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113
EP.113 파티 – 2
백암궁에 도착하자 인원이 갈라졌다. 모험가들은 파티장으로, 나는 대기실로.
나는 루실의 스승.
즉 왕가에 소속된 인물인 만큼 왕족들과 함께 파티가 시작되고 좀 기다린 후에 입장해야 한다.
조금 늦는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한 에티켓이었다.
물론 플레이어를 배려한 이벤트는 아니었고. 이거에 낚여서 잠깐 나갔다가 파티장에 재입장 못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지.
“어서오게. 음…”
머뭇거리던 여왕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뭐하시는 겁니까?”
내게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내 딸을 구해줘서 고맙네.”
“별 말씀을. 스승으로서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현자. 당신을 루실의 스승으로 삼은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인 것 같군.”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저도 감사드립니다.”
일, 이년은 넘게 걸릴 뻔 했던 S급 스승 업적을 반년도 안돼서 딸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여왕은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루실은 이제 졸업해도 되지 않겠나? 나도 여왕이니까 사람 볼 줄은 알지. 내 딸이 이만큼 클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 분명 그 아이. 훌륭한 여왕이 될거야.”
“그러길 바라야죠.”
여왕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말인데. 괜찮다면 현자. 여왕의 반려가 되어 줄 수 있겠나?”
“…지금 저한테 프로포즈 하시는 겁니까? 죄송합니다만 여왕님께는 관심이…”
“아, 아니! 나 말고!”
아. 루실의 반려가 되어 달라는 얘기군.
내가 대꾸하려는 찰나, 벌컥 문이 열렸다.
“…어머니? 스승님? 이제 나갈 시간이라는데…”
“음. 그러니? 알겠다. 자. 현자. 가세. 대답은 파티 후에 듣지.”
“여왕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공주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시종장의 낭랑한 외침과 함께 왕실 연주가들의 아름다운 연주가 시작되었다.
전야제때 모였던 이들이 끝나고 2차라도 한 걸까?
아인종과 인간종들이 한데 모여서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러던 그들은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는 여왕과 루실에게 집중했고, 난 가장 상석으로 향하는 그들에게서 떨어져 아는 얼굴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왔어?”
그곳에는 베로니카와 레이시가 함께 있었다.
왜 너희들이 같이 있냐?
“네 말대로 베로니카 추기경님은 아주 좋으신 분이군.”
“그렇지?”
“너 진짜. 레이시 후작님에게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한거야?”
“난 순수하게 사실만 말했어.”
“…그, 그래?”
베로니카의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다. 그 사이 여왕은 루실의 생일파티에 참석해 준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현했고, 잠시 후 연주가들의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모자란 저를 축하해주시기 위해 방문해주신 귀빈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렇게나 많은, 그리고 이렇게나 높은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루실은 한점의 떨림 없이 말하고 있었다.
옛날과 비교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다.
방구석 폐인에 낯가림 심하던 루실이 저렇게까지 크다니…
“쟤… 내가 키웠어.”
“누가 뭐래?”
이게 제자를 키운다는 기쁨이구나.
물론 두번은 안할거다.
“그럼. 파티를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방긋,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루실이 파티의 시작을 알렸다.
“갔다와야 하지?”
“어? 어.”
루실의 파트너로서 첫 댄스를 선보여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다.
그리고 어쩌면.
“루실. 굉장하네.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어.”
베로니카의 중얼거림에 동의했다. 정말 많이 컸다.
여왕의 말대로 이제 그녀에게 졸업장을 수여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갔다 와. 이왕 하는거…”
베로니카는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고, 난 로브를 벗어 그녀의 손 위에 올려주었다.
“멋지게 해봐.”
“그래야지.”
이걸 위해서 이렇게 노력했는데.
로브 안에 있던 황제의 옷이 드러나자 파티장에 모여 있던 이들의 시선이 내게 주목된다.
