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67)
◈ 267화. 격동하는 무림
밤을 새워 달린 장평문의 무인들은 새벽이 밝을 무렵 마침내 사투의 현장에 도착했다.
관도에서 살짝 벗어난 숲속.
작은 공터에는 완전히 타버린 세 대의 마차가 잿더미로 남겨져 있었고 곳곳에 널브러진 무기와 검은 핏자국이 가득했다.
‘아아…….’
장평문주 안여문이 탄식을 삼키는 가운데 무연대주 서중이 말했다.
“시신을 태우고 흔적을 지운 듯합니다.”
주변을 돌아보던 안여문이 미세하게 패인 나무의 검흔을 발견했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고개를 저었다.
“흔적을 지운 게 아닐세.”
“예?”
안여문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뭔가를 감추고자 애쓴 전장이 아니야.”
“그렇다면…….”
안여문은 초조한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흔적조차 남기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당한 게야.’
타버린 마차로 걸어간 안여문은 검집으로 무너진 마차 지붕을 들췄다.
그러나 그 안에서 타다 만 채 눈을 부릅뜬 무인의 눈동자가 보인다.
안여문은 치미는 구역질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역시.’
당가 무인들을 급습한 자들에게 여유가 없었을 리 없다.
시신을 완벽히 소거하지 않고 남겨뒀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굳이 감출 필요가 없다.
그 말은 이제 곧 자신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경고와도 같았다.
혈교와의 전쟁 때와는 느껴지는 압박감이 다르다.
“후우…….”
나직이 숨을 내쉰 안여문이 부하들에게 말했다.
“여기서 본 것은 공위맹주께 보고하기 전까진 함구하도록 하세나.”
“예.”
“마을에 가서 관을 준비해오게. 비가 내리기 전까지는 현장을 보존한 채 공위맹 무인들을 기다리고, 비가 온다면 먼저 시신을 수습할 것이네.”
“알겠습니다.”
포권을 취한 무인들이 일사불란 움직였다.
안여문은 고개를 들었다.
맑게 갠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으나 그의 마음엔 여느 때보다 어두운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었다.
* * *
장평문에서 전해진 비보에 공위맹주 초평천은 즉각 무인들을 파견했다.
원방대주 당소소와 백여 명의 무인들이 맹을 떠난 가운데 초평천의 처소에 일부 수뇌들이 모였다.
금정무문주 신환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그에 북천도문주 이정명이 답했다.
“그런 듯하오. 만일 당가주께서 정말 당하셨다면…….”
초평천은 가볍게 탁자를 두드려 무거운 공기를 환기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소. 원방대를 보냈으니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무인들이 동요하지 않게 수습해주길 바라오.”
정신을 차린 수뇌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맹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우리가 흔들려선 안 되겠지요.”
“지금이라도 속히 입단속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들이 집무실을 우르르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초평천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쉽지 않구나.’
차라리 죽은 게 자신이었다면 이토록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믿고 보낸 당조에게서 비보가 전해졌으니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이대로 상대가 각개격파를 시도한다면 사천 무림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문득 진무립과 적모개의 빈자리가 아쉽게 느껴진다.
두 사람이 떠난 공위맹은 내부적인 안정을 이룬 상태였으나 계책을 짜내고 진언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
초평천은 나직한 한숨에 혼란한 마음을 실어 보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공위맹의 수장은 절대 흔들리거나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되는 자리다.
초평천이 속으로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밖에서 위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맹주님.”
“무슨 일인가?”
“흑사칠랑의 지랑이 맹주님을 뵙길 청합니다.”
순간 초평천의 눈이 부릅떠졌다.
“지랑 현진학이란 말인가?”
“예.”
천하대전 당시 권성 대연무를 함정에 빠뜨려 죽이고 강동을 위기에서 구해낸 지재.
상천의 부탁으로 중경에 있어야 할 그가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어서 안으로 모시거라.”
잠시 후, 문이 열리며 부채를 살랑이는 이지적인 외모의 중년인이 나타났다.
