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69)
◈ 269화. 첫 번째 임무
사천의 비보는 곧장 단소룡의 귀에 들어갔다.
아직 강남과 사천의 대표가 도착하지 못한 가운데 단소룡은 새롭게 임명된 무림맹의 수뇌들을 소집했다.
무운전의 넓은 대전.
상석의 단소룡을 중심으로 좌측엔 산동의 대표로 대사주에 임명된 묵운정이, 우측엔 중원의 대표로 그와 함께 대사주가 된 선우진이 자리했고 이어서 군사부와 비각의 무인들이 자리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진무립과 당천이 빈자리를 차지하자 단소룡이 탁자를 두드렸다.
“모두 모였군. 그럼 시작할까.”
새롭게 창설된 무림맹의 첫 회의.
모두가 단소룡을 주시하는 가운데 산동대사주 묵운정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불편해 보인다.
곁에 앉은 화윤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단소룡의 눈치를 살핀 묵운정이 극도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니……. 이대로 회의가 시작이란 말이오?”
“누구 안 오신 분이 계십니까?”
“그건 아닌데…….”
묵운정의 눈동자가 스르륵 굴러가더니 좌중을 차례로 확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신을 제외한 이들은 지금의 상황이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묵운정의 주름진 얼굴에 노을이 번졌다.
“명색이 천하를 아우를 무림맹의 회의인데 격식 없이 이대로 회의가 시작되는 게 맞는가 싶어서…….”
언제 예를 갖추나 줄곧 기다렸는데 그대로 회의가 시작되니 괜히 긴장한 것 같아 민망했던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무인은 모두 단소룡과 안면이 있는 사람들.
허례허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단소룡의 성격을 묵운정만 몰랐던 것이다.
단소룡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격식을 따져야 하는 어려운 자리라면 직책이 낮은 무인들은 제대로 의견을 개진할 수 없지. 앞으로도 회의는 이렇게 진행될 것이니 대사주께서도 이해해주길 바라오.”
묵운정은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예. 맹주.”
단소룡이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직 조직조차 정비되지 않은 시점에 여러분을 소집한 게 의아할 것이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시간이었다.
선우세가주 선우진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오면서 궁금했던 참입니다.”
단소룡의 눈동자가 진무립의 곁에 앉은 당천을 슬쩍 살폈다.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다.
“비각주.”
“예.”
의자에서 일어난 제갈문이 매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천에서 사절로 출발하신 당조 대협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장평문에서 당우 소협을 발견해 보호 중에 있다고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순간 당천의 전신에서 살얼음이 낀 듯 서늘한 냉기가 피어올랐다.
“그게…… 무슨 말이지?”
제갈문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침착하게 설명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당조 대협과 그 일행이 실종됐습니다. 당우 소협만이 장평문의 담장 밑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형용할 수 없이 무거운 공기가 순식간에 대전을 사로잡는다.
‘아버지가…… 실종되셨다고?’
무거운 정적 속에 당천의 눈동자가 옅은 떨림을 보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당천은 이내 평상시의 표정을 회복했다.
단 한 번의 패배로 절망했던 과거의 자신이 아니다.
지금의 당천은 쉽게 감정을 표정에 드러낼 만큼 가벼운 무인이 아니었다.
그는 담담한 얼굴로 단소룡을 바라보았다.
“회의를 계속하시지요.”
“……그러지.”
단소룡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사천 무림이 빠진다면 무림맹을 세운 의미가 퇴색될 것이오. 지금 사천은 독왕의 실종으로 혼란스러울 터, 이쪽에서 먼저 사람을 보낼까 하는데.”
진무립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이번 일.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어차피 소화산의 회동 일자를 확인하고자 천산으로 가려던 참이다.
손 놓고 운화결이 소식을 보내오기만 기다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단소룡이 이 자리에 있는 이상 마음 놓고 맹을 비울 수 있다.
진무립은 가는 길에 사천에 들러 이번 문제를 확인하고 그대로 천산으로 갈 생각이었다.
마지막까지 보안 유지를 위해 이 자리에서 말할 순 없었으나 화윤은 그 생각을 알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화윤이 단소룡에게 말했다.
