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80)
‘결핍된 사람들’의 촬영은 계속되었다.
이태오의 첫 등장 장면에서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준 유연서도 감독의 부름을 피할 순 없었다.
“잠시만요.”
캐릭터 해석은 잘했다. 그렇다고 그가 완벽하게 연기를 했다? 하면 애매했다. 유연서는 감독의 부름에 모니터 앞으로 갔다.
‘지금도 좋긴 한데······.’
감독인 손장훈은 제 턱을 만지작거리면서 고민에 빠졌다. 원작에 눈치 보느라 하고 싶은 연출도 꾹 참을 때가 있었다. 그 갈증을 연기 디렉팅으로 풀고 있었다.
‘결핍된 사람들’의 배우 캐스팅은 연기력보다는 얼마나 원작 캐릭터와 어울리는지를 중점적으로 봤다. 어차피 연기는 디렉팅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얼굴과 분위기는 그게 아니니까.
하지만 아직 신인인 안현성의 연기는 디렉팅으로 끌어 올려도 한계가 있었다. 시간상 오래 붙잡을 수 없으니 그냥 넘어간 면이 있었다. 하지만 유연서는 곧장 따라오니 욕심이 생겼다.
“연서 씨, 좀 더 나사 빠지게 할 수 있어? 벼랑 끝에 있는 것 같고 아슬아슬하게.”
“······해 보죠.”
“좋아요. 다음 신 찍으려면 멀었으니까 쉬고 있어요.”
게다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주연인 안현성은 뭘 잘못 먹었는지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었으니까.
‘누가 보면 둘이 바뀐 줄 알겠어.’
연예계의 독보적인 싸가지는 갑자기 고분고분해졌고, 신인 배우는 스타 병에 걸려서 촬영장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감독은 밴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뒤늦게 촬영 현장으로 오는 안현성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유연서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의자에 털썩 앉았다. 고개를 뒤로 젖혀 거의 눕는 것처럼 자세를 잡은 그가 대본으로 얼굴을 푹 덮었다.
‘애드리브로는 한계가 있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돌발 행동은 감독도 좋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평소 말투, 사소한 행동에서 좀 더 달라야 했다. 미치되, 그렇다고 장애처럼 보여서도 안 된다.
‘이태오와 나는 공통점이 있지.’
잠을 뺏겨서 미쳐버린 사람과 환영을 보고 미쳐버린 사람이다.
게다가 어머니에 대한 복잡한 감정도 닮아 있었다. ‘결핍된 사람들’속 이태오가 잠을 뺏긴 계기는 극 중 어머니 역할로 나오는 류혜경, 윤지영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극 중 최종 흑막으로 나오는 윤지영, 그녀는 이태오를 실험의 제물로 삼았다. 주인공이 가졌어야 할 능력을 얻지 못한 이태오는 버려졌고, 자신을 이렇게 만든 어머니를 깊게 증오하고 있었다.
진짜 유연서는 어땠을까? 환영으로 남아 여전히 자신을 괴롭히는 이희서를 원망하지 않았을까?
‘본체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이태오가 분노 조절 장애를 앓고 있는 것처럼, 진짜 유연서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갑자기 물건을 집어 던지면서 크게 화냄. 꺼지라길래 영원히 꺼져주기로 함. 진짜 퇴사한다.)
(생각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촬영장에서 급발진함. 대신 수습하느라고 힘들었음. 신효원 감독은 양주를 좋아하니 나중에 배우가 또 지랄할 시 참고.)
‘유연서 파일’에서 나왔던 분노와 갑질, 그리고 일반 대중도 알 정도로 유명한 유연서의 더러운 성격.
그게 아마 환영에 의한 성격 장애, 그게 연예계에서 평판을 떨어뜨리는 행동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동기화를 또 한계까지 몰아붙여 볼까?’
베타가 끼어들었다. 유연서도 잠시 혹했지만, 빠르게 접었다. 기억 동기화에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다. 게다가 한계까지 밀어붙인 부작용이 너무 심했다. ‘백호함’ 때는 임승현과 이태겸이 잘 주워서 집까지 데려갔지만, 지금도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연서야. 이따가 대사 좀 맞춰볼까?”
“네, 이모.”
