛을 토해내는 흑도가 벼락 치듯 떨어진다.
콰아아앙!
도신에서 쏟아져 나온 압천경세(壓天驚世)의 초식이 간발의 차이로 운화결의 발 앞을 강타했다.
솟구친 흙먼지 너머로 두 개의 눈동자가 흑요석처럼 반짝였다.
“아직 상대할 적이 많다고 했다.”
운화결의 표정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설마 뒤를 생각하고 힘을 아꼈단 말이냐?’
이를 가는 운화결의 주변 공기가 폭풍처럼 요동친다.
“감히……. 감히 나를 앞에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