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백원마수, 천살귀마곡 (2)
운해의 절기라고 하루 종일 안개가 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떨 때는 안개가 무척 짙고, 정오가 되면 조금 옅어지며, 밤이 되면 그나마 시야가 넓어진다.
암천추살대 삼조는 결국 백원마수를 놓쳤다.
거의 잡기 직전까지 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아쉽기 그지없었다.
추살대의 삼조장은 등에 멘 봇짐의 무거움을 새삼 느꼈다. 부하 둘의 수급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모두 백원마수를 쫓다가 역으로 당한 것이다.
극마지경에 든 마인도 여럿 잡아 죽여 본 삼조였다.
이렇게 희생이 큰 것은 상대의 특이함 때문이었다. 놈은 안개를 꿰뚫어 보며 목소리를 변조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암구호를 새로 정하고 2인 1조로 움직인다. 미쳤다고 해도 흉악한 자다. 경계를 잃지 않도록.”
백원마수는 진마궁 계파의 강자였다.
극마지경에 오른 그는 마공을 익히다가 주화입마에 들었다. 교를 탈출해서 추살령이 걸렸다.
삼조에게도 오랜만에 배정된 거물이었다.
희생은 각오했으나, 더 이상의 희생을 원치는 않았다.
“어차피 그자가 향할 곳은 뻔하다. 빙글빙글 돌고 있지만 분명 천살귀마곡으로 향하겠지.”
백원마수는 미치기 전에도 천살귀마곡에 집착했다.
수많은 추살 경험이 있는 삼조 조장에게는 그의 목적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우리는 미리 남쪽으로 향한다.”
그의 명에 따라 추살대원들이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진격은 무척이나 쾌속하고 은밀했다.
추적을 위해 서로 거리를 유지하고 넓은 지역을 살펴 가던 도중 독특한 흔적을 찾아냈다.
삐이익-!
삼조장은 호각 소리가 울린 곳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누군가 다녀간 자취가 있었다.
모닥불과 야영의 흔적이다.
“백원마수는 아니고…….”
백원마수는 날고기를 씹어먹었을 것이다. 모닥불에는 취식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세 명이군……. 한 명은 여자야. 이곳의 촌민은 아니고. 족적이 얕은 것으로 봐선 무인일 테니, 중원인이겠군.”
조장은 순식간에 머물다 간 자들의 신상을 알아냈다. 분명 정파인들이라는 것까지도.
그들이 왜 이곳까지 찾아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혹시 교에서 선전포고를 했던 것과 연관이 있을까.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어. 근처에 있나.”
타고 남은 장작에는 온기가 남아 있었다. 삼조장은 일어섰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백원마수가 이들을 노릴지도 모르겠군.”
천살귀마곡에 자격이 없는 마인이 들어가면 필히 죽었다.
백원마수가 그것을 모를 리는 없었고, 지금쯤 혈제(血祭)를 위한 제물을 구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노릴지도 모른다.
삼조의 입장에서는 어부지리를 취할 기회일 수 있었다.
“한층 더 은밀하게 움직인다. 백원마수를 발견하더라도 호각은 자제해라.”
삼조장의 명령이 떨어지고, 추살대원들이 다시 움직였다.
* * *
능지평 일행은 일렬로 움직였다.
선두에는 가장 경험이 많은 능지평이 섰다.
중간에는 암기와 독을 쓰기 좋도록 당은설이 섰고, 후위는 팽구인이 맡았다.
“갑자기 이토록 짙은 안개라니…… 일단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려 보지.”
능지평이 곤란한 듯 말했다.
며칠 전부터 안개가 심하게 끼고 있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방향을 가늠하고자 했지만 안개 때문에 보이는 게 없었다.
“아무래도 곤륜파로 가는 길에서 벗어난 듯한데요.”
“음.”
당은설의 지적이 맞았다.
능지평이 산전수전 다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곳 곤륜산맥 깊숙이까지 와 본 적은 없었다.
지남철과 지도가 있어서 여기까지 찾아왔지만, 운해의 절기는 예상치 못한 것이다.
“해가 오르면 안개가 걷힐 줄 알았는데.”
팽구인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고지대에서 보이는 곤륜산맥은 장관이었다.
마치 구름의 바다가 펼쳐진 듯했다. 안개를 뚫고 솟아오른 봉우리들은 천계의 섬들 같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곤륜파를 향해야 할 이들에게는 답답하기 그지없을 뿐이었다.
“일단 내려가지.”
그나마 지남철(指南鐵: 나침반)이 있어서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게 행운이었다.
길에서 크게 벗어난 적은 없으니, 서남쪽으로 향하다 보면 곤륜파에 가까워질 터.
다시 선두에 선 능지평을 따라 여정을 재개했다.
안개를 헤치고 산행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날카로운 바위는 마치 칼날 같아서 넘어진다면 크게 다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발을 헛디뎌 자빠질 만큼 어설픈 자는 없었다.
일행은 안개 속을 묵묵히 걸었다.
