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72)
◈ 72화. 망자(亡者)의 부활
벽에 걸린 횃불이 은은한 빛을 뿜어낸다.
건조한 협곡과 달리 동굴의 눅눅한 공기가 폐부로 스며들었다.
동료들이 밖에서 시선을 끄는 사이, 진무립은 성공적으로 동굴에 잠입한 상태.
어둠에 적응한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서둘러야 한다.’
입구로 몰려간 무인들은 서장에서 처음 만난 회혈대와 엇비슷한 수준.
입구가 좁은 만큼 단려화가 막고 조영성과 진설란이 돕는다면 쉽게 뚫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뒤늦게 나타난 네 명의 무인은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어쩌면 강노사도······.’
진무립은 고개를 흔들었다.
불길한 상황을 떠올리기보단 당천의 말처럼 눈앞의 상황에 집중하는 게 옳다.
그들이 자신을 믿고 계획에 동참해준 만큼 자신도 그들을 믿는 수밖에 없다.
‘버텨다오. 금방 가겠다.’
어둠에 스며든 진무립은 안쪽에서 느껴지는 음습한 기운을 따라 은밀히 나아갔다.
여러 개의 동굴 입구 중 이곳을 택한 것은 음기가 가장 짙게 느껴졌기 때문.
겉보기와 달리 동굴이 제법 길다.
빠르게 나아가는 진무립은 자신이 점점 땅속으로 깊게 내려가고 있음을 느꼈다.
입구로부터 일각을 내려갔을 무렵.
짙어지는 음기와 함께 사이한 기운까지 물씬 풍겨 나온다.
‘확실하다. 여기다!’
미적거릴 시간은 없다.
확신이 생긴 순간 지면을 박찬 진무립은 순식간에 이십 장을 내달렸다.
눈앞에 나타난 육중한 철문, 그 좌우를 두 명의 흑의인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진무립에 적들의 눈이 부릅떠질 때.
“누구······.”
빛살처럼 뽑혀 나온 은광검에 횃불의 불빛이 깃들었다.
서걱!
“큭!”
우측 무인이 목을 잡고 물러난다.
진무립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얕다.’
완전히 가르지 못했다.
상대는 외부를 지키는 자들보다 훨씬 강한 이들이었다.
한 발 더 내디딘 순간, 좌측 무인의 소검이 섬뜩하게 날아들었다.
진무립은 즉시 억눌러온 내력을 개방했다.
쩌어억.
일순 폭발적인 기세가 솟구치며 음산한 동굴에 살얼음이 낀다.
보는 눈은 없다.
진무립의 검신에 시퍼런 운무가 모여든다.
치잉!
밑에서부터 사선으로 솟구친 검신이 소검을 튕겨냈고, 이어진 공격은 공간을 뛰어넘어 상대의 가슴을 꿰뚫었다.
비명조차 새어 나오지 않는다.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쾌검.
팔천영신공의 소리신야검(小利迅惹劍)은 가슴에 박힌 검이 뽑혀 나온 뒤에야 통증을 느낄 정도로 신속했다.
“컥!”
우측의 적이 상처를 부여잡고 달려든다.
사선으로 그어지는 은광검이 핏방울을 흩뿌리며 흔들린다.
상대의 소검을 구렁이처럼 거슬러 올라간 은광검이 순식간에 목을 갈랐다.
서걱!
오싹한 소음과 함께 흑의인의 목이 허공에 떠올랐다.
단숨에 적을 처리한 진무립은 육중한 철문 앞에 섰다.
착검하고 자세를 낮춘 진무립은 철문을 향해 주먹을 말아쥐었다.
곧이어 우수에 시퍼런 빛무리와 함께 극한의 한기가 모여들었고.
슈와악!
소매의 살얼음이 깨지는 순간 경천동지할 일격이 철문으로 쏟아졌다.
쩌어엉!
팔천영신공 폭천격(爆天擊)의 초식.
으깨진 철문이 튕겨 나가며 동굴 전체가 지진을 만난 듯 진동했다.
“크악!”
문 너머에서 대기하던 무인들이 조각난 파편에 꿰뚫리며 비명을 토해냈다.
사방으로 십 장 남짓한 넓은 공동.
가지런히 누운 수십 개의 관과 약물의 지독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저, 적이······.”
혈의를 입은 노인들의 당혹스러운 눈빛이 진무립에게 닿았다.
서늘하게 눈을 빛낸 진무립이 지면을 박찼다.
“살고 싶다면 엎드려라.”
그대로 돌진한 진무립의 검 끝에서 소리신야검의 폭풍 같은 쾌검이 쏟아져 나왔다.
