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ower of Babel and the Only Begotten Son RAW novel - Chapter 317
00317 암흑무저갱暗黑無低坑 =========================
다른 이들이 대게 비슷하게 하는 생각을 인류제국의 수뇌부 역시 하고 있었다.
“즉, 우리의 유리함이었던 것을 뺏기게 되는 것이군.”
“그렇지요.”
멸망해버린 세계의 일원들은 많은 부분에서 몰락해버렸다.
그들이 가졌던 장점 중 상당수가 퇴화해 결국 전성기 시절에는 없던 약점도 생겨버렸다.
그것들을 찌르며 이득을 가져가던 인류제국이, 이제 상대해야 할 것 같은 적들은 오히려 그 점에서 인류제국의 이득을 가져오고 있었다.
“우리가 군대를 표방해도 사실 완벽한 것은 아니니까요.”
뛰어난 유틸성과 상황별 대처, 시너지 효과등은 자신들도 비슷하게 먹어가더라도, 적에게는 현대인들의 집합인 자신들에게는 없는 투철한 상명하복과 임무완수를 위한 임전무퇴의 생사를 도외시한 정신무장이 예상된다.
솔직히 일반인이던 현대인들이, 겨우겨우 목숨붙여서 살아오다보니 20년의 시간에 희생정신이 라는게 생길 수는 있으나 임무완수를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받치는 것을 바랄 수는 없다.
결사대로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뒤를 지키기 위해 죽어줄순 있어도 애초부터 적을 죽이고 자신도 죽는 상황을 가정하고 들어가는 작전에서는 힘들 수 밖에 없는데 적들은 그것에서 조차 자유로울 것이라는 예상이 들었다.
“어떻게, 좋은 생각들 있습니까?”
“글쎄요…”
모두가 막막한 상황, 아이오닐은 슬쩍 시선을 돌려 근처에 있던 운성을 바라보지만 그는 그저 빙글빙글 웃고 있을 뿐이다.
부패왕국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제공해주는 정보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적다.
‘알아서 하라는 것인가.’
어차피 의지할 생각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다.
그라고 뭐 특출나서 자기도 모르는 정보를 빼내올 수 있다는 기대는 솔직히 좀 되긴 하지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면돌파가 답이겠지.”
“하긴, 언제까지 유리할 수 는 없으니까요.”
아직 십강이라 불리는 등 여러 길드가 난무하던 시절에 인류제국의 전신이었던 엠파이어는 지금과 비슷한 기치를 표방했지만 여러모로 부족한게 많았다.
지금은 하나로 합쳐진 인류지만 그 당시에는 10강이라 불릴 정도로 흩어졌고, 그 외에도 여러 중소길드들이 난립했었으니까.
그 시절엔 여기 없는 이들이 태반을 넘어섰었다.
“지형적 이점까지 고려하면 더 불리해질테니 신경써야 할 게 더 많겠죠.”
암흑무저갱이라 불리는 곳이면 아무래도 너른 평지는 생각하기 힘들다.
그럼 자연스럽게 4대 대외무력부대 중 기병부대인 궁기병단 청랑대와 돌격병단 크림슨 혼의 전력이 상당부분 깎여나간다.
좁다고 맹탕이 될 정도로 어수룩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돌진공격에 가장 강함을 자랑하는
크림슨 혼이다보니 가속시간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그러고보니, 크림슨혼이 최근에 확실히 활약이 줄어들었군.’
회전에는 더 없이 강력한 위력을 보이는 그들이지만, 최근들어 싸우는 공간마다 협소했다.
아니 공간자체는 너른데 주변에 워낙 별에 별 게 많았다.
조금의 가속공간이 있으면 장애물이든 뭐든 다 때려부수며 달리겠지만 부패왕국의 경우만 해도 거대 구더기 인버즈에 의해 통째로 납치되고 강제로 공간이 전이되니 여명의 방어진 뒤에서 그 튼튼함으로 서브탱커 정도의 역할을 하는게 고작이었다.
“또한, 중요한 건 적들의 진정한 본질이 뭔지도 모른다는 거죠.”
“그렇소. 워낙 다양한 놈들이 나왔소. 그런데 그들은 대부분 실험체같은 모습이었지. 그렇다면 그 실험을 한 실험자는 누구인지가 중요한데, 그것을 알만한 단서가 없으니.”
“일단 파견나간 정찰조들을 믿어봐야겠죠.”
바벨은 특정 위험한 공간이 있으면 그것에 대한 사전 정보들은 주변에서 습득할 수 있게 해놓았다.
그걸 얻기도 힘들고, 단편적으로 뿌려진 것에다 복잡하기도 해서, 얻어도 주변에 위험한 공간이 하도 많다보니 무엇에 대한 정보인지 확신하기는 힘드나 그것을 위한 정보종합기관 플로우레코드가 있다.
그들은 정보수집기관 서조가 모아온 정보들을 기가 막히게 짜맞춰 일련화된 흐름으로 만들어낸다.
그것을 바탕으로 정보결정기관 오라클이 다음의 행보를 만들어내니 현재 수뇌부가 느끼는 막막함을 해결해 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왔습니다.”
그들이 그 새희망을 기다린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정보결정기관 오라클의 수장 장 리안이 들어왔다.
고대 중국에서 튀어나온 듯한 청수한 문사풍의 남자.
