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21)
◈ 221화. 혈풍 속에서
달빛이 은은하게 내리쬐는 숲속.
걱정과 초조한 분위기로 가득한 이곳에서도 중원무림맹의 전투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화광이 충천한 밤하늘.
솟구치는 비명과 굉음이 연신 쏟아져 나올 때마다 임교영은 애써 차분히 자신을 달래야 했다.
‘느낌이 좋지 않아.’
지금까지 운화결이 해내지 못한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오늘의 이 꺼림칙한 기분은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그녀는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여령.”
양천대주 지여령이 즉시 고개를 돌린다.
“예. 아가씨.”
“아무래도 가봐야겠어요.”
지여령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어딜…… 간다는 말씀이십니까?”
“중원무림맹이에요.”
“안 됩니다. 한창 전투가 벌어지는 중입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곳으로 아가씨를 데려갈 수는 없습니다.”
“생각보다 전투가 너무 길어지고 있어요. 잠시라도 좋으니 내 눈으로 현장을 보고 싶어요.”
“아가씨.”
임교영은 간절한 눈빛으로 애원하듯 말했다.
“부탁이에요.”
갈등에 사로잡힌 지여령이 초조한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압도적인 전력 차이가 뒤집히는 일은 없을 거야. 잠시 확인만 하고 돌아오는 정도는 괜찮겠지.’
생각을 정리한 그녀가 지여령의 손을 잡았다.
“알겠습니다.”
* * *
콰지직!
으깨진 장석과 함께 운화결의 신형이 폭발적인 기세로 튀어 나간다.
콰앙!
부릅뜬 두 눈에서 지독한 살기가 줄기줄기 쏟아져 나온다.
정면으로 짓쳐 들던 운화결의 발끝이 지면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일직선으로 쏘아지던 그의 신형이 갈지자로 움직이며 치켜든 도신에 백광이 깃들었다.
“무면산왕-!”
거친 포효와 함께 도신에서 피어난 백광이 수십 갈래로 갈라지며 허공을 가득 채워간다.
팔천영신공 무진강천(武鎭姜天)의 초식.
차분하게 보폭을 벌린 진무립이 흑단벽(黑斷壁)의 초식을 전개했다.
쌔애액- 쿠콰콰쾅!
흑광과 백광이 허공에서 연신 충돌하며 거친 폭음과 함께 일진광풍을 몰아친다.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운화결이었으나 진무립 또한 그에 못지않게 피가 들끓는 상태였다.
‘억눌러야 한다.’
진무립은 운화결을 상대하는 내내 다치고 쓰러지는 부하들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물론 금성우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길어지는 격전 속에 지쳐가는 부하들의 상처가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당장에라도 온 힘을 쏟아부어 이 싸움을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차가운 머리는 힘을 최대한 온존해 뒷일까지 염두에 둘 것을 당부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천음지체라지만 삼천에 달하는 적이 뒤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버텨다오.’
혈천수라에게 혈옥비를 시전할 때처럼 감정에 휩쓸리던 자신이 아니다.
뜨거운 가슴을 애써 억누른 진무립은 냉정하게 상대의 초식을 눈에 담았다.
‘금방 가겠다.’
콰콰쾅!
마지막 세 번의 격돌에 이어 두 사람의 신형이 반대 방향으로 주르륵 미끄러진다.
‘이걸 막아냈단 말이냐?’
운화결의 영준한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다.
혼신을 쏟아부은 무진강천이 진무립의 흑단벽에 완벽하게 틀어막힌 까닭이다.
쉬익!
동시에 도를 내던진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창을 손에 쥐었다.
진무립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느려졌다!’
초식의 위력은 분명 강맹해졌다.
그러나 지금까지와 다르게 귀접을 전개하는 속도에서 미세한 차이가 난다.
지친 상대가 온 힘을 쏟아붓는다는 증거다.
승부를 걸 때가 왔다.
창대로 빨려드는 내력이 극음의 진기로 변해간다.
쩌저적.
진무립의 주변으로 살얼음이 끼더니 새하얀 눈송이가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벼락같이 돌진한 운화결이 일직선으로 창을 내지른다.
“막을 수 있겠느냐!”
척.
한 발을 내디딘 진무립도 움켜쥔 창대를 거침없이 내질렀다.
“눌러주마.”
콰직!
공간을 찢어발긴 두 사람의 창두가 거의 동시에 팔천영신공 승무관천(昇武貫天)의 초식을 전개했다.
쏴아아!
화려하게 피어난 흑광과 백광이 서로를 향해 빗살같이 늘어지더니 허공에서 강렬하게 충돌했다.
파지지직…….
부서지는 기파가 눈꽃처럼 흩날리는 가운데 맞닥뜨린 두 사람의 발이 지면 깊숙하게 파고든다.
“흐아아아-!”
동시에 터져 나온 기합성에 이어서.
쿠아아아앙-!
고막을 후려치는 육중한 폭음과 함께 어둠 속 두 사람을 새하얀 빛무리가 집어삼켰다.
충격의 진원지에서 시작된 칼바람이 맹렬하게 전장을 휩쓸어간다.