간격이 그리 넓지도 않은데 종종 앞사람의 위치를 놓치기도 했다.
어느 정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야, 곤륜파 도인들은 힘들겠네. 이러니까 용봉지회에도 안 오지.”
뒤에서 팽구인이 그리 중얼거렸다.
심심한 여정에서 대화를 나누자는 뜻이었다.
익숙한 일이었기에 당은설은 대충 대답했다.
“그러게요. 차라리 운남이 낫겠어요.”
“그러고 보니 운남의 오독문에서 수련했다고 했지.”
잠시 동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오독문에서의 수련 과정을 자세히 말하고 싶지는 않았던 탓에, 당은설은 대충 말을 돌렸다.
대화가 멎고 또 침묵이 지속되었다.
팽구인이 또다시 말을 걸었다.
이번에는 더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소저, 등에 벌레가 붙었네.”
“네?”
“큼지막한 벌레가 붙었어. 으, 징그러.”
보통 사람이라면 화들짝 놀랐겠지만. 당가의 자손이 벌레 따위에 놀랄 리가 없었다.
당은설은 멈춰서 등을 쓸었다.
벌레는 없었다.
“없는데……요?”
그러곤 멈칫 굳었다.
뒤에는 팽구인이 없었다.
만약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안개를 뚫고 벌레를 알아봤을까.
“으흐흐.”
안개 속에서 팽구인의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사람의 인영이 확 튀어나왔다.
기형적으로 팔이 긴 괴인, 백원마수였다.
휘리릭!
당은설은 반사적으로 품속의 암기를 흩뿌렸다.
실전을 위해 극독을 발라 둔 철침이 비산했다.
한 군데라도 맞으면 성치 못할 것이다.
“하하핫!”
하지만 괴인은 양팔을 빠르게 휘저을 뿐이었다.
소매가 펄럭이면서 진기를 담은 비침이 너무도 쉽게 튕겨 나갔다.
당은설이 경악했다.
‘단포철삼!’
옷자락이나 소매 등에 진기를 불어넣어 단단하게 만드는 무공이다. 하늘거리는 천에 진기를 불어넣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상대는 고수임이 분명했다.
당은설이 이를 악물고 다음 수를 준비했지만 이미 거리가 너무 가까워졌다.
그때, 안개를 뚫고 팽구인이 등장했다.
“이 미친놈이!”
그는 벼락같은 고함과 함께 그 덩치로 백원마수를 들이받았다.
바위가 바위와 부딪치는 듯한 요란한 소음이 울리고, 백원마수가 튕겨 나갔다.
그러나 백원마수는 바닥을 구르기는커녕 쉽게 착지해서 안개 속으로 몸을 숨겼다.
팽구인은 도를 뽑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눈썹을 찡그렸다.
왼쪽 팔이 뜨끔했다. 어깨를 부딪친 그 순간에 오히려 역습을 당한 것이다.
그는 백원마수가 사라진 쪽에 대고 외쳤다.
“웬 놈인지 모르겠지만 정체를 밝혀라!”
당은설과 팽구인은 감각을 끌어올리며 주변을 살폈다.
괴인이 안개 너머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동료끼리 모여야 했다.
“으히히히!”
그때, 한쪽에서 괴인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도를 뽑아 겨누고 암기를 뿌릴 준비를 한 순간.
“이런, 무슨 일인가!”
능지평이 반대쪽에서 달려왔다.
아니, 팽구인은 순간 그렇게 착각했을 뿐이었다.
“잠깐!”
천만다행으로 당은설이 새파란 분말을 뿌렸다.
분말은 바람을 타고 그 방향으로 흘렀다.
“무슨……!”
“능 대협이 있던 방향은 저쪽이 아니었어요.”
상황을 이해한 팽구인의 낯빛이 새하얘졌다.
그렇다면 괴인은 적어도 순식간에 위치를 바꿀 정도로 재빠른 것이다. 혹은 기괴한 음공을 쓰던가.
그 증거로 진짜 능지평이 나타났다.
그는 조용히 검을 내려 쥔 자세였다.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당은설은 곧바로 상황을 보고했다.
“환미천분을 뿌렸어요.”
환미천분은 당은설이 가지고 있는 극독 중 하나였다.
“성공했나?”
“확실하지 않아요. 만약 조금이라도 들이마셨으면 중독됐을 거예요.”
능지평의 목소리를 위장했던 기습이 허를 찔렀던 만큼, 당은설의 역습 역시 날카로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은설은 용독의 성공을 자신하지 못했다.
“아주 팔딱거리는 놈들이구나. 이히히히”
안개 속에서 괴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은설이 얼굴을 찡그렸다. 상대는 독에 당하지 않았거나, 당했더라도 효과가 적었을 것이다.
“내 이름은 백원마수다. 이히, 거사를 앞두고 젊은 연놈들을 만나게 될 줄이야.”
괴인의 본래 목소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불쾌했다.
