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68)
◈ 268화. 무림맹 창설
정문의 외침이 들려오기 무섭게 철표개가 지면을 박찼다.
“신룡!”
그와 동시에 각 전각에서 일제히 무인들이 쏟아져 나온다.
“도착한 모양이군.”
단소룡에게 전각을 내어주게 된 위사영이었으나 아쉬운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내심 모처럼 만나는 그가 반가운 모양이다.
중원삼가의 무인들을 주축으로 며칠 전 도착한 산동의 정예 고수들까지.
거리의 좌우에 수백의 무인이 도열한 가운데 마침내 진무립 일행이 나타났다.
고개 돌린 무인들의 눈동자에 북광남신(北光南神)으로 불리는 두 명의 절대자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뒤로 수문화와 두 명의 호위, 중간에 헤어졌다가 하루 전 합류한 당천 일행까지 보인다.
거리의 중앙으로 나선 비각주 제갈문이 매우 공손하게 포권을 취했다.
“광룡 대협의 복귀와 신룡 대협의 첫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나직한 목소리가 물결처럼 퍼져 나가는 가운데 도열한 무인들이 일제히 포권을 취했다.
진무립이 단소룡을 쳐다보며 말했다.
“한 말씀 하시지요.”
“음.”
한 발 나선 단소룡이 잔뜩 가슴을 부풀렸다.
“강남에서 온 단소룡이다. 반갑다.”
진무립과 함께 천하 무림의 정점에 선 또 하나의 무인 단소룡.
무인들의 기대 섞인 눈빛들이 단소룡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좀처럼 단소룡의 입이 열리지 않는다.
진무립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속삭이듯 물었다.
“설마 끝입니까?”
“그래.”
“…….”
“내게 뭘 기대하는 것이냐?”
바로 뒤에 서 있던 화윤이 아차 싶은 얼굴로 입술을 달싹거렸다.
[대목. 여긴 화령도가 아니야.]화령도의 익숙한 부하들과 달리 이곳에 있는 자들은 대부분 단소룡을 처음 보는 이들이다.
앞으로 무림맹을 이끌어갈 맹주로서, 이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길 필요가 있었다.
‘음.’
화윤의 전음에 닫혔던 단소룡의 입이 다시 열린다.
“팔황문의 후신, 복령천을 세상에서 지우고 이 땅에 평화를 되찾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나의 사명은 즉, 우리의 사명이 될 것이며 나는 반드시 그대들에게 승리를 안겨줄 것이다. 전쟁이 승리로 끝나는 그날까지 잘 부탁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오더니 우레와 같은 함성이 하늘로 솟구쳤다.
“우와아-!”
앞줄의 뒤에 서 있던 철표개는 모처럼 만난 단소룡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소매로 눈물까지 훔칠 정도였다.
함성이 잦아들자 제갈문이 상황을 정리했다.
“새롭게 창설될 무림맹, 초대 맹주님을 위해 조촐한 연회를 준비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각 대의 대주들이 일사불란 무인들을 이끌고 물러나는 가운데 단소룡이 제갈문의 앞으로 걸어갔다.
“문이로구나. 너무 커서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과거 부친과 함께 화령도에 다녀온 적이 있는 제갈문이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네 부친은 어디에 있느냐?”
“아버지와 삼가의 가주께서는 맹에 추가로 파견할 무인을 선별하고자 잠시 세가로 귀환하셨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얼른 와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해라.”
“예?”
수문화가 서둘러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무인의 선별은 염두에 둔 방법이 있습니다. 그건 차차 설명할 터이니 세가에 연통을 넣어 가주님들을 이곳으로 모셔와 주십시오.”
멍하니 서 있던 제갈문이 정신을 차리고 몸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일단 맹주님께서 기거하실 처소로 모시겠습니다.”
“가자.”
제갈문을 필두로 일행이 무운전으로 향했다.
* * *
중원이 본격적인 무림맹 창설 준비에 돌입할 무렵.
임무를 떠났던 운화결들은 긴 여정 끝에 마침내 복령천의 은신처로 복귀했다.
허름한 초옥의 실내.
솜털이 쭈뼛 설 만큼 서늘한 긴장감이 무겁게 흐르는 가운데 황천패가 덥수룩한 수염을 매만지며 구홍을 응시한다.
결국 이 긴장감을 견디지 못한 구홍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송구합니다.”
“그래. 부하 아홉 다 잃고 혼자 살아왔나. 낯짝도 많이 두껍네.”
구홍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오체투지 했다.
“죽여주십시오.”
“죽여?”
그의 앞에 쭈그려 앉은 황천패가 날이 바짝 선 과도로 그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어떻게 죽이면 좋겠나? 니 입으로 말해봐라.”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에 느껴지는 살기.