단려화는 소매로 바람을 가리며 외쳤다.
“무립!”
그와 동시에 떨리는 눈동자로 폭발을 응시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조금 전 도착한 임교영이었다.
‘상공!’
두 사람의 가공할 충돌은 일순 전장에 정적을 가져올 만큼 엄청난 여파를 미쳤다.
“하아.”
가쁜 호흡을 고르며 창대를 움켜쥔 이하빈은 빠르게 폭음이 터져 나온 자리를 확인했다.
‘주군.’
그녀만이 아니었다.
전신이 피로 흠뻑 젖은 상천팔기도, 차륜전을 상대하고자 등을 맞댄 유대하와 육군명도.
상천의 무인을 비롯해 중원삼가 무인들까지 어느새 진무립의 무사 안위만을 간절하게 기대하고 있었다.
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을 자는 진무립이라는 것을 모두가 아는 것이다.
가라앉는 흙먼지와 함께 새하얀 눈송이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폭발의 근원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쿨럭!”
마주 선 두 사내의 그림자, 그중 좌측의 그림자 하나가 각혈 소리와 함께 상체를 굽혔다.
“아아!”
절망 섞인 탄식은 임교영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지면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피투성이가 된 몰골로 버티고 선 인물은 바로 운화결이었다.
‘내가…… 졌다고?’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그때 창두부터 바스러져 자루밖에 남지 않은 백창이 붉게 물든 눈동자에 들어왔다.
‘아아.’
그제야 운화결은 자신이 패했다는 것을 체감했다.
“상공-!”
치맛단을 움켜쥔 임교영이 다급하게 달려나간다.
이어서 단려화의 눈동자가 두 발로 우뚝 선 진무립을 확인했다.
깔끔하던 무복은 넝마가 되었고 전신이 자잘한 상처로 가득한 그였으나 가슴을 활짝 편 그 모습에 거짓은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 환희에 찬 미소가 떠올랐다.
“무립!”
상반된 두 여인의 표정은 마치 맞서는 양측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대변하는 듯했다.
도존 박위문의 볼살이 파르르 떨려왔다.
‘저 아이가…… 당했단 말인가?’
복령천에서 천주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팔천영신공을 익힌 인물.
‘무면산왕. 아니, 광룡 진무립!’
천주를 제외하곤 적수가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 강적이 있었다.
표사들의 표정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믿었던 운화결의 패배가 믿기지 않는 듯 거칠게 떨리는 눈동자로 어쩔 바를 몰랐다.
당천의 곁에 선 진설란이 흥분을 억누르며 말했다.
“정말…… 굉장한 사람이에요.”
중원의 눈과 귀가 모인 이곳에서, 진무립은 자신의 존재를 천하에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당천은 담담하게 물었다.
“언제 왔지?”
“처음부터 있었는데요.”
“…….”
쏟아지는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진무립이 창대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쾅!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예!”
상천의 무인뿐만 아니라 중원무림맹 또한 진무립의 명에 복창하며 몸을 날린다.
잠시 멈췄던 전투가 재개되는 순간 진무립은 운화결을 끝장내고자 몸을 날렸다.
“운화결!”
한 줄기 섬광을 흘리는 창두가 운화결을 끝장낼 기세로 쏘아졌다.
“안 돼-!”
어느새 지척까지 도착한 임교영이 다급하게 운화결을 잡아갈 때였다.
쉬익!
어둠 속에서 쏘아진 예리한 검신이 진무립의 창두를 스쳐 갔다.
치잉!
삼 장 밖에서 검신을 내던진 인물은 바로 설지량이었다.
‘여기서 무너지게 둘 수는 없습니다!’
평생을 꿈꿔온 복수를 위해.
운화결은 여기서 쓰러져선 안 될 인물이었다.
스걱.
간발의 차이로 운화결을 스친 창두가 바로 뒤의 임교영에게 향한다.
‘아!’
부릅뜬 임교영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고.
운화결은 온 힘을 다해 창대를 잡아갔다.
달라진 궤적을 확인한 순간 진무립의 발이 지면을 강하게 찍었다.
팍!
임교영의 목을 파고든 창두에 붉은 핏방울이 선명하게 맺혔다.
“아가씨!”
그사이 뒤따라온 지여령과 양천대가 진무립을 향해 맹공을 쏟아냈다.
슈슈슈슉!
‘칫!’
창을 회수한 진무립이 뒤로 주르륵 미끄러진다.
콰콰콰쾅!
양천대의 공격이 그들 사이에 떨어지며 지면을 벌집으로 만들어버렸다.
“쿨럭!”
각혈을 토해낸 운화결이 힘겹게 일어나며 진무립에게 물었다.
“멈춘 건가?”
자신이 창대를 잡는 순간 진무립의 발이 멈추지 않았더라면, 흑창은 확실히 임교영을 꿰뚫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과 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
별안간 나타나 운화결을 감싸는 정체 모를 여인.
만일 그녀가 무공을 익혔더라면 망설임 없이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공 한 자락 익히지 않은 그녀를 죽이는 것은, 같은 뿌리를 가졌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공격한 자들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그 말을 이해한 운화결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과 같은 길이라…….”
