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ower of Babel and the Only Begotten Son RAW novel - Chapter 394
00394 백운산맥 =========================
“즐겁다, 정말로.”
여우는 박수치며 웃었다.
그러더니 바닥에 주저앉아 허리춤에 묶어뒀던 부러진 단검을 꺼내들었다.
“그건…”
“이건 내 오랜 시간의 걸작품이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 지 몰라도 족히 수백년은 쏟아부었을거야.”
“미안하게 됬군.”
아이오닐은 무안함에 볼을 긁적였다.
갑자기 쳐들어와서 수백년 동안 만들어낸 보물을 부숴먹었으니 할 말이 없다.
솔직히, 이렇게 대화에 응해주는 것만으로 감사할 뿐이다.
“어차피 변화를 포기한 내게 보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클락은 반으로 부러진 검날을 바닥에 심었다.
그러자 남은 검의 잔해들이 흙으로 변해 땅으로 부서져 내렸다.
“흙으로 만든 것이었나?”
“세상 만물이 흙에서 나왔다. 그것은, 나 조차도.”
무너져 내리는 것은 단검뿐만이 아니다.
단검을 쥔 여우의 몸마저 흙으로 무너져 내려갔다.
“무슨 짓이지?”
아이오닐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까 내가 말했던가. 내가 우리 흙여우 일족의 주술의 끝에 올랐다고. 그게 과연 진실인지 알 수 없으나,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적어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진화의 끝에 왔다는 것. 그건 그 순간부터 내가 멈춰버렸다는 것이겠지. 변화하지 않는 생물은 죽는다. 모든 것은 흙에서 태어나 격렬히 살아가다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그래, 나는 이미 죽어있었던 거겠지.”
흙으로 부서져가는 여우는 웃는다.
“내가 살던 세계가 멸망해버렸다고 했나? 사실 그것은 어차피 상관없었을 지도 모르겠군.”
나는 이미 죽어버렸으니까.
뱉지 못한 말을 끝으로 여우는 그대로 무너져 흙이 되었다.
흙으로 돌아가는 그 모습을 아이오닐은 묵묵히 바라보다, 여우가 사라진 자리로 다가갔다.
그 곳에는 흙으로 쌓아진 입체형 지도가 있었다.
아이들 장난치듯이 만드는 모래성처럼 지어졌으나, 너무나 생생하게 만들어진 하나의 작품과도 같은 그것을 아이오닐은 한 동안 말 없이 지켜봤다.
“흙으로 돌아간다라…”
그리고는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품에서 그의 애총 – 골드 익스퍼리언스를 꺼내들었고, 그것을 향해 겨눴다.
탕.
단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골드 익스퍼리언스에 의해 클락이 남긴 흙으로 만들어진 유산은 완전히 무너져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그저 정말 흙더미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직후, 총성을 듣고 밖에 있던 레이븐과 스타이너가 뛰어들어왔다.
“황제!”
“무슨 일이냐!”
급하게 달려온 그들이었으나 예상과는 달리 천막안의 환경은 전투가 있엇던 것 같은 흔적은 아무것도 없음을 발견했다.
그런 그들을 한번 바라본 아이오닐은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이 무너트린 흙더미를 한 번 바라보고는 말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는 무슨.”
분명 무언가 있었다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면서 그저 고개를 젓는 모습에 혀를 찬 스타이너는 문득, 함께 있어야 할 존재가 없음을 깨달았다.
“이봐, 황제. 그 여우는?”
아무른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여우를 찾아 스타이너가 고개를 두리번 거리자 아이오닐은 담담히 답했다.
“흙으로 돌아갔다.”
흙은 정적이다.
모든 것의 바닥이 되어 그 곳에서 튼튼한 기반이 되어준다.
그 곳에서 태어난 모든 것은 그 위에서 격렬히 움직인다.
흙 속에 묻히는 것은 정적인 것이다.
이미 죽어버린 것, 모든 것을 끝맺은 것.
살아있는 것은 동적이다.
그러나 여우는 정적이었다.
모든 것을 끝내고, 삶의 의미조차 잃어버렸던 존재.
죽음을 희망하지는 않아도, 삶을 희망하지도 않았던 존재.
스스로 진화의 끝을 선언하고, 그대로 멈춰버린 존재.
그저, 다시 태어난 곳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너나 그 양반이나.”
참 못 알아먹을 소리만 골라한다.
스타이너는 그저 혀를 찼다.
왠지 더 물어보기에는 아이오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
“준비해라, 이동한다.”
“어딜?”
“여우가 떠나기 전에 알려준 길이 있다.”
“뭘 얻었긴 했나보군.”
다시, 이동이 시작되었다.***일부는 유령함대로, 일부는 육로로.
2갈래로 나뉘어서 인류제국의 군대는 진격을 계속했다.
그 중 유령함선 한 기의 갑판에 떡하니 전세낸듯이 점거하고 앉은 그는 주변에 자신의 보구들을 풀어헤쳐놓고 있었다.
절혼겸 絶魂鎌 에르체리아.
