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67)
시계를 확인한 김이준이 벌떡 일어났다. 지금쯤이면 라울의 부모가 퇴근할 시간이었다.
“나 일단 부모님 데리고 올게.”
“이준아, 같이 가.”
진수호가 김이준의 뒤를 따랐다.
유연서는 라울의 손을 조심스럽게 놓고서는 어딘가로 향했다. 다들 아이를 걱정하느라 그가 어디로 가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애는 어때요?!”
이 피디가 문을 벌컥 열었다. 그는 제작진을 따라온 의료진과 현지 병원의 의사까지 데리고 왔다. 출연진이 눈치껏 자리를 비켰다.
두 의료진은 아이의 상태를 살피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상태가 심각한데······ 여기서는 치료할 수 없을 것 같대요.”
“그러면 어떡하죠?”
“상급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이 섬에는 없어요. 육지로 가야 한다고 하네요.”
통역을 맡은 현지 가이드가 난감한 듯 땀을 닦았다. 이미 뱃시간은 지난 상태,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의료진들이 응급조치를 하는 동안 위층으로 올라갔던 유연서가 아이를 둘러싼 인파를 헤치고 가이드의 근처로 다가갔다.
“여기 공터 어딨죠?”
“공터요?”
“운동장처럼 넓은 곳이었으면 좋은데.”
유연서도 꽤 정신없었는지 주어 없는 질문을 했는데, 그 의미를 어렴풋이 눈치챈 가이드가 눈을 크게 떴다.
“적당한 곳을 알아요.”
“시간은 얼마나 걸려요?”
“좀 멀어요 차 타고 10분 정도 걸리는데······.”
“일단 그쪽으로 가죠.”
마침 김이준과 진수호가 퇴근하는 라울의 부모를 찾아 게스트 하우스로 데려왔다. 애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뛰어온 라울의 부모가 울먹이면서 아이에게 다가갔다.
유연서는 곧장 아이 부모에게 말했다.
“*애 안고 따라오세요.”
“*네?”
“*시간 없습니다. 병원에 갈 거에요.”
부모는 그의 굳은 얼굴을 바라봤다. 유연서는 아이가 가장 따르는 사람이었으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라울의 아버지가 아이를 조심스레 안고는 그의 뒷모습을 따랐다.
마침 눈치 빠른 스태프 중 하나가 승합차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유연서는 우선 아이와 부모를 태우고 뒤를 돌아봤다.
“저랑 가이드님, 의료진 한 분이랑 먼저 탈게요.”
“우리도 뒤따라갈게요!”
이 피디를 비롯한 사람들이 다른 차에 탔다. 이렇게 우루루 따라가 봤자 도움 안 되는데······ 어쨌든 길만 안 막으면 된다.
“일단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세요.”
가이드의 말에 스태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운전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유연서는 이태겸을 데려오지 않은 것을 살짝 후회했다. 걔가 운전만큼은 잘하는데······ 그는 핸드폰 화면에 지도를 띄우고 조수석으로 넘겼다.
“거기가 어딘지 지도에 찍어보세요.”
“잠시만요······ 여기인 것 같아요.”
“확실해요?”
“······확실해요. 맞아요.”
가이드는 잠시 망설였지만, 확신에 가득 찬 눈빛을 보냈다. 개발을 위해 터를 잡아놓고 무산된 곳이었다. 울타리도 쳐져 있지 않은 곳이라 동네 아이들이 축구를 하던 공간이었다.
“위치 보냈으니까 확인해 보세요.”
(네, 확인했습니다.)
유연서는 바로 위치를 보내고 임승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 끊지 않아서 임승현이 다른 쪽에 전화하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멀었어요?”
“그게······.”
하필 축제 기간이라서 사람도 많고 차도 막혔다. 유연서는 라울이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서 마음이 급해졌다.
“제가 비키라고 할게요.”
“잠시만요!”
가이드가 내리려던 유연서를 말렸다. 앞에는 스쿠터를 탄 누군가가 차 사이로 질주하더니 운전자와 길을 건너던 행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있었다.
“저기!”
“윤정 누나?”
이윤정뿐만 아니라 박승환도 뒤따라 나타나서 반대 차선의 운전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스쿠터는 아마 현지인에게 빌린 것 같았다.
그들의 손짓 발짓이 통했는지, 차가 하나둘 옆으로 피했다. 가이드는 창문을 열어 비켜준 운전자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다 왔어요!”
“일단 여기서 세우죠.”
