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74)
◈ 74화. 전장을 지배하는 자
처참한 몰골의 유대하, 한쪽 다리가 피로 흥건한 강유월.
입구를 틀어막고 힘겹게 버티는 동료들.
모두 자신을 믿고 따라온 이들이다.
진무립은 들끓는 분노를 억누르며 물었다.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강유월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일세.”
가까스로 내상을 다스린 현유립이 진무립에게 말했다.
“네놈이로구나.”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안다.
진무립은 혼절한 유대하를 들어 강유월의 곁으로 다가갔다.
“잠시 물러나 계십시오.”
어느 때보다 차가운 목소리에 강유월은 진무립의 심정을 이해했다.
“저자는 위험하네. 홀로 상대하는 것은 어려워.”
현유립을 눈에 담은 진무립은 단호하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물러나십시오.”
잠시 머뭇거리던 강유월은 유대하를 받아들고 뒤로 물러났다.
‘산내촌에서 보여준 무위가 진짜라면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야. 언제든 나설 수 있게 준비하자.’
그때 쓰러졌던 이곽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뭔가 날아든다는 것은 감지하고 있었다.
멈추지 않고 공격을 이어갔던 것은 충분히 유대하를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
그러나 진무립의 일격은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고 강렬했다.
막판에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았더라면 팔이 부러졌을 것이다.
“크흐. 제법 아프군.”
앞에는 현유립이, 후방에는 이곽이 진무립을 포위하듯 우뚝 섰다.
은광검을 든 진무립은 왼손으로 유대하의 검을 들었다.
‘쌍검?’
이곽의 눈에 의문이 떠오른 순간, 진무립의 상체가 매섭게 회전하더니 좌수의 검이 이곽을 향해 쏘아졌다.
“같은 수에 당할 것 같은가!”
이곽의 창대가 원을 그리며 맹렬하게 회전했다.
콰앙!
창대에 부딪힌 검이 산산조각나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이곽의 발이 모래밭에 깊은 골을 패며 미끄러질 때, 진무립은 어느새 현유립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쇄도하는 진무립의 전신에서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열기가 피어올랐고.
내지르는 은광검에 깃든 열기는 주변의 공간마저 일그러뜨릴 만큼 강렬했다.
검을 움켜쥔 현무립은 즉시 우측으로 미끄러졌다.
그러자 직선으로 쏘아지던 검극이 순식간에 선회하며 자신을 쫓아온다.
검극에 깃든 강렬한 열기가 눈 깜빡할 사이에 가슴을 파고든다.
상체를 비튼 현유립은 즉시 검을 비껴쳤다.
치잉!
손목을 타고 뜨거운 열기가 밀려든다.
‘이놈은 대체 누구냐?’
진무립의 입가에 오만한 미소가 걸렸다.
“내가 누군지 궁금한 얼굴이군.”
진무립은 스쳐 지나간 검신을 회수하며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파직.
다급하게 물러나는 현유립의 옷깃이 순식간에 잿가루가 되었다.
이번엔 상체를 회전한 현유립의 검신이 진무립의 허리를 베어갔다.
비슷한 형태의 공격이 번갈아 이어졌으나 진무립의 대응은 현유립과 달랐다.
은광검을 순식간에 역수로 고쳐 쥔 진무립은 그것을 옆구리에 바짝 붙였다.
회전하던 그의 검신이 은광검에 충돌하는 순간, 진무립의 좌권이 상대의 팔을 노리고 쏘아졌다.
콰쾅!
연이은 두 번의 굉음이 터지며 진무립은 좌측으로, 현무립은 우측으로 튕겨 나갔다.
“음.”
팔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
지면에 깊은 골을 새기며 미끄러지는 현유립은 나직이 신음을 토했다.
상대의 반격을 감지하고 내력을 끌어올렸으나 침투하는 열양지기는 자신의 상상을 초월했다.
팟!
지면을 박찬 이곽이 길게 미끄러지는 진무립의 등을 기습했다.
날카롭게 찔러오는 등 뒤의 일격, 진무립은 즉시 허리를 비틀었다.
그러자 몸을 비트는 방향으로 창두가 휘어진다.
쐐애액- 파직!
옷자락과 함께 옆구리가 갈라지며 피가 튄다.
이 정도 손해는 예상했다.
진무립은 은광검을 허공에 띄우고 곁을 스쳐 지나간 창대를 잡아갔다.
이곽은 그 의도를 바로 눈치챘다.
“그리 쉽게 내줄 것 같은가?”
손에 닿기 직전의 창대가 밑으로 뚝 떨어진다.
그러자 진무립의 발등이 그것을 올려 찼다.
턱!
‘이런!’
낭패한 이곽의 눈에 창대를 쥐어가는 진무립의 손이 보인다.
손에 힘을 준 이곽은 강하게 창을 끌어당겼다.