난 당당하게 루실을 향해 걸었고, 그녀는 빙그레 미소지으며 정중하게 날 반겼다.
“레이디의 파트너로서 레이디의 첫 댄스를 취하고 싶습니다. 괜찮으시다면 파티장을 함께 빛내주시겠습니까?”
“좋아요!”
더욱 밝은 미소를 지으며 루실은 내 손을 잡았다. 그렇게 단상에서 내려온 나는 파티장의 댄스홀 중앙으로 향했다.
오늘의 주인공인 루실을 위해서, 그 누구도 댄스홀에 올라오지 않았다.
“준비됐지?”
“…예!”
지금까지 한 모든 노력이 여기서 판가름 날거다.
난 루실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날 실망시키지 말라고.”
“물론이죠.”
루실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파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전야제때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 덕분에 인간종과 아인종간의 갈등도 없었다.
오히려 너무 친해져서 드워프와 인간이 술대결을 하다가 둘 다 나가 떨어지는 기이한 현상까지 발생할 정도였으니까.
“와. 멋지네요!”
“그런가? 저정도는 나도 할 수 있는데.”
축하를 위해 참가한 충인족 중 사마귀 충인의 검무가 끝났다.
두자루의 대검을 휘두르며 날개를 펼치는 그 검무는 위협적이고, 그만큼 아름다웠다.
그 검무에 흥분한 레이시가 같이 검무를 추기 위해 내 월광을 빌려 난입하려 한 건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그 외에 선물들도 만족스러운 것들 뿐 이었다.
귀족들이 보낸 것들부터 시작해서 아인종들이 보낸 것들까지.
특히 엘프의 숲에서 보낸 선물은 왕국도 크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50년간 세계수의 열매와 엘븐실크를 왕국에 저가에 공급하겠다는 내용의 계약서였으니까.
공주를 위한 선물치고는 좀 이상하지만 이것은 그녀가 여왕이 되었을 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어쨌든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예산이니 말이다.
“크흠.”
루실의 앞에 선 베로니카는 낮게 헛기침을 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루실은 생글생글 웃었다.
“와주셔서 고마워요. 베로니카 추기경님.”
“뭘.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그리고.”
볼을 긁적거리며 베로니카는 피식 웃었다.
“서로 알몸도 본 사이잖아?”
“그, 그렇죠? 후후.”
레이드닌에서 있었던 얘기구나.
“아무튼 자. 이거.”
베로니카가 내민 것은 역시나 성물이었다.
축복받은 순은으로 만들어진 교회의 디바인마크.
별다른 장식이 없고 투박해보이는 그 디바인마크를 받으며 루실이 의아해했고 베로니카는 아무렇지 않게 설명했다.
“성녀 위시틸님의 디바인마크야.”
성녀 위실틴은 과거 용사의 동료로 자신의 모든 성력을 희생해 용사가 마왕을 치는데 도움을 주었던 성녀다.
그 희생에 신이 보답하여 더욱 강력한 성력을 부여했고, 이후 그녀는 자신의 성력을 뽐내는 대신 마왕에게 고통받은 이들을 위해 평생 힘썼다고 한다.
그런만큼 저 디바인마크의 가치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귀한 것을… 감사합니다. 이 선물에 대한 값은. 반드시 교회에 돌려드리겠습니다.”
“…오호?”
옛날이었다면 이 귀한 것에 주눅들었겠지만, 그녀는 달랐다.
루실은 주눅들기보다는, 되돌려준다 선언했다.
그것조차도 감당하겠다는 듯이.
그 대응에 베로니카도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그저 재밌다는 듯 웃으며 물러날 뿐 이었다.
“굉장한데?”
“후후. 전 스승님의 제자니까요.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려서는 안되죠.”
진짜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해진다.
베로니카를 상대로도 한점 물러남이 없다니…
정말 졸업할 때가 되었구나.
