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ower of Babel and the Only Begotten Son RAW novel - Chapter 393
00393 백운산맥 =========================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황제는 여우의 말에 정했다.
“하지만, 그것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
“호, 어째서지?”
여우가 휘파람을 불었다.
“예전이었다면 몰랐겠지만, 지금이니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지. 어쩌면 내가 구하고자 하는 가치는 생각보다 모호한 것이 아닐까, 하고.”
“모호하다?”
“나는 인류애를 기치로 내세워 인류제국을 세웠지만, 인류애라는 것은 사실 무엇이라 정의하기는 힘들지.”
사랑? 좋은 말이다. 그런데 거기 앞에 인류가 붙으니 모호해진다.
“그런 말 들어 본 적있나? 모두를 사랑하는 자는 사실은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자라고. 모두를 존중하는 자는 역시 누구도 존중하는 자. 살아가다가 보면 우린 누군가에게 더 잘 대해주고 누군가에게 더 못 해줄 때가 있지. 사람의 취향, 성격, 태생에 따라 사람의 관계는 변화하지. 그게 나쁜 것이 될 수는 없다.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그런 것임을.”
“그건 우리 쪽도 마찬가지였지.”
“인류는 착한존재가 아니다. 사실 착한 존재라는 것은 있을 수 없지. 살아가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포식해야 하니까. 그게 살아있는 존재이건 아니건, 혹은 마나처럼 우리가 살아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그래서?”
“기본부터 우리는 결코 선하다 할 수 없다. 그런 우리 인간들이기에 우리가 아무리 그들을 구하려고 노력하고, 인류애의 기치를 걸고 달려나가 만일 우리가 저 바벨의 침략자들을 물리치고 다시 인간의 세상을 구한다고 해도, 그 미래가 결코 아름다울 것이라고는 보장할 수 없다.”
이렇게 힘든 시기가 있었다고, 이렇게 죽음보다 못한 현실이 있었다고.
피를 토하고 외쳐도, 기록을 남겨도 결국 모든 것은 후대에는 잊혀질 것이다.
시간이란 만인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다.
“이 곳 까지 달려오며 스스로를 신이라 자칭하는 수 많은 존재들을 보아왔지. 불, 물, 번개, 바람 온갖 자연지물부터 형상의 신도, 개념의 신도 보아왔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인간’을 위한 신은 없었다.”
황제의 기억이 과거를 달린다.
“도대체 우리의 신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의 구원자는 어디에 있는가. 만물에 스스로를 신이라 자칭하는 자들이 있는데, 우리의 신은 어디에 있을까? 그런 고민에 빠졌던 적이 있었지.”
“꽤 길었나보군.”
“길었지. 정말로 힘들어 원망도 해봤어. 그러다가 이런 생각도 했었어.”
“어떤 생각이지?”
“어쩌면, 우리의 신은 지친 것이 아닐까. 과거의 신이 우리를 구원했을 때, 서로 싸우고 질투하며 시기하고, 죽이고 죽이는 우리를 보며 지쳐 떠나버린 것은 아닐까? 하지만, 곧 그건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음?”
“인간의 신이란 존재가 인간을 모를리가 있나. 인간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다. 최초는 타 종과의 싸움에서, 그 다음은 인종간에서, 그 다음은 이념에서. 그 외에도 이어진 여러 투쟁들. 그 시간속에서 인간은 발전해왔지. 신이란 존재가 그걸 모를리가 있나. 그럼 의문이 들지. 신은 누구 편을 들어야 했을까. 최초에 신이란 존재가 있었다고 해도, 인간이 모두 그 신의 밑에 있다고 해도 모든 인간들이 사이가 좋았을 것은 아니었을테니. 너도 그렇지 않았나?”
“분명, 나의 제국에도 황제의 뜻을 따르나 서로 다른 해석과 의견으로 싸우는 이들이 존재했지.”
“그게 심화되면 어떻게 됬을 것 같나. 인간은 분열했을 거다. 서로 싸우고 헐뜯었겠지. 그들은 하나같이 옳았을 거야. 그들 모두 스스로의 신을 따르고 있으니까. 다른 자들은 이단이고, 다른 자들은 악이라고. 서로를 매도하고, 서로가 옳다고 핏대를 세우고. 그럼 신은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까.”
자식들간의 싸움이다.
모두가 사랑스러운 자식들이라면 누구의 편을 들어야할까.
“보류했겠지. 결정할 수 없었겠지. 하지만 신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공평하면서도 달랐을거야. 신에게는 짧은 고민의 시간이 인간에게는 믿음이 돌아서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겠지. 그들은 배신감을 느꼈을거다. 배신감이란 것은 믿음에 비례하는 것. 그들이 가졌던 믿음이 그만한 양의 배신감으로 치환되고 그들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를 믿었겠지.”
인간이 스스로의 신을 버린다.
스스로를 도와줄 신을 모신다.
“자, 누가 이제 인간을 벌할 것인가. 인간의 신이 인간을 벌할 것인가? 누가 먼저 시작한 배신인가. 누구의 죄악일까. 인간의 신은 인간을 누구보다 알았으되, 그들은 결코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없는 것을. 신이란 존재부터 가질 수 밖에 없는 태생적 차이인 것을.”