눈을 마주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황천패의 오싹한 시선은 그야말로 산중의 맹수를 만난 듯 섬뜩하다.
구홍의 등줄기가 축축하게 젖어 내린다.
그때 작은 쪽문을 열고 약환이 들어왔다.
“킬킬킬. 드디어 돌아왔군요.”
황천패가 한쪽 눈썹을 씰룩이며 쳐다봤다.
“언제 왔어?”
“방금 도착했습니다. 백화무단원 아홉 명을 잃었다지요? 킬킬!”
“어이.”
약환을 향한 황천패의 눈동자에 시퍼런 불길이 치솟는다.
“아가리를 찢어버려도 계속 웃을 수 있나 한번 시험해 봐?”
눈빛과 목소리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황천패가 유일할 것이다.
“……죄송합니다.”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한 약환은 이내 황천패의 곁에 쭈그려 앉았다.
“임무가 어떻게 됐다구?”
구홍이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
“무, 무당산 소실봉에 머무는 도사들은 한 사람을 제외하고 전부 죽였습니다.”
“장문인은 못 죽였고?”
“예. 운공이 그를 죽이려는 찰나 때마침 도착한 신룡과 맞닥뜨렸습니다. 송구하게도 그를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장문인 빼고는 다 죽였단 말이지?”
“그, 그, 그렇습니다. 장문인을 인질로 삼아 신룡에게 퇴로를 약속받고 빠져나왔습니다.”
구홍은 이어서 자신이 보고 경험한 모든 것을 두 사람에게 털어놓았다.
긴 이야기가 끝나자 황천패가 물었다.
“신룡이 곱게 보내주더냐?”
“그, 그렇습니다.”
약환이 말했다.
“신룡은 자신이 내뱉은 말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지키는 거로 유명하지요.”
“영감.”
황천패가 약환의 머리를 툭 때리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써먹어? 아님 버려?”
이번 임무에는 운화결뿐만 아니라 검존 성유기까지 얽혀있었다.
머리를 긁적이는 약환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으음.”
잠시 고민하던 약환은 황천패의 인내심에 한계가 오기 직전에서야 입을 열었다.
“일단은 믿어보지요. 킬킬킬.”
황천패가 눈을 부라리며 쏘아본다.
“웃지 말라고 했어.”
“……예.”
“어쨌든 믿어보겠다 그거지?”
“예.”
자리에서 일어난 황천패가 싸늘한 눈으로 구홍을 쳐다보며 말했다.
“왕조.”
허공에서 시꺼먼 인영이 뚝 떨어져 내리며 부복한다.
“예. 주군.”
“이 새끼 데려가서 사흘간 굶겨.”
상대가 단소룡이었다면 이들이 당해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심지어 운화결에겐 변변한 무기조차 없었으니까.
그러나 신룡은 자신이 반드시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대적.
그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쳤다는 사실에 짜증이 치미는 것이다.
“명을 받듭니다.”
왕조가 구홍을 데려나가자 황천패는 처소를 나섰다.
서산에 걸린 노을이 세상에 붉은빛을 흩뿌린다.
“정요.”
밖에서 기다리던 정요가 곧장 그의 앞으로 달려갔다.
“예. 주군.”
“그거 갖고 따라와.”
“예.”
꺼지듯 사라진 정요가 순식간에 하얀 궤짝을 들고 나타났다.
황천패는 곧장 운화결을 찾았다.
어둑한 방 안.
활짝 열린 문으로 쏟아지는 노을과 함께 황천패가 안으로 들어섰다.
벽에 기대앉아있던 운화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군을 뵙습니다.”
그를 위아래로 훑어본 황천패가 한 마디 툭 내뱉는다.
“수고했다.”
이어서 황천패가 어깨 위로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뒤에 서 있던 정요가 새롭게 제작한 육병백궤를 내려두었다.
백궤를 바라보는 운화결의 눈빛이 가늘어진다.
“이건…….”
히죽 웃은 황천패가 그대로 돌아섰다.
“선물이다.”
운화결의 눈동자에 번쩍이는 빛이 스치듯 사라진다.
백병흑궤를 주었다는 것은 자신이 이들의 믿음을 회복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기 때문이다.
운화결의 머리가 앞으로의 행보를 그리고 있을 때, 밖으로 나와 언덕을 내려간 황천패의 눈앞에 노을을 등진 성유기가 보인다.
“검존.”
돌아선 성유기가 담담하게 답했다.
“말씀하시오.”
성유기는 가벼운 예조차 갖추지 않았으나 황천패는 별로 개의치 않는 얼굴이다.
“신룡과 한판 붙었다면서.”
“그렇소.”
“어땠어.”
성유기는 옷섶을 풀어 시꺼멓게 죽은 갈빗대를 보여주었다.
