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66)
“아마 병원은 못 밝혀낼 걸요.”
진수호는 궁금한 게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혹시 누가 올까 밖을 살펴보고 있었다. 유연서는 그 뒷모습을 보며 진수호에 대한 평가를 다시 했다.
‘꽤 좋은 사람이네.’
사정을 다 몰라도 어쨌든 도와주기까지 했으니, 나중에 감사 표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이든, 아니면 선물을 주든 간에······.
“아무튼, 고마워요. 나중에 보답할게요.”
“보답은 필요 없고······ 나 진짜 하나만 물어봐도 돼?”
“······제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면요.”
질문 하나 한다니까 경계하는 기색이 보이는 유연서를 보며 진수호가 입을 열었다.
“혹시 네 상태를 가족들은 아예 모르는 거야? 걱정할까 봐서?”
“뭐······ 그런 이유도 있겠죠.”
진수호는 그를 빤히 쳐다봤다. ‘드리밍’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유연서는 참 신기한 구석이 있었다. 융통성 있는 것 같으면서도 고지식했고, 어딘가 감정이 모자란 것 같으면서도 감수성이 예민했다.
“너는 가만 보면 화법이 이상하다.”
“뭐가요?”
“자기 일을 되게 남 일처럼 말해.”
유연서는 뜨끔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비슷한 소리를 들은 거 같은데······ ‘평범한 것’에 약하다고 했었나?
“그래도 가족에게는 알려야지. 네가 어떻게 될 줄 알고.”
“글쎄요······.”
일단 부모님, 팔불출 유건민과 최유진에게 말한다? 난리가 난다. 얼마나 싸고돌지 가늠도 잘 안 된다. 할아버지는 이참에 배우 때려치우고 치료받으면서 회사 일이나 도우라고 하겠지. 할머니? 손자 걱정을 제대로 하긴 할까?
그리고 형은······ 털어놓기 가장 괜찮은 상대이긴 한데, 굳이 말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가족은 알아야지. 아니면 친구라던가······.”
“말한다고 뭐가 달라져요?”
“나처럼 너를 도와줄 수 있겠지.”
“그건 형이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그렇죠.”
진수호가 피식 웃었다.
“글쎄, 우리 나름 친구 아니었어?”
“뭐······ 아는 형 정도는 됐겠죠.”
“그거나 친구나.”
“그런가?”
주저 앉아 있던 유연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피를 토한 바닥을 대충 발로 슥슥 비볐다. 다행히 흙 바닥이라 휴지 없어도 대충 은폐가 가능했다.
“아무튼, 잘 생각해 봐. 계속 끌어안고 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데.”
진수호는 유연서가 자신의 병을 이미 알고 있고, 치료할 수 없는 걸 알아서 병원은 못 밝혀낼 거라고 말한 건가? 생각했다. 그래서 자포자기 상태인 것 같고······.
감수성이 풍부하고 상상력이 많아 배우 일이 천직인 진수호는 가진 건 많지만 어릴 때 어머니의 비극을 목격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혼자 끌어안고 사는 유연서의 모습이 저절로 측은지심을 느꼈다.
“봐서요.”
사실은 약간 달랐지만.
유연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진수호의 조언이 쓸 곳 없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못 견딜 정도는 아니어서 그럴 필요성은 못 느끼겠다.
“근데 왜 날 걱정해요?”
“누구라도 사람이 피를 토하고 있으면 걱정하지 않겠어? 그것도 친구에 가까운 사람이라면.”
“그래요?”
흠······ 진수호는 오지랖이 넓구나. 아무튼, 별 소란 없이 마무리된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그들이 창고 밖으로 나와서 출연진들과 합류했다.
‘환영은······ 사라졌고.’
찾았는데 어디 갔냐는 말에는 그저 허허 웃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의 자살을 의심하는 그 말. 진짜 유연서도 누군가에게 비밀을 털어놓긴 했다. 그 누군가가 누군지 몰라서 그렇지······.
‘이거 점점 기억 동기화를 계속하라고 등 떠미는 수준인데.’
피를 토했는데도 두통이 가시질 않았다.
“연서 씨, 아까 급하게 어딜 가시던데······ 무슨 일 있었나요?”
“괜찮아요.”
