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73)
◈ 73화. 악전고투
조영성은 단려화를 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런 상황에서 웃을 여유가 있다니. 첫 전투에서부터 보통 여인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녀를 진무립의 호위, 즉 마도림의 무인으로 알고 있는 조영성과 진설란은 단려화의 엄청난 무위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검에는 망설임이 없고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쾌검은 생각이 아닌 본능을 따르는 것만 같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입구를 틀어막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녀 덕분이라는 걸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날아드는 일검을 비껴치고 반격을 가한 진설란은 곁을 힐끔 쳐다보며 생각했다.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배우고 싶을 정도야.’
여인의 몸으로 이룰 수 있는 이상향에 가까울 정도로 단려화의 검은 완벽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단려화와 달리 자신과 조영성의 전신엔 자잘한 상처가 빠르게 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전력으로 검초를 흩뿌렸다.
아직까진 그럭저럭 버티는 그들과 달리 후방에선 목숨을 건 긴박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팽!
공간을 찢고 튀어나온 창두가 유대하를 향해 맹렬히 쏟아진다.
“큭!”
다급하게 몸을 튼 유대하의 옆구리로 회전하는 창두가 스쳐 지나간다.
파직.
후끈한 통증과 함께 터져 나간 옷자락이 마치 가루처럼 흩날린다.
본래의 형태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넝마가 된 상의는 시뻘건 피에 흠뻑 젖은 상태.
폭풍처럼 몰아치는 창두의 날카로움은 유대하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피를 너무 흘려 정신마저 혼미하다.
‘용형이 아니었다면 난 벌써 죽었겠지.’
용추의 진신 무공은 봉술.
창술과 다르면서도 유사한 부분이 있는 봉술에 수도 없이 당해본 터라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들은 동굴의 굉음으로 내부의 이변을 감지한 상태, 여기서 길을 내주면 계획이 어긋난다.
일격을 가까스로 피한 유대하는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달라붙었다.
그러자 능글맞게 웃는 이곽이 창을 회수하며 물러났다.
“제법이구나.”
파고드는 유대하를 향해 창대 끝에 달린 창준이 그어진다.
접근하면 창준이 날아들고 물러나는 순간 귀신같이 창두가 쏘아진다.
단순한 흐름이었지만 틈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수시로 완급을 조절하는 창의 빠름은 유대하가 적응할 틈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간격을 확보하지 못한 유대하가 물러나자 이번엔 날카로운 창두가 전신을 찢어발길 기세로 날아든다.
‘빠르다.’
이번의 일격은 도무지 피해낼 재간이 없다.
혼신의 내력을 끌어올린 유대하는 이를 악물고 검면에 손을 붙였다.
‘버텨야 한다!’
짓쳐 드는 창두의 궤적이 검면을 스치며 미세하게 틀어진다.
콰앙!
폭음과 함께 유대하의 어깨가 손가락 두 마디가량 찢겨나갔다.
“쿨럭!”
검붉은 피가 역류하며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내력으로 육신을 보호했으나 내상을 피할 수 없었다.
이곽은 동굴 쪽을 힐끔 살폈다.
‘끈질긴 놈이군.’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내심은 급한 상태.
자신을 상대로 무려 이각 가까이 버티는 유대하의 집념에 내심 감탄마저 나온다.
‘아직 뭔가 숨기고 있다. 지나치는 순간 바로 그게 나올 거다.’
간격을 파고드는 그 움직임조차 자신을 이 자리에 묶어두기 위한 방편, 유대하에게 공격의 의지가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끌어낸다.’
이곽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유대하가 이곽을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질 때, 조위성을 상대로 수세에 몰린 육군명은 연신 물러나기 바빴다.
조위성이 지루한 듯 찡그리며 주먹을 내질렀다.
“뭔가 있어 보이기에 기대했는데 이게 뭐야?”
파앙!
간발의 차이로 빗나간 주먹에 머리카락이 바스러진다.
주먹이 회수된 자리에 일도가 떨어진다.
쐐애액!
움켜쥔 도를 사선으로 그어 가까스로 간격을 확보한 육군명이 토끼 눈을 떴다.
“와, 방금 오싹했어.”
한발 물러났던 조위성이 지면을 박차고 뛰어든다.
“네놈이 제일 약한 거 아냐?”
잔뜩 끌어당긴 주먹이 뻗어 나오는 순간, 곡선으로 날아드는 권영(拳影)이 만개하는 꽃처럼 피어나 허공을 가득 메웠다.
“광인인지 뭔지 관심도 없지만 오래 끌면 혼날 거 같으니 그만 끝내자.”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육중한 기세가 해일처럼 밀려든다.
무위강전(武威姜戰) 천해폭참(川海暴慘)의 초식.
‘이건 좀 위험한데?’
육군명의 미간에 내 천(川)자로 주름이 잡혔다.
상대는 무공을 숨기고 적당히 상대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해일처럼 쏟아지는 권영의 그림자가 육군명을 덮치기 직전, 육군명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동료들을 빠르게 살폈다.
