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382)
382화 사망도, 수리방 (3)
“이, 이 개자식! 실력을 숨기고 있었냐!”
수리방 무인 중 사망도를 알고 있던 누군가가 그리 외쳤다.
이강은 잠시 머뭇거렸다.
“어, 숨기고 있었어.”
“음습한 자식……!”
수리방의 무인들은 무척 억울한 표정이었다.
그들로서는 농락당한 기분일 것이다.
힘을 숨긴 낭인, 사망도가 그들의 대주를 일수에 해치웠으니.
“너희 둘도!”
힘을 숨긴 건 사망도뿐이 아니었다.
들어 본 적도 없는 귀검이니 낭아부이니 하는 것들도 모두 조극영보다 강했다.
무인들은 자신들이 살인멸구 하던 것은 잊고, 낭인인 사망도 일행에게 당한다는 것을 무척 수치스러워했다.
이강 일행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반응이었다.
어느덧 유일하게 살아남은 그 무인은 공포에 떨면서도 버럭 소리를 쳤다.
“방이…… 고령궁이 너희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이 파천도에 있는 한! 교 전체를 적으로 돌린 것이다!”
“내 말이 우습나!”
이미 이강은 마교 전체를 적으로 두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곧 죽을 목숨이니.
파박!
담현이 무인의 아혈과 마혈을 짚었다.
그는 놀랍게도 발가락으로 점혈을 하는 기예를 보여 주었다.
풀썩 고꾸라진 무인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어 눈알만 데굴거렸다.
“그 수리방이 고령궁 산하라고 했지.”
“왜 사람들을 납치하는 건지 알고 있나?”
무인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담현의 말을 통해 그들이 낭인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나도 쓸데없이 널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말해 주면 살려 주지.”
마혈과 아혈이 동시에 짚인 지금이다.
무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눈동자를 돌리거나 눈을 깜빡이는 것뿐이었다.
그것을 잊은 것일까.
담현은 감탄했다는 표정을 짓고 말했다.
“고집이 세군, 기개가 있어. 그래도 마지막으로 경고하겠는데, 말하는 게 어때?”
무인이 필사적으로 눈을 부릅뜨고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였다.
담현은 아예 탄성을 터뜨렸다.
“눈도 깜짝 안 하는군. 좋아! 존중해 주지.”
담현은 무인을 어깨에 짊어 멨다.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이놈이랑 이야기 좀 하고 올게.”
이강과 고요자에게 그리 말하고 그는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이강은 갈동탁의 구속을 풀어주었다.
“뒤처리 좀 하자.”
“끄응.”
갈동탁은 몸이 찌뿌둥한 듯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벌떡 일어섰다.
이강 일행은 시체를 묻고 혼혈이 짚였던 양민들을 깨웠다.
납치된 이들은 기력이 많이 쇠해 있었음에도 연신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여기, 은자를 좀 줄 테니 여비로 쓰십쇼. 일찍 구해 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은공 덕택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청년들은 은자를 받아 들며 눈물을 죽죽 흘렸다.
파천도로 함께 향할 수는 없으니, 그들은 알아서 각자도생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마교에 끌려가는 것보다는 이렇게라도 목숨을 건지는 게 백배 나았다.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깊이 절했다.
수리방 무인들은 중원까지 떠날 물자를 충분히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챙겨서 떠나갔다.
가는 길이 험하니 대막을 건너지 못할 수도 있고, 혹은 마교의 무인들에게 발각되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운이 좋다면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그들은 탈출한 것이 무엇보다 기뻐 보였다.
떠나가는 그들을 보며 이강은 묘한 감상을 느꼈다.
저들은 이강에 의해 구해졌지만, 그의 동생은 아직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하준은 지금 파천도 내에 있을 것이다.
이강은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바로 차렸다.
“으음 …….”
갈동탁이 신음을 흘렸다.
여정 동안 고생이 많았는지 살이 쭉 빠진 모습이었다.
“아, 아니야.”
이강이 물었지만 갈동탁은 괜찮다는 듯 몸을 다시 일으켰다.
이강은 잠시 그런 갈동탁을 보다가 다시 채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파천도.
파천도의 이름이 천마의 젊었을 적 별호, 파천신마(破天神魔)에서 기원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들이 스스로 부르는 마교의 이름부터 천마신교(天魔神敎)이다.
이곳에서 천마의 위상은 신과 같았다.
독특한 일이었다.
본디 무인들이란 스스로의 정신과 육체를 갈고닦는 이들이다.
실제로 초절정 이상의 고수가 된다면 평범한 인간들과 격을 달리하는바, 신앙이 있는 고수들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마신교의 본궁인 만마전(萬魔殿)에는 거대한 천마의 초상화며 그의 조각상들이 있다.
궁주들마저 그 조각상 앞에서는 예를 표한다.