그동안 오랫동안 준비했던 파티인 만큼 큰 문제 없이 끝났다.
물론 마녀의 테러를 막지 못했다면 파티고 나발이고 아주 개판이 났겠지만, 사전에 잘라낸 만큼 문제거리는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파티가 끝나갈 무렵, 난 루실에게 물었다.
“그런데 춤 한곡만 춰도 괜찮아?”
나도 그렇지만 루실에게도 댄스를 권유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당연한 일 아닌가. 시작부터 모두가 감탄할 정도의 춤을 췄는데.
사교계에서 춤은 품격을 나타내는 것과 같은 만큼 나나 루실과 춤을 추고 싶어하는 귀족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았다.
하지만 루실은 그 모든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즉, 이번 파티에서 그녀와 함께 춤을 춘 것은 오직 나 뿐이라는 이야기였다.
“이 기분을 조금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요.”
“그래? 그렇다면야.”
“그런데 스승님께서는요?”
“난 오늘만큼은 너의 파트너니까.”
“…후훗. 기뻐요. 정말… 시간이 멈췄으면 싶을 정도로…”
달콤한 목소리.
루실의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대륙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오신 천재 모험가 연주가! 리자드맨의 축복! 새로운 세상을 여는 반역자!! 라크님의 신곡 발표회가 시작되겠습니다!”
시종장이 강하게 외치자 라크를 알아 본 이들은 슬그머니 화장실로 도망쳤고 발틴과 루켄디, 베로니카는 차분하게 귀마개를 착용했다.
“….진짜 멈췄으면 좋겠어요.”
루실의 목소리에는 아까보다 더한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되돌아가지도, 멈추지도 않는다.
그렇게 되면 게임오버. 즉 세계가 멸망하는 거니까.
“공주님의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이 라크! 영혼을 담아 부릅니다! 제목! 파멸의 노래!!”
제목이라도 좀 평범하게 지으면 안되나?
정말 흥분되는 공연이었다.
라크에 대해 모르던 귀족들과 아인종 귀빈들이 저 놈을 매달라고 외칠 정도로.
백합기사단원들이 열심히 말려 라크가 쫓겨나는 수준에서 그의 처벌이 끝났고 이후에는 큰 큰 문제 없이 파티가 진행되었다.
“그럼 오늘의 파티는 종료하도록 하겠소.”
12시의 종소리가 들린다.
모든 것은 끝을 맺기 마련.
루실의 생일이 끝남과 동시에 이 파티 역시 자연스럽게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었다.
“오늘 밤을 더 즐기고 싶은 분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해놓았으니, 원하신다면 따로 더 즐겨주시길 바라오. 자. 그리고 루실. 따라오렴.”
“네에. 그럼 스승님. 저기…”
내가 갈 필요 있을까? 아마 지도자급 모임일텐데?
“난 별관에 있던 애들이랑 술이나 한잔 더 하려고…”
여왕도 굳이 나를 데려갈 생각은 없었는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루실은 대놓고 아쉬워하다가 날 기다리는 이들을 힐끔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알겠어요. 그럼 저도 이따가 찾아뵈도 되나요?”
“좋을대로 해.”
허락을 받은 루실이 기뻐하며 여왕과 함께 파티장을 나선다. 그것을 보던 나는 몸을 돌렸다.
레이시와 베로니카, 그리고 발틴, 루켄디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끼리 2차 더 하자고.”
“귀하신 분들은 귀하신 분들끼리 놀라고 하고.”
“여기 귀하신 분 두명이나 포함됐는데?”
베로니카와 레이시. 둘을 가리키자 둘은 피식 웃었다.
“성직자는 가장 낮은 곳에 임하라는 말이 있잖아?”
“그것도 그렇군. 그럼 넌?”
레이시는 무뚝뚝한 얼굴로 뚱하니 말했다.
“안되나?”
안될 건 없지.
