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162
EP.162 네가 와 – 1
그들이 떠나고 방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그녀는 베네딕트 3세와 마주쳤다.
교황의 자리에 올랐지만, 예전처럼 소탈하기 그지 없는 분.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에게 베로니카는 활짝 웃어보였다.
“교황님.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아세요?”
“무슨?”
“아주 좋은 날이에요!”
그녀의 활기찬 모습에 교황은 웃었다.
과거, 부모님을 잃고 아무런 표정조차 짓지 않던 아이다.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던, 신이 선택한 아이.
막대한 신성력을 지녔다는 이유로, 그리고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의 시샘을 받던 그 아이가.
이제는 저렇게 커서 세상의 밝음을 찬양한다.
그것이 너무나도 행복해, 교황은 커다란 손을 들었다.
“그러니?”
“예!”
“왜 그렇게 행복한지 말해주겠니? 너의 행복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구나.”
“후후후~.”
하지만 베로니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기쁜 듯 웃기만 할 뿐. 몸을 베베 꼬면서 입꼬리를 씰룩거리는 꼴이 퍽 우습고, 귀여워 교황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우리 베로니카 추기경님을 이렇게 기쁘게 할 만한 사람이 누군지는 알고 있지.”
“읏.”
“현자님이시구나?”
“으으… 그, 그렇죠?”
발그레, 행복에 가득 찬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그런 그녀를 보며 교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와 현자님이라면 분명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야. 후후. 기대가 되는구나.”
현자와 베로니카.
둘이 결혼을 하고, 둘을 닮은 아이를 낳고.
서로 사이좋게 악마 숭배자들의 머리를 깨부숴버리는 그 광경을 생각하니 절로 마음이 훈훈해진다.
교황은 베로니카의 머리를 다시 한번 애정을 담아 쓰다듬어주었다.
“그나저나 이를 어쩌나. 네가 결혼 때 주례를 맡고 싶기도 하고, 또 네 옆에 서있고 싶기도 한데 말이야.”
“둘 다 하시면 안되려나요?”
“하하. 그래도 되려나? 음. 그래. 뭐 괜찮겠지. 기쁜 날이니. 창조주님께서도 허락해주실 것이야.”
그리 말하며 교황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교회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신상.
이 세계를 만들고, 모든 이의 아버지인 창조주의 신상을 응시하는 그의 시선에는 따스함과 존경심만이 담겨 있었다.
“부디. 너의 앞길에 행복만이 가득하기를 빌겠다.”
“네!”
그렇게 교황과 만남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 온 베로니카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방에 있는 꽤나 많은 물건들을 보며 빙긋 웃었다.
현자에게 받은 것들.
현자를 본뜬 것들.
현자의 모든 것들.
이제.
이 방에.
진짜 현우가 올 수 있어.
베로니카는 키득거리며 손수 만든 현우의 인형을 끌어안았다.
아. 세그만 시에서 정말 좋았는데.
곤돌라를 탈 때 그 이상한 말만 안했어도 정말 최고였을텐데.
베로니카는 인형을 끌어안은 채 침대에 털썩 누웠다. 커다란 가슴의 사이에 현우의 인형이 끼워진다.
버둥버둥.
누운 채 긴 다리를 퍼덕거리던 그녀는 옆에 있는, 현우의 등신대 인형을 꽉 끌어안았다.
보고싶다.
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그리워지는지.
“정말…”
베로니카는 현자의 인형, 얼굴 부분을 살짝 꼬집으며 방긋 웃었다.
“치사하다니까.”
내가 이렇게 널 좋아하고 있는지. 너는 모르겠지?
내가 이렇게 널 생각하고 있는지. 너는 모르겠지?
그래도.
그래도.
베로니카는 인형을 꽉 끌어안으며 생글거렸다.
“…그래도 좋아해.”
인내는 성직자에게 미덕이고, 살아가며 지켜야 할 규율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베로니카는 자신의 인내심이 아주 강하다고 생각했다.