유연서는 뒷좌석으로 몸을 돌려 라울을 살폈다.
“*라울은 어때요?”
“*애가······ 애가 열이 너무 심해요.”
그가 혀를 쯧 차고는 시계를 바라봤다. 차가 막혀서 늦게 온 것이라 슬슬 와야 하는데······ 그가 차에서 내려 하늘을 살폈다. 뒤따라온 차에서 내린 최준영이 아직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혼잣말을 했다.
“근데 여기는 왜 온 거지?”
“쉿!”
박승환이 검지를 입에다 댔다. 희미하지만 이 소리는······.
“······이거 헬기 소리 맞지?”
“뒤로 물러나세요.”
표정이 밝아진 유연서는 뒤따라온 사람들을 뒤로 물리고 라울의 부모에게 나오라고 손짓했다.
헬기가 공터의 중앙에 천천히 착륙했다.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귀를 때렸고 바람 때문에 흙먼지가 날렸지만, 다들 개의치 않았다.
헬기의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유연서와 진수호, 김이준이 라울의 부모를 감싸 품에 있는 라울을 보호했다.
“제가 동행하겠습니다.”
“잠시만.”
뒤따라온 가이드가 헬기에 타려고 하자, 유연서는 지갑에 있던 지폐를 모두 꺼내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 피디에게 사비 쓰지 말라고 들켜 버려 지갑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돈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가져가세요. 아마 부족하진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가이드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헬기에서 멀리 뛰어가는 유연서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병원에 갈 사람을 태운 헬기가 허공에 뜨더니 저편으로 사라졌다.
“······괜찮겠지?”
“괜찮겠죠.”
일단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유연서는 지쳐서 크게 한숨을 쉬었다. 긴장했는지 어깨가 결렸다.
“근데 저 헬기, 연서 네가 부른 거지?”
박승환의 말에 유연서는 말없이 자신의 핸드폰을 흔들었다.
“와······.”
다들 멍하니 입을 벌렸다. 배도 몇 번 안 뜨는 섬마을에 헬기를 띄울 정도구나. 하긴, 다른 기업도 아니고 주성의 3세니 오지 산간에 헬기를 띄울 능력이야 충분했다. 새삼 유연서가 가진 배경에 벽을 느낄 정도다.
이 피디는 유연서가 탄 차를 운전한 스태프에게 어깨동무하고 속삭였다.
“찍었어?”
“네. 전에 설치한 카메라 배터리가 아직 남아 있었어요.”
“잘했다.”
그는 스태프를 독려하고는 헬기 바람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출연진들을 바라보았다.
“여러분, 애가 아픈 건 마음 아프지만······ 그래도 다들 전력을 기울이셨으니 내일은 비용 제한을 풀어 드릴게요. 파티하시죠.”
“진짜요?”
“네, 내일이면 좋은 소식 들리겠죠.”
“그래야죠.”
출연진들이 한결 밝은 얼굴로 차에 올라탔다.
다시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온 유연서가 차에서 내렸다. 소란을 느끼고 근처에 모였던 마을 사람들에게 대충 엄지를 들어준 그가 소파에 누웠다. 탈진처럼 몸에 힘이 풀렸다.
“와 긴장 풀리니까 힘 빠진다.”
“나도.”
다들 유연서와 같은 마음인지 바닥에 드러누웠다.
“우리 왔어.”
스쿠터를 몰고 갔었던 박승환과 이윤정이 뒤늦게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근데 스쿠터 몰 생각은 어떻게 했어요?”
유연서의 질문에 이윤정과 박승환이 씨익 웃었다.
이 시간에 차가 막혔다는 걸 기억해낸 이윤정이 동네 사람에게 빌렸다고 한다. 그녀를 뒤따라온 박승환도 한대 빌렸고.
“촬영 때문에 면허는 있었는데······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거든. 근데 닥치면 다 하더라. 그죠 삼촌?”
“사람 인생은 참 모르는 법이야.”
박승환은 말이 안 통하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게스트 하우스의 손님을 맞이할 사람이 그밖에 없어도 다른 동생들이 올 때까지 주방에서 나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까는 운전자에게 차 좀 옆으로 치우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물론 한국어로. 대충 알아들은 운전자가 핸들을 틀어서 다행이라고 안심했다.
“배고프다. 밥하자.”
“우리 한잔할래?”
“오늘 같은 날은 한잔해야죠.”
아직 라울이 괜찮은 건지 소식은 없어서 다들 불안했지만, 그래도 헬기까지 태워 보냈는데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었다.
