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59)
◈ 59화. 광룡(狂龍)
강유월의 표정에 다급함이 떠올랐다.
“위험하네!”
비록 처음에 비해 힘이 떨어졌다곤 하나 혈야광인은 일개 후기지수가 단신으로 막아낼 괴물이 아니다.
단려화는 기어코 나서려는 강유월을 번쩍 들어 후방으로 물러났다.
“그에게 맡겨요.”
“놈은 괴물일세. 절대 혼자 상대해선 안 돼.”
“위험하면 저도 함께할 테니까 염려 놓으세요.”
단려화의 흔들림 없는 눈빛에 강유월은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대체 이 아이들은…….’
그때 전방에서 거친 폭음이 터져 나오며 땅거죽이 솟구쳤다.
쾅!
빗나간 광인의 검이 지면에 틀어박히자 진무립은 발로 놈의 검면을 강하게 걷어찼다.
터엉!
제법 힘을 실었건만 검신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진무립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버틴 거야?’
이런 괴물의 일격을 측면에서 막아낸 단려화도 보통은 아니었다.
땅에 박혔던 검극이 솟구치자 진무립은 훌쩍 물러나 지면을 강하게 밟았다.
콰직!
발로 박찬 땅이 움푹 꺼지며 진무립의 신형이 벼락같이 짓쳐 들었다.
시퍼런 예기를 발하는 은광검이 혈야광인의 숨통을 노리고 쏘아진다.
맹렬한 기세로 쏘아진 검극이 석 자 남짓한 거리까지 접근했을 때, 혈야광인의 검신이 은광검을 거칠게 후려쳤다.
쩌엉!
손목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괴력에 진무립의 미간이 좁아졌다.
‘빠르지 않으나 빠르다.’
앞의 생각은 혈야광인의 움직임 자체를 말한 것이고 뒤의 생각은 검의 움직임을 말함이었다.
강유월이 보법으로 전장을 넓게 활용한 까닭이기도 했다.
쳐내진 검신이 흘러가며 진무립의 신형이 팽이처럼 회전했다.
혈야광인의 검극이 허리춤을 노리고 날아든다.
진무립은 물러나지 않았다.
서걱!
녹슨 검이 옷자락을 잘라낼 때 회전한 은광검은 놈의 가슴을 길쭉하게 가르고 지나갔다.
검붉은 핏방울이 허공에 흩어진다.
‘피륙이 단단하긴 하나 이 정도면 못 벨 것도 없지.’
음한지기를 끌어올린 진무립의 검신에 살얼음이 끼기 시작하며 사방으로 혹독한 찬바람이 몰아쳤다.
‘어머니가 쓰던 검이라면 버텨줘라.’
모두가 숨죽인 채 진무립의 움직임만을 눈에 담고 있을 때, 푸르게 빛나는 은광검이 어깨로 찔러오는 일검을 단호하게 쳐냈다.
캉!
검과 검이 부딪치며 깨진 살얼음이 비산한다.
광인의 혈광이 묘하게 일렁였다.
검신을 타고 스며드는 음한지기에 적잖이 놀란 것이다.
진무립은 어째서 이놈이 실패작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본능에 앞서 생각이라는 걸 하고 있다.’
이지를 완전히 상실하지 않은 것이다.
산내촌을 전멸시킨 것처럼 살육의 본능은 남아있었으나 생존에 대한 열망도 공존한다.
만일 진무립이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랫마을 역시 같은 꼴이 되었을 것이다.
검이 바깥쪽으로 흘러가자 한 발 내디딘 광인은 진무립의 목으로 투박한 손을 내뻗었다.
진무립의 좌수가 그것을 올려치는 순간.
쾅!
광인의 사이한 기운과 진무립의 음한지기가 충돌하며 폭음이 터졌다.
진무립의 미간이 좁아졌다.
‘사기로 육신을 보호할 줄도 아는군.’
충격의 여파에 주르륵 밀려난 그들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며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카카카캉!
순식간에 이뤄진 네 번의 연속 공방.
광인의 맹렬한 공격에 진무립도 물러나지 않고 정면에서 맞서기 시작했다.
콰쾅!
광인의 빗나간 검극에 적중한 담장이 흔적도 없이 터져 나간다.
빙글 회전한 진무립은 놈의 손목을 내리쳤다.
광인의 팔이 순식간에 뒤로 빠지자 떨어지던 은광검이 수평으로 궤적을 틀었다.
쌔액!
반걸음 물러난 광인이 다시 돌진하려는 순간, 진무립의 하체가 맹렬히 회전하며 복부를 가격했다.
쾅!
화살처럼 튕겨 나간 광인이 무너진 담장 너머 건물에 처박힌다.
히죽 웃은 진무립은 숨 한 번 쉬지 않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호선을 그리던 검신이 다섯 개의 잔영을 남기며 유성처럼 떨어진다.
광인이 파묻힌 건물 잔해로 경화사검 유섬오식의 초식이 쏟아졌다.
콰콰콰쾅!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사방으로 눈꽃이 휘날린다.
승기를 잡은 진무립은 맹렬한 공세를 퍼부었다.