“혈제를 올릴 제물이 필요했는데, 여기서 한 놈을 잡아가야겠구나.”
절정 고수가 셋이나 된다. 하지만 괴인은 마치 돼지 한 마리를 잡아가겠다는 것처럼 말했다.
능지평이 조용히 전음을 했다.
-틀림없는 마인이군. 이제 전음으로 대화하지.
마인과 마주친 경험이 없는 당은설과 팽구인은 긴장했다.
-사방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어. 육합전성과 비슷한 수법이라면 극마지경, 초절정 고수라고 상정해야 해.
“어떤 놈을 골라 갈까!”
능지평의 침착한 전음, 그리고 광기 어린 백원마수의 목소리가 대비되었다.
능지평은 차분하게 대처 방법을 설명했다.
-……우리가 셋이니 상대하지 못할 것은 없네. 당 소저는 그 물건을 가지고 있나?
당은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품고 있는 당가의 물건 중 귀하지 않은 게 없지만. 감히 물건을 아낄 상황이 아니었다.
-그걸 쓰도록 하지.
능지평은 당은설의 옆에 검을 들고 섰다
그는 무영검각의 검술로 초절정을 바라보고 있는 고수이니, 상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정도는 가능했다.
당은설은 능지평을 믿고 품속의 물건을 꺼냈다.
“이히히히!”
사방에서 혼란스럽게 웃음소리가 울리는 순간.
당은설이 재빠르게 무언가를 던졌다.
밤톨만 한 도자기 병이 전후좌우로 날아가 나무, 바위, 바닥 등에 부딪혀 깨졌다.
깨진 곳을 중심으로 검붉은 액체가 확 퍼지더니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 화력이 가히 화약과 다를 바 없었다.
화아아악-!
불꽃이 번지며 안개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가려졌던 시야가 일순간 회복되고, 위치가 드러난 백원마수가 얼른 행동에 나섰다.
당은설에게 달려든 것이다.
능지평은 재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스겅-
하지만 능지평의 검 끝은 백원마수의 코앞을 베고 지나갔다.
백원마수는 당은설을 노리던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목표는 팽구인이었다.
백원마수가 자신에게로 방향을 틀자 팽구인도 얼굴을 굳혔다.
그의 오호단문도도 이미 절정에 올랐다.
도에 도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완벽한 초식으로 백원마수의 몸통을 베어 나가려던 순간.
“푸후-!”
백원마수의 입에서 검은색 액체 같은 게 뿌려졌다.
팽구인은 대경실색해서 도를 휘둘렀다.
동시에 얼굴을 숙였지만, 이미 미세하게 분사된 독액을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기도가 타는 듯 고통스러웠고, 백원마수의 팔이 팽구인의 몸 곳곳을 두드렸다.
퍼버벅-
팽구인은 마혈을 점혈당해 통나무 꼴이 되었다.
백원마수는 자신보다 덩치가 큰 큰 팽구인을 짊어졌다.
그리고 뛰쳐 오르는 순간.
능지평의 검과 당은설의 비침이 날아들었다.
서걱-
파바박-!
이번에는 백원마수도 피할 수 없었다.
왼손으로 능지평의 검을 막았지만, 손가락 세 개와 손바닥 반쪽이 뎅강 날아갔다.
비침 열 개 중 두 개가 그 팔에 박히기도 했다.
“으히히히!”
하지만 백원마수를 막지는 못했다.
고통도 모르는 듯, 그는 팽구인을 등에 메고 휙 뛰쳐나갔다. 그것도 당은설이 불을 낸 곳을 향해서.
두 사람은 팽구인의 머리카락에 화르륵 불이 붙은 것을 보았다.
능지평과 당은설도 얼른 따라붙었다.
하지만 불꽃을 피하느라 약간 지체했기 때문일까. 순식간에 백원마수의 행적을 놓쳐 버렸다.
능지평은 얼른 바닥의 핏자국을 보며 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조차 한계가 있었다.
“……핏자국은 여기까지군.”
“엄청난 경공이었어요.”
백원마수는 암천추살대의 추적마저 뿌리친 걸물이었다. 그가 싸우려 했다면 능지평과 당은설이 되레 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둘은 그저 낙담하기만 했다.
이 짙은 안개만 아니더라도 놓치지는 않았겠지만, 능지평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설마 이곳에서 팽구인이 납치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당은설은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대신 심호흡을 할 뿐이었다.
“소저는 침착하군.”
“흐읍, 후우우.”
하지만 능지평의 생각처럼 당은설이 침착하기 위해 심호흡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냄새를 맡고 있었다.
“저쪽으로 가지요.”
“……방향을 알 수 있나!”
“아까 불을 낸 구마유는 냄새가 지독한 물건이에요. 그 불길을 뚫고 갔으니 몸에 냄새가 안 밸 수 없죠.”
당가 사람의 단련된 후각은 번견 이상이다.
능지평의 얼굴이 밝아졌다.
“쫓아가 보죠.”
그들은 백원마수를 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