“…베로니카 추기경님?”
“으, 으응?”
“아까부터 계속 멍하니…”
13수녀회의 수녀 올웬이 걱정스레 바라보며 물었다. 부하이지만, 자신과 같이 베네딕트 3세가 운영하던 고아원에서 자고 나란 자매와 같은 이.
그녀를 향해 베로니카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서부 트시카른 시에서 발생한…”
“그 안건은 이미 끝났습니다.”
전혀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우가 떠난 이후로 벌써 이주가 훌쩍 지났으니까.
첫날은 기대였고, 둘쨋날은 행복이었다.
하지만 태양이 세번째 뜬 날부터는 초조함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쯤이면 현우가 슬슬 돌아올 때가 되었다.
그런데도 그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 아닐까?
그게 아니면.
설마 내가 싫어서?
아아.
어쩌지?
어쩌지?
“현자님은 괄테이락님과 함께 남부에 계신다는 연락을 받으셨잖습니까.”
“그, 그렇지.”
공간의 외신 코스모의 사도인 괄테이락.
그와 함께 뭘 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우는 지금 남부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바로 어제 연락이 왔다.
그러면서 악마 하나를 잡았다는 보고까지 들어왔으니, 이단심문관의 수장으로서는 기뻐할 일이다.
하지만 불안하다.
도대체 현우는 뭘 하고 있는 것일까?
“베로니카 추기경님. 편지 왔습니다.”
“어디! 어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베로니카는 수녀가 전해 준 편지를 받았다.
그리고 대놓고 실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보낸 이가 공국의 세실이었으니까.
“현자님을 초빙해서 부활, 그리고 죽음의 법에 대한 강연과 실험 지원을 요청한다는 내용이군요.”
“그래…”
현우가 전에 말했었다. 공국에 가서 그것을 도와줘야 한다고.
그 말이 떨어지자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국에서 교회에 협조 요청을 하는 이유는, 현재 현우가 교회에서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녀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서랍에 편지를 넣었다.
그리고 다시 업무에 집중하려 했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휴. 언니.”
그때 올웬의 목소리가 들렸다. 짜증이 담긴 듯한 그 목소리에 베로니카는 움찔했고 올웬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가서 머리 좀 식히고 오는게 어때?”
“그, 그래야겠네. 올때 커피 사올게.”
“난 진한걸로.”
그렇게 집무실에서 나온 베로니카는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흔들려서 자매에게 피해를 끼친 것 같다.
“…에휴. 정말.”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베로니카는 투덜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정말 이대로는 머릿 속에 현우 밖에 없는 바보가 되어버릴 것 같다.
“돌아오면 잔뜩 꼬집어 줄거야.”
그렇게 다짐하며 그녀는 건물 밖으로 나와 밖으로 나가기 위해 교회 정문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발견했다.
교회로 들어오고 있는 하얀 로브의 남자.
며칠동안이나 코빼기도 비추지 않으면서도 계속 베로니카를 괴롭히던 남자를.
“현우야!!”
만나면 잔뜩 꼬집어줘야겠다는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꼬리가 있다면 마구 흔들렸을 정도로 반가워하며 베로니카는 현우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벅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그의 품에 안겼다.
“진짜! 진짜! 도대체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 온거야?! 응?!”
“야야. 사람들 본다.”
“보면 뭐 어때! 그리고 보는 사람… 없네. 뭐!”
“그래.”
현우의 손이 등을 토닥인다. 그 기쁨에, 그 쾌감에, 그 환희에.
오랫동안 기다렸던 만큼 달아오른 몸은 기쁨의 외침을 토해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몸에 힘이 들어가고 그를 끌어안은 팔이 조여진다.
“진짜 보고 싶었다고…”
“그래.”
“아무튼!! 이제 어디 안가?”
“아니… 여긴 잠깐 좀 확인할게 있어서 온거라.”
“확인? 뭘?”
