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311)
◈ 311화. 경천동지
늘어지는 오후의 햇살을 등지고 나타난 인물은 바로 신룡 단소룡이었다.
지원부대의 통솔을 수문화에게 맡긴 그가 먼저 달려온 것이다.
단소룡이 장천무를 보며 말했다.
“오랜만이구나.”
단 한 번, 아주 잠깐 강변에서 마주쳤을 뿐이지만 단소룡의 예리한 육감은 대번에 장천무를 알아보았다.
“기억해주시니 영광이로군.”
“그때 했던 말. 이제는 지킬 수 있을 것 같으냐?”
「다음에는 다를 것이오.」
그날 장천무가 남기고 떠난 말이다.
장천무는 당연하다는 듯 기세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천산에서 나오지도 않았을 테지.”
쿠우우우…….
부풀어 오른 장포가 터질 듯이 펄럭이는 가운데 황천패가 광소를 터트렸다.
“주인공이 전부 모였는가! 크하하하!”
천하의 주인을 판가름내는 전투에 이보다 어울리는 등장은 없을 것이다.
주변을 훑어본 단소룡이 마른 나뭇가지를 꺾어 입술에 물었다.
“내가 좀 늦었군.”
위사영을 부축한 제갈경이 안도의 숨을 내쉰다.
“늦지 않으셨습니다.”
단소룡이 위사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은가?”
위사영은 쓴웃음을 감추었다.
자신이 던진 승부수가 실패한 탓에 하마터면 일을 그르칠 뻔했기 때문이다.
“……견딜 만하네.”
장천무의 패도적인 공격에 크게 내상을 입긴 했으나 생명이 위협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단소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다행이군. 물러나게.”
걸어나가는 그의 귓속으로 진무립의 전음이 스며든다.
[지원군과 함께 왔을 리는 없고 그들이 도착하려면 며칠이나 더 걸리겠습니까?] [이틀은 걸릴 거다.]진무립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예상과 다르지 않군.’
마인들의 공세에 맞서 이틀은 더 버텨야 한다.
그러나 태종무단을 막무가내로 사지에 던져 넣은 것은 아니다.
‘늦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진무립은 검파를 쥔 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오늘 여기서 모든 것을 끝내야 합니다.”
“당연히 그럴 생각으로 왔다.”
천하대전에서 팔황문을 완전히 끝내지 못한 탓에 결국 오늘의 전쟁이 벌어지고 말았다.
단소룡은 오늘 이 자리에서 어긋난 것을 바로잡을 생각이었다.[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갈경이 위사영을 부축해 전장 밖으로 물러나자 장천무와 단소룡, 황천패와 진무립의 대치가 시작됐다.
시간의 감각마저 무뎌질 정도로 치열하게 이어진 소화산의 전투도 어느덧 두 시진.
기울어가는 태양을 힐끔 쳐다본 단소룡이 진무립에게 물었다.
“자신 있는가?”
황천패가 풍기는 기세는 과거 자신이 상대했던 팔황문주 황운천보다 우위에 있다.
진무립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는 승산 없는 싸움에 나서지 않습니다.”
“마음에 드는군. 좋은 배짱이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황천패가 히죽 웃으며 장천무를 불렀다.
“어이. 누굴 맡을 거야.”
“당연히 신룡이다.”
“지면 천하는 내 거야.”
“재미없는 농담은 집어치워라.”
피식 웃은 황천패가 가슴을 활짝 펴고 앞으로 나선다.
“시작하지.”
겨울의 칼바람이 불어오는 천경봉의 정상.
각자의 상대를 눈에 담은 네 사람이 약속한 것처럼 동시에 지면을 박찼다.
쐐애액!
강풍을 뚫고 상대에게 먼저 도달한 이는 진무립이었다.
황천패는 히죽 웃으며 검신을 휘둘렀다.
호선을 그리는 진무립의 검극이 그의 검면에 부딪쳤고.
카아앙!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둘 사이에 시뻘건 불꽃이 피어오른다.
쉬익!
진무립의 동공에 떠오른 작은 점이 순식간에 확장되며 빨려든다.
고개를 비튼 진무립은 관선참(貫旋慘)의 초식으로 응수했다.
슈아악!
가슴을 찔러가던 검이 호선으로 휘어지며 황천패의 하체를 노려간다.
‘후후후. 관선참인가.’
부친을 상대할 때 지겹게 겪어본 초식이다.
조소를 삼킨 황천패의 발이 살짝 들리더니 검신을 향해 태산처럼 뚝 떨어진다.
상대의 강력한 힘과 덩치에 걸맞지 않게 가공할 속도는 충분히 알고 있다.
‘황천패.’
