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71)
◈ 71화. 적사곡
적사곡을 향한 나흘에 걸친 강행군.
진무립 일행은 하루를 앞당겨 목적지에 도착했다.
커다란 바위에 몸을 숨긴 이들은 모래가 강처럼 흘러내린 협곡의 입구를 발견했다.
눈을 가늘게 뜬 유대하가 중얼거렸다.
“마치 사막을 옮겨둔 것 같군. 저곳이 적사곡인가.”
십 장 높이의 절벽 사이로 고작 일 장이 조금 넘는 듯한 좁은 입구는 두세 명의 무인이 막아서도 지나가기 어려워 보인다.
단려화가 말했다.
“입구의 뒤편에 무인이 있어요. 절벽 위에도 한 명씩.”
유대하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그게 보입니까?”
사람이 개미만 한 크기로 보일 만큼 먼 거리, 그것도 숨어있는 무인을 눈치챘으니 놀라웠다.
그의 말처럼 모두가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자 단려화는 얼굴을 붉히며 복면을 끌어 올렸다.
“제가 눈이 좀 밝아요.”
진무립이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계획을 이야기해보자.”
모두의 이목이 진무립에게 집중됐다.
강유월이 따라왔다지만 어디까지나 이번 임무의 책임자는 진무립이었다.
특히나 진무립과 처음 임무를 함께하는 진설란과 육군명의 눈엔 기대감까지 깃들었다.
“누군가 지키고 있다는 것은 저 안에 지켜야 할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진무립의 말에 육군명이 씩 웃었다.
“그게 혈야광인이면 대박인데.”
진설란이 물었다.
“총대주는 저곳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역시 혈야광인인가요?”
진무립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혈야광인의 실험이 수십 곳에서 이뤄질 것 같지는 않아. 많아야 하나, 아니면 둘이겠지. 적사곡이 혈야광인의 비밀 실험장이라면 천무대는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할 확률이 높다.”
육군명이 나직이 말했다.
“그들이 향한 곳에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여기서 지체할 시간은 없겠군. 서둘러 확인하고 돌아가야…….”
그때까지 침묵을 유지하던 당천이 입을 열었다.
“그건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다.”
유대하가 물었다.
“그들이 함정에 빠졌다면 당장이라도 돌아가서 도와야 할 것 아니오?”
“천무대가 당할 정도의 상대라면 우리가 가서 뭘 할 수 있지? 감당할 수 없는 일에 심력을 소모할 바엔 눈앞의 상황에 집중하는 게 옳다.”
진설란은 짐짓 화난 얼굴로 말했다.
“당신, 그들은 우리의 동료라는 걸 잊었어요?”
“모든 게 마음먹은 대로 돌아간다면 무인 중 천하제일인이 아닌 자가 없을 것이다. 나는 현실을 말한 것뿐이다.”
“당신은 정말…….”
논쟁이 격해지려 하자 진무립은 둘 사이에 팔을 밀어 넣었다.
“싸우는 게 보고 싶어서 둘을 데려온 게 아니거든.”
진설란은 화를 억누르며 고개를 돌렸다.
실소를 흘린 진무립이 다시 말했다.
“동료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눈앞의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도 모두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우선 닥친 일부터 해결하고 다음을 생각하자.”
조영성이 히죽 웃었다.
“옳은 말씀입니다. 저 둘은 툭하면 저러니까 신경 쓰는 게 손해입니다.”
강유월이 물었다.
“입구를 보아하니 들어가기도 어려울뿐더러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을 것 같네. 어찌하려는가?”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이곳에서 대기하며 안에서 뭔가가 나오길 기다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놈들을 끌어내고 잠입하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없으니…….”
진무립은 강유월을 바라보며 짓궂게 웃었다.
“지금부터 노사님을 위기로 몰아넣어야겠습니다.”
메마른 바람이 차갑게 옷깃을 파고든다.
바람 소리가 점점 짙어지는 가운데 입구를 지키는 세 명의 무인은 옷깃을 여몄다.
“눈을 뜨기 힘들군.”
무공의 고하를 떠나 바람에 뒤섞인 모래까지 불어오니 서 있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언제까지 이곳에 머무를 것 같은가?”
“자네도 모르는 걸 내가 알겠는가.”
나직한 목소리는 금세 바람에 파묻혀 사라진다.
협곡을 휩쓴 바람이 용오름처럼 절벽 위로 솟구쳤다.
절벽의 양측 끝엔 바닥에 바짝 엎드린 두 명의 환염대원이 있었다.
그들은 마치 약속한 것처럼 번갈아 고개를 돌리며 사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먼 길을 돌아 절벽을 오른 당천은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
‘쉽지 않겠군.’