숨죽인 채 지켜보던 광무대원들은 진무립의 미소에 깃든 광기를 엿보곤 침을 꿀꺽 삼켰다.
‘대체 누가 괴물이냐?’
연무장에서 보여준 무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서른 명의 흑의인들을 도살한 괴물, 그런 놈을 압도하는 진무립의 모습은 경악 그 자체였다.
조영성은 등줄기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광룡(狂龍)도 용은 용인가. 내가 이런 인간에게 대들었다니…….’
참으로 적절한 별호다.
콰콰쾅!
진무립의 맹공격에 건물이 폭삭 무너지는 순간, 흙먼지를 뚫고 뛰쳐나온 광인이 마치 도망치듯 등을 돌렸다.
강유월의 눈이 부릅떠졌다.
‘실혼인이 도망을 친다는 말인가?’
중독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진 강유월은 알 수 없었다.
광인의 본능이 광기를 드러낸 진무립과 싸우길 거부한다는 것을.
순간 눈앞이 흐려지며 강유월의 세상이 기울어간다.
진무립의 걱정에 독을 밀어낼 생각조차 못 하고 버텨왔는데 한계에 도달하고 말았다.
“큭…….”
“노사님!”
단려화가 다급히 강유월을 부축할 때, 진무립은 도망치는 광인에게 거침없이 은광검을 던졌다.
쐐애액!
공간을 찢듯 쏘아진 검이 광인의 복부를 관통하고 바닥에 처박혔다.
“크륵!”
신음을 토해낸 광인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목표를 명중시킨 진무립은 흡족한 듯 웃었다.
“어딜 가시나.”
어느새 손아귀엔 주인을 잃고 나뒹굴던 흑의인의 검이 빨려 들어간 상태.
허공섭물보다 더욱 고절한 귀접(歸蝶)의 묘리였다.
콰직!
진무립의 신형이 폭발적인 기세로 튀어 나가자 딛고 있던 땅거죽이 으깨지며 돌가루가 튀었다.
순식간에 광인의 지척까지 접근한 진무립은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처음에 비해 광인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둔해진 상태.
피하지 못한 놈의 다리를 진무립의 검이 휩쓸었다.
퍽!
분명 잘려야 정상인데 살점을 파고들던 검신이 단단한 뼈에 걸린다.
균형을 잃은 광인의 몸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내력을 머금은 좌수가 맹렬히 솟구치며 놈의 허리를 올려쳤다.
쾅!
광인의 몸이 한층 더 높게 치솟은 가운데 땅에 틀어박힌 은광검이 진무립의 손아귀로 빨려들었다.
두 자루 검을 손에 쥔 진무립은 철검을 놈에게 던졌다.
쉬이익- 푹!
몸을 꿰뚫었던 은광검과 달리 등뼈에 막힌 철검은 나아가질 못했다.
‘뼈가 단단한 모양이군.’
거침없이 뛰어오른 진무립은 두 손으로 은광검을 잡았다.
그리곤 놈의 등에 틀어박힌 철검을 망치질하듯 후려쳤다.
콰앙!
단단한 뼈 대신 철검이 바스라지며 육중한 폭음이 터졌고 광인의 몸은 일 장이나 더 솟구쳤다.
허공에서 몸을 뒤집은 광인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일렁이는 혈광 속에 깃든 것은 죽음의 공포.
추락하는 광인이 발악하듯 검을 휘두르는 순간, 그것을 피해 맹렬하게 솟구친 은광검이 놈의 가슴을 단숨에 꿰뚫었다.
“크르륵!”
심장이 갈리고도 죽지 않는다.
“어디 이것도 버텨봐라.”
단숨에 검을 뽑아낸 진무립은 도끼질하듯 놈의 목을 내려쳤다.
살갗을 파고든 검신이 약간의 저항 끝에 완전히 목뼈를 갈라냈다.
서걱!
몸과 분리된 목이 허공에 둥실 떠오르며 숨 막히는 싸움의 끝을 알렸다.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광무대원들은 그제야 막힌 숨을 토해냈다.
“후아!”
쓰러진 놈은 분명 괴물이었지만 진무립은 그보다 더한 괴물이었다.
진무립이 조영성을 쳐다보며 말했다.
“시신 잘 챙겨라. 맹으로 가져간다.”
눈이 마주친 조영성은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 알았소.”
진무립의 엄청난 신위를 목격한 이상 전처럼 까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인근 민가에서 이불보를 챙겨온 조영성은 우선 광인의 시신을 그것으로 묶었다.
“천잠사는 전부 수거하고 흑의인들의 시신은 한곳에 모아 태워라. 죽은 마을 사람들의 시신은 관에서 처리할 테니 한쪽에 잘 모셔둔다.”
“예.”
광무대원들의 대답이 평소보다 더욱 절도 있다.
진무립이 보여준 무위에 압도된 그들의 눈엔 은은한 경외심마저 흐를 정도였다.
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 당소소와 단려화. 그리고 당우는 강유월을 살피고 있었다.
보랏빛으로 물든 환부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상처를 본 당우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이건?”
