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69)
69화 풀리지 않는 매듭 (1)
태상장로 백영령이 충격을 받아 혼절하면서 장로회의는 그렇게 파장이 났다. 좌충우돌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일이었다.
아쉽게도 태상장로와 불사신검 간의 해묵은 인연을 풀 수는 없었지만, 이강은 만족했다. 태상장로가 깨어난 뒤에 이야기를 다시 나누면 되는 일이었다.
백진태는 집법당에 구금되었으며 그의 심복인 일기대원들에게도 가혹한 심문이 이어졌다.
말이 심문이지 고문이나 다름없었는데, 놀랍게도 일기대원들은 가문이 아니라 백진태 개인에게 충성하고 있었다.
몇몇은 백진태의 내통을 알고 있었고 배신에 가담하기까지 했다. 그들에게는 가혹한 심문이 가해졌다.
조사는 다방면으로 진행되었다. 백진태가 접촉한 의문의 단체를 알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단서를 거의 찾지 못했다. 백진태 스스로도 그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했다. 그저 흑암(黑暗)이라는 자가 간부로 있으며 일호부터 오호라는 수하를 두고 있다는 것뿐.
백진태는 정기적으로 삼호라는 자와 접촉했다. 집법당에서는 백진태가 그와 접촉했던 주루를 찾아갔다.
하지만 주루는 간밤의 화재로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뒤져 보았지만 주방장이었던 귀머거리 노인의 시체만 나왔다.
남은 단서는 백진태가 받은 가면과 성약이라는 약물뿐이었다.
「평범한 물건은 아니구나.」
가면에 대한 불사신검의 평가였고, 이강 역시 동의했다.
은침이 박혀 있는 가면은 생김새 이상으로 기괴한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보패인지는 모르겠지만 독특한 용도가 있는 듯했다.
그리고 백진태의 약병에 남아 있던 성약 역시 조사했다. 의약당의 의원들이 전부 모여서 그 성분을 파악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 결과는 불명(不明). 애초에 약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백진태가 증언하길, 수상한 단체가 보패로 만든 약물이라고 했다.
「만병통치약이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느니라.」
‘그런데 그 사람의 상처가 순식간에 회복되긴 했잖아요.’
성약의 효과를 알게 되었을 때, 이강은 그 약을 하준이나 아버지에게 쓰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일시적으로 회복할 수야 있겠지. 그러나 꿈같은 이야기일수록 더 의심해 봐야 하는 법이다.」
불사신검의 이야기가 맞았다. 겨우 며칠이 지나자마자 밝혀졌다. 성약이 얼마나 위험한 물건이었는지.
백진태에게 금단증상이 온 것이다.
아무리 고문을 받았다고 해도 며칠 사이에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지고 눈이 퀭해졌다. 멀쩡한 이빨이 빠지기도 했다. 웃는 광증은 더욱 심해져서 고문을 받으면서도 웃었다고 했다.
반면, 다행히도 백류산의 상태는 많이 나아졌다. 이제는 누군가의 부축 없이도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멍청한 놈.”
이강의 앞에서 걷고 있던 백류산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강에게 하는 것은 아니었고, 백진태를 떠올린 듯했다.
그와 이강은 집법당 안에 있는 뇌옥을 향하고 있었다. 뇌옥을 지키는 간수가 가주를 알아보고 황급히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 안으로 들어가기 전, 가주는 이강에게 조용히 말했다.
“굳이 네가 함께 올 필요는 없다.”
“괜찮습니다.”
“……녀석.”
백진태는 이강의 시비를 죽이고 동생을 찔렀다. 이강은 아직 숙부와의 매듭을 풀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뇌옥의 복도를 지나갈수록 피 냄새가 지독해졌다. 종종 분변의 고약한 악취까지 났다.
그리고 뇌옥의 가장 깊숙한 곳.
적룡단주로서 강호에서 이름을 떨쳤던 백진태가 초라하게 묶여 있었다.
봉두난발로 풀어헤친 머리. 고문으로 인해 부어오른 얼굴. 복부의 기해혈에는 말뚝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흐.”
백진태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들까지 데리고 왔군. 날 비웃으러 왔소?”
“네가 자백한 것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러 왔다.”
동생의 꼴이 그렇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백류산의 안색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여태까지 알아낸 사실들을 확인했다.
흑암이라는 자와, 여태까지 만났던 자들의 인상착의. 그들의 무공. 만났던 경로. 정보를 습득한 출처. 충성을 받아낸 적룡단원들.
백진태는 킬킬 웃으면서도 순순히 답해 주었다.
확인이 끝나고 나자 침묵이 흘렀다.
“……성아가 죽은 일 때문에 그런 것이냐?”
죽은 여동생의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다름 아닌 백류산이었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던 백진태가 얼굴을 확 치켜들었다. 그는 환히 웃고 있었다.
