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ampire went to Murim RAW novel - chapter (5)
5화
“후후후.”
야현의 붉은 입술 사이로 뾰족한 송곳니가 드러났다.
챙!
야현이 결정을 내리는 사이, 갈곽표가 몸을 날려 거리를 벌리더니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들었다.
“네, 네놈은 누구냐?”
갈곽표는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 지른다고 지른 목소리도, 손에 쥔 칼도 보기가 안쓰러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저벅!
야현이 움직이자 그가 칼을 휘둘렀다.
“죽어라!”
야현은 기가 찼다. 그도 그럴 것이 갈곽표가 덤벼드는 시늉만 하고는 창문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자신에게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이젠 갈곽표가 귀여워 보일 지경이었다.
야현이 창문을 흘깃 쳐다보았다.
콰앙!
그러자 열려 있던 창문이 저절로 굳게 닫혔다.
“헙!”
갈곽표는 기겁하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야현이 갈곽표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야현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갈곽표의 몸뚱이가 사시나무 떨 듯 들썩거렸다.
고양이, 아니 호랑이를 앞에 둔 쥐새끼가 이런 심정일까?
공포를 넘어 절망의 바닥에 떨어진 갈곽표는 오히려 독기를 드러냈다.
“으아악!”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일갈을 터트리며 갈곽표가 야현에게로 달려들었다.
야현은 날아오는 갈곽표의 칼날에 그냥 자신을 손을 갖다 대었다.
차장창창!
그러자 마치 단단한 바위에 부딪히기라도 한 듯 갈곽표의 칼이 단숨에 두 동강이 났다. 야현은 너무도 쉽게 갈곽표의 목덜미를 다시 손에 쥐었다.
“컥!”
갈곽표가 신음을 터뜨렸다.
“쓰, 쓰벌…… 이대로는 안…… 죽어!”
마지막 독기를 터트리며 그가 부러진 칼을 야현의 목에 쑤셔 넣었다.
‘돼, 됐다!’
갈곽표의 눈에 한순간이나마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하나, 그것은 곧 사라졌다.
“그래서 어디 죽겠습니까?”
칼이 목에 박힌 채 야현이 하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히익!”
그 괴기스러운 장면에 갈곽표의 안색이 야현보다도 더 창백해졌다. 야현이 아직 칼자루를 부여잡고 있는 갈곽표의 오른 손목을 움켜잡았다.
콰드득!
“으아아악!”
손목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갈곽표가 비명을 질렀다.
“시끄럽군.”
야현이 인상을 찡그리며 그의 숨을 틀어막았다. 그런 후 갈곽표를 얼굴 가까이 끌어당겼다. 야현의 붉은 동공이 물감 번지듯 눈동자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 그러자 공포에 짓눌려 하염없이 떨리던 갈곽표의 시선이 어느 순간 흔들림 없이 멈췄다.
“하오문과의 접촉 방법은 무엇이죠?”
가장 효율적인 최면은 공포와 고통 속에서 이뤄지는 법이다.
갈곽표가 멍하니 야현의 붉은 눈을 응시하며 고저 없는 목소리로 하오문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차피 살려줄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야현은 자아를 지우는 강한 최면을 걸었고, 그 충격의 여파로 갈곽표의 코와 귀, 입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향긋한 혈향.
야현은 갈곽표의 말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설명이 멈췄을 때, 주저 없이 그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았다.
콱!
자아가 사라진 갈곽표는 피가 빨리는 와중에도 목각 인형처럼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스으윽― 차장!
야현의 목에 박혔던 칼이 스스로 뽑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두둑 두두둑!
칼이 뽑히자마자 야현의 목에 난 검상은 자체적으로 빠르게 치유되었다.
툭!
온몸에서 피가 모두 빠져나간 갈곽표의 몸은 미라처럼 바싹 마른 상태가 되었다. 야현이 송곳니를 거두자 빈껍데기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아!”
기분 좋은 음성이 야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가 붉은 동공을 확장시키며 갈곽표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화르르, 화염이 솟아올랐다. 갈곽표의 마른 껍데기가 불길에 휩싸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야현은 손수건을 꺼내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 닦아낸 손수건은 불길에 던져 함께 소각했다.
“어린 숙녀 아가씨.”
모든 용무를 끝낸 야현은 그의 명령에 따라 당과를 먹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소녀를 불러 세웠다.
“네?”
“집에 가야죠?”
“이제 가도 되나요?”
“당연하죠.”
“하지만 갈 문주가 다시…….”
갈곽표를 떠올리자 두려운 듯 소녀가 눈물을 글썽였다.
“그자는 죽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진짜요?”
“그럼요. 다시는 아가씨를 찾아가지 않을 겁니다.”
야현이 소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와아, 정말 감사해요!”
“데려다 주겠습니다.”
기뻐하는 소녀에게 야현이 몸을 숙여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오늘 본 일은 모두 잊어야 합니다. 아시겠지요?”
야현의 윙크에 소녀가 뺨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소녀를 빈민촌에 위치한 집에 데려다 준 야현은 난주현 번화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번화가로 들어선 야현은 번화가 대로(大路) 뒤편에 위치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취객들이 가득한 소로를 중심으로 늘어선 건물들에는 하나같이 붉은 홍등이 걸려 있었다.
홍등가(紅燈街)였다.
홍등가 초입에 들어서자 기녀들의 분 냄새, 술 냄새, 오물 냄새 등 온갖 잡다한 냄새가 섞인 퀴퀴한 냄새가 났다.
그토록 싫던 냄새, 미치도록 벗어나고 싶던 냄새.