상대와의 거리는 십여 장, 수시로 변하는 바람에 암기가 영향을 받을 것만 같았다.
당천의 반대편을 오른 진무립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정말 괴악한 곳에 번을 세워뒀군.’
양 측의 무인이 수시로 서로의 뒤를 확인하고 있으니 신법을 전개해 달려가면 공격을 가하기 전에 들킨다.
그렇다고 원거리에서 섣불리 공격하면 상대가 절벽 밑으로 떨어질 것 같다.
‘별것 아닌 장소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진 않겠지.’
바위를 조심스럽게 밟고 움직인 진무립은 시야에 두 명의 무인을 일직선으로 뒀다.
‘가라.’
빛살처럼 쏘아진 은광검이 가까운 무인의 머리를 꿰뚫었다.
퍽.
둔탁한 소음이 바람에 잡아먹힌다.
절벽을 오른 진무립이 신법을 전개하는 순간 은광검은 반대편 무인의 머리를 관통했다.
그런데 하필 잠잠하던 바람이 갑자기 거세지며 절벽 끝을 휩쓸었다.
이쪽의 시신이 절벽 아래로 기울어간다.
‘안 좋은데.’
늦을 거 같다 싶은 순간, 반대편에서 한 줄기 섬광이 날아들더니 떨어지던 무인의 머리를 직격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기울어가던 시신이 살짝 떠올랐고 진무립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가까스로 시신을 잡아당긴 진무립이 내심 안도하며 건너편을 쳐다봤다.
그곳엔 마찬가지로 시신을 끌어당기는 당천이 있었다.
‘제법이군.’
진무립이 씩 웃었고.
‘이 바람 속에 두 명을 동시에 잡을 줄이야.’
적잖이 놀란 당천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생겼다.
진무립과 눈이 마주친 당천은 시신을 멀찍이 치우고 진무립의 은광검을 주워 이쪽으로 던졌다.
[고맙다.]당천은 대꾸하지 않고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멀리서 진무립의 수신호를 확인한 강유월은 자세를 바짝 낮춰 은밀히 움직였다.
절벽 위의 감시를 차단한 덕분에 수월하게 입구의 바로 아래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잠시 멈춘 강유월은 뒤를 힐끔 쳐다봤다.
눈이 마주친 단려화와 진설란이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나직이 숨을 고른 강유월은 번개같이 몸을 날려 순식간에 삼 장의 거리를 압축했다.
당황한 적들의 얼굴이 눈동자로 빨려든다.
서걱!
순식간에 세 명의 목이 허공에 떠오른다.
반응 속도는 숲에 나타났던 회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정도면 아이들도 상대할 만하겠어.’
내부의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 강유월은 이들이 싸울 만한 자들인지 확인하고자 선두에서 달려든 것이었다.
감당 못 할 적이라면 그대로 도주했겠지만 이 정도라면 예정대로 돌파한다.
강유월은 적의 시신을 뛰어넘었고, 그 움직임을 신호로 단려화와 진설란은 입구의 양옆에 바짝 몸을 붙였다.
강유월이 협곡의 입구로 뛰어들자 안쪽에서 대기하던 무인이 소리친다.
“적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의 동굴에서 갈의를 입은 자들이 개미 떼처럼 쏟아져 나왔다.
족히 수백이 넘는 숫자.
‘다른 출구가 없는 것인가.’
후방을 제외하면 오목하게 들어간 내부엔 여러 개의 동굴만 보일 뿐 다른 길이 없었다.
전후좌우로 적이 들이닥치는 절체절명의 상황.
병기를 뽑아 든 적이 맹렬하게 달려들자 보폭을 벌린 강유월의 검극이 빛살처럼 뻗어 나간다.
묵사비검 만천검방의 초식.
따다다다다당!
장대비가 철판 위를 두드리는 듯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완벽한 수비 초식에 짓쳐 들던 적들이 튕겨 나갔다.
그로 인해 벌어진 약간의 간격.
후방으로 몸을 날린 강유월의 검신에서 웅혼한 검명이 솟구친다.
우우우우!
묵사비검 공료지사(攻鬧支死)의 초식, 도가의 정순한 내력에서 파생된 검명이 적들의 심맥을 뒤흔들었고.
슈아아악!
다섯 가닥 섬광이 된 강유월의 검은 멈칫하는 적들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크윽!”
비산하는 핏방울과 함께 묵직한 비명이 쏟아진다.
퇴로가 열리는 순간.
“우하하하! 왔구나!”
우측 일 장 높이의 동굴에서 환도를 찬 사내, 천태무가 나타났다.
이어서 좌측의 동굴에서 창을 든 이곽이.
“이건 예상 밖인데.”
