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63)
◈ 63화. 가봐야 아는 일이지
한천월이 말했다.
“청이라, 뭔지 말해보게.”
강유월이 신중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혈야광인은 너무 위험한 존재. 혈교의 실험이 아직 끝난 게 아니라면 지금 당장 막아야 합니다.”
“서장으로 무인을 보내자는 말인가?”
“이대로 기다리다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무인을 파견해 실험이 진행되는 은신처를 파악하고 헛된 야욕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
“음.”
강유월의 사형인 한천월은 그의 신중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생각에 잠긴 한천월의 귀로 당문경의 전음이 들려왔다.
작게 끄덕인 한천월이 입을 열었다.
“사제의 말처럼 사천 무림에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일을 그냥 지나칠 순 없구려. 그럼 이번 일은······.”
강유월이 곧장 입을 열었다.
“광무대에 맡겨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광무대에게?”
우가산이 뭐라 입을 열기 전에 사방에서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건 안 될 말이오.”
“본 맹의 후기지수 중 절반 이상이 운룡각에 들어가 있소이다. 실패한다면 사천 무림의 미래를 잃는 것과 다르지 않소.”
저마다 표면적인 이유를 내세웠으나 실상은 더 이상 운룡각에 공을 세울 기회를 넘기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소. 서장까지 가는 위험한 임무에 어린아이들을 보낼 수는 없소이다. 차라리 우리 북천각이 나서겠소.”
“수색 임무라면 북천각보다는 우리 서월각에게 더 적합한 임무일 것이오.”
진무립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정신을 못 차릴 놈들이로군.’
모두가 이번 일을 맡겨달라고 한마디씩 내뱉자 강유월은 한숨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삼켰다.
‘공에 눈이 멀어 너무 쉽게 보고 있구나.’
후기지수들과 마도림의 무인으로 구성된 광무대.
특출난 게 없어 보이는 광무대가 혈교와의 전투에서 완벽한 성과를 거둬왔으니 다들 자신감이 넘치는 것이다.
눈을 가늘게 뜬 한천월이 수염을 매만지며 고민하는 사이 강유월이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운룡각의 중추가 사천의 후기지수라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겠소이다. 그러나 그들은 껴안고 보듬어야 할 어린아이가 아니라 사천맹의 무인이오. 이번에 자신들의 능력을 입증한 광무대라면 다음 임무도 분명 성과를 가져올 것이오.“
눈매가 사나운 중년인, 천선각주 장유기가 물었다.
“맹주님. 이번 일이 정말 무인까지 파견해야 할 만큼 심각한 사안입니까?”
청성파의 제자인 장유기는 한천월과 강유월의 사질이기도 했다.
한천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네.”
“좋습니다. 이번 일, 우리 천선각에서 맡도록 하겠습니다.”
“천무대를 보낼 생각인가?”
“예. 혈야광인인지 뭔지 찾아서 전부 쓸어버리면 되겠습니까?”
가벼운 그 태도에 강유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천선각주. 이 일은 그리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닐세.”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사숙. 지금까지 천무대를 보내서 해결하지 못한 일은 없었습니다. 반드시 기대에 부응하지요.”
장유기는 일신의 무공이 대단하고 매사에 오만할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더욱 걱정스러웠다.
‘사천과 서장이 다르거늘 어찌 이토록 가볍단 말인가?’
사천에서야 모두가 협조적이니 천무대가 나서서 안 될 일이 없었으나 서장은 들어가는 순간 사방이 적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강유월은 다급하게 입을 열려는 찰나, 진무립이 먼저 말했다.
“사천맹에서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천무대라면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진무립이 동의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던 강유월이 미간을 좁혔다.
‘대체 무슨 생각인가?’
자신이 보아온 진무립이라면 저들이 이번 일을 가벼이 여긴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번 일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진무립이 순순히 물러나고자 하니 의구심이 들었다.
한천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과 직접 싸워본 자네의 말이라면 믿을 만하겠지. 좋네. 이번 일은 천선각에 맡기지.”
장유기는 흡족한 듯 웃으며 예를 갖췄다.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사천맹 최강의 천무대를 보유한 천선각이다.
장유기가 직접 나서서 맡겠다고 하니 다른 이들은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회의가 일단락되는 분위기로 향할 때.