“헛!”
너무 쉽게 창이 끌려 온다.
‘속임수!’
부릅뜬 이곽의 동공에 번개같이 회전하는 진무립의 상체가 보였고.
등 뒤로 휘두른 팔꿈치가 그의 머리를 직격했다.
퍽!
이곽의 상체가 구부러진다.
탄력을 받아 하체를 회전시킨 진무립은 오른발로 놈의 뒷목을 내리찍었다.
쾅!
“컥!”
울컥 피를 토하며 바닥에 처박힌 이곽이 한 자 남짓 튕겨 오를 때.
완전히 몸을 돌린 진무립의 우권이 그의 등을 내리찍었다.
콰아앙!
이곽의 몸이 모래밭에 처박히며 굉음을 동반한 흙먼지가 솟구친다.
강유월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 정도였단 말인가?’
아무리 일전을 치른 상대라지만 동굴에 잠입했던 진무립 또한 힘을 쓰지 않았을 리 없다.
온몸에 전율이 일 정도로 압도적이다.
현유립의 표정이 처음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빠르다.’
진무립과의 충돌로 밀려나던 발은 이제야 멈췄는데 그 찰나의 순간 이곽이 쓰러지고 말았다.
서장에 들어온 무인 중 최고수는 강유월인 줄만 알았는데 그보다 더한 괴물이 있었다.
허공에 떠올랐던 은광검이 그제야 진무립의 손에 빨려든다.
은광검을 착검한 진무립은 발이 지면에 닿는 순간 이곽의 창을 움켜잡았다.
팟!
박찬 지면이 들썩이며 모래가 튀어 오른다.
화살처럼 튕겨 나간 진무립의 입술이 작게 달싹거렸다.
‘창?’
강유월의 눈에 의문이 떠오른 순간, 진무립의 발이 길게 미끄러지며 멈춰 서더니 상체가 활처럼 휘어졌다.
“하앗!”
기합성을 토해낸 진무립은 온 힘을 다해 창을 내던졌다.
파아앙!
공간을 찢고 튀어 나간 창이 협곡의 입구로 쏘아진다.
미리 전음을 받고 대비하던 단려화는 그 즉시 두 사람을 데리고 물러났다.
한순간에 길이 열리자 뭉쳐있던 환염대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엎드려라!”
현유립의 다급한 외침이 울려 퍼졌으나 맹렬하게 쇄도하는 창은 이미 그들을 덮쳐가고 있었다.
경악한 무인들의 입이 쩍 벌어지는 순간, 시뻘건 섬광이 밀집된 환염대를 그대로 관통했다.
“크아악!”
창의 궤적을 따라 광풍이 휘몰아쳤고 스치는 모든 것이 처참하게 찢겨 나간다.
순식간에 적을 꿰뚫어버린 창이 절벽에 틀어박혔다.
콰앙!
쩌렁쩌렁한 굉음과 함께 절벽에서 돌가루가 피어올랐다.
‘이, 이게 뭐야?’
부릅뜬 조영성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고 피를 흠뻑 뒤집어쓴 진설란은 요동치는 가슴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말도 안 돼.’
미동조차 없는 시신이 족히 삼십 구가 넘었고 그만한 숫자가 고통에 몸부림친다.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은 전장, 엄청난 일격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고.
진무립에게 경외심을 표하듯 몰아치던 바람마저 잦아들었다.
“크으으…….”
어딘가에서 새어 나온 작은 신음에 정신을 차린 무인들은 이 전장을 지배하는 자가 누군지 확실히 깨달았다.
환염대의 눈에 은은한 두려움이 번졌다.
“괴, 괴물…….”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작은 목소리를 시작으로 술렁임이 점점 커져만 갔다.
“엄청난…….”
“괴물이다.”
조영성의 눈이 희열로 가득 찼다.
그토록 자신들을 애먹이던 적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주먹을 움켜쥔 그는 고개를 치켜들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저분이 바로 사천의 광룡(狂龍) 진무립 공자이시다!”
쩌렁쩌렁한 외침이 협곡에 울려 퍼진다.
광룡 진무립.
모두의 귀에 선명하게 틀어박힌 그 이름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메아리치던 강렬한 외침이 잦아들자 진무립은 쓴웃음을 지었다.
“옥룡이라고 불러라. 이 자식아.”
모두의 눈과 귀가 진무립에게 모여들었다.
일격에 그만한 공격을 퍼부었으니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현유립과 대치하던 진무립의 입가에 이윽고 옅은 미소가 번졌다.
“왔구나.”
문득 등 뒤의 오싹한 사기를 감지한 현유립이 고개를 돌렸다.
“크아악!”
마침내 동굴에서 뛰쳐나온 두 구의 혈야광인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뒤, 뒤를 막아라!”