“단주를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단소룡이 말했다.
“태종무단은 독자적인 임무 수행이 가능한 부대. 자네가 가겠다고 하면 내가 거절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아직 단의 구성조차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떠나는 건 너무 빠른 게 아닌가?”
진무립이 답했다.
“대략적인 구성은 머릿속으로 정리한 상태입니다. 부족한 부분은 부군사가 정리할 것입니다.”
복령천과의 마지막 싸움의 일선에 설 태종무단이다.
이미 오는 길에 진무립과 대화를 나눈 수문화는 전투에 나설 무인 선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문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은 일은 제가 맡겠습니다.”
“음.”
나직이 침음한 단소룡이 넌지시 물었다.
[데려갈 생각이냐?] [명색이 제 호위가 아닙니까?]아직 이곳에선 단려화가 단소룡의 딸이라는 걸 아는 이는 상천과 화령을 비롯해 극소수밖에 없다.
‘그 아이도 검을 쥐고 무림에 나선 이상 감싸고 돌 수만은 없는 일이지.’
잠시 생각하던 단소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단주는 사천에 다녀오게.”
“감사합니다.”
단소룡은 이어서 제갈문에게 말했다.
“비각주는 단주에게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말게.”
“예. 맹주님.”
진무립과 당천이 제갈문을 따라 대전을 나섰다.
단소룡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확실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소. 오늘의 회의 내용은 당분간 비밀을 유지하도록 하시오.”
좌중이 일제히 예를 갖췄다.
“예. 맹주님.”
대전을 나선 당천은 즉시 처소로 돌아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둑한 방 안.
정적 속에 옷가지를 정리하는 당천은 표정으로 드러나는 복잡한 마음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아버지.’
자신은 당가의 소가주.
대전에선 차마 내색할 수 없었던 감정이 스멀스멀 차오른다.
‘곧 뵙겠습니다.’
봇짐을 어깨에 걸머진 당천이 문을 활짝 열었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설란이 애써 활짝 웃어 보인다.
“천.”
진무립에게 모든 것을 들은 그녀는 당천의 마음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얼마나 괴로울까.’
분명 남들 앞에선 내색하지 않을 것이다.
당천의 눈치를 살핀 그녀가 매우 조심스럽게 말했다.
“분명 괜찮을 거예요. 그분은 독왕이잖아요.”
당천은 담담하게 발을 내디뎠다.
“물론이다. 가자.”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얄궂게도 내리는 비가 세상을 뒤덮는다.
당천이 비를 뚫고 약속한 장소로 향할 무렵, 무운전의 처마 밑에 선 진무립은 수문화와 남은 일을 논의하고 있었다.
수문화의 검은 눈동자에 추적추적 쏟아지는 빗줄기가 떠올랐다.
“시원하게 쏟아집니다.”
“그래.”
그와 함께 벽에 기댄 진무립이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유대하와 육군명이 통 보이지 않더군.”
다른 이들과 달리 그 두 사람은 맹에 복귀한 이래 단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
수문화가 묘한 표정을 보인다.
“아마 다음에 만날 땐 둘 다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주군께서 팔기를 키우실 때 하셨던 것처럼 약간 손을 써뒀습니다.”
진무립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건 그들이 원했기 때문이다. 설마 녀석들을 죽일 생각이냐?”
진무립이 광룡대를 은곡에 밀어 넣고 수련시켰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상천팔기가 지금의 팔기가 되기까지.
그들은 상식을 벗어난 위험한 수련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런 과정을 겪었기에 오늘날의 상천팔기는 수십 번 지옥을 해치고 나온 수라가 되었다.
“두 사람이 원한 겁니다.”
“왜지?”
“마지막 전투까지 짧게는 넉 달. 길어도 열 달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계획대로 모든 것이 진행된다면 말입니다. 그들도 연이은 전투에서 느낀 모양이지요.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말입니다.”
수문화의 말처럼 유대하와 육군명은 전투를 거듭할수록 자신들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지금의 무공은 아무리 잘 쳐줘도 대표두와 국주 사이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대로 복령천의 강자와 만난다면 되려 짐이 될 뿐이라는 걸 그들도 알고 있던 것이다.