“처음 뵙겠습니다.”
착.
손바닥으로 부채를 접은 현진학이 포권을 취했다.
“현진학입니다.”
“초평천이오. 앉으시구려.”
자리를 권한 초평천이 손수 차를 우려 그의 앞에 내려두었다.
“마도림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들었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진무립과는 정말 자주 얽히는 것 같았다.
현진학이 다시 말을 덧붙였다.
“림주님과 마도림의 수비 문제로 의견을 나누다 맹주님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말씀하시오.”
현진학은 곧장 본론을 꺼냈다.
“마도림을 비롯해 중경 방파들의 식솔을 모두 내보낼 생각입니다.”
초평천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내보내다니?”
“물론 그들을 버린다는 게 아닙니다. 단지 복령천과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한시적으로 내보낼 생각입니다. 허나 중경만 이와 같은 대처를 한다면 자칫 사천 무림의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하여 맹주님의 의견을 듣고자 온 것입니다.”
잠시 생각하던 초평천이 귀를 기울였다.
“자세히 설명해보시오.”
“대검문을 흡수한 마도림은 무인의 숫자만 이천이 넘습니다. 거기에 식솔들을 더하면 오천이 넘는 엄청난 숫자가 되지요.”
“음. 그렇겠지.”
“만일 적의 실체가 명확하다. 그렇다면 선제공격으로 식솔을 지킬 필요가 없는 싸움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이쪽은 불리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진학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적이 관의 개입을 원치 않는다면 양민을 공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여 중경 방파들의 식솔에게 당분간 생활할 자금을 주어 양민 틈에 섞여들게 할 생각입니다.”
이런 과감한 계책은 누구나 실행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사천 무림은 다른 곳과 달리 폐쇄성이 짙다.
그뿐 아니라 사천 사람도 그렇다.
물건을 팔 때 값을 조금 덜 쳐주더라도 외지인보단 내지인부터 우선하는 게 이들이다.
오랜 세월 이곳에 터를 잡고 양민과 교류하며 함께 살아온 이들이기에, 사천 무림이기에 가능한 계책이다.
순간 초평천은 머리에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아아!”
확실히 현진학의 말대로 실행한다면 불리한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것은 사천의 다른 방파들에게도 통용되는 말이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식솔들에게 돈을 주어 내보낸 뒤 남은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적습에 대비한다.
사천의 방파들을 설득하고 자금만 확보한다면 자신의 고민거리가 깔끔하게 해결된다.
‘역시 지랑 현진학이다.’
낭인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가 유명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현진학이 이어서 말할 때였다.
“하여 맹주께서 오해가 없도록…….”
대뜸 자리에서 일어난 초평천이 더없이 공손하게 포권을 취했다.
“현공.”
놀란 현진학이 엉거주춤 일어난다.
“왜 이러십니까?”
고개 숙인 초평천이 간곡히 청했다.
“우릴 도와주시구려.”
현진학의 지혜.
그것은 지금의 사천 무림에 가장 절실한 것이었다.
* * *
사천 무림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중원 무림은 새로운 손님맞이 준비로 한창이었다.
정문부터 새로운 맹주의 집무실이 될 무운전까지.
거리가 깨끗하게 치워지는 가운데 무인들이 분주하게 집기를 옮기고 있었다.
중천대주 선우빈이 궤짝을 들고 가다 돌부리에 걸린 부하를 부축했다.
“조심하거라.”
“감사합니다.”
중심을 잡고 다시 발을 움직이던 부하가 멈칫하며 돌아선다.
“대주.”
“무엇인가?”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궤짝을 내려두며 말했다.
“굳이 신룡 대협을 천하를 아우를 무림맹의 맹주로 초빙하는 게 이해되질 않습니다.”
선우빈이 물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였는가?”
“광룡 대협께서는 홀로 천여 명이 넘는 적을 도륙하고 저희들을 구해주셨습니다. 그분의 무공과 지략은 감히 천하에 따를 자가 없을 겁니다.”