진무립은 저들이 늦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분명 다섯 구를 깨웠는데 세 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걸치고 있던 적삼조차 모두 찢겨 나간 것을 보면 서로 싸우다가 나온 게 확실했다.
진무립은 즉시 단려화에게 전음을 보냈다.
[입구를 막아.]입구만 막으면 혈야광인과 함께 적을 협공하는 모양새가 된다.
그 말을 알아들은 단려화가 즉시 입구로 달렸다.
“막아야 해요!”
“알겠어요!”
“갑니다!”
그녀의 곁으로 달려간 진설란과 조영성은 남은 힘을 전부 쏟아내 전투를 재개했다.
현유립의 인상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어느 하나 자신의 예상대로 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무립!’
분명 승기를 잡은 것은 이쪽이었다.
그런데 저놈이 나타난 이후 한순간에 전황이 바뀌었다.
‘위험한 놈이다. 저놈만큼은 여기서 처리해야 한다.’
주먹을 부르르 떤 현유립이 발을 내디뎠다.
“결착을 내자.”
그때 절벽의 그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직이면 이놈은 죽어.”
싱긋 웃는 육군명의 어깨엔 혼절한 조위성이 걸쳐 있었다.
‘당했단 말이냐?’
현유립은 기가 차서 헛웃음마저 나올 지경이었다.
“정말 도움이 안 되는 놈들이군.”
육군명은 차분히 전장을 살폈다.
‘안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다.’
협곡의 안쪽까지 볼 순 없었으나 메아리치는 비명에서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강노사는 움직일 상태가 아닌 것 같고, 유대하는 뻗었고.’
그는 우뚝 선 진무립을 힐끔 쳐다봤다.
‘등이 축축이 젖었군. 저놈답지 않게 지켜만 보는 걸 보면 움직일 상태는 아닌 것 같아. 그럼 나밖에 싸울 놈이 없네?’
반면 현유립의 상태는 비교적 멀쩡해 보인다.
자신도 조위성과의 싸움에서 적지 않은 내력을 소모했기에 필승을 장담할 수 없었다.
‘입구의 세 사람도 지친 것 같고.’
자신이 놈과 싸우는 사이 입구가 뚫리면 필패다.
게다가 사라진 당천의 안위도 장담할 수 없었다.
육군명은 신법을 전개해 현유립의 앞에 멈춰섰다.
“협상이야. 이놈과 창잡이를 돌려줄 테니 물러나라.”
“내가 응할 것 같은가?”
“살리고 싶어서 멈춘 거 아니었어?”
“…….”
그의 말처럼 혈위사신을 이곳에서 다 잃을 수는 없었다.
조위성을 쓰러뜨린 놈이라면 결코 만만한 자가 아니다.
거기에 진무립까지 굳건히 서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이대로 싸우면 필패다.
‘천태무. 이놈은 대체 뭘 하는 거냐?’
늘상 자신과 대립하던 놈이었지만 그라도 있었다면 상황이 나았을 것이다.
‘환염대는 틀렸다. 혈위사신이라도 살려야 한다.’
생각을 정리하고 보니 참으로 처참한 패배다.
진무립을 죽일 듯이 쏘아본 현유립은 화를 억누르며 착검했다.
“내놔라.”
“좋은 판단이야.”
그를 주시하며 뒷걸음친 육군명은 죽은 듯 누운 이곽의 옆에 조위성을 내려놓았다.
육군명이 천천히 물러나자 현유립은 분노를 곱씹으며 동료들에게 다가갔다.
이곽과 조위성을 양어깨에 걸친 현유립이 진무립을 노려보며 말했다.
“진무립. 서장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네놈은 반드시 이곳에 뼈를 묻게 될 거다.”
진무립은 피식 웃기만 할 뿐 답하지 않았다.
섬뜩한 경고를 남긴 현유립이 몸을 날렸다.
“현공! 현공!”
애타는 사환의 외침이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으나 현유립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져 갔다.
[내게 맡기고 쉬어.]전음을 남긴 육군명이 입구로 달려가자 가까스로 서 있던 진무립이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가까스로 버티고 서 있었으나 실상은 입을 여는 것조차도 버거운 상태였다.
‘이건 무슨 조화냐?’
동굴에서의 싸움에 이어 위기에 빠진 동료를 구하고자 다소 과하게 내력을 쓴 건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창을 던질 때 한순간 단전의 두 기운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분명 열양지기를 끌어올렸는데 음한지기까지 동시에 끌려나갔다.
지금 진무립의 몸속에선 두 기운이 엉키고 흩어지길 반복하며 전신 혈맥을 누비는 중이었다.
가부좌를 튼 진무립은 두 기운을 단전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달려가며 그 모습을 본 육군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서 있을 힘도 없는 주제에 허장성세로 적을 농락하다니. 정말 대단한 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