전방의 동굴에선 베일 듯 날카로운 눈빛을 한 현유립이 나타났다.
“…….”
그들이 발산하는 오싹한 기세가 강유월이 피부에 와닿는다.
‘심상치 않은 자들이로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돌아선 강유월은 극성의 신법으로 포위를 돌파했다.
환염대원들이 뒤를 거침없이 추격해온다.
입구로 빠져나온 강유월이 몸을 돌렸고, 적이 뒤따라 나오는 순간.
서걱!
앞서 달리던 적들의 목이 허공에 둥실 떠오른다.
좌우로 숨어있던 단려화와 진설란이 기습에 성공한 것이다.
멈칫하는 그들의 위로 시꺼먼 주머니가 떨어져 내린다.
추락하던 주머니가 그들의 머리 위까지 도착했을 무렵, 절벽 위에서 쏘아진 암기가 정확하게 주머니를 터트렸다.
파직!
나직한 소음을 감지하고 고개 든 이들은 허공에서 흩날리는 검은 가루를 볼 수 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이곽이 외쳤다.
“독이다! 호흡을 멈춰라!”
몰려있던 그들은 다급하게 숨을 참았지만 바로 밑에 머물던 이들은 중독을 피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또다시 불어온 협곡의 바람이 금세 독분을 걷어갔다는 사실이다.
‘역시 쉽지 않군.’
당천이 절벽 끝에서 자취를 감추자 현유립의 입이 열렸다.
“천태무. 쫓아라.”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어.”
훌쩍 뛰어오른 천태무가 양측의 절벽을 번갈아 디디더니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잠시 멈췄던 싸움이 재개될 때, 현유립의 뒤에서 졸린 눈매의 사내가 하품을 하며 나타났다.
혈위사신의 마지막 한 명, 독보신마(獨步神魔) 조위성이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저것들은 뭐야?”
“적이다.”
“나도 그 정도는 알아.”
환염대는 필사적으로 돌파하려 했으나 좁은 입구에서 강유월 등을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다.
현유립의 눈이 가늘어졌다.
“놓치면 좋지 않다. 포위한다.”
“나가질 못하는데 무슨 수로?”
그때 동굴에서 훌쩍 뛰어내린 이곽이 입구를 향해 질풍같이 쇄도했다.
그 뒤로 현유립이 몸을 날렸고 잠시 머뭇거리던 조위성도 바람 같이 뒤를 따랐다.
이들의 선두를 달리던 이곽은 환염대원의 어깨를 밟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를 발견한 강유월이 즉시 뛰어오르며 검초를 흩뿌렸다.
“보내지 않을 것이네.”
허공에서 마주친 이곽이 씩 웃었다.
“영감. 난 미끼라오.”
내지른 창두와 강유월의 검극이 맞닿는 순간.
콰앙!
내기와 내기의 충돌에 굉음이 터졌고 그 틈에 벽을 타고 이동한 현유립과 조위성은 순식간에 입구를 돌파했다.
‘이런.’
강유월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번졌다.
뒤를 허용한 이상 후퇴도 불가능해졌다.
지면으로 추락하던 이곽이 말했다.
“저기 족제비처럼 생긴 녀석은 영감이 아니라면 못 막을 겁니다.”
착지하는 강유월에게 단려화가 외쳤다.
“입구는 저희가 막겠어요!”
선택지가 없었다.
그냥 두면 앞뒤로 공격을 당할 테니까.
“창을 든 자가 나오려 하거든 막아서지 말게.”
“알겠습니다.”
강유월은 천천히 돌아서서 현유립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현유립의 시선은 그가 아닌 뒤를 향해 있었다.
세 사람이 지칠 때를 대비해 후방에 대기하던 유대하와 육군명, 조영성이 나타난 것이다.
도파에 손을 올린 육군명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구경만 하는 것도 지루했는데 잘됐네.”
육군명을 향한 현유립의 눈이 가늘어졌다.
‘뭔가 있는 놈이다.’
본능적으로 여유로운 그의 미소가 허장성세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그때 입구 안쪽에서 이곽이 벽을 밟고 뛰쳐나왔다.
검을 고쳐잡은 강유월이 차분히 말했다.
“영성아. 입구를 부탁하마.”
“맡겨주십시오. 사숙조님.”
조영성이 입구로 몸을 날렸다.
입구로 나온 적은 세 사람.
강유월은 유대하와 육군명을 바라보며 물었다.
“견딜 수 있겠는가?”
“물론입니다.”
유대하는 비장하게 눈을 빛내며 검을 쥐었고 육군명은 여유롭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을 눈에 담고.
자세를 낮춘 강유월이 비장하게 눈을 빛냈다.
“시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