이 피디도 더는 묻지 않았다. ‘걔가 뭘 하든 너무 귀찮게 캐묻고 그러지 마라’라는 한 대표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번째 환영도 나름 문제없이 넘긴 유연서는 맘 편히 침대에 누워 숙면했다. 그날 새벽, 어딘가 몸이 불편에서 잠에서 깨기 전까지.
“······.”
그의 발 쪽 천장에, 힘없이 흔들리는 두 발과 흰 치마.
금세 식은땀으로 이불을 적신 유연서는 구토감을 참고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사워기의 물을 틀어 제가 토하는 소리를 감췄다.
진짜 유연서가 병원에 안 간 이유를 알겠다.
‘이건 병원에 가도 해결될 일이 아니야.’
이 정도로 선명한 환영은······ 보자마자 몸이 경직되는 상황인데. 과연 상담한다고 나아질까? 약물치료? 중독만 안 된다면 다행일 것이다.
‘이미 늦었던 건가?’
이제 와서 기억 동기화를 멈춘다 한들, 앞으로 보일 환영을 막을 수 있을까?
‘베타, 어떻게 생각해?’
베타는 첫 환영을 봤던 상황에서 조언한 것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말했다.
‘원인은 알지.’
이희서의 자살 혹은 타살.
[엄마가 정말 자살했다고 생각해?]그렇다면 진짜 유연서가 했던 의심을 해결하면······ 이게 끝날까?
‘아······ 젠장.’
성가신 일에 단단히 걸렸다.
“너 잠 못잤냐?”
“그래 보여?”
유연서가 칼을 든 채로 뒤를 바라봤다. 그 살벌한 모습에 김이준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야, 야야······ 칼 치워.”
“아······. 미안.”
그가 멍하니 칼을 내려놓았다. 딱 봐도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모습에 박승환이 유연서의 등을 떠밀었다. 이렇게 밀어도 쉽게 밀려나지 않았던 유연서는 오늘따라 종이처럼 흐느적거렸다.
“연서 너는 오늘 할 일 다 했으니 가서 쉬어. 이따가 손님 올 때만 도와주고.”
“네.”
유연서는 제 눈동자를 꾹꾹 누르며 밖으로 향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인정하자.’
앞으로 환영은 계속 보일 것이고 그때마다 몸이 비명을 지를 것이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여기서 기억 동기화를 멈추면 도망치는 것밖에 더 돼?’
정면으로 똑바로 마주하고 해결책을 찾아야지. 사실 통제 안 되는 몸이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산전수전 다 겪은 강진후의 정신도 남아 있으니,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가 해먹에 누워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을 때, 누군가가 자신의 팔뚝을 건드리는 것을 느꼈다. 대여섯 살은 되어 보이는 아이가 유연서의 얼굴을 신기한 듯 감상하고 있었다.
“안녕.”
유연서가 손을 흔들자, 아이도 수줍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너 영어 할 줄 아니?”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스페인어?”
아이는 또 고개를 저었다. 유연서는 몇 번 다른 언어를 섞어 아이에게 말을 걸었는데, 아이는 다 알아듣지 못했다.
‘이 섬 고유의 언어도 있다고 했었지······?’
그도 그거까지는 모르니 그냥 말 거는 것을 포기하고 해먹에 누웠다. 아이는 그의 얼굴이 신기한 듯 흘끔흘끔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벌떡 일어나자 아이가 몸을 움츠렸다. 말없이 집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아쉬운 듯 쳐다본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모래에다가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렸다.
“야.”
아이가 제 볼에 닿는 차가운 감촉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아이스크림을 받았다. 그 해맑은 웃음에 유연서의 기분도 조금 풀어졌다.
“어! 형! 국 넘쳐요!”
“우리 청소기 고장 난 거 같은데?”
“야! 그거 건들지 마!”
안에서는 우당탕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지만, 유연서는 아이와 나란히 앉아서 아이스크림이나 까먹고 있었다.
“날씨 좋다.”
김이준이나 최준영이 뭔가 사고를 쳤겠지, 직접 보지 않아도 예상 가능했다.
“너 이름이 뭐야? 아니, 이게 아니지.”
유연서가 자기를 손으로 가리켰다.
“연서.”
몇 번을 말한 끝에 아이는 유연서의 이름을 불렀다. 아이는 자기를 가리키며 라울이라고 말했다.
“뭐야, 애가 있네?”
“이 동네 아이인가 봐요. 형은 또 쫓겨났죠?”
“아니 내 손에는 전기가 통하나 봐.”