진무립의 전음을 받은 우가산이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서장까지는 왕래하기가 쉽지 않지요. 하여 맹주님께 청을 드리고자 합니다.”
“말씀하시오.”
“운룡각에 천무대와 사천맹 사이의 연락을 맡겨주십시오. 그리하면 비각의 정보원들은 오로지 정보수집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이고 천무대의 임무도 한결 더 수월해질 겁니다.”
강유월이 반색하며 거들었다.
“제가 저들과 함께 움직일 터이니 허락해주시지요. 혈교와 싸워본 경험이 있는 저들이라면 행여 적과 마주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겁니다.”
당문경이 미간을 좁혔다.
‘운룡각주는 처음 강노사가 이 일을 광무대에 맡기자고 했을 때 탐탁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저 아이의 생각이라는 건데.’
진무립의 속내를 헤아리던 당문경은 의구심이 들었다.
‘저 아이는 설마 천무대가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고되기만 하고 득이 없는 후방지원을 자청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당문경은 분명 진무립에게 뭔가 생각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때 한천월이 당문경을 바라보았다.
“사제가 함께한다면 후기지수들의 경험도 쌓게 할 겸 운룡각에 후방지원을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자네 생각은 어떤가?”
어차피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을 일, 괜히 다른 부처에 임무를 내려 마음 상하게 하느니 자진해서 나선 운룡각에 이 일을 맡기고 싶었다.
당문경은 진무립을 슬쩍 쳐다보곤 말했다.
“나쁘지 않은 생각 같습니다. 허락해주시지요.”
“그럼 정해졌군.”
고개를 끄덕인 한천월은 수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출발은 열흘 뒤. 천선각이 나서고 운룡각이 지원하는 형태로 가겠소. 두 각주는 준비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이야기하시오.”
“그럼 먼저 가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예를 갖춘 장유기는 곧장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한천월이 진무립에게 말했다.
“광무대가 세운 공은 내일 아침 맹의 벽보로 공표하도록 하겠네. 먼 길 피곤했을 텐데 돌아가서 푹 쉬게나.”
광무대에 사대거파의 후기지수들도 있는 이상 감추려야 감출 수 없는 일, 차라리 선심 쓰듯 맹주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게 낫다.
빙그레 웃는 한천월의 미소가 진무립에겐 왠지 모를 쓴웃음처럼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회의가 끝나자 진무립과 함께 밖으로 나온 우가산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소공자. 대체 왜 사서 고생을 하려 하시오?”
진무립은 중목원을 돌아보며 묘한 미소를 보였다.
“고생이 될지, 복이 될지는 가봐야 아는 일이지.”
* * *
밤이 찾아오자 광무대는 그간 쌓인 피로에 일찍 잠을 청했다.
육군명의 철검대가 훈련으로 자릴 비운 터라 숙소의 고요함이 평소보다 짙다.
달이 높게 떠오를 무렵.
정적 속의 작은 발소리가 복도 끝으로 향하더니 이윽고 슬며시 문이 열렸다.
“영보.”
나직한 목소리에 컴컴한 방 안에서 답이 들려왔다.
“예.”
복도를 슬쩍 둘러본 당중호가 방문을 닫았다.
“날 찾아오지도 않고 잠든 걸 보면 임무가 제법 힘들었던 모양이군.”
“크게 힘든 건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은데.”
영보는 자신이 임무에서 보고 겪었던 것들을 매우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강노사가 잡지 못한 실혼인을 그놈이 잡았다고?”
“불시의 기습이 아니었더라면 강노사께서 잡으셨을 겁니다.”
잠시 생각하던 당중호가 물었다.
“소가주와 놈을 비교하면 어떨 거 같으냐?”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다만?”
“대주가 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정도란 말이냐?”
광무대를 편성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고려하면 한 가닥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호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이제껏 진무립을 잘못 보고 있었다는 게 된다.
“공자.”
“그래.”
잠시 머뭇거리던 영호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제 저를 찾아오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생각지 못한 말에 당중호는 미간을 좁혔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
“더는 동료들을 배신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중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방계인 나와 가외(家外) 출신인 네가 위로 올라가는 길은 우리끼리 손을 잡는 수밖에 없다. 광무대의 떨거지들과 어울리면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침상에 걸터앉은 영호는 어둠을 응시하며 작게 말했다.