생각에 빠졌던 유연서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류혜경의 눈동자가 잠시 꿈틀거렸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이희서의 아이돌 시절이 궁금하지 않다는 듯 류혜경을 철저히 같은 작품에 들어가는 배우로만 대했다.
‘그래, 너도 쉽게는 안 보이겠다 이거지?’
연예계의 능구렁이, 류혜경도 유연서의 의도를 눈치채고 그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먼저 토해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유연서도 그녀의 속마음을 눈치채고 미소로 대답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찍을 촬영을 마친 유연서는 옷을 갈아입고 촬영장 밖으로 향했다.
“연서야, 잠시 시간 되니?”
류혜경의 촬영 분량은 30분 전에 끝나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 안 간 것을 보면, 유연서의 촬영이 끝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다.
‘생각이 바뀌었나?’
유연서는 손목시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네, 한 20분 정도요.”
“그 정도면 돼.”
“이태겸, 넌 차로 가서 먼저 시동 걸고 있어.”
이태겸은 유연서와 류혜경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군말 없이 차로 향했다. 임승현은 딱히 가란 말은 없어서 유연서의 뒤를 따라갔다.
“뒤에 매니저는 그냥 둘 거니?”
“매니저요? 아아······ 이 사람은 매니저 아니에요.”
“뭐?”
유연서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 비서, 주성의 전략 기획실 소속.”
류혜경이 눈을 크게 떴다. 주성의 비서실도 유명하지만, 전략 기획실은 더 유명했다. 유 회장의 손과 발이 되어준 친구이자 비서가 본부장으로 있어서 그런가, 별별 소문이 다 있었다.
‘주성의 전략 기획실은 대한민국의 모든 정보가 모인다.’ ‘주성의 정보망으로 못 하는 일이 없다. 사람 약점 잡는 것은 일도 아니다.’ 같은 소문이 많았다. 자연스레 전략 기획 본부 소속이라면 엘리트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과장이 좀 섞였지만, 영 아닌 소문도 아니고.’
류혜경이 그걸 믿는다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임승현의 소속을 밝힌 거고.
“전략 기획실이면······.”
“잘 아시니 얘기가 편하겠네요.”
재벌가와 교제한 시절이 적지 않으니 주성에 관한 얘기도 많이 들었겠지. 그는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보이는 류혜경의 얼굴을 응시했다.
“나에 대해 뒷조사를 했겠구나.”
“네.”
뒷조사를 했다는데 유연서는 당당했다. 어차피 숙여야 할 사람은 유연서가 아니라 류혜경이었다.
뒷조사가 겉핥기식 뒷조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그녀를 강제 은퇴시킬만한 약점도 있겠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류혜경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괜히 계산했다. 그냥 원하는 걸 주고 마음의 빚이나 얹었어야 했다.
‘나도 이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사람의 약점을 잡고 흔드는 것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급했다. 점점 이희서의 환영이 보이는 빈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래, 뭐가 알고 싶니?”
“아시잖아요. 모르는 척은 그만 하죠.”
항복의 의사를 표시하듯 두 손을 든 류혜경이 지친 얼굴로 말했다.
“그래, 희서에 대한 얘기······ 너는 뭘 줄 수 있고? 나도 맨입으로는 못 말해.”
이 상황에서도 자기에게 떨어질 이득을 따지다니, 어찌 보면 대단하다. 유연서가 핸드폰을 켜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미 임승현을 통해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준비한 상태였다.
“산보그룹 강근철 사장, 저랑은 먼 친척이시고. 마침 이혼하신 지 얼마 안 돼서 독신이시네요?”
산보그룹은 재계 순위 8위에 오른 대기업으로, 강근철 사장은 차기 회장이 될 거물이었다. 류혜경이 만났던 사람들과는 급이 다른 인물이었다.
“자리 마련해 드리죠. 우연을 가장해서.”
“······.”
“이 정도면 이모의 높은 기준에도 맞을 테고, 꼬시는 건 우리 이모 능력에 따라 달렸죠?”
우연을 가장한 만남만, 류혜경의 쓸모는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소리였다.
“그래. 알겠어.”
지친 그녀가 벽에 등을 기댔다. 유연서는 여유로운 듯 미소 지었다.
‘사실 이 이상은 나도 못 해.’
할아버지의 귀에 들어가면 골치 아파지니까. 강근철 사장이 어딜 가는지 미리 알고 장소만 전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류혜경이 과하게 오해한 것 같지만, 오해하라고 애써 무게 잡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 뭐부터 말할까? 희서가 연예계 시절 어떤 일을 당했는지?”