유대하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이곽을 물고 늘어지는 상태, 강유월은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사람처럼 아슬아슬한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내가 당하면 그냥 끝나겠구만.’
어금니를 깨문 육군명이 살짝 몸을 띄웠다.
‘일단 맞아주지.’
콰콰콰콰콰쾅!
떠오른 육군명의 전신으로 무자비한 연타가 쏟아진다.
“큭!”
화살처럼 튕겨 나간 육군명이 모래밭에 사정없이 처박혔다.
분명 나가떨어진 것은 육군명인데 조위성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이 새끼…… 대체 뭐야?’
고개 숙인 조위성의 눈에 길쭉하게 갈라진 옆구리가 보인다.
놈은 몸을 띄워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그 와중에 반격까지 가했다.
문제는 자신이 그 반격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척거리며 일어난 육군명이 검붉은 피를 탁 뱉으며 히죽 웃었다.
“아프잖아.”
절벽의 그늘 아래, 전장에서 절묘하게 시야가 가려진 곳에 선 육군명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한 번 더 와봐.”
옆구리와 육군명을 번갈아 보던 조위성이 지면을 강하게 밟았다.
쿵!
“그러지 뭐.”
쇄도하는 조위성의 앞머리가 뽑혀 나갈 듯 흩날린다.
육군명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조위성이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오라면서?”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얘기하자고.”
뒤를 보며 씩 웃은 육군명은 절벽의 반대편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린 끝에 두 사람이 완벽히 전장에서 벗어난 순간, 방향을 튼 육군명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크흐흐. 따라와 줘서 고맙다.”
“곧 죽을 놈이 뭐가 우스워?”
조위성의 신형이 절벽의 그늘에 접어드는 순간, 육군명의 전신에서 활화산처럼 폭발적인 기세가 솟구쳤다.
조위성의 주먹에서 천해폭참의 초식이 전개될 때, 번뜩이는 흑광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권영의 해일을 직격했다.
이십육 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흑무진천도(黑武鎭天刀) 흑단벽(黑斷壁)의 초식.
쿠콰콰콰콰쾅!
정면에서 충돌하는 흑광과 권영의 기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희뿌연 빛무리 속 고막이 찢어질 듯 엄청난 굉음, 진동하는 절벽의 돌가루가 눈송이처럼 흩날렸다.
이윽고 서로를 향해 돌진하던 두 사람의 움직임이 멈췄을 때.
“쿨럭!”
뿌옇게 피어오른 모래 먼지 속에서 울혈을 토해내는 기침 소리가 들렸다.
불어온 바람이 모래 먼지를 걷어간 뒤, 자리에 오롯이 서 있는 인물은 육군명뿐이었다.
한쪽 무릎을 지면에 꿇은 조위성의 전신은 마치 비수에 난도질당한 것처럼 처참하다.
피를 흠뻑 뒤집어쓴 조위성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이게……. 뭐야. 내가 졌어?”
육군명은 다소 창백한 얼굴로 싱긋 웃었다.
중원에서 사용했다면 무림 공적이 되었을 무공.
숨겨둔 무공을 꺼내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질 거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뭘 놀라고 그러냐? 당연한 결관데.”
말이 끝나는 순간, 허공에서 뚝 떨어진 도면이 조위성의 머리를 강타했다.
쾅!
현유립과 강유월의 싸움은 창과 방패의 충돌을 연상케 했다.
공격을 완벽히 차단한 검영의 지붕, 장대비처럼 퍼붓는 현유립의 공격은 만천검방의 지붕을 쉴 새 없이 두드렸다.
카카카캉!
섬뜩한 쇳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몰아치는 공격을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지만 강유월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좋지 않구나.’
만천검방이 완벽에 가까운 수비초식이라지만 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빈틈을 보법으로 보완해야 하는 데 갈수록 모래밭에 발이 푹푹 빠진다.
그의 보법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현유립의 검초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듯 쏟아지는 탓이었다.
‘내 무공의 특징과 지형의 맹점을 제대로 이용하는구나.’
그의 생각처럼 현유립은 수시로 강유월의 발을 확인하고 있었다.
‘지금 달려가 봐야 늦는다. 이놈들을 전부 처리한다.’
혈야광인은 혈교의 혼신을 쏟아부은 역작.
침입을 허용했으니 다소 당황할 법한데도 현유립은 무서울 만큼 냉정하다.
과연 혈위사신의 수장다운 모습이었다.
‘급한 건 내가 아니다.’
서둘러 승부를 내야 한다면 전력의 열세인 강유월 쪽이 급하다.
그의 뒤로 살짝 솟아난 모래더미가 보인다.
직선 일변도인 검초의 궤적이 한순간에 곡선으로 틀어진다.
달라진 형태에 대응하고자 일 보 후퇴하던 강유월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헛!”
현유립의 확장된 동공에 모래더미에 걸린 강유월의 발이 보인다.
