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66)
◈ 266화. 당우
저녁 무렵이 되자 조용하던 객잔에 활기가 감돈다.
일을 마친 사람들이 객잔을 가득 채운 것이다.
창가에 앉은 사내들이 거나하게 술을 들이켜며 대화를 나눈다.
“대체 광룡이 뭐 하러 화령도에 간 건가?”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대화의 주제는 북광남신이었다.
수문화의 말처럼, 당금 천하의 가장 큰 화젯거리는 단연 북광남신의 비무 소식이다.
남궁설의 입에서 시작된 이 소문은 장강을 넘어 천하로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취기 오른 더벅머리 사내가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말했다.
“무림맹을 만들겠다는군. 화령을 설득하기 위해 강남에 간 모양이야.”
“아아! 그 팔황문의 후신인가 하는 자들 때문이지?”
“그렇지. 화령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한판 붙은 모양이야. 세간에서 북광남신이라며 하도 떠들어대니 두 사람도 궁금하긴 했던 모양이지.”
“정말 둘이 동수를 이뤘을까?”
더벅머리 사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비무를 직접 보고 온 남궁소저의 말이니 굳이 다른 생각하지 않고 믿어도 되지 않겠나? 남궁세가야 오래전부터 화령의 든든한 동맹이 아니던가.”
마주 앉은 사내가 탁주 한 사발을 들이켜고 말했다.
“그 남궁세가에서 동수를 이뤘다고 말한 거면 믿어도 되겠지. 그곳에서 굳이 신룡을 깎아내리고 광룡을 추켜올릴 이유가 없질 않은가? 화령에서도 굳이 부정하지 않고 말일세.”
“소문이 사실이라면…… 광룡은 정말 굉장한 무인이로구만.”
북광남신이라며 떠들 때만 해도 화령과 가까운 강남에선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소문을 일축하곤 했었다.
그런데 진무립이 강남에 다녀온 이후로 강남 무림의 시선까지 완전히 달라졌다.
무림맹을 창설하기 위한 진무립의 강남행은 성공적이었다.
그때 밭에 다녀온 인부들이 객잔에 들어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리가 없군.”
“이 층으로 가세.”
“그래야겠어.”
그들이 계단으로 발을 옮길 때였다.
부엌에서 점소이가 후다닥 달려 나오더니 사내들의 앞을 막았다.
“자, 잠시만요!”
“뭐야?”
어린 점소이가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이 층은 안 됩니다. 귀한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계시거든요.”
사내들이 의외라는 듯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귀한 손님? 누구냐?”
이런 작은 마을에 객잔 한 층을 통으로 빌릴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위를 힐끔 쳐다본 점소이가 눈을 멀뚱히 뜨며 말했다.
“그건 모르겠는데요.”
“…….”
“어쨌든 돈을 많이 냈어요.”
이제 막 객잔에 도착한 사내들이 아쉬운 걸음을 돌리며 활짝 열린 이 층 창문을 쳐다봤다.
“대체 누구지?”
아래에선 아무리 쳐다봐도 누가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큰 키의 사내가 삽을 걸머지며 말했다.
“그냥 우리 집으로 가서 한잔하세나.”
사내들이 거리에서 사라질 무렵, 이 층에선 진무립 일행이 술자리를 벌이고 있었다.
진무립과 수문화가 좌측의 창가 자리에, 단소룡과 화윤이 그 옆의 탁자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늦은 봄날의 저녁.
따스한 훈풍이 살랑이는 가운데 활짝 열린 창문으로 일 층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들려온다.
진무립과 마주 앉은 수문화가 뒤를 힐끔 쳐다보며 웃었다.
“말이 적어졌습니다. 주군.”
“술이나 마셔라.”
상대가 단순히 화령의 영주였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단려화의 부친이라는 사실은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때 건너편에 앉은 화윤이 수문화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총사.”
“예.”
화윤은 글자로 가득한 종이를 허공에 띄웠다.
그의 손을 떠난 종이가 둥실거리며 날아오더니 수문화의 손에 안착한다.
“이게 뭡니까?”
“내가 생각한 무림맹의 조직도요. 검토해보고 의견이 있으면 주시오.”
“아아.”