횃불에서 뿜어져 나온 은은한 빛도 진무립의 엄청난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진무립은 두 발로 서 있는 자들을 모조리 도륙하기 시작했다.
숨 한 번 들이킬 만한 짧은 시간에 무려 일곱 명이 쓰러졌다.
남은 적은 둘, 그들의 눈에 피를 흠뻑 뒤집어쓴 진무립은 마치 지옥의 악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당혹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던 그들은 즉시 바닥에 엎드렸다.
“사, 살려주십시오!”
검을 들이밀다 말고 멈춰선 진무립은 나직이 숨을 골랐다.
“살고 싶다면 대답을 잘해야 할 거다. 혈야광인의 실험장은 이곳이 끝인가?”
백발이 성성한 혈의인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하, 한 곳이 더 있습니다만 어딘지는 모릅니다.”
이곳에 존재하는 관은 모두 삼십 개.
진무립은 다시 물었다.
“규모는 어디가 더 크지?”
“눈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이곳보다 크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놈의 약점은?”
“미완성 상태에선 그나마 목뼈가 약한 편이지만 그것도 어지간한 강철만큼이나 단단합니다.”
“여기 있는 혈야광인은 모두 완성체인가?”
이번엔 반백의 중년인이 답했다.
“며칠 내로 다섯 구는 완성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완성체도 실험이 필요합니다.”
그 말은 아직 혈야광인의 연구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과 같다.
진무립이 말했다.
“혈야광인의 제조법을 가져와라.”
백발의 노인이 매우 조심스럽게 말했다.
“따로 적어둔 것은······.”
순순히 내놨다간 이용가치가 없어진 자신들을 죽일지도 모르는 일, 목숨줄을 쉽게 내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수가 통할 진무립이 아니었다.
“약속하지. 먼저 가져온 놈만 살려주마.”
그 말에 두 혈의인의 고개가 서로를 향해 돌아갔다.
‘속지 마라!’
중년인은 노인의 간절한 눈빛을 차갑게 외면했다.
그는 찰나의 망설임을 끊고 벌떡 일어났다.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아아.”
진무립은 탄식하는 노인의 목에 손을 가져갔다.
손끝이 그의 머리를 스치는가 싶더니 노인이 이내 푹 하고 쓰러졌다.
“이름은?”
노인이 죽은 줄 아는 중년인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자, 자양입니다.”
“비급을 가져와라.”
“예.”
그는 서둘러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기관을 작동시켜 금고를 열었다.
제조법이 담긴 비급을 품에 챙긴 진무립은 관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놈들을 깨울 수 있나?”
자양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입니다. 하지만 실험이 끝나지 않았기에 통제에 따를지 모르겠습니다.”
“폭주하면 그대로 끝이라는 건가?”
“예.”
“깨워라. 당장.”
침을 꿀꺽 삼킨 자양은 한쪽으로 걸어가 혈주령(血主鈴)을 손에 쥐었다.
‘내 통제에 따르기만 한다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
고요한 정적 아래 지그시 눈을 감은 자양이 술문을 외우기 시작한 순간, 그의 육신이 사시나무 떨듯 흔들리더니 울컥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커억!”
흰자위를 드러낸 채 몸을 떨던 그는 이내 숨이 끊어졌다.
진무립의 미간이 좁아졌다.
‘금제인가.’
중원과 사천에선 금제를 쓰는 방파가 없었으나 혈교라면 가능한 일이다.
비급을 펼쳐 보니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자로 가득하다.
결국 진무립은 혼절한 노인을 흔들어 깨웠다.
“으······.”
목 뒤의 서늘함에 몸서리친 노인이 천천히 일어났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지. 그대로 죽겠나? 아니면 내 말에 따르겠나.”
죽은 자양을 본 노인은 그가 금제로 인해 죽었다는 걸 알았다.
“가능한 거라면······.”
“이놈들을 깨워라.”
“금제가 걸려 있어서 불가능합니다.”
“그럼 누가 깨울 수 있지?”
“이곳에서 소인을 제외하면 혈위사신만이 술문을 알고 있습니다. 오로지 그들만이 가능합니다.”
진무립은 조금 전 밖에서 본 네 사람이 혈위사신이라는 걸 직감했다.
“다른 방법은 없나?”
“있긴 있습니다만 강제로 깨우면 절대 명령을 듣지 않을 겁니다.”
“방법은 있다는 말이군.”
진무립은 가까운 관으로 걸어가 뚜껑을 열었다.
지독한 냄새의 약물 속에 낯빛이 시꺼먼 사내가 보인다.
죽어서도 묻히지 못한 자.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바꿀 수 있는 건 없다.
‘다섯 구만 쓴다.’