다른 부하도 발을 멈추며 그에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광룡 대협이라면 믿고 목숨을 맡길 만합니다. 비록 신룡 대협께서 천하를 구한 영웅이라곤 하나 그것도 벌써 수십 년 전의 이야기지요. 지금은 세상이 변했습니다. 우린 광룡의 천하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들의 광룡에 대한 마음은 마치 신을 숭배하는 것처럼 성스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죽음의 위기에서, 누구도 승리를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을 구해내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마침 근처를 지나가다 이야기를 들은 개방의 방주 철표개가 속으로 혀를 찼다.
‘젊은 녀석들의 혈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구나.’
문득 옛날 생각이 나며 웃음이 나온다.
저들이 나쁜 것이 아니다.
자신을 비롯해 천하대전을 경험한 이들은 신룡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다음 세대인 이들에겐 과거의 신룡보다 현재의 광룡이 더욱 위대한 존재였다.
철표개가 한마디 하고자 발을 내디딜 때였다.
그들의 뒤에서 비각주 제갈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들은 광룡 대협에게 모든 짐을 지울 생각입니까?”
깜짝 놀란 무인들이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디까지나 광룡 대협을 믿고 함께 싸우고자 할 뿐입니다.”
제갈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 역시 그대들과 같은 생각입니다. 광룡 대협은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무인이지요.”
뒷짐을 진 제갈문의 시선이 맑은 하늘에 닿았다.
“그러나 적은 강합니다. 모든 것을 그분께만 맡기고 의지해선 안 됩니다. 그분께서 짊어진 부담감을 조금이라도 나눠 가질 사람이 있다면, 천하를 구한 신룡 대협만큼 적절한 인물은 없습니다. 화령의 가세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일입니다.”
잠시 생각하던 무인들이 하나둘 고개를 숙였다.
“저희들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신룡 대협을 맹주로 추대한 건 광룡 대협이시지요. 잠시나마 불경한 마음을 품은 걸 용서하십시오.”
제갈문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용서는 제게 구할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발언을 후회한다면, 누구보다 맹주님의 명을 충실히 이행하십시오. 그거면 됩니다.”
“물론입니다.”
대화가 일단락되자 선우빈이 손뼉을 치며 시선을 끌어모았다.
“이야기가 끝났으면 서둘러 짐을 옮기거라. 곧 그분들께서 도착하실 거다.”
“예!”
무인들이 내려둔 짐을 들고 다시 움직이자 선우빈은 제갈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언변은 아직 죽지 않았구나.”
제갈문이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한 번의 실수에 좌절할 만큼 저는 약하지 않습니다.”
비각주의 자리에 있음에도 오대표국의 암수를 먼저 파악하지 못하고 맹의 위기를 자초했다.
그러나 제갈문은 실수에 굴복하지 않았다.
맹의 분열과 전투가 벌어진 과정을 수도 없이 곱씹었다.
그 과정에서 진무립의 행동을 분석하고 연구해온 것은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기 위함이다.
제갈문이 말했다.
“그분들이 곧 도착한다는 정보원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서두르지요.”
“그러지.”
멀어지는 두 사람을 말없이 지켜보던 철표개가 흐뭇한 얼굴로 돌아섰다.
‘그래. 그거면 되었다.’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뒷 물결이 저런 물결이라면 얼마든지 자릴 내어주고 밀려나도 괜찮을 것이다.
이번 전쟁의 완벽한 승리에 일조한 뒤에 말이다.
“그나저나 참으로 오랜만이로구나.”
단소룡과의 만남이 가까워지자 자신답지 않게 가슴이 뛰며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마중이라도 나가볼까.”
히죽 웃은 철표개가 정문을 향해 발을 내디딜 때였다.
정문 밖에서 우렁찬 외침이 솟구쳤다.
“상천의 천주 광룡 대협과 화령의 영주 신룡 대협께서 도착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