종이에는 맹주가 될 단소룡을 필두로 중원과 산동, 사천과 강남의 대표들이 한 자리씩을 차지했으며 그 아래 세부적인 조직도가 쓰여 있었다.
‘그사이 이런 것을…….’
자신이 염두에 두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조직도는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것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수문화가 종이를 내밀자 진무립은 손을 내저었다.
“당분간 맹에서 상천의 대표는 너다.”
지금은 온전히 복령천과의 싸움에 모든 신경을 쏟아붓고 싶었다.
그 의도를 눈치챈 수문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때 계단으로 면사를 쓴 단려화가 올라왔다.
“장문인께서는 벽곡단으로 해결하신다고…… 앗!”
절반쯤 비어버린 탁자를 본 그녀가 새초롬하게 인상을 썼다.
“나만 빼고 벌써 시작한 거예요?”
“하하하! 음식이야 다시 시키면 될 일이니 어서 앉거라.”
단소룡이 껄껄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두 자리를 힐끔 쳐다본 단려화가 인상을 구겼다.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따로 앉아있어요?”
그녀는 단소룡의 탁자를 번쩍 들어 진무립의 탁자 옆에 붙였다.
“다들 이리 모여요.”
단소룡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저놈이…….”
진무립의 탁자가 아닌 자신의 탁자를 들어 옮겼으니 속이 쓰린 것이다.
진무립이 보란 듯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리 오시지요.”
화윤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두 사람이 자리를 옮긴 가운데 잠시 멈췄던 식사가 이어졌다.
비워진 잔이 채워지는 사이 화윤이 단소룡에게 물었다.
“어땠어?”
“그놈들?”
“그래.”
화윤은 지금 설지량이 남긴 정보의 진위를 파악하고자 날마다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단소룡이 말했다.
“고작 삼십 년이다. 그런 자들을 많이 키워내지는 못했을 거다.”
무인을 활자처럼 마구 찍어낼 수 있다면 세상에 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단소룡이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강자들이라는 건 사실이다. 고수를 모아 일시에 처리하지 못하면 분명 까다로운 일이 생길 거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모일 시기와 장소를 파악한 뒤 한 번에 덮치는 것이다.
그래서 진무립과 화윤이 선택한 것은 소화산의 급습이다.
진무립이 말했다.
“황천패의 곁에도 분명 머리 쓰는 자가 있을 겁니다.”
단소룡이 술잔을 쥐며 답했다.
“그렇겠지. 회천이라는 게 결코 한두 놈이 계획해서 이뤄질 게 아니니까.”
수문화가 이어서 말했다.
“이번 일로 운화결에 대한 의구심이 조금은 옅어졌을 겁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화윤이 들이켠 잔을 탁자에 내려두며 웃었다.
“그렇지.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이번에야말로 놈들을 완벽하게 세상에서 뿌리 뽑아야지.”
담담한 그의 혼잣말에 이어 네 사람이 결연한 눈빛을 교환한다.
그 사이에 낀 단려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쟁도 먹어야 할 거 아니에요. 오늘은 제발 일 이야기는 그만하고 마시자구요.”
* * *
사천성 북부에 위치한 평무현.
여느 마을과 다를 바 없이 한적한 시간을 보내던 평무현에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중원으로 가던 당가의 가주가 적의 기습을 받고 실종됐다.
그와 더불어 유일하게 살아남은 삼공자 당우가 백치가 되어 장평문(長平門)에 머물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소문이 빠르게 퍼지는 가운데 장평문의 내원에 문의 수뇌들이 모였다.
왜소한 체구에 날카로운 얼굴선이 인상적인 중년인, 장평문주 안여문이 입을 열었다.
“당공자의 상태는 어떠한가?”
총관 부천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눈빛이 죽어있습니다. 시비를 붙여 억지로 죽을 먹이곤 있으나…….”
“여전히 말문을 열지 않더냐?”
“예.”
그들의 대화에 이어 나직한 한숨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안여문이 아들 안상을 쳐다보며 말했다.
“연통은 넣었느냐?”
소문주 안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위맹과 당가, 그리고 소가주가 머무는 개봉에 각기 사람을 보냈습니다. 가까운 공위맹과 당가는 곧 도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 밖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누군가 문 앞에 멈춰섰다.
“문주님. 속하 서중입니다.”
“어서 들어오시게.”