여러명이 달라붙은 덕분에 식사 준비는 금세 끝났다. 그리고 여섯의 출연진이 한 식탁에 모여 밥을 먹었다. 유연서는 혼자 먹는 밥보다는 이렇게 함께 하는 식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진동 누구 거야?”
“제 거요.”
유연서는 임승현의 메시지를 받고 작게 웃었다.
“라울 괜찮다고 하네요.”
“뭐? 진짜?”
마침 동행한 가이드에게서 전화를 받았는지 이 피디가 큰 소리를 내며 게스트 하우스 안으로 들어왔다.
“여러분! 애 괜찮아졌대요!”
“방금 들었어요.”
“네?”
이 피디가 멀뚱히 쳐다보자, 유연서는 말없이 제 핸드폰을 흔들었다.
“가이드님이 연서 씨한테 먼저 연락했어요?”
“다 되는 법이 있어요.”
유연서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 피디는 헛웃음을 지었다.
“자세한 상황은 모르는데, 가이드님이 뭐래요?”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는데, 다행히 제시간에 도착했대요. 수술도 잘됐고요.”
“그래요?”
수술까지 할 정도면 심각했었나. 다들 이 피디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아무튼 잘 회복할 거 같으니 문제는 없는데······ 라울이 퇴원할 때쯤이면 우리는 이미 한국에 가 있을 겁니다.”
그건 좀 아쉽네. 유연서는 입에 댄 맥주잔을 기울였다. 작별 인사를 못한다는 말에 다들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근데 병원 측 대응이 엄청 빨랐다네요? 가이드님이 여기서 살면서 일 처리가 이렇게 빠른 적은 처음이라고 감탄하시던데······.”
“설마······.”
이 피디가 말을 흐렸고, 다들 유연서를 쳐다봤다. 그는 일부러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 임승현이 알아서 잘 처리했겠지.
‘돌아가면 보너스라도 줘야겠네.’
잔을 내려놓은 그가 먼 곳을 바라봤다. 오늘은 환영이 보이지 않았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갔고, 게스트 하우스 오늘은 늘 그랬던 것처럼 정상영업했다.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시장의 상인들이 물건을 헐값에 넘기거나 돈을 아예 안 받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외지인이 라울을 위해 헬기까지 띄웠다는 것은 좁은 섬마을에 이미 소문이 날 대로 난 상태였다.
“이러면 비용 제한을 풀어준 게 의미가 없네.”
“그러게요.”
이 피디는 말은 그렇게 해도 정 넘치고 감동적인 상황을 화면에 담느라 바빴다. 상인들은 친절했고, 출연진들은 양손 무겁게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챙기고 차에 올라탄 출연진들은 말없이 밖을 바라보며 마을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일찍 일어나 졸린 게 아니라 아쉬워서 그랬다.
“라울이랑 마지막 인사를 못 해서 아쉽네.”
“어쩔 수 없죠.”
이윤정의 말에 유연서는 감흥 없는 듯 창가를 보며 대답했다. 애가 무사하면 됐다.
“짐 확인해 보세요. 덜 내린 거 있는지.”
“없는 거 같네요.”
선착장에 내려 제작진을 도와 짐을 나르는 것을 도와주던 출연진들은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잠시만요!”
라울의 어머니였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
“*병간호는 남편이 하기로 하고 있어요. 저기······ 정말 감사합니다.”
길이 엇갈릴까 봐 무작정 선착장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그녀는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으며 계속 고맙다 말했다. 유연서의 손은 꽤 오래 잡았다. 헬기를 부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제가 어떻게 보답, 보답해야 하는데······.”
“*전에 말씀드렸듯이 보답은 필요 없습니다.”
“*이거, 이거라도 받아주세요.”
유연서는 그녀가 내민 종이를 펼쳤다. 아이가 그린 그림은 나란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유연서와 라울이었다. 그림의 위에는 마치 보고 그린 듯 삐뚤빼뚤한 한글로 ‘고맙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얘는 이런 거 그릴 시간에 쉬고 있기나 하지······ 유연서가 말없이 그림을 바라보자, 라울의 어머니가 활짝 웃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건강한 라울도 보러 오실 겸. 우리 가족이 꼭, 대접하겠습니다.”
라울의 어머니는 섬을 떠나는 배가 점이 되어 사라졌는데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최고의 선물이네.”
배 위, 유연서의 어깨너머 그림을 보던 진수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뭐······ 그러네요.”
유연서는 그 그림을 소중히 접어 품 안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