삼십 구를 전부 깨운다면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진무립은 모든 관에 구멍을 내어 약물을 뺀 다음 하나씩 목을 베기 시작했다.
노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제아무리 목뼈가 약하다곤 하나 어지간한 공격엔 흠집도 나지 않는다.
그런 혈의광인들을 마치 무 썰 듯 베어가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자는 대체 누구인가? 천하십대고수라도 된단 말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섯 구를 제외한 모든 광인의 처리가 끝났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은 진무립이 나직이 숨을 내쉬었다.
‘싸우는 것보다 이놈들 목 자르는 게 더 힘들군.’
진무립이 노인에게 말했다.
“깨워라.”
노인은 품에서 검은 주머니를 꺼냈다.
“약을 먹이면 금세 일어날 겁니다. 이들이 완전히 깨어나기 전에 피해야 합니다.”
“그건 걱정 마라.”
침을 꿀꺽 삼킨 노인은 혈야광인에게 다가가며 연신 진무립을 살폈다.
행여 자신을 두고 도망가지 않을까 우려한 것이다.
“안 갈 테니까 빨리 먹여라.”
“예, 예.”
단약을 꺼낸 노인은 빠르게 다섯 구의 입에 그것을 쑤셔 넣었다.
일을 마친 노인은 재빨리 진무립의 뒤로 숨었다.
“이제 가야 합니다!”
“알았다.”
혈주령을 챙긴 진무립은 등자의 기름을 뿌리고 횃불로 사방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불이 번지기 시작하자 진무립이 싱긋 웃었다.
“잘 타네. 기름 좋은 거 쓰나 봐?”
그 여유로운 모습에 애가 탄 노인이 발을 동동 굴렀다.
“혈주령을 흔들지 않고 깨웠기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알았다니까 더럽게 보채네. 그냥 죽여줘?”
진땀을 흘리며 진무립과 혈야광인을 번갈아 보던 노인은 결국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곳에 있다 죽으나 도망치다 진무립에게 죽으나 똑같았기 때문이다.
노인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동에 흑광이 번뜩였다.
‘일어났군.’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벌떡 몸을 일으킨 혈야광인들이 진무립을 쳐다봤다.
“따라와라. 새끼들아.”
출구를 향해 몸을 날린 진무립은 동굴의 굉음을 듣고 뛰어오는 적들과 마주쳤다.
적이 오고 있음에도 마음이 놓였다.
혈위사신이 직접 오지 않고 잡졸을 보냈다는 건 동료들이 제대로 버티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뒤로 조금 전 도망친 노인이 보인다.
“저, 저놈이 혈야광인을 모두 깨웠소!”
환염대원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혈야광인이 깨어났단 말이오?”
진무립의 미소가 짙어졌다.
“네놈들이 첫 제물이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진무립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협곡의 싸움이 다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크윽!”
입구를 막아선 조영성의 전신은 피로 붉게 물든 상태.
단려화가 다급히 외쳤다.
“뒤로 물러나서 지혈부터 해요!”
“아직 버틸 수 있소!”
이대로 물러나면 자신을 믿고 선택한 진무립의 기대를 배신하게 된다.
서릿발 같은 기세와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공격, 수백 명이 이곳을 뚫고자 맹공을 퍼붓는다.
적을 앞에 두고 여인 둘이 필사적으로 버티는데 뒤로 빠질 순 없다.
조영성은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와라. 개새끼들아!”
진설란은 그에 비하면 크게 다친 것은 아니었으나 점점 힘이 떨어져 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버텨야 돼!’
부하들을 지휘하던 환염대주 사환은 상대의 방어를 뚫지 못하자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그는 결국 선두로 나서며 일검을 내질렀다.
“냄새나는 계집이!”
지금까지와는 한 차원 다른 일격, 단려화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사선으로 검을 그었다.
사환은 다급하게 물러나며 입술을 깨물었다.
“칫!”
반응 속도가 자신보다 한 수 위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일대일로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괴물 같은 여인이었다.
단려화가 좌측 적을 막아내며 말했다.
“진소저!”
허공으로 솟구친 조영성이 뛰어넘는 적을 막아내는 가운데 진설란은 우측으로 움직이며 외쳤다.
“네!”
단려화의 사자검이 오싹한 예기를 토해내며 순식간에 두 명의 손목을 잘라버렸다.
“크윽!”
손목을 부여잡은 두 사람이 넘어지듯 후방으로 물러난다.
공간을 확보한 단려화가 물었다.
“나한테 냄새나요?”
카캉!
좌우의 공격을 받아친 진설란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외쳤다.
“안 나요!”
이 와중에도 단려화는 싱긋 웃었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