신이기에 가질 수 있는 통찰은 신이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
“인간이 버린 인간의 신, 인간이 모신 이종의 신. 당장은 스스로를 돕는 다른 신들이 더 이롭겠지. 하지만 인간의 신이 아닌 다른 신들이 염원하는 세상이, 정의가 인간에게 이로울까?”
불의 신은 세상이 불타기를 바라며, 물의 신은 세상이 물로 잠기길 원한다.
바람의 신의 세상에 고정된 것은 없으며, 바위의 신의 세상에는 움직이는 것이 없다.
빛의 세계에는 밤이 없고, 어둠의 세계에는 낮이 없다.
사람이 살 세상은 더 이상 없게 된다.
“모든 것이 각자가 추종하던 신의 뜻대로 따르게 된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결국 사라지겠지. 이것마저 신은 원했을까?”
아니, 그럴리가.
하지만, 그럴수도.
“어쩌면 인간의 신은 이 모든 것을 알았을지도 몰라. 원하지는 않았으나 알았으며, 알았으나 막을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
“무슨 뜻이지?”
“인간의 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했을 것 같다는 것이지. 인간의 탐욕을, 인간의 자유를, 인간의 의지를. 그 어떤 것에도 구속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의 삶이 아니기에, 인간의 신은 인간이 설혹 자신을 배신할 지라도 놔둔것이지. 설령 그 결과가 어떠한 운명을 맞이하게 될 지라도. 물론, 내 추측이지만.”
황제의 말에 여우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묻는다.
“그게, 네가 말하는 인류제국의 기치인가?”
“그래. 그리고 네가 비웃었던 우리의 과거에 대한 답이 되겠지.”
과거의 혁명가들.
인간을 계약과 투쟁으로 평등과 자유를 만들어왔던 자들.
그들이라고 인간이 자신들의 싸움을 기억하고 꼭 자신들과 같은 삶을 살길 바랬을까?
“후대가 우리를 기억하길 바라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전례를 밟을 수 도 있겠지. 기껏 구해준 목숨, 스스로가 내다버릴 수 있다. 어린 아이가 높은 빌딩의 꼭대기에서 놀면 구해주는게 사람의 도리라지만, 그것을 그저 쳐다보는게 설혹 법에 저촉되지는 않더라도 도의적 책임을 요구할 수 있다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의 자유의지다. 어떠한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인간이 아닌 타 존재의 농간에 의해 더렵혀져서는 되지 않아.”
“큭.”
여우은 숨을 멈췄다.
“큭큭큭큭.”
들이킨 숨을 조금씩 뱉는다.
“크하하하하하.”
모든 것을 토해내며 크게 웃는다.
“걸작이군, 이기적이며, 이타적이라서 처참해.”
“그럴지도.”
그 웃음을 황제는 그저 받아들인다.
“후대의 존재가 너희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것 같나? 네가 이 고난을 헤쳐나가며 얻어낸 평화에 안주한 이들이, 네가 겪었던 그 시간의 찰나조차 이해할 것 같나? 모두가 너를 무책임하다며 매도할 것이다.”
“그럴지도.”
“실로 이기적이다. 너는 너의 종족외에는 그 어떤 종족의 안위도 걱정하지 않는군. 무언가 다른 것을 빼앗는 행위가, 약탈의 행위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타 종족의 상황이 결코 너희 인간과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이어나가는구나.”
여우는 숨이 넘어갈 듯 웃었다.
“실로 이타적이다. 그 모든 죄악을 네가 감내하겠다고? 차라리 모르는 이가 무지몽매하여 행했으면 웃음이라도 나오지 않았을 것을,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안고 나아가겠다는 그 의지가 실로 가상하다.”
“비웃고 싶나?”
“아니, 전혀!”
여우가 단호하고, 확실하게 답했다.
“처참하지만 훌륭하다. 몸은 이미 넝마나 다름없지만, 실로 훌륭하다. 나 같이 책임이 싫어 도망친 서자따위가 어찌 비교할 대상이 되겠나.”
짝짝짝.
여우가 두 손을 들어 박수를 친다.
그 모습에는 진심으로 가득하다.
“땅여우 일족 고파. 그 일족의 주술에 정점에 도달했다고 자부하는 게 바로 이 몸 클락이다. 비록 그대 일족의 전사에게 패배했으나, 나는 대지의 이치를 통달했다고 자부했지. 내가 그 속에 들어가 하나가 되었을 때는 그 무엇도 나를 대지와 분간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 이치를 얻기 위해 행하던 수련에서 나는 깨달았지. 흙에서 일어나 세워진 것들은, 성세를 거듭하다 결국 멸망하고 다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런 순환을 반복한다. 흥망성쇠란 바로 그와 같은 것.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대도 마찬가지겠지.”
멸망속에서 이루어낸다.
여우는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 작품 후기 ==========
음, 이번 화는 개인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생각되는 요소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