“그런게 있어.”
현자가 또 돌아다닌다는 말에 베로니카는 덜컥 겁을 먹었다.불과 며칠동안 없었던 것 뿐인데도 이렇게 바보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또 간다고?
또 혼자?
베로니카는 그를 꽉 잡았다.
이대로는 안돼.
“…오늘 저녁에 시간 내어 줄 수 있어?”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거라… 괜찮긴 한데. 왜?”
베로니카는 현우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기다릴 수 없다.
그가 오지 않는다면. 내가 갈 뿐.
“…할 말이 있어서. 아주 중요하게.”
그녀의 진지함을 눈치챈 것일까?
현우는 잠시 생각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베로니카는 바로 집무실로 돌아왔다. 오늘 저녁에 현우를 만나려면 당장 일을 처리해야 하니까.
“현우가 왔어!”
“그래? 그거 다행이네. 그런데.”
“응?”
“커피는?”
“…아.”
올웬은 안경 안의 눈살을 찌푸렸고, 베로니카는 머쓱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방 갔다올게!!”
집중하기 시작한 베로니카의 업무처리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역시 사람은 하면 된다.
그렇게 오늘치 일을 끝내자마자 그녀는 교회 근처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그곳의 삼층, 옥상을 전부 빌린 그녀는 방으로 돌아와 옷장을 열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
늘 입는 수녀복만 입을 수는 없었다.
“앗. 아아아…”
하지만 지금까지 옷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베로니카다. 가끔씩 세실이나 레이시, 루실 같은 친분있는 여인들이 옷 좀 사라고 했을 때 사둘 걸.
옷장 안에 있는 것음 거무튀튀한 수녀복들 뿐.
그걸 계속 봐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
결국 베로니카는 한숨을 폭 내쉬고 옷장이 아닌, 방 구석에 모셔져 있는 상자를 열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추기경급 사제들이 아주 중요한 행사에 나갈 때만 입는 고위 사제를 위한 예식제복이었다.
순수를 상징하는 백색의 천, 그리고 신의 뜻을 다르는 의미인 금색의 무늬와 자수가 새겨진 아름다운 제복을 보며 베로니카는 한숨을 쉬었다.
이단심문관이 된 이후로 한번도 입지 않은 옷이다.
싸워야 하는 신의 자식에게 흰색은 어울리지 않다면서.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걸 입어야겠다.
베로니카는 천천히 옷을 갈아입으며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안에 비춰지는 은발의 미녀는, 웃음기를 참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 준비가 끝났다.
평소에 하지도 않는 화장까지 하고, 몸단장까지 완벽하게 끝낸 베로니카는 심호흡을 하며 현우가 머무는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노크.
잠시 후 나온 현우는 베로니카를 보다가 씩 웃었다.
“예쁘네.”
예쁘네.
그 한마디는 빛이나 다름없었다.
전쟁의 참혹함을 피하기 위해 병사들에게 주어지는 마약보다, 더욱 편안하고, 들뜨게 만들어주는 그 중독성 깊은 말에 베로니카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새하얀 스타킹과 하얀 부츠에 감싸진 다리가 덜덜 떨린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현우의 팔을 꽉 끌어안은 베로니카는 그에게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예약해 둔 곳이 있어. 가자.”
베로니카가 직접 가서 신신당부해서일까?
레스토랑의 3층은 텅 비어져 있었다. 열렬한 신자이고, 예전에 악마 숭배자들에게 납치되었었던 자식을 구해 준 베로니카를 위해 레스토랑 주인이 힘을 쓴 결과다.
그렇게 고급진 레스토랑의 옥상에 앉은 베로니카는 현자를 보며 생각했다.
일단 기세로 여기까지 왔다.
그럼 나머지는… 어떻게 해야하지?
“전채 나왔습니다. 양송이와 크레이멀 피쉬를 사용한 샐러드입니다.”
“감사합니다.”