문득 옛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것은 힘에 눌려 팔황문에 굴종한 죄로, 아무것도 모르던 식솔들까지 모조리 죽어 나갔던 화가보의 기억이었다.
진무립은 창두를 전방으로 향하며 차갑게 말했다.
“다음은 없다.”
임교영을 밀어내는 운화결의 손이 옅은 떨림을 보인다.
“교영. 물러나라.”
임교영은 왈칵 눈물을 쏟아내며 처절하게 고개 저었다.
“그럴 수 없어요!”
좌우를 살핀 진무립은 거침없이 양천대를 향해 돌진했다.
“미안하지만 내겐 지체할 시간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부하들은 적의 포위에 둘러싸여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자비는 한 번이면 족하다.
이번엔 반드시 운화결을 죽이겠다는 일념이 쏘아지는 창두에 맺힌다.
땅에 떨어진 검을 움켜쥔 설지량이 지면을 박찼다.
[목숨으로 막으세요!]양천대주 지여령이 결연하게 눈을 빛내며 진무립을 향해 달려들었다.
슈아아악!
일직선으로 내지르는 창두에서 갈라진 흑광이 장대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한다.
조금 전 운화결이 시전했던 백사참격(白死慘擊)의 초식이 진무립의 흑창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설지량이 운화결과 임교영을 옆구리에 끼고 몸을 날리는 사이, 지여령과 양천대는 거대한 흑광의 해일 앞에 몸을 내던졌다.
“막아!”
비장하게 눈을 빛낸 양천대가 일제히 검신을 내질렀다.
슈슈슈슈슈!
시퍼렇게 눈을 빛낸 진무립이 단호한 외침을 토해냈다.
“누구도 내 앞을 막을 순 없다!”
쿠콰콰콰콰쾅!
흑광에 부딪친 검신이 산산 조각나며 사방으로 흩어져간다.
“크아악!”
솟구치는 비명과 함께 몰아치는 일진광풍에 시뻘건 피가 뒤섞인다.
창을 움켜쥔 진무립은 앞을 막아서는 양천대를 거침없이 도륙했다.
둘을 데리고 멀찌감치 물러난 설지량의 눈에, 혈풍의 중심에 선 진무립의 가공할 신위가 들어온다.
마치 전신이 강림한 듯 질풍노도와 같이 사방을 휩쓸어가는 그 모습에 손마저 떨릴 지경이었다.
‘계산 착오였을까.’
비록 양천대의 무공이 금표대에 비해 한 수 아래라곤 하나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질 만한 자들은 아니었다.
만일 진무립이 이와 같은 고수라는 걸 알았더라면 분명 다른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막아서는 적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그 모습은 중원삼가 수장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각인시켰다.
선우세가주 선우진이 나직이 읊조렸다.
“광룡 진무립. 설마 이 정도의 무인이었다니.”
“저자는…….”
황보한의 말에 이어 제갈경이 작게 끄덕였다.
“우리는 지금 천하제일인의 아성을 위협할 만한 고수를 보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순식간에 양천대를 돌파한 진무립은 십 장 밖으로 물러난 운화결과 위기에 빠진 중원삼가의 고수들을 확인했다.
선택을 내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싸움은 천하에 상천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자신들이 머물 자리를 만들기 위한 것.
오대표국의 위협에서 중원을 구하고 운화결을 제거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엄청난 숫자의 표사는 중원삼가뿐만아니라 지친 부하들에게도 크나큰 부담이 되고 있었다.
‘운화결에게 더 이상 우리를 위협할 힘은 없다. 저들부터 구한다.’
주르륵 미끄러진 진무립은 중천대를 압박하는 흑표대를 향해 거침없이 창을 내던졌다.
쏴아아아!
일직선으로 쏘아진 창대로 요동치는 대기가 회오리처럼 빨려든다.
과거 서장 적사곡에서 혈교도들을 무참히 짓밟았던 일섬격관(一閃擊貫)의 초식이었다.
부릅뜬 대표두 지우성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피, 피해라!”
그러나 그의 외침이 무색하게 일섬격관은 이미 수하들을 휩쓸어가고 있었다.
쿠콰콰콰콰콰!
“크아악!”
솟구치는 피와 살점이 회전하는 창대로 빨려들며 혈풍이 몰아친다.
감히 누구도 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거침없이 질주하던 창대는 스무 명의 목숨을 앗아간 뒤에야 지면에 틀어박혔다.
위기에서 벗어난 중천대의 눈동자에 짙은 떨림이 깃들었다.
“아아.”
중천대주 선우빈이 예를 표하고자 고개 돌릴 때였다.
“물러나라.”
귓가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싶더니 봉을 손에 쥔 진무립이 그들 앞에 천신처럼 강림했다.
“원진을 펼치고 부상자를 수습하는 거다.”
“그렇게 되면 포위가…….”
“이젠 상관없다.”
움켜쥔 봉으로 활화산 같은 내력이 물밀 듯이 쏟아진다.
인의 장막을 담은 새까만 눈동자가 결연한 빛을 토해냈다.
“내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