진무립은 버티지 않고 검을 놓았다.
콰아앙!
육중한 굉음과 함께 흑검이 땅에 파묻혔고 그사이 진무립의 우권은 황천패의 옆구리를 노려가고 있었다.
슈우욱!
“좋다.”
비릿한 미소를 지은 황천패의 검신이 사선으로 떨어진다.
그 찰나의 순간,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충돌한다.
‘어디 배짱 한번 보자꾸나. 애송이.’
이대로 주먹을 내지르면 황천패의 검신이 어깨로 떨어진다.
상대는 일부러 방어를 도외시한 채 싸움을 걸어오고 있었다.
진무립의 입꼬리가 길쭉하게 말려 올라간다.
‘못 할 것 같으냐?’
쌔애액!
두 눈을 부릅뜬 진무립의 주먹이 그대로 황천패의 옆구리에 직격했고.쾅!
동시에 뚝 떨어진 황천패의 검신이 진무립의 어깨에 내리꽂혔다.
콰앙!
화살처럼 튕겨 나간 두 사람이 바닥을 구르며 벌떡 일어난다.
뜯겨나간 상의 사이로 진무립의 어깨에 시뻘건 혈선이 새겨졌고, 바스라진 황천패의 옷 사이로 검붉게 멍든 옆구리가 드러났다.
상대의 공격이 닿기 직전 두 사람은 절묘한 내력 배분으로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해낸 것이다.
목을 좌우로 두두둑 꺾은 황천패가 기세를 끌어올리며 발을 내디딘다.
“생각보다 거칠어.”
깔끔하고 수려한 용모와 달리 진무립의 싸움엔 정해진 틀이 없었다.
“나를 아직 잘 모르나 본데.”
진무립의 두 눈이 부릅떠지며 입가에 광기 어린 미소가 떠오른다.
“나보다 더 미칠 수 있는 놈은 많지 않을 거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두 사람의 신형이 동시에 사라졌고.
타탓!
순식간에 정면에서 마주친 두 사람은 동시에 검과 주먹을 내질렀다.
슈우우우!
파공성 대신 바람의 울부짖음이 강렬한 떨림을 자아낸다.
쿠콰콰콰콰!
허공에서 부서지는 검영과 권영의 기파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희뿌연 빛무리가 터져 나온다.
순식간에 십여 초식을 교환한 뒤, 진무립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검수에겐 검의 길이에 따라 자신만의 간격이 있다.
그리고 황천패는 그 간격을 절묘하게 유지하는 감각이 있었다.
‘놈이 자신의 간격을 유지하게 두면 위험하다.’
조금 전엔 굽히고 들어가기 싫어 일격을 주고받았으나 자신의 타격이 더 크다.
만일 황천패가 진심으로 육신을 보호할 내력까지 검에 쏟아부었다면 위험했을 뻔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힘과 속도를 가진 황천패는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슈아아악!
스치기만 해도 목숨이 위태로운 가공할 공격이 연이어 쏟아지는 가운데 진무립은 결단을 내렸다.
‘붙는다!’
황천패의 검이 진무립의 가슴을 노리고 쏘아졌고, 주먹을 내지르던 진무립은 장심으로 벼락같이 그의 검면을 후려쳤다.
쩌어엉!
검을 쥔 황천패의 손이 우측으로 미끄러진다.
‘이놈!’
검면을 손으로 밀쳐내는 건 신룡이 자주 쓰는 수법.
복수를 위해 단소룡을 부단히 연구해온 그가 모를 리 없다.
탓!
황천패가 검신을 회수하는 사이 진무립은 그의 육신이 아닌 검신을 향해 벼락같이 몸을 날렸다.
타타탕!
진무립의 장심이 춤추듯 흔들리는 검신을 연달아 후려쳤다.
진무립이 검을 향해 달라붙자 자연히 검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좁혀진다.
간격이 없으니 찌르고 베는 검의 위력을 제대로 살릴 수 없다.
진무립은 화령도의 비무에서 단소룡이 보여준 것들을 고스란히 흡수해 전투에 활용하는 것이다.
쩌어엉!
진무립의 장심이 재차 검신을 후려친다.
황천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천음지체.’
손목을 타고 올라오는 냉기가 보통이 아니다.진무립이 단전 속 내력을 극음의 기운으로 바꿔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발을 내딛는 자리마다 낀 살얼음이 눈부시게 부서져 나간다.
하지만 그 정도로 황천패의 고강한 내력에 타격을 줄 수는 없었다.
‘후후후. 어디까지 따라올 수 있는지 보마.’
황천패가 검신을 들어 올리자 진무립의 장심이 따라붙었고.
