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32
EP.32 역병 – 1
“흡!”
게임 내에서 전사는 탱커와 근접딜러의 역할을 맡는다. 기사보다는 탱킹 능력이 약하지만 검풍을 이용한 다양한 종류의 견제기, 그리고 크라잉류의 포효와 스톤 스킨 같은 방어 계열 스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컨트롤에 따라 기사보다 더 좋은 탱커가 될 수 있었다.
물론 나 역시 고인물이고, 이 세계에 익숙해져 있기에 전사의 역할을 충분히 맡을 수 있었다.
궁극기는 못 쓰더라도 말이다.
“머슬!!”
월광을 이용한 검풍을 날려 얼음 정령 하나를 견제한 후 월광을 땅에 꽂아 넣고 포즈를 취했다.
근육을 숭상하는 전사의 컨셉에 맞춘 머슬 배리어다.
“하압! 합! 하아압!”
세번의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세번의 배리어를 만들 수 있는 스킬에 달려들던 아이스 울프가 튕겨져 나가 떨어진다. 이어지는 아이스 엘레멘탈의 얼음탄 역시도 배리어를 부술 뿐, 마지막 배리어는 깨트리지 못했다.
“빛이 이곳에 자리잡으리!!”
내가 어그로를 끌며 적들의 공격을 한몸에 받는 사이 베로니카의 공격이 아이스 엘레멘탈의 몸에 꽂혔다. 성스러운 빛이 담긴 창에 맞은 아이스 엘레멘탈이 기괴한 비명과 함께 움츠려 든 순간.
“파이어 필드!!”
옹기종기 모이게 된 적들에게 불길이 퍼부어졌다.
오, 저건 상급 마법인데. 루실이 화염계 마법에 소질이 있나보네.
“하아… 하아… 하아…”
아직 중급 수준에 불과한 루실이 무리해서 상급 마법을 쓴 탓일까? 그녀는 하얗게 질린 채 적들이 녹아들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마력을 다 쓴 모양이다. 적 감지 스킬로 주변에 더는 적이 없음을 확인한 나는 베로니카에게 말했다.
“좀 쉬자.”
“벌써?”
게임의 시스템상 전투를 치룰 수록 스트레스가 늘어난다. 거기에 멘탈관리와 체력관리도 필수고.
물론 레벨이 높은 캐릭터야 던전 하나 끝낼 때까지 휴식 없이 포션빨로 버텨도 되긴 하지만 말이다.
나와 베로니카야 전투에 익숙하고 던전에서도 문제가 없겠지만, 루실은 그리 경험이 많지 않으니 그에 맞춰줘야 한다.
“쯧.”
발목을 잡았다고 생각한 것인지 베로니카는 짧게 혀를 찼다. 하지만 내 의견에 더는 토를 달지 않았고 그렇기에 우리는 한곳에서 잠시 쉴 수 있었다.
“저, 저는 괜찮아요…”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던전에 온 것도 루실의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괜히 무리했다가 리타이어 하거나, 혹은 문제라도 생기면 본말전도 아닌가.
난 다소곳이 앉아 있는 루실의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어디보자…”
“뭐 하려는 거야?”
“마력분배.”
연금술사의 스킬인 마력분배는 시전자가 가진 마력을 대상에게 줄 수 있는, 게임 내 유일한 마력회복 스킬이다.
물론 연금술사들이 만들 수 있는 마력회복 포션을 먹여도 되겠지만 그건 복용하면 스트레스가 올라가니, 익숙하지 않으면 이게 낫다.
“스, 스승님은…”
“전 괜찮습니다.”
물론 사기캐릭터인 현자의 특성상 다른 캐릭터보다 스탯이 꽤 월등하다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내가 마력을 나눠 준다는 것에 루실은 꽤나 당황한 듯 보였다.
“가만히 계시죠.”
루실의 머리에 손을 올린 나는 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는 사이 마력이 그녀에게 전이되었고, 루실의 얼굴은 점점 혈색을 되찾았으며.
“넌 왜 그런 눈을 하고 있냐?”
“…별로.”
베로니카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도 마력 부족하냐?”
힐러가 마력 부족하다면 챙겨줘야지.
던전에서 힐러 챙기는 것 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나.
“스, 스승님?!”
“예?”
“지금 뭐 드시는…”
“아. 이거요?”
난 가방에서 꺼낸 푸른색 빛의 물약을 보여주었다.
“마력회복 포션입니다.”
마개를 열고 입 안에 푸른 물약을 털어 넣었다. 혀가 돌아버릴 것 같은 끔찍한 맛과 함께 마력 회복의 효과로 온 몸이 베베 꼬일 정도의 고통이 찾아오고 있었다.
“혀, 현우야?!”
“끄어어…”
하지만 이정도 고통은 익숙하니까.
정신력과 스트레스치가 꽤나 높아진 듯 싶지만. 뭐. 내게 이정도는 문제 없다.
“후우우… 좋아.”
“조, 좋지 않아!!”
“스승님! 괜찮으세요?!”
마력회복 포션의 단점을 만끽하고 정신을 차린 내가 말하자 둘이 날 잡은 채 다급하게 외쳤다.
물론 괜찮다.
“자. 그럼 베로니카. 너도 마력 분배를…”
“괘, 괜찮으세요?!”
마왕 잡으러 갈 때는 이것보다 더 처절했는데 뭐.
그리고 마력회복 포션을 섭취에 따른 패널티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 했다.
목적 달성 실패에 비하면 말이다.
“…도대체 어느정도… 였던거에요? 스승님은…?”
“…꽤나 심했었다고 들었어요. 마왕 처치를 위한 여정은.”
베로니카의 중얼거림에 루실은 멍하니 날 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 해요.”
“예?”
“제가, 제가 모자라서… 제가 빙계 마법을 더 잘 했다면… 스승님께서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셨을텐데.”
“공주님.”
시무룩해진 그녀의 반응에 난 웃었다.
“원래 제자는 성장하기 전까지는 스승에게 기대야 하는 법입니다.”
“하, 하지만.”
“공주님께서 마법사로서, 그리고 일국의 공주로서, 또한 제 제자로서 확실하게 성장하게 된다면. 그것만큼 저에게 즐거운 일은 없을 겁니다.”
“그…”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 뿐입니다.”
그래. 내가 루실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 뿐이다. 제대로 성장해서 S급 스승 업적 달성하게 하는 것.
난 루실의 손을 잡은 채 진지하게 말했고 그녀는 날 멍하니 바라보다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할게요.”
“좋습니다.”
이걸로 성장이 더 빨라지겠지? 루실이 의지를 다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베로니카에