“쭉정이는 되기 싫답니다. 그들이 바란 것이니 저 좀 그만 혼내십시오.”
수문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무립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시작했다면 어쩔 수 없지.”
고개를 흔든 진무립이 화제를 돌렸다.
“곧 광룡대가 도착할 거다.”
“그들도 태종무단에 편입합니까?”
태종무단은 복령천과 최전선에서 싸울 정예부대.
진무립은 고개를 저었다.
“예외는 없다. 그들도 철저하게 검증해라. 실력이 되지 않는다면 화톳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이 되고 말 거다.”
“알겠습니다.”
진무립은 마지막으로 수문화의 어깨를 지그시 잡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가 상대인 만큼 희생자가 나오지 않을 순 없겠지. 그러니 잘 부탁한다.”
수문화는 멀어지는 진무립의 등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맡겨주십시오.”
말이 끝나는 순간 진무립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졌다.
홀로 남은 수문화는 먹먹한 하늘을 바라보며 빗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악계화. 자영.”
비를 뚫고 퍼져나가는 나직한 목소리에 멀리서 대기하던 두 사람이 나타났다.
둘을 번갈아 보던 수문화가 악계화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매우 바빠질 거다.”
“넌 늘 바쁜 것 같더군.”
“내가 아니고.”
수문화의 검지가 악계화를 가리킨다.
“너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
“흐흐흐.”
수문화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이번 무당산의 전투에서 백화무단의 전투를 직접 본 진무립은 그들 개개인의 무위가 악계화와 엇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태종무단의 입단 시험.
그것은 바로 태산표국 대표두 출신인 악계화와의 비무에서 승리하는 것이었다.
* * *
새롭게 태어난 무림맹.
진무립의 첫 번째 임무는 바로 사천으로 가서 당조의 일을 수습하고 공위맹과의 협약을 완료한 뒤 천산으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아직 조직 구성이 완성된 것이 아니었기에 일행은 많지 않았다.
단주 진무립과 그를 그림자같이 따르는 은무대.
단려화와 당천, 진설란이 그 곁을 함께했다.
개봉을 떠나 남서쪽으로 길을 잡은 일행은 열흘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사천의 경계를 넘었다.
첩첩산중의 웅장한 풍경 속에 하늘마저 가릴 만큼 까마득한 절벽.
하루라도 빨리 도착하고자 지름길로 온 진무립 일행을 거대한 절벽의 위태로운 잔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도래할 여름을 알리듯 며칠간 쉴 새 없이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잔도를 둘러본 단려화가 일행 곁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조금 쉬어가는 게 좋겠어요.”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절벽 길이다.
비에 젖어 미끄러운 잔도는 지친 상태로 주파하기 까다로운 상대였다.
‘진소저가 많이 지쳤어. 이대로는 분명 사고가 생길 거야.’
다른 이들에 비해 내력이 일천한 진설란은 당장에라도 쓰러질 사람처럼 힘겨워 보였다.
그럼에도 그녀가 버티는 것은 당천의 조급한 마음을 백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둑한 하늘을 본 진무립이 은무대에게 지시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쉬어간다.”
서진환이 즉시 대답했다.
“비를 피할 곳을 찾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은수련을 제외한 부하들이 일사불란 흩어진다.
당천의 곁으로 다가간 진무립이 물었다.
“여기서 장평문까지 얼마나 걸리지?”
“이 속도라면 이틀이다. 서두를 필요 없다. 거의 다 왔으니까.”
그 역시 내심 진설란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휴식이 결정되자 진설란을 부축한 단려화가 비를 피해 나무 밑으로 움직인다.
당천은 현 위치를 재차 확인하듯 깎아지를 듯한 절벽으로 가득한 산새를 유심히 살폈다.
그의 곁으로 다가간 진무립이 작게 말했다.
“유일하게 당우만이 돌아왔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일순 당천의 눈에 지독한 살기가 스치듯 사라졌다.
“그놈이겠지.”
광마 당명.
한때는 자신의 동생이었던 자밖에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