쌔애액!
뚝 떨어지는 검신에 한층 더 속도가 붙었다.
진무립은 받아칠 수 없는 궤적으로 떨어지는 공격에 상체를 흔들어 대응했다.
콰직!
검 끝에서 솟아난 날카로운 기운에 땅거죽이 길쭉하게 갈라진다.
그사이 진무립은 손가락을 끌어당겼고.
쉬익!
귀접의 묘리에 바닥에 틀어박혔던 흑검이 빨려 나와 황천패의 배후를 위협한다.
벼락같이 회전한 황천패의 검신이 짓쳐 드는 흑검을 후려친다.
카아앙!
카랑카랑한 쇳소리에 이어 그대로 회전한 검신이 달려드는 진무립을 노려왔다.
탓.
왼발로 전진을 멈춘 진무립의 눈앞으로 투명한 검신이 스쳐 지나갔고.
가공할 기운을 머금은 주먹이 황천패의 왼쪽 옆구리를 노려갔다.
쐐애액!
검을 쥔 황천패의 팔이 굽혀지며 주먹과 팔꿈치가 정면으로 충돌한다.
콰아아앙!
황천패의 신형이 우측으로 튕겨 나가자 진무립은 지체 없이 그를 따라 몸을 날렸다.
쌔애액!
최초의 접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다.
두 사람은 마치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듯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분지를 누비기 시작했다.
쾅! 콰콰쾅!
진퇴를 반복하는 두 사람의 가공할 공방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멀리서 이들의 전투를 지켜보는 또 다른 눈이 있었으니 바로 황궁 흑전원의 원주 국영승이었다.
비록 무림의 일이라곤 하나 무려 수만 명이 한 번에 나서는 전쟁에 관이 감시를 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저놈도 정상은 아니군.’
진무립을 보는 솔직한 감상이었다.
검사의 간격을 빼앗는 것은 상대하는 모두가 바라는 것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것도 저 정도로 가공할 검술을 가진 자가 상대라면 어지간한 배짱 없이는 시도조차 불가능하다.
그런데 진무립은 찰나의 실수에도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
‘과연 북광남신으로 불릴 만한 배짱이다.’
콰콰콰쾅!
국영승의 시선이 폭음이 난무하는 단소룡의 전장으로 옮겨간다.
치열함으로 따지자면 이쪽도 만만치 않다.
한 치의 물러남도 없는 화려한 공방이 펼쳐지는 가운데 부원주 번호기가 국영승에게 다가왔다.
“원주.”
부원주 번호기가 그의 곁에 도착하며 말했다.
“협곡의 상황은 어떻더냐?”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버티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가 너무 많습니다. 지금처럼 계속해서 차륜전을 벌인다면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려울 겁니다.”
마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만이 넘는 숫자로 백여 명을 감당하지 못할 리 없다.
협곡이 뚫리는 건 시간문제다.
‘음.’미간을 좁힌 국영승의 머리가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우리가 아는 광룡이라면 그 정도는 염두에 두고 있을 텐데. 대체 무슨 속셈이지?’
진무립은 아군을 외면하는 자가 아니다.
황천패와 장천무를 잡겠다고 태종무단을 버리는 패로 사용한 건 아닐 터.
‘뭔가 있긴 있을 것이다.’
잠시 후, 그는 결단을 내리고 나직이 명했다.
“까마귀들에게 복면을 씌워라.”
흠칫한 번호기가 전음으로 되묻는다.
[정말 개입할 생각입니까?] [신룡과 광룡의 힘은 분명 위험하지만 그래도 말이 통하는 부류다. 하지만 저놈들은 달라.]무림의 패권을 노리는 자가 그 이상을 노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여기서 협곡이 뚫리고 두 사람을 잃는다면 황실에 어떤 위협이 드리울지 모른다.
훗날의 위험을 감수하느니 지금 나서는 게 낫다는 게 국영승의 판단이었다.
그는 번호기에게 명을 내렸다.
[후방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대기하다 정말 위험할 것 같으면 배후를 교란해라.] [알겠습니다.]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선 번호기가 다시금 고개 돌려 단소룡을 쳐다본다.
‘대목.’
북경의 왈패시절, 자신이 형님으로 모시던 그에게 눈이 가지 않을 리 없다.
비록 지금은 다른 길을 걷고 있으나 그의 승전을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걱정하지 않겠소.’
번호기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지자 국영승은 하늘을 쳐다봤다.
‘곧 밤이 오겠군.’
어느덧 서쪽 하늘에 노을이 걸리기 시작했으나 천경봉의 전투는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소화산의 전장에 밤이 도래했을 때.
불꽃 튀는 전투의 양상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