“강하오.”
“나랑 비교하면?”
“아마도 천주에겐 미치지 못할 것이오.”
성유기의 상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황천패는 피식 웃으며 발을 돌렸다.
“가서 쉬어. 곧 떠날 거니까.”
당명이 독왕을 죽이고 돌아왔으며 운화결 등은 무당산을 불태우고 왔다.
동시에 두 개의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왔으니 근거지를 옮길 때가 된 것이다.
저녁 식사를 마친 무인들이 새로운 근거지로 떠나기 위해 바쁘게 흔적을 지우기 시작한다.
거처로 삼았던 초옥은 하나씩 해체해 땅에 묻거나 태우기 시작했고 말뚝을 박아넣은 자리는 새로운 흙으로 빠르게 채워졌다.
언덕 위의 바위에 앉은 양무화가 나른한 눈빛으로 턱을 괸 채 부하들을 구경한다.
“단주.”
오른쪽으로 고개 돌리니 히죽거리며 웃는 당명이 보였다.
“이제 다 나았어?”
“그럼요. 킥킥킥.”
부친과의 전투에서 상처로 스며든 독 때문에 며칠간 고생했던 당명이다.
핼쑥했던 얼굴이 본래의 빛으로 돌아온 걸 보니 이젠 살 만한 모양이었다.
양무화가 궁금한 듯 물었다.
“아비를 죽일 때의 마음은 어때?”
“엄청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별거 없었습니다. 너무 심심하던데요.”
“너는 진짜 미친놈이다.”
“미치지 않고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겠습니까? 킥킥킥!”
한참을 웃던 당명이 웃음을 그치자 양무화의 눈동자가 다른 사람처럼 차가워졌다.
“동생은 왜 살려뒀지? 분명 할 거면 모조리 죽이라고 했을 텐데.”
“쉽게 죽이면 재미없으니까요.”
당명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양무화가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한다.
마치 고민에 잠긴 듯.
어색한 긴장감 속에 반복되던 행동이 멈출 무렵, 황천패의 수신호위 환염이 달려왔다.
“단주. 주군께서 찾으십니다.”
주먹을 슥 매만진 양무화가 싱긋 웃으며 당명을 쳐다본다.
“봐주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음부턴 지시를 어기지 마라.”
“…….”
환염을 따르는 양무화의 신형이 점점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다.
그가 사라진 자리를 응시하던 당명은 어느새 자신의 등이 흠뻑 젖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 짧은 시간 양무화의 기백에 압도된 것이다.
당명의 표정이 구겨진 자존심과 함께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다.
“네놈도 언젠가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다.”
* * *
모든 사람이 성대하게 열릴 것이라 예상했던 무림맹의 개맹식은 생각 외로 간단하게 끝났다.
사천의 사절단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뿐더러 복잡한 걸 싫어하는 단소룡의 성격 탓에 약소하게 형식만 갖추고 넘어간 것이다.
화윤은 수문화와 상의했던 조직도를 벽보로 걸어두고 빠르게 조직 개편에 들어갔다.
맹주 단소룡의 밑에 각 지역의 대표들을 대사주(大四州)에 임명, 맹주를 보좌하는 위치에 두었다.
진무립은 본인의 뜻대로 독자적인 판단하에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태종무단의 단주가 되었다.
무인의 선별부터 출정과 회군의 모든 권한을 단주가 갖는, 사실상 맹의 지시를 받지 않는 독자적인 집단이 된 것이다.
그간 제갈문이 이끌어온 비각은 그에게 그대로 맡긴 채 화윤과 수문화는 군사부를 창설해 무림맹의 군사와 부군사에 취임했다.
맹주가 머무는 무운전의 이 층에 마련된 군사부의 회의실.
화윤과 마주 앉은 수문화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늦는군요.”
“사천 말입니까?”
“예. 당천의 말에 따르면 올 때가 이미 지나지 않았습니까?”
“음.”
화윤의 나직한 침음이 끝나기 무섭게 비각주 제갈문이 문을 열고 뛰쳐 들어왔다.
“군사.”
언제나 냉정 침착한 제갈문의 표정이 그답지 않게 다급하다.
“무슨 일인가?”
“사천에서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공위맹의 사신인가?”
“그게 아닙니다.”
제갈문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독왕께서 실종되셨다고 합니다.”
순간 화윤과 수문화의 눈빛이 허공에서 교차한다.
수문화가 미간을 좁힌 채 나직이 읊조렸다.
“……이런 이유였나.”
형용할 수 없이 무거운 정적 속에, 활짝 열린 창문으로 음습한 공기가 스며든다.
무당산에 이어 당가의 사신단까지.
오랜 세월 숨어있던 복령천이 서서히 마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