하지만 그리운 냄새.
야현은 아련한 추억에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이제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열두세 살 정도였을 때인 거 같았다.
전염병으로 부모가 죽고 유리걸식하다가, 굶어 죽을 수 없어 배수(소매치기) 패거리에 들어갔었다. 나름대로 손재주가 있었던 야현은 제법 배수짓을 잘했다.
그리고 돈도 꽤 만졌다.
하지만 여전히 배고픔을 면할 수 없었다.
배수 패거리 두목의 횡포와 뒷골목 건달패에 바쳐야 하는 상납금 등, 벌어들이는 족족 대부분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배고픔을 면하고, 또 술 한잔 마시고 싶은 맘에 점점 큰 액수를 노리기 시작했다.
눈썰미가 있어 곧잘 큰 주머니를 털 수 있었고, 성공이 이어짐에 따라 담도 겁 없이 커져만 갔다.
그 당시 야현은 어려 세상 물정을 잘 몰랐다.
배수짓이 딱 손에 익었을 무렵이 가장 위험한데 야현의 담은 이미 커질 대로 커져 버린 후였다.
그러다 화려한 견의에 풍채 좋은 이의 전낭을 털다 걸려 죽기 일보직전까지 얻어맞다 정신을 잃었다. 말로만 듣던 무림인이었던 것이다.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시선.
그 무림인은 죽일 가치조차 못 느꼈던지 야현을 죽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손속은 매웠다.
그 매질에 정신을 잃고 사경을 헤맸다.
며칠이 지나 겨우 눈을 떴을 때 한 소녀를 보았다.
‘소미 누이.’
이제는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졌다.
하지만 그녀가 또렷하게 남긴 것이 있었다.
정(情), 그리고 애(愛).
비정하고 매정한 뒷골목에서 따뜻한 미소를 지어 준 이, 고아가 된 후로 처음으로 따사함을 느끼게 해준 이. 그렇게 그녀는 힘들 때마다 포근하게 보듬어 주는 누이이자, 이성에 대한 감정에 처음 눈뜨게 해 준 야현의 첫사랑이었다.
야현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홍루 기녀 다섯에 하나는 목을 맨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듯 소미 누이도 스물둘, 꽃다운 나이를 채 피우지 못하고 목을 매 자살했었다.
아련한 옛 추억 때문일까?
이제야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씁쓸한 미소가 쉬이 가시질 않았다. 하지만 그 미소도 곧 사라졌다. 야현은 미소와 함께 옛 추억까지 떨쳐냈다.
옛 추억은 추억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이제 없다.
야현은 갈곽표가 일러준 대로 그 거리의 가장 중앙에 있는, 그리고 가장 큰 홍루 앞에 섰다.
‘여기군.’
현판 구석에 자연스러운 흠집처럼 파인 X 자 모양의 예(乂) 자 표식을 발견한 것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지배인 격인 총관으로 보이는 깔끔한 차림의 중년 사내가 야현에게로 다가왔다.
“혼자 오셨습니까?”
중년 사내는 야현의 뒤를 흘깃 바라보며 물었다.
“구정물에서 핀 꽃으로 담근 술 한잔 마시러 왔습니다.”
야현의 나직한 목소리에 총관의 눈매가 번뜩이며 눈길을 아래로 내렸다. 그 시선에 야현은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X 자 모양으로 포갰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총관은 야현을 데리고 삼 층 구석에 위치한 방으로 안내했다.
“술상은 어떻게 할까요?”
정보 단체에서 술을 판다.
더불어 홍루에 홀로 오는 사내들도 많으니 남들의 이목을 속이기에도 좋았다.
마침 술 한잔도 나쁘지 않기에 야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정갈한 술상이 나왔다.
쪼르르―
야현은 술 한잔 마시며 갈곽표에게서 얻은 하오문에 관한 몇몇 정보를 자연스레 떠올렸다.
하오문(下午門).
시궁창, 혹은 막장의 뜻을 가진 이름 그대로 도비(盜匪, 도둑), 배수(?手), 편자(騙子, 사기꾼), 창기(娼妓), 도수(賭手, 도박꾼) 등 세상에서 천대받는, 가장 힘이 약한 자들이 모여 만든 집단이었다.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만든 것이 아니다.
밝은 태양 아래, 양지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더럽고 약한 자들이 그저 살기 위해, 인간이 가진 생존 본능으로 인해 만들어진 집단이었다.
약하지만 집단을 이뤘기에 작지만 힘도 가졌다.
하지만 그 힘 때문에 더욱 어둠으로 몸을 숨겨야 하는 이들 또한 하오문이기도 했다.
정보를 다루지만 한없이 약하기에, 너무나도 맛좋은 먹잇감으로 비쳤다. 정파, 마교, 사파 등 모든 무림 문파와 황실의 고관대작 등 힘을 가진 자라면 누구 하나 가리지 않고 모두가 하오문을 원했다.
적선하듯 자신의 그늘로 들어오라고.
그러나 하오문은 그 누구에게도 가지 않았다.
아니, 갈 수 없었다.
누군가의 귀와 눈이 되는 날, 그날이 곧 멸문의 날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가질 수 없는 것은 부서야만 하는 강자의 논리에 하오문은 보다 깊은 음지로 들어가 어둠이 되어야 했다.
언뜻 보면 자신과 너무나도 닮았다.
태생적으로 태양 아래에 설 수 없는 그런 자신과…….
피식!
하지만 야현의 입가에는 고소(苦笑)가 아닌 조소(嘲笑)가 지어졌다.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