“그렇게 위로 올라가느니 저는 차라리 광무대의 떨거지로 남고 싶습니다.”
당중호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후후후. 동료라.”
등을 돌리는 당중호의 표정이 매섭게 변했다.
“후회하지 말 거라.”
“나가지 않겠습니다.”
복도로 나온 당중호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사라졌다.
잠시 후, 그가 떠난 자리에 당소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당중호가 사라진 복도 끝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불쌍한 녀석.’
* * *
운룡각의 지하 연무장.
사방의 횃불이 은은하게 빛나는 가운데 진무립과 마주 선 유대하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진무립은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싸해졌구나.”
은명진하검을 익히기 시작하고 몇 달 지나지도 않았는데 검초가 제법 날카롭다.
곁에서 지켜보던 용추가 히죽 웃었다.
“제가 열심히 쥐어팼더니 부쩍 늘었습니다.”
“······.”
인상을 구긴 유대하가 말했다.
“용형한테 날마다 얻어맞은 건 사실이지만 좀 이상합니다.”
“뭐가?”
“무공이 제 손에 너무 잘 맞습니다. 혹시 은명진하검이 마도림의 무공을 기반으로 창안한 검법은 아니겠지요?”
“그땐 마도림에 무슨 무공이 있는지도 몰랐다.”
진무립의 말에도 유대하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했다.
은명진하검은 마치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손에 착 달라붙었다.
진무립과 용추를 번갈아 보던 유대하가 매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사실은 엄청난 천재가 아니었을까요?”
“하하하!”
진무립은 웃음을 터트렸다.
애당초 재능이 없었다면 마도림의 최연소 대주가 될 수도 없었을 거다.
그걸 알기에 은명진하검을 내준 것이기도 하고.
“열흘 뒤에 임무를 떠날 거다. 그때 가서 앓는 소리 하지 말고 당분간 휴식을 병행해서 해라.”
유대하가 밝은 얼굴로 답했다.
“예.”
다음 날 아침.
광무대가 혈교에서 실험하는 실혼인의 시신을 획득하고 적과 싸워 승리했다는 사실이 중목원의 담장에 개시됐다.
소식을 접하고 중목원 앞으로 달려간 당소소는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달랑 두 줄이야?”
이번 임무는 사천맹이 창설된 이래 남만의 독곡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뒤로 가장 큰 전투나 다름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어째서 이번 임무를 이토록 가볍게 취급하는지 알 것 같았다.
‘사대거파에서 주도한 임무가 아니었기 때문이구나.’
그녀는 사대거파와 그 외 방파 사이의 간극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에선 모르고 있지만 혈교의 무인들은 생각 이상으로 무서워. 이런 상태로 전쟁이 벌어진다면 과연 막아낼 수 있을까?’
목적을 위해서라면 동료의 등에도 서슴없이 칼을 꽂는 자들이다.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국에 이런 상황에서도 자기 밥그릇이나 지키고자 하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때 멀리서 진무립과 단려화가 나타났다.
“표정이 안 좋은데요?”
단려화의 말에 당소소가 벽보를 가리켰다.
“여길 보세요.”
벽보를 읽은 진무립은 그녀의 표정이 안 좋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난 또 뭐라고.”
“뭘 바라고 임무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한 것 같습니다.”
“사천맹은 태생부터 사대거파를 위한 단체로 만들어졌다. 하루아침에 달라질 문제가 아니지.”
“앞으로도 달라질 것 같지 않아 걱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이라도 벌어진다면······.”
“이미 달라지고 있잖아?”
“네?”
“사대거파 출신인 네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지.”
싱긋 웃은 진무립이 그녀의 어깨를 툭 치고 떠나갔다.
멍하니 서 있던 그녀가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정말 그러네.”
* * *
천선각이 출정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운룡각도 그에 맞춰 준비에 들어갔다.
훈련으로 자릴 비웠던 철검대가 복귀하자 진무립은 우가산과 함께 이번 임무에 나설 인원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쉽지 않은 임무인 만큼 아무나 데려갈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사흘 뒤, 운룡각이 출정 준비에 한창일 무렵 사천맹으로 적모개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