멋진 제복을 입은 매니저가 요리를 놓아주고 나간다. 그러며 살짝 고개를 돌리고 엄지손가락을 척.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베로니카는 상냥하게 웃었다.
“자. 먹자.”
“여기 비싸보이는데…”
“이정도는 괜찮아!”
그래. 이정도는 괜찮다.
요리는 맛있었고, 풍경은 좋았으며 식사는 즐거웠다.
사실 여기가 아니라 어디에서 뭘 하더라도 눈 앞에 있는 사람과 함께한다면 늘 웃을 수 있겠지.
디저트를 먹기 위해 테라스 쪽으로 이동했다. 자리는 긴 의자 하나. 서로 양 옆에 앉으라는 주인의 배려였다.
그것에 감사하며 자리에 앉아 그에게 머리를 기댄 베로니카는 심호흡을 했다.
이제.
해야 할 차례다.
“…현우야.”
“응?”
주스를 홀짝거리던 그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숨이 막혔다.
어떻게 해야하지?
고백을 해야하는데.
순간 겁이 치솟았다.
티끌만한 불안이 불씨가 되어 베로니카의 속에 거대한 화염처럼 크게 퍼져나간다.
만약 그가 결혼하려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면 어떻게 하지?
괜한 설레발이라면?
그가 다른 여자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라면?
혹시.
혹시.
혹시.
베로니카는, 처음으로 현자에 대한 사람들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현자를 이해할 수 없다.
만약 그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의 속내를 알 수 있다면 이렇게 두렵지는 않았을텐데.
‘아니야. 베로니카.’
언제나 그랬잖아.
언제나 두려웠고, 언제나 이겨냈잖아.
그러니까.
“현우야.”
베로니카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아주 진지하게 그를 응시하며 손을 잡았다.
방금 전까지 온 몸을 잠식하던 떨림이, 그의 손을 잡은 순간 거짓말처럼 멈춰버렸다.
“…나랑 결혼하자.”
“….갑자기?”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현자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일생일대의 고백을 받았음에도, 그는 그저 순간 멈칫했을 뿐.
하지만 지금 베로니카에게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었다.
“물론 네가 고민할지도 모르니까 공평하게 선택권을 줄게. 첫번째.”
꿀꺽. 침을 삼킨 베로니카는 현우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날 신부로 삼고 행복하게 사는 것.”
“…두번째는?”
“내 신랑이 돼서 행복하게 사는 것. 자. 어때? 완전 공정하지?”
참으로 공평하고, 정직한 양자택일이 아닌가.
자신이 이렇게나 자비롭고, 마음이 넓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베로니카는 당당했고, 그 당당함에 현자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하하. 그게 뭐야.”
“시, 시끄럽고!”
얼굴을 붉히며 더욱 뻔뻔하게.
이정도는 각오한 것 아닌가?
애초에 현자의 마음의 벽을 뚫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해온 베로니카에게 있어서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두개 외의 선택지는?”
“없어.”
“그러냐.”
천천히, 웃음기를 지우며 현자는 베로니카와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것이, 베로니카에게 힘을 주었다.
“고마워. 되게 기뻐. 하지만…”
“….”
“나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줄래?”
“…왜?”
“…확인해야 할 것이 있고, 만나야 할 자가 있어.”
현자의 눈에 담긴 것은 의지였다.
그 무엇도 꺽지 못할 불굴이었고, 고집이 담겨 있었다.
“그리하여 반드시 얻어내야 할 것이 있어.”
그의 말에 베로니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날… 싫어하는 건… 아니지?”
두렵다.
무섭다.
그의 답이 걱정된다.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티끌같은 공포가 만들어낸 미래가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포를.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을.
“내가 평생을 함께 해야 한다면… 그건 너 외에는 없겠지.”
현우는 단 한마디로 걷어버렸다.
아아.
넌 정말.
치사해.
안도감에 몸이 풀린다. 베로니카는 힘없이 현우의 가슴에 얼굴을 가져가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