유연서가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끊었다.
“핵심만 말씀하세요. 저도 스케쥴이 있어서.”
“핵심?”
어떤 일을 당했는지도 꽤 궁금하지만, 상상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80년대 연예계, 세기의 미녀라 칭송받던 젊은 이희서. 당연히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겠지. 유연서는 명치 부근에서 차오르는 홧홧한 기운을 애써 가라앉혔다.
“제가 흥미있을 만한 거 없어요?”
“그건······.”
유연서가 예상과는 다른 태도로 나오자, 이대로 꼬리를 말기에는 자존심이 상한 류혜경이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이건 모르겠지?
“희서가 데뷔하고 결혼하기 전까지 스토커에 시달렸다는 건 알고 있니?”
“스토커?”
스토커라······ 중요한 단서가 될 정보다. 처음 듣는 소리지만, 그는 애써 여유로움을 가장했다. 류혜경이 쥐고 흔들 게 뻔한데, 티 내봤자 좋을 건 없었다.
유연서는 류혜경의 정보가 성에 안 찬다는 듯 팔짱을 꼈다. 그 건방진 태도에 그녀가 당황했다.
“그리고 또?”
“뭐?”
“다른 건 없어요?”
***
촬영이 끝나고 류혜경과의 대화에서 중요한 단서를 얻은 유연서는 JSTV 건물 1층의 카페로 향했다. ‘게스트 하우스에 어서 오세요’의 종영 기념 뒤풀이였다.
‘어째 결.사 찍을 때 보다 류혜경과의 대화가 더 기 빨리는 기분인데.’
유연서는 피곤한 듯 목을 돌렸다. 류혜경은 유연서의 블러핑을 눈치채지 못했고, 생각나는 게 있을 때마다 유연서에게 말해주기로 했다.
“임승현 씨.”
“네.”
“류혜경이 말했던 스토커에 대해서 조사할 수 있겠어요?”
임승현이 걸음을 멈추고 유연서를 바라봤다. 알겠다는 대답이 나와야 하는데,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도련님은 무슨 일로 그분에 관한 조사를······.’
주성의 총수 일가에게 이희서에 관한 건 모두 금기 사항이었다. 사고 전 유연서가 이희서를 떠올릴 때마다 발작한 건 가족들만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왠지 좋지 않은 것을 느낀 임승현은 이게 정말 유연서를 위하는 일인지 헷갈렸다.
“궁금한 건 많겠지만, 나중에.”
“······알겠습니다.”
유연서가 카페의 문을 열었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뒤풀이는 아니었다. 프로그램이 예상외로 잘 되자, 후일담 형식으로 짤막한 녹화가 있을 예정이었다.
“왔어?”
“삼촌! 연서 왔어!”
스태프의 도움으로 핀 마이크를 옷에 고정한 유연서는 과하게 자신을 반기는 출연진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뭐죠?”
다들 표정이 이상했다. 유연서는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류혜경과의 대화가 길어졌다지만, 늦은 건 아닌데······.
“야 너는 우리한테 말도 안 하고 뭘 한 거냐?”
“우리 뉴스 보고 놀랐잖아. 혼자 좋은 일 하면 다야?”
“저, 저저 모르는 척하는 거 봐.”
모르는 척이 아니라 진짜 모르는 건데. 유연서는 일단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뭐가요?”
“너 인터넷 안 봤어? 뉴스 기사 같은 거. 지금 다 네 얘기 하는데?”
“요즘 촬영하느라 볼 시간이 없었는데요.”
“와, 진짜 모르는 거였네.”
김이준이 유연서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제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거 봐.”
그가 내민 화면 속에는 그들이 섬에 갔을 때 봤던 현지 가이드의 SNS가 있었는데, 라울과 나란히 앉아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병원에 간 이후로 얼굴을 보지 못해서 조금 반가웠다. 유연서는 작게 웃었다.
“애는 건강한가 보네.”
“아니, 사진 말고 밑에 글을 보라고.”
김이준이 화면을 톡톡 건드렸다. 빠르게 글을 읽어내려가던 유연서가 헛웃음을 지었다.
“······아니 뭐 이런 쓸데없는 걸 써 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