단려화가 서둘러 물었다.
“무슨 독인가요?”
당우는 자신 있게 말했다.
“모릅니다.”
“…….”
대답은 당소소의 입에서 나왔다.
“이건 시취독(屍取毒)이에요.”
죽은 자의 시신에서 사기를 추출해 만든 맹독.
혈도 여러 곳을 찍어 독이 퍼지는 걸 막은 당소소는 비수를 소독해 환부의 상처를 벌렸다.
“삼공자.”
비록 철부지 막내아들이라곤 하나 당가의 아들인 이상 기본적인 의술은 익히고 있다.
옷을 찢어 코와 입을 막은 당우는 당소소의 곁에 앉아 환부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네. 누님.”
당우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환부에서 보랏빛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당소소는 즉시 마른 천으로 그것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을 지켜보던 단려화는 가까운 민가에 들어가 깨끗한 천을 모아왔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당소소는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뜨거운 물이 필요해요.”
이 상황에 뜨거운 물을 어디에서 구한단 말인가?
내력으로 덥히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걸 당소소도 모를 리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단려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기다려봐요.”
때마침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린 진무립이 다가왔다.
“강노사의 상태는?”
“의식이 없어요. 그것보다 뜨거운 물이 필요해요.”
“알았다.”
민가에 들어간 진무립은 쇠그릇을 들고 나와 깨끗한 눈을 퍼담았다.
이어서 장심을 그릇에 붙이고 천양신단의 열양지기를 끌어올리자 눈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펄펄 끓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되겠나?”
놀란 눈으로 쳐다보던 당소소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해요.”
마른 천을 물에 적셔 환부를 닦아낸 그녀는 허리춤의 작은 주머니를 꺼내 흰 가루를 뿌렸다.
그러자 환부에서 새하얀 기포가 올라오더니 흰 가루가 빠르게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아쉽지만 시취독의 해약은 가진 게 없어요. 중독이 퍼지는 걸 막긴 했지만 서둘러 강노사를 본가로 옮겨야 해요.”
진무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독을 태우면 어떨까?”
“그러자면 극양의 진기를 가진…….”
당소소의 눈에 진무립의 미소가 담겼다.
“내가 하지.”
한순간에 펄펄 끓는 물을 만든 진무립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자칫하면 혈맥을 녹일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할 거예요.”
“그래.”
당소소가 강유월을 일으켜 앉히자 진무립은 그의 등에 두 손의 장심을 붙였다.
당우와 단려화가 호법을 서는 가운데 지그시 눈감은 진무립이 내력을 끌어올렸다.
‘섬세하게.’
내력의 섬세한 운용은 누구보다 자신 있는 진무립이다.
어린 시절부터 몸 안에서 날뛰는 두 가지 기운과 싸워왔으니까.
혈맥을 타고 스며든 열양지기가 매우 조심스럽게 나아간다.
강유월의 어깨를 고정한 당소소는 손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에 미간을 좁혔다.
‘두 가지 기운을 한 몸에 지닌 사람이라니.’
생각하면 할수록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한참이나 내력을 밀어 넣던 진무립은 마침내 혈맥을 떠도는 이질적인 기운을 발견했다.
‘찾았다.’
열양지기가 천천히 스며들며 시취독의 독기를 태워 나가기 시작했다.
무거운 정적 속에 한 시진이 지나갈 무렵, 명령을 수행한 부하들이 주변에 모여든 가운데 마침내 진무립의 눈이 떠졌다.
“끝난…… 건가.”
침을 꿀꺽 삼킨 당우가 강유월의 상태를 살폈다.
보랏빛으로 물들었던 강유월의 낯빛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리어 막대한 심력을 쏟아부은 진무립이 더 창백할 정도다.
은침을 찔러 여독을 확인한 당소소는 기쁜 얼굴로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요. 나머지는 본가로 돌아가서 치료하면 되겠어요.”
“내려간다.”
몸을 일으키던 진무립이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고 휘청거리자 어느새 다가온 단려화가 곁을 부축했다.
“업어줘요?”
잠시 생각하던 진무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빈말을 내뱉었던 단려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짜요?”
진무립은 망설임 없이 그녀의 등에 올라탔다.
“시간이 많지가 않거든.”
* * *
혈야광인의 시신을 수습한 진무립 일행이 마을의 장원으로 돌아왔다.
마당으로 나온 대원들은 조영성에게 업힌 강유월을 보곤 화들짝 놀랐다.
“어떻게 된 겁니까?”
당소소가 말했다.
“독에 당하셨지만 고비는 넘겼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당우는 산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진무립은 그들에게 놀랄 틈도 주지 않고 말했다.
“지금부터 한 시진. 그 안에 떠날 채비를 마친다.”
곽도진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이 밤에 말입니까?”
고개를 끄덕인 진무립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광인을 추격해온 놈들이 그놈들뿐이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흑의인들이 보여준 집요함을 봤을 때 저들은 또 다른 안전장치를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불어온 바람이 옷깃을 서늘하게 파고든다.
사천맹으로 돌아갈 때까지 임무는 끝난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