물건을 부숴서 쫓겨난 최준영이 과장된 몸짓으로 아이를 놀라게 했다.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몸짓으로 아이와 소통했다.
그렇게 게스트 하우스의 손님을 받고 남는 시간에는 아이, 라울을 놀아줬다.
해가 질 무렵, 부모로 보이는 사람이 근처로 다가왔다. 다급해 보이는 표정을 보아하니, 집에 없어서 찾아다닌 모양이었다.
“*우리 애가 폐를 끼치지 않았나요?”
“*아뇨, 저희 일행 다들 라울 덕분에 재밌게 놀았습니다.”
유연서의 말에 부모의 경직된 어깨가 살짝 풀렸다. 라울의 어머니는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을 팔고 있어서 영어가 통했다. 아버지는 공사 현장에서 일한다고 한다.
아이와 놀아주는 출연진의 모습에서 분량을 뽑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한 제작진은 애가 오면 봐 주겠다고 말하며 대신 이 모습을 화면에 담아도 되냐고 양해를 구했다.
“*그래도 될까요?”
라울도 계속 여기로 놀러 와도 되냐고 신 나게 말하는 것을 보니 해코지를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부모도 애를 혼자 두는 게 마음에 걸렸는데, 잘됐다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저희도 화면에 담으려고 하는 거니······ 아이 출연료도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이후 라울은 부모님이 일을 하러 집을 비울 때마다 게스트 하우스 ‘오늘’을 찾았다. 유연서뿐만 아니라 다른 출연진들도 시간이 나면 아이와 놀아줬다.
“그림 좋네.”
이 피디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똘망똘망한 라울은 활발하고 웃음이 많았다. 육아 예능에서 인기 많았던 아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아서 이 피디는 벌써 프로그램의 성공을 예감했다.
라울은 이윤정에게서 그림을 배우기도 했고, 최준영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너도 하게?”
그리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손을 도우려고 했다. 라울은 뒤뚱거리면서 진수호를 따라 빨래 바구니를 옮겼다. 그 모습이 펭귄 같아서 다들 웃음이 터졌다.
“한 번 해볼래?”
아이는 포기 없이 낑낑거리면서 이불을 너는 것을 도왔고, 출연진은 흐뭇한 표정으로 아이가 자율적으로 하게 내버려 뒀다.
제작진은 어디서 공수해 왔는지 게스트 하우스 오늘의 로고가 박힌 뱃지를 라울의 옷에다가 달아줬다. 라울은 기뻐서 방방 뛰었다.
“저기 봐.”
유연서도 시간 날 때마다 아이를 보러 나왔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감도는 것을 본 작가가 말을 걸었다.
“연서 씨, 애 좋아하시네요?”
“애는 귀엽잖아요.”
그 이후에도 이희서의 환영은 간헐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마다 유연서는 통제 안 되는 몸을 애써 가누고 남들 몰래 피를 뱉어내야 했다.
“작가님, 애가 웃으면 원래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나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일단 저는 기분 좋네요. 힐링되는 느낌?”
그렇게 밤을 지새운 뒤 라울의 순수한 웃음을 보고 있노라면 피폐했던 정신 상태도 어느 정도 회복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게스트 하우스 ‘오늘’의 시간도 평온하게 흘러갔다.
“이렇게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게 최고지.”
“그리고 라울이가 귀엽잖아요.”
“맞아.”
게스트 하우스에 머무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귀여운 라울과 시간을 보낸 그들의 녹화도 막바지에 달할 무렵, 사건이 터졌다.
“형! 누나! 아무나 이리 와 봐요!”
김이준이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로 출연진들을 깨웠다.
“뭐야, 왜 그래?”
“애가······ 라울이 이상해.”
“뭐?”
날벼락같은 소식에 다들 다급하게 김이준의 뒤를 따랐다. 거실 소파에 누운 라울이 배를 부여잡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열이 너무 심한데?”
아이의 열을 잰 유연서가 고개를 홱 돌렸다.
“우리 쪽 의료진은?”
“피디님이 부르러 갔어.”
마침 아침 시장을 보러 가던 길에 봤던 작은 병원이 생각난 유연서가 벌떡 일어나려는 찰나, 라울이 가지 말라는 듯 그의 손을 붙들었다.
“어떡해······.”
다들 어떻게 할 줄 몰라서 입을 꾹 다물고 이 피디를 기다리고 있을 때, 이윤정의 애절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