진마궁주는 천마의 부활을 꿈꾸며 매달리기까지 했다.
별다를 것 없는 이유였다.
인간을 초월한 절대고수들에게도, 천마의 경지는 닿을 수 없을 만큼 드높았기 때문이다.
규격 외의 강자.
불세출의 무신(武神).
그것이 천마 조광의 위상이었다.
천마에 대한 기록이 어떤 곳보다 세세하게 남아 있는 이곳 천마신교에서 천마는 그야말로 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교주전.
그런 천마의 후신이며, 현 교주인 일월신마 천무도가 기거하는 곳이 만마전의 안쪽에 있었다.
강자존을 숭상하는 마교에서, 약자는 결코 교주가 될 수 없었다.
십만 마교도의 정점에 오른 절대고수만이 교주가 될 수 있다.
천마 사후의 교주 중 탈마지경이 아니었던 교주는 없었다.
당연히, 일월신마 천무도도 탈마(脫魔)의 경지에 오른 마인이었다.
한때 천하를 호령하고 만마 위에 군림했던 일월신마.
지금까지도 그가 마교의 최강일까?
그것은 확신할 수 없었다.
일월신마는 늙었다.
나이 많은 고수는 그 쌓인 경륜이며 내공만큼 위험하다는 것이 상식이겠지만, 일월신마는 늙어도 너무 늙었다.
쌔액- 쌕-
교주전에는 갑갑한 숨소리가 울렸다.
탈마의 고수가 낼 법한 호흡이 아니었건만, 그것은 분명 태사의에 기대 있는 일월신마의 숨소리였다.
일월신마의 체구는 장대했다.
풍채가 좋다기보다는 살이 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보통사람 두 배쯤 되는 체구에는 황제나 입을 법한 화려한 장포를 둘렀다.
보랏빛 비단에는 금실로 자수가 새겨져 있었다.
일월(日月), 태양과 달이 옷에 그려져 있었고, 머리에는 화려한 면류관을 쓰고 있다.
면류관에 구슬이 꿰어진 수실을 류(旒)라고 한다.
왕은 아홉 개의 류를 달고, 황제는 열두 개의 류를 단 면류관을 쓴다.
교주의 면류관에는 무려 열세 개의 류가 늘어져 있었다.
일월신마의 위상을 알 법했다.
하지만, 황제 이상으로 군림하고 싶어 하던 일월신마의 주름진 얼굴은 통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윽.”
그는 이상한 숨소리를 흘렸다.
그때, 일월신마의 옆에 있는 어린 시비가 능숙한 솜씨로 그의 팔뚝에 바늘을 꽂았다.
바늘은 액체가 통과할 수 있도록 미세한 구멍이 뚫린 원통형이었다.
그리고 그 바늘은 말린 사슴의 핏줄과 연결되어 있었다.
사슴의 핏줄은 투명한 수정 용기로 이어졌다.
용기에 담긴 붉은 액체를 천천히 몸에 주입할 수 있도록 만든 점적(點滴) 치료법이다.
붉은 액체가 혈관으로 주입되자, 일월신마의 표정이 스르르 풀렸다.
“확실히 통증이 완화되는군. 효과가 좋아.”
“다행입니다.”
일월신마 앞에는 누군가가 부복해 있었다.
“자네가 고생했지. 흑수태의에게는 포상을 보내게.”
흑수태의라 함은, 천주신의, 금침의괴 등과 함께 천하사대신의 중 일인이었다.
일월신마에게는 천하사대신의가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적괴가 뼛속까지 전이되었다는군. 전신의 골수를 씻어내지 않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말했어.”
“이겨내실 수 있을 줄 압니다.”
“후후…… 아니, 이대로는 안 돼.”
적괴라 함은 암(癌)을 의미한다.
정종무공을 익힌 정파의 고수들이야 정정하게 장수하는 법이다.
하지만 마공을 익힌 마인들은 노화와 질병을 피하지 못했다.
“겨우 석 달 남았다더군. 흑수태의 그자가 말했어. ……돌팔이 같은 놈!”
일월신마의 정신은 통증과 약 기운으로 오락가락했다.
그의 앞에 부복한 사내는 침묵했다.
일월신마는 조금 전 흑수태의에게 포상을 내리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사실 흑수태의는 이미 죽었다.
일월신마 본인이 격분해서 때려죽인 것이다.
천하사대신의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은 것은 너무도 덧없는 일이었다.
일월신마가 거세게 기침을 하곤 입을 열었다.
“방법은 하나뿐이네, 그치……?”
“복원한 천마진경을 완성하는 수밖에 없어…….”
전설적인 무신, 천마의 무공은 온전히 전해지지 못했다.
중요한 절기들이 유실되었고, 가장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심법은 후반부의 절반이 찢겨 나가 있었다.