쌍권총 비익比翼 – 연리連理.
해머, 대지공명 – 어스퀘이커.
위조자 – FAKER.
절망상자cosmic horror.
억압의 낙인.
혼천의 절단.
등의 눈에 보이는 정형화 된 무기부터 풍신섬영과 같이 비정형화된 보구, 초신경회로 – 노아와 같이 몸에 박아넣는 보구, 전부를 꺼내놓기에는 공간이 부족했기에 전부 다 꺼내놓을 수는 없었으나, 일단 가능한 만큼 꺼내놓은 스타이너는 머리속으로 이런저런 고민을 계속했다.
“흠…”
스킬은 무엇일까.
다른 이들은 시스템이 만든 것이라며 그저 벗어나기 바빴으나, 스타이너에게는 조금 달랐다.
스킬은 정형화된 형식, 그것에 얽매이면 약해진다고 다른 이들은 말했다.
실제로 다른 이들 역시 각자가 익혀온 검법이나 도법, 여러 형식을 벗어나며 강해졌다.
하지만 스타이너는 어느 순간 그 과정에 회의감을 느꼈다.
사람마다 그 특성은 천차만별로 다르다.
그것은 무구도 마찬가지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미세하게 오차가 있어 영점조절을 해야 된다.
그럼 당연히 수작업으로 만들어내는 병장기들은 더한 오차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환도, 군도, 카타나, 글라디우스, 레이피어, 브로드소드, 시미터.
단순히 검의 종류가 다르다는 게 아니라, 같은 카테고리에 속하는 검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른 검으로 같은 검법을 쓴다.
이 때 생각해봐야된다.
사람들이 쓰는 검법은 만든 사람이 쓴 검에 최적화 된 것이 아닐까?
그 검법의 형식을 부수고 나와 강해졌다는 이들은 사실, 오히려 자신이 사용하는 검에 더 적합한 검법을 찾은 것은 아닐까?
흔히들 검에 구애받는 검사는, 검사가 아니라 검이 강한 것이라 한다.
그럼 이런 생각은 하지 못할까?
사람 뿐 아니라 검도 같이 강할 수는 없을까?
한번 만들어진 검은 거기서 성장이 끝난 것일까?
지구상이라면 그렇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하지만 바벨에서는 수 많은 업을 쌓으며 요검이니 보검이니 하며 성장하는 무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왜 검을 다루는 검사라는 자들이, 정작 그 검을 성장시킬 생각은 하지 않을까?
말로는 검과 하나가 되는 신검합일의 경지라고들 하면서 정작 그 자신과 하나라는 검의 성장은 등한시한다.
물론, 이 부분은 만병장 스타이너 역시 실패했다.
그의 보구들은 업을 쌓으며 스스로 성장해왔지, 자신이 인위적으로 성장시킨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성장은 어렵다고 해도 다른 쪽은 가능하지 않았을까.
가령, 그 매 순간 진화하는 보구들을 매 순간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이라던가.
황혼검식은 그런 의도에서 탄생한 것이고, 그 성공이 스타이너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주었다.
사실 황혼검식은 스타이너가 만든 것이 아니다.
황혼검식은 누구보다 황혼검을 잘 아는, 황혼검 그 자신이 알려준 것이다.
스타이너는 생각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신검합일이 아닐까?
그 보구가 가장 빛날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알려준다.
다만, 그것과 함께 하는자가 못 알아 먹을 뿐이지.
“아니, 이 부분은 좀 다를 수 있겠군.”
그렇게 단순히 보구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자신이 진정 보구와 함께 한다면 보구가 찾아내지 못한 스스로의 가능성을 찾아내도록 도울 수 있어야겠지.
“그렇겠지?”
수십개의 비검, 소드댄서를 허공에 날려 운용하며 스타이너는 멍하니 하늘 위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선은 이거다.”
자신이 종종 쓰는 것 중 가장 잘 모르는 것.
정말 단순히 쓰기만 하는 것.
절망상자 cosmic horror.
007가방의 크기 만도 안되는 것, 그것을 쥔 스타이너는 탁 하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우우웅.
그저 놔두기만 해도 암울한 기운이 세어나왔다.
그것의 문을 열어젖히며 스타이너는 힘차게 외쳤다.
“GAZUA!!!”
절망상자에서 절망이 흘러나왔고 스타이너를 휘감았다.
스타이너는 절망속에 감싸인채 그대로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스타이너가 고민에 빠져있던 순간에, 그걸 지켜보던 이도 있었다.
운성의 언질을 듣고 율의 권능을 사용해 시선 속에서 숨어 몰래 지켜보고 있던 이는 태식.
그는 스타이너가 별안간 함성을 내지르며 절망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고 소리내어 탄성을
내뱉었다.
“캬, 저런 미친놈이!”
세상세상 미친놈 다 봤지만 아직도 신선함을 줄 수 있는 저 행위에 태식은 조금이지만 감동마저 받았다.
박수를 치며 태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무는 임무니까.”
그리고는 그 역시 절망속으로 뛰어들었다.
========== 작품 후기 ==========
다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