별관에 복귀하고 정원에 모였다. 라크는 오늘 결과에 무척이나 상처입었는지 진탕 술을 퍼 마시고 있었다.
“에이잇! 음악도 모르는 무식한 것들!!”
누가 누구보고 무식하대?
어처구니가 없지만 이미 지난 일이고, 그는 충분히 대가를 받았으니 지적말고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그런데 추기경님. 추기경님께선 오늘 한번도 춤을 추지 않으셨더군요.”
와인을 한번에 들이마신 레이시는 류트를 들어올렸다.
타닥타닥 피어오르는 모닥불에 비춰져서 그런 것일까?
베로니카의 얼굴이 붉다.
“아… 그, 저는 춤을 잘 못춰서…”
“춤이라는 것은 그저 즐기기 위한 것입니다. 굳이 격식을 따질 필요는 없지요. 그렇지? 현자?”
“그럼.”
“하지만 루실과는 굉장히 잘 췄잖아.”
“그건 잘 춰야 하는 춤이니까 그런거고. 사실 나도 격식없이 노는게 편해.”
난 까먹던 땅콩을 내려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띠리링~
레이시가 류트를 튕긴다. 그것에 맞춰서 발틴은 피리를 꺼냈고 루켄디는 작은 북을 들었다.
“어, 어라?”
베로니카는 의아해했다. 발틴과 루켄디가 악기를 드는 모습이 신기했나보다.
“원래 모험가들은 악기 하나 쯤은 다룰 줄 알지.”
“현자나 저기 라크 수준은 아니지만 말야. 야야. 라크. 너도 들어.”
“제기일…! 내가 할까보냐?”
“슬슬 그 음악성 버리고 대중적인 걸로 가지. 베로니카 추기경님도 춤 한번 춰봐야 하지 않겠나.”
씩씩거리는 라크를 향헤 레이시가 말했다. 결국 그도 류트를 들었다.
몇차례 음을 맞춰 본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난 베로니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춤추자.”
“…어.”
당황한 듯 보였지만 베로니카는 살며시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어색하게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나, 나 진짜 춤 못춰.”
“걱정 마.”
-띵띵띵~ 띠리링~ 띵~
연주곡은 왈츠 같은 교양 넘치는 곡이 아니었다.
모험가들이 야영을 할때면 즐기는 빠르고 신나는 노래.
그래서일까?
베로니카는 왈츠일 줄 알고 딱딱하게 굳어 있던 그녀는 어색함에서 벗어나 어설프게나마 날 따라 춤을 추었다.
“아하. 아하하핫! 이거 재밌네?!”
동작을 틀리기도 했고, 내 발을 밟기도 했으며, 턴을 하다가 라크와 부딪히기도 했다.
내 손을 놓칠 뻔 하며 자세가 흐트러지는 것도 몇번이나 있었지만.
이 자리는 파티장처럼 격식 따위는 없는, 그저 순수하게 즐기는 자리다.
그래서인지 내 손을 잡고 발을 구르며 베로니카는 무척이나 즐거워하고 있었다..
좋아하니 보기 좋네.
매번 열심이라 좀 쉬게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술을 마시고, 안주를 먹으며 춤을 추거나, 혹은 마술이나 농담을 하고.
나와 발틴이 취중듀얼을 하는 등 흥겨운 분위기가 계속될 때였다.
“뭐야. 여기가 더 재밌겠네.”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별관의 정원, 모험가들의 파티장에 온 것은 마락스와 레오였다. 발틴과 루켄디가 웃으며 반기는 사이 마락스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공주는?”
“어? 안왔는데요?”
“그래? 공주는 한참 전에 여기 간다고 출발했는데?”
어? 설마 뭔 일 있는건가?
난 남은 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루실의 방으로 가보았고.
“공주님께서는 아까 전에 들어오셔서 지금 주무시고 계십니다.”
“아. 그래?”
시녀장의 공손한 말에 돌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내일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