상대의 신형이 미세하게 흔들린 순간, 현유립은 적운귀수검(赤雲鬼手劍) 지사환무(之蛇幻舞)의 초식을 전개했다.
마치 채찍처럼 휘어지는 검초가 만천검방의 빈틈을 사정없이 찢어발긴다.
카카카카캉!
강유월은 뒤늦게 중심을 잡고 초식을 정비하려 했으나 살짝 늦었다.
도리어 틈이 점점 벌어진다.
이윽고 만천검방을 뚫고 들어온 일검.
서걱!
오싹한 검초가 뱀처럼 허벅지를 휘감고 물러나자 강유월은 억눌린 신음을 토했다.
“큭!”
축이 되는 왼쪽 허벅지가 깊게 갈라졌다.
강유월의 신형이 크게 흔들리며 만천검방의 장막이 완전히 사라졌다.
정면으로 날아들던 검초가 뱀처럼 휘어지며 사선으로 사라졌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강유월은 전신 내력을 남김없이 끌어올렸다.
“함께 가자꾸나.”
수비를 포기한 강유월의 눈에 비장한 각오가 떠올랐다.
탓!
오른발로 지면을 박찬 순간 사라졌던 현유립의 검극이 우측 하단에서 시야로 접어든다.
강유월은 피할 생각조차 않고 추상비(追狀飛)의 초식을 전개했다.
쐐애액!
웅혼한 기운에 휘감긴 검신이 청광을 토해내며 쏘아진다.
목숨을 건 강렬한 기백에 현유립은 미간을 좁혔다.
공격을 이어가면 목숨을 빼앗을 수 있겠지만 자신 또한 치명상을 피할 수 없다.
‘서두르지 않아도 승부는 났다.’
가슴을 찔러가던 검신이 위로 솟구치며 푸른 섬광을 강타했다.
콰앙!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의 신형이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강유월의 두 눈에 절망이 깃들었다.
‘틀렸구나.’
한쪽 다리를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장기전은 필패다.
“쿨럭!”
울컥 피를 토해낸 강유월이 바닥을 뒹굴며 미끄러졌다.
그러나 현유립의 상태도 온전한 것은 아니었다.
‘이름값은 하는구나.’
동귀어진의 결의가 담긴 한 수를 받아쳤으니 내상을 입은 것이다.
지면에 우뚝 선 현유립은 진탕된 속을 다스리며 주변을 살폈다.
‘저쪽은 곧 끝나겠군.’
그의 시야에 담긴 것은 피투성이로 처절하게 바닥을 구르는 유대하였다.
날카로운 창두가 간발의 차이로 허리를 스치며 지면에 틀어박힌다.
쾅!
튀어 오른 모래가 전신을 따갑게 때려온다.
이를 악문 유대하는 비명을 토할 힘까지 아꼈다.
‘조금만 더 버티면 그분이 오실 거다.’
미소를 잃지 않던 이곽은 아까와 다른 사람처럼 표정을 굳혔다.
‘대체 뭐 하는 놈이냐?’
자신이 물러나기만을 기다리며 끈질기게 버티던 상대.
일부러 동굴로 달리는 척 함정을 파고 치명상을 입혔음에도 유대하는 쓰러지지 않았다.
대체 어디에 이런 힘이 남아있는지 무서울 정도의 집념이었다.
곁을 힐끔 쳐다보니 현유립의 싸움은 거의 끝나가는 모양새였다.
‘힘을 아낄 필요는 없겠군.’
이곽은 만일을 대비해 아껴둔 삼 할의 내력까지 남김없이 끌어올렸다.
“너는 할 만큼 했다.”
끌어당긴 창대로 음산한 기운이 쏟아진다.
“그만 끝내자.”
지면을 강하게 박찬 이곽은 전력을 다해 창대를 내질렀다.
창의 궤적을 따라 길게 늘어지는 혈광(血光).
창두에서 피어오른 음산한 기운이 유대하를 덮쳐갔다.
검을 들고 서는 것조차 버거운 유대하의 눈에 절망의 빛이 아른거렸다.
‘이건 못 피해.’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지나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헛웃음이 흘러나온다.
“흐흐…….”
유대하의 가슴을 노리는 창두가 지척까지 접근했을 무렵.
쏴아아!
이곽은 어디선가 물결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이곽!”
현유립의 다급한 외침은 조금 늦었다.
유대하를 찔러가던 이곽의 눈동자가 살짝 옆으로 돌아가는 순간, 사선에서 짓쳐 든 섬광이 정확하게 창두를 후려쳤다.
콰아앙!
“큭!”
창대를 강하게 움켜쥔 이곽이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바닥에 처박힌 이곽이 주르륵 미끄러지자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유대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진짜…… 죽을 뻔했습니다.”
“살았잖아.”
나직한 이 목소리가 지금처럼 반가운 적은 없었다.
바닥으로 드러눕는 유대하의 눈에 모래밭을 걸어오는 진무립이 담긴다.
“잘 버텨줬다.”
전장을 담은 진무립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이제 쉬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