“하하, 닥치쇼, 형님.”
“몇 번이나 말하지만 그건 네 오해야.”
“닥치라니까!”
“나라고 그 아이를 죽게 하고 싶었겠느냐!”
백류산도 이번에는 마주 언성을 높였다. 성아는 20년도 전에 죽은 그들의 여동생 이름이었다.
당시 소가주였던 백류산의 지휘 이후에 여동생이 죽고, 백진태는 머리에 갈고리가 박혔다.
그 이후로부터 무언가 비틀렸음이 틀림없었다.
두 형제는 과거 일에 대해서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네가 그랬느니, 아니, 그렇지 않았다느니.
「다 늙은 놈들이 다투니 보기 좋지 않구나.」
이강 옆의 불사신검이 그렇게 평할 정도였다.
하지만 말다툼에는 결착이 나지 않았다. 워낙 오래된 일이기 때문일까, 서로의 기억이 다른 부분마저 있었다.
“20년 전 일이다, 20년이 되었어! 지금 와서 어쩌라는 것이냐!”
답답한 듯 백류산이 그리 말했다.
그러자, 여태까지 맞서 싸우던 백진태가 우뚝 입을 다물었다.
그는 웃음을 억누르려는 듯 코피를 주륵 흘리더니 말했다.
“그래, 형님 말이 맞아. 20년이나 지난 일이지.”
“…….”
“20년 전에 그 아이가 죽은 뒤로 끝난 거야. 이제 와서 바꿀 수는 없어.”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의 말이 맞았다. 지금 와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잘못 매인 매듭은 삭고 썩어서 더 이상 풀 수 없게 되었다. 칼로 자르지 않는 이상.
백진태의 시간은 여전히 20년 전에 머물러 있었다.
“진태야.”
백류산은 더 이상 동생과 대화가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의 무공을 폐했으니. 앞으로는…….”
“그만!”
백진태는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후회할 선택을 하지 마시오.”
이미 단전을 잃은 백진태. 그의 사지 근맥을 끊는다고 해도 그는 이빨로 물어뜯으며 덤빌 듯했다.
“……그래.”
백류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강과 함께 등을 돌렸다.
뇌옥을 다시 나가는 동안 백류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깥으로 나오자 뇌옥과 달리 공기가 상쾌하다.
“나는…….”
겨울 햇살을 맞으며 백류산이 아들에게 말했다.
“늘 이강이 너와, 하준이의 편이다.”
“……예.”
“너희 둘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 무엇이든…….”
그는 ‘무엇이든’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이강은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날이 차니, 들어가 보아라. 나도 가 보겠다.”
“같이 가시죠.”
“되었다. 혼자 걸어갈 수 있다.”
백류산은 이강을 남겨 두고 홀로 떠났다.
떠나는 아버지의 등은 유독 초라해 보였다.
「네 아비도 마음을 정했나 보구나.」
‘그런 듯합니다.’
「그래. 어쨌든, 이렇게 일이 다 끝났군!」
불사신검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뜻, 일부러 쾌활함을 가장하는 듯도 했다.
「요즘 며칠간 수련을 못 했지? 이제 슬슬 몸이 뻐근하지 않느냐.」
‘뭐 그렇긴 하네요.’
「그래, 성실한 검사는 하루만 수련을 걸러도 답답함을 느끼기 마련이지. 가자, 가서 수련을 하자꾸나!」
불사신검이 저렇게 열성적으로 구는 이유를 이강은 알고 있었다.
「어어, 수련장은 그쪽이 아니지 않느냐. 이쪽이다! 이쪽!」
이강이 홍옥수련장의 반대편으로 걸어가자 불사신검은 당황해서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검에 매인 몸. 이강과의 거리가 서른 보 이상 멀어지자 불사신검은 저절로 이강에게 끌려갔다.
「이 고약한 놈!」
‘지금은 수련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 않습니까.’
「…….」
혼절했던 태상장로가 깨어났고, 이강은 오늘 그녀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약조했다.
불사신검과 천영검식의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다.
「하, 하루만 미루면 안 되겠느냐?」
‘안 됩니다.’
보기 드물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불사신검이었지만, 이강은 단호했다.
* * *
「허어.」
불사신검 역시 해묵은 문제에 맞설 생각을 하고 있기는 했다.
「허어어.」
그렇기에 결국 군말 없이 이강과 함께 장로원을 찾아온 것이 아닌가.
「허어어어어…….」
‘그만. 그만 좀 하십시오.’
그러나 긴장이 되는지 계속 저렇게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아무리 천하제일인이라도 가정사는 풀기 어려운 듯했다.
장로원의 앞에 도착한 이강.
“이강.”
예상치 못한 사람이 이강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모할머님.”