문을 열고 들어온 무연대주 서중이 예를 갖췄다.
“찾았습니다.”
그 말에 모두의 눈이 부릅떠졌다.
“정말인가!”
서중은 무연대를 이끌고 당조 일행이 지나간 길을 수색 중에 있었다.
“예. 그런데 전투의 흔적과 마차와 시신을 태운 흔적만 있을 뿐, 생존자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안여문이 다그치듯 물었다.
“독왕께서 정말 당하셨단 말이냐?”
서중은 타버린 마차에서 발견한 당가주의 신패를 꺼냈다.
“……아무래도 그런 듯합니다.”
곳곳에서 절망스러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아!”
“정녕 당가주께서…….”
소문주 안상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단지 사람을 보내서 될 일이 아닌 듯합니다. 소자가 공위맹주께 직접 다녀올 터이니 아버지께서 현장을 다시 살펴 봐주십시오.”
“그리하는 게 좋겠구나.”
안여문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연대주는 나를 그곳으로 안내해주게.”
밖을 슬쩍 쳐다본 서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현장까지는 족히 하루는 걸립니다. 곧 날이 저물 텐데 내일 가심이 어떻겠습니까?”
안여문은 고개를 저었다.
“곧 장마가 시작될 것이네. 흔적이 더 지워지기 전에 내 눈으로 봐두어야겠어.”
그의 단호한 태도에 서중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채비하겠습니다.”
서중이 나가자 안여문이 총관 부천에게 지시했다.
“속히 다녀오겠네. 경계를 두 배로 늘리고 마을에 수상한 자가 나타날 경우 즉시 대응할 수 있게 준비해주게.”
“맡겨주십시오.”
수뇌들이 일사불란 움직이는 가운데, 처소로 돌아온 안여문이 가벼운 행장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건 절대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야. 반드시 흉수의 흔적을 찾아내야 한다.’
안여문의 머리가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만일 당조가 당했다면, 사천 무림에서 흉수를 상대할 만한 이는 공위맹주 초평천밖에 없었다.
그러나 초평천은 함부로 자리를 비울 수 없다.
‘이럴 때 그분께서 계셨더라면…….’
문득 사천 무림을 혈교의 침공에서 구한 진무립이 그리워진다.
수천 명의 적을 눈앞에 두고도 당당함을 잃지 않던 진무립은 사천 무림의 전설이자 자랑이었다.
안여문은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지웠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문주 안여문과 무연대가 장평문을 떠날 무렵.
공위맹으로 떠날 채비를 마친 소문주 안상이 내원의 별채를 찾았다.
“소문주를 뵙습니다.”
거구의 위사가 예를 갖추자 안상이 물었다.
“삼공자께서는?”
“조금 전 식사를 마치고 누워계십니다.”
“잠시 만나 뵙고 오겠네.”
문을 열자 퀴퀴한 탕약 냄새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러나 그보다 가슴 아픈 것은 벽에 기대앉은 당우의 공허한 눈빛이었다.
마치 세상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당우는 정신을 차린 순간부터 오늘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같은 눈빛으로 벽만 쳐다보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안상이 조심스럽게 당우의 곁으로 다가갔다.
“삼공자.”
“…….”
언제나처럼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그 활발하던 사람이.’
과거 사천맹에 있던 시절, 당우와 함께 진무립의 광무대에 속해 함께 임무를 했던 경험이 있었다.
좋지 않은 소문이 많았기에 처음엔 경계를 한 것도 사실이었으나 자신이 겪어본 당우는 소문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대체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예전의 당우를 기억하는 안상은 쓰린 속을 달래며 애써 웃었다.
“사람을 보냈으니 곧 당가의 사람들이 본 문을 방문할 겁니다. 저도 직접 공위맹주께 다녀올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반드시 가주님을 찾아오겠습니다.”
“…….”
당우의 어깨를 살포시 다독인 안상이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 있으면 속히 총관을 찾게. 신경 써서 각별히 살펴줬으면 하네.”
위사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
“맡겨주십시오.”
“부탁하네.”
별채를 나선 안상이 자신의 호위들과 함께 말에 올랐다.
“출발하세.”
“예!”
짧고 절도 있는 외침과 함께 다섯 필의 말이 장평문의 정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