멋들어진 수염을 기른 그는 장량의 환생이라고도 불렸다.
“나온게 있습니까?”
바벨에 처음 들어설 때 부터 노년의 모습이었던 그는 중후한 분위기를 풍기며 살짝 눈을 감았다.
그것이 그가 설명을 하기 전의 모습임을 익히 경험해온 다른 이들은 그의 짧은 사색을 기다렸다.
“나는 여러 서적을 읽었왔었네.”
다시 눈을 뜨며 입을 연 그가 처음 뱉은 말은 회상이었다.
“분류는 다양했지. 태어난 시절과는 달리 이 곳에 오기 직전에 세상엔 다양한 지식의 산물이 널려있었으니.”
일평생을 읽어도 다 읽지 못할 수 많은 분야의 서적들.
하나에 집착하기만 해서는 전부 느끼지 못할 것들을 장 리엔은 일생동안 읽어 왔다.
“내 전직이 뭔 지들 알고있나?”
어찌 모를까.
“세계 제일의 기사가 아니십니까.”
전후무후한 전설.
서양의 체스, 동양의 바둑.
장기에 이은 모든 것들.
수 싸움의 끝이라 할 수 있는 모든 부류의 게임에서 그는 정점에 올라있었다.
그와 싸운 이들은 모두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는 이미 게임이 끝날때 까지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동양에서는 전지자全知者. 서양에서는 올 마이티almighty.
그의 수읽기 능력에 붙은 별명이다.
누군가 그에게 승리의 비결이 무엇인가 물을 때 마다 그는 품에서 매번 다른 책을 꺼내 보여주었다.
“맞네. 그 비결은 전부 과거의 역사를 답습한 덕이었지.”
과거의 무언가를 담은 책들.
지금까지의 그를 존재하게 한 바탕.
“내가 읽은 어느 서적에는 흡혈귀라는 존재가 있었지.”
“흡혈귀요?”
“그 피빨아먹는?”
장 리엔의 말을 들은 다른 이들의 반응은 별로 시원치 않았다.
“크게 닿지 않는가?”
“음…뭐라고 해야 될지..”
“애매한 존재라고 해야할까요.”
흡혈귀는 피를 빨아먹는 괴물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피를 빨아먹는 괴물이라고 한다면 수 도 없이 많이 만나봤으니까.
게다가 지금 상황에서 지구 시절의 도시괴담에나 나올법한 존재를 끌고오니 좋은 반응이 나오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장 리엔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웃었다.
“여러가지 전승이 있지. 피를 마신다거나 빛이 들지 않는 어둠속을 배회한다거나.”
이제 와선 별로 무섭지도 않은 이야기들이다.
“중세시대에나 나돌았던 괴담이지만, 그 시대니까 조금 달리 생각해볼 수 도 있네. 그는 어쩌면 시대를 앞서나간 과학자가 아닐까하고 말일세.”
“과학자말입니까?”
“그렇네. 예를 들자면 피 속의 디옥시리보 핵산를 연구하던. 과학자. 스스로야 그런 연구를 위한 행위였다지만 타인에게는 다른 존재의 피를 갈취하는 괴물로 보였을 수 있고, 그 때문에 낮에 사람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함부로 나돌아다니지 못했을 수 도 있지.”
“이번 상대가 그런 존재란 말입니까?”
“비슷할 수 있다는 것일세. 주변 유적에서 나온 고대의 문헌 속에는 이런 묘사가 있었네. 생명의 근원에 닿는 밤의 사랑을 받는 종족. 비슷하지 않은가?”
“생명의 근원이라 함은…”
“해석이야 다양하겠지. 영혼이라 볼 수도 있고, 말한대로 ‘피’라고 볼 수 도 있으니.”
“하지만 확실히 말씀대로 ‘흡혈귀’란 개체와 유사성을 띄고있긴 하군요.”
“암흑무저갱이란 이름도 그들에게 와닿구요.”
“다른 문헌들에는 고귀한 존재나, 위대한 귀족들이라는 등의 단어가 많았네.”
“귀족들이요?”
“안 어울리나?”
“예, 뭐. 보통 귀족들이 뭘 해부하거나 피를 연구하는 등의 과학자랑은 이미지가 별로 안 와닿으니까요.”
“고정관념이란 좋지 않네만, 이 경우에는 다른 가정도 해 볼 수 있지.”
“어떤 가정말씀이십니까.”
“파리대왕의 존재를 기억하나?”
“그와 같은 경우란 말입니까?”
“그럴 수 도 있지.”
최후에 알려진 파리대왕의 과거는 그 세계의 상당히 이레귤러적인 존재였다.
“즉, 그 세계가 과거에 어떠했는지는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과는 크게 비슷하지 않을 수 도 있다는 것이군요.”
밤의 귀족이 군림하던 세계였던게 암흑무저갱의 배경이 되는 세계라 할 지라도 지금 그 곳을 지배하는 자가 굳이 그 귀족들이라는 법은 없다.
“몇 가지 대비책은 세워뒀네만, 무엇이든 쉽게 확신할 수는 없는 법이니 말일세.”
섣부른 단언은 금물.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상대해야할 적을 상정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대비책이 완료되는 것 대로 출진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나올 때 까지 기다릴 여유도 없다.
부딪쳐보기로 한 아이오닐이 최후의 지시를 내렸다.
========== 작품 후기 ==========
이제 다음화엔 무저갱 진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