이강이 아니라 하준을 지지했던 장로 백서옥이었다. 날이 몹시 차가운 한겨울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곳에서 계속 이강을 기다린 모습이었다.
“저를 기다리셨습니까?”
“그래. 할 말이 있어서 기다렸다.”
“어떤 말씀을…….”
“태상장로님. 아니, 고모님이 저렇게 동요하시는 것은 나도 처음 보는 일이지.”
그녀는 이강이 허리춤에 매고 있는 유성아를 흘끗 쳐다보았다. 모든 장로들이 이강이 유성아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강인해 보이셔도 아픔이 많으신 분이다.”
“예.”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강이 불사신검이 사용하던 유성아를 가지고 있었으며, 천영검의 잊힌 후삼식을 익혔다.
백서옥이 이강을 수상하게 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분을 잘 헤아려다오.”
“그러겠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떠났다.
「겨우 저 말 하려고 여기서 기다렸다니. 한가한 아이로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이강은 장로원으로 입장했다.
장로회의가 열릴 때면 장로들이 좌우로 도열해 있을 이곳이 오늘은 조용했다.
오직 태상장로 백영령만이 혼자서 이강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강.”
“할머님.”
사석이기에 그녀는 격의 없이 이강을 불렀다.
“강녕하셨습니까.”
“그래, 어서 가까이 와 보거라.”
이강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는 떨리는 눈으로 이강의 유성아를 바라보았다.
서두르는 눈치였다. 그녀로서도 몹시 궁금한 상황일 것이다.
“그 검은 어디서 났느냐.”
“제가 머물던 장원의 지하에서 찾았습니다.”
“어쩐지, 그곳에 있었나…….”
아무래도 백영령은 자신의 뒤에 걸린 유성아가 가짜라는 것을 진작 알고 있던 듯했다.
“이곳의 유성아가 가짜라는 것을 아셨습니까?”
“알다마다. 이 가짜 검은 내가 직접 만들었으니.”
“직접이요……?”
“불사신검이 도망치듯 떠난 날. 유성아의 검집을 놔두고 사라졌더구나. 검집 역시 운철로 만들어져 있었기에 그것으로 유성아를 본떠 검을 만들었다.”
숨겨져 있던 수수께끼가 풀렸다.
운철 검집을 이용해서 100년 전에 만든 검이니, 화영서주를 비롯해서 가문 사람들이 깜빡 속아 넘어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천영검식의 후삼식을 배웠더구나.”
“예.”
그때, 백영령은 이강이 유성아를 꺼냈다는 것 이상으로 천영검식에 놀랐다.
“도염이는 유성아의 진본에 천영검식이 숨겨져 있다고 믿던데.”
“제가 그렇게 말씀드리기는 했지요.”
“녀석. 네게는 작은할아버지인데. 어른을 놀리다니.”
“죄송합니다.”
이강은 백도염을 꼬드길 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백영령은 유성아에 천영검식이 적혀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 천영검식은 분명 잊혀졌을 텐데.”
“불사신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청림에 방문하셨습니다.”
이강은 처음부터 이야기를 차근차근 시작했다. 그의 증조할머니가 충격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기에 시간을 들여 천천히 설명했다.
불사신검을 만난 일.
그의 도움을 받아 무공을 배운 일.
불사신검이 어떻게 유령이 되어 이 세상에 남아 있는지에 대해서.
백영령은 조용히 이강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지금, 제 옆에 계십니다.”
얼마 전 이강이 천영검식을 쓰는 것을 보고 혼절했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담담했다.
“오랜 죄를 씻고 싶다 하셨습니다. 제가 신검의 목소리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이강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성아는…….”
하지만 태상장로의 반응은 기대와 달랐다.
“화영서에 맡겨서 녹여라. 그 운철로 다른 검을 만들자꾸나. 네 것이니 네 검을 만들어 주겠다.”
“하, 할머님.”
“천영검식 또한 잊거라.”
이강이 당황하고 불사신검 역시 그랬다. 백영령은 이강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굴었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천영검식의 후삼식을 금한 것이 바로 나다. 이미 네가 배운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잊은 것처럼 굴거라. 다시는 쓰지 말고. 명령이다.”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듣기 싫다!”
백영령은 호통을 치더니 격하게 기침을 했다.
“쿨럭, 불사신검? 그래, 그가 내 할아버지였지.”
“예, 손녀를 뵙고 싶어 하시더군요.”
“그자가 어떤 짓을 했는 줄 아느냐?”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내 아버지, 자기 아들인 가주를 죽였어!”
“…….”
“그리고 도망쳤다! 지금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필요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다.”
분노와 울화가 섞인 목소리였다.
이강도 불사신검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불사신검은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힘없게 말했다.
「그만, 되었다. 그만하거라.」
이강의 표정이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