교주가 익힌 것 역시 천마진경의 전반부에 불과했다.
“그것을 완성하시면 교주님께서도 완벽한 육체를 얻으실 겁니다.”
천마진경을 익히는 자는 환골탈태를 할 수 있다.
내려오는 전설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천마진경을 대성하면 영혼을 다룰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후인들은 그것으로 천마가 영혼을 찢어 스스로를 봉인한 것이 아닌가 추정할 따름이었다.
일월신마를 포함한 역대 교주들은 천마진경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 9할 정도를 복원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문제가 있었으니, 천마진경을 익히고자 시도한 이들은 모두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것이다.
그런 천마진경을 검증하기 위해 수백 명이 희생되었다.
“준비는 잘되고 있나?”
“실험체들을 모았습니다. 특급이 셋, 일급이 스물 남짓입니다.”
마교 최고의 두뇌를 지닌 군사(軍師)가 일월신마와 힘을 합쳐 그 실험을 도왔다.
수백 년 동안 반복된 실패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천마의 영혼 조각과 납치해 온 외부의 기재들을 활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 내겐 자네밖에 없어, 마뇌.”
마뇌(魔腦).
정확한 별호는 쌍두마뇌(雙頭魔腦).
부복해 있는 등 굽은 노인이야말로 천마신교의 총군사이자 고령궁의 궁주인 쌍두마뇌 염공이었다.
“교주님이야말로 신교의 태양이자 달이십니다.”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쌍두마뇌의 오른쪽 어깨에는 불룩 솟은 거대한 종기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그 종기에는 사람의 얼굴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그는 사실 이형(異形)으로 태어난 자였다.
그렇기에 쌍두마뇌라는 별호를 얻은 것이다.
“그래, 그렇지. 성과를 기다리고 있겠네, 쿨럭.”
일월신마는 피 섞인 가래를 입가로 흘렸다.
“나는 살아야 해…… 꼭.”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천마진경에 매달리는 모습.
천마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교도들의 사명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면모.
주름진 일월신마의 얼굴은 추하기 그지없었다.
쌍두마뇌는 교주전에서 물러났다.
그토록 공손하고 비굴했던 모습은 교주전을 나오자마자 씻은 듯 사라졌다.
그의 머릿속에는 앞으로의 ‘실험’을 어떻게 진행해야 될지만이 가득했다.
사실, 고령궁의 궁주가 죽어 가는 교주에게 그토록 공손할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교주 역시 쌍두마뇌를 이용하듯, 쌍두마뇌 역시 교주를 이용할 뿐이었다.
천마의 혼백조각, 그것을 꽁꽁 숨겨 두고 있던 것이 일월신마였기에…….
이제 그것을 손에 넣었으니 실험만 하면 된다.
잡아 온 실험체들의 몸에 그 혼백조각을 이용해 천마진경을 운기시킬 것이다.
태반이 죽어 나가겠지만 상관없었다.
그 과정에 얻어 낼 것들이 마뇌의 목표였으니.
쌍두마뇌가 씨익 웃는 순간이었다.
“마뇌.”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만마전, 파천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외곽의 복도를 누군가가 가로막고 있었다.
근육질의 몸. 특히 우람한 팔뚝.
저 중년인이야말로 또 다른 탈마지경의 마인인 진마궁주 요대순이었다.
마뇌와 가장 사이가 안 좋은 사람 중 하나였다.
“또 무슨 간교한 혀 놀림으로 교주를 꼬드긴 것이지?”
마뇌를 추궁하는 듯한 목소리에 적의가 담겨 있었다.
마뇌는 여유롭게 받아쳤다.
“후후, 꼬드기기는 무슨.”
“본분을 잊지 마라. 천무도는 욕심에 미친 자야. 천마께서 부활하시지 못한 것도 그의 탓이다.”
마뇌의 눈이 가느다랗게 찢어졌다.
그 역시 진마궁주를 싫어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진마궁주는 미친놈이었기 때문이다. 천마를 부활시키겠다고 날뛰는 미친놈.
그렇기에 날카롭게 핀잔을 주었다.
“그것은 방사들 하나 관리 못 한 진마궁주 그대 책임 아닌가?”
“……크윽.”
진마궁주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칠대선의 실패는 그의 가장 큰 아픔이었다.
그가 다시 말을 꺼내려던 순간.
“안 비켜 줄 거면 내가 돌아가지.”
마뇌가 주저 없이 난간 위로 뛰어올랐다.
그 아래는 가파른 절벽이었지만 마뇌에게 문제가 될 리는 없었다.
과연 내려다보니 마뇌는 가볍게도 절벽을 타고 내려갔다.
진마궁주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젠장.”
날이 맑아 파천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마교가 중원을 침공하게 된 것도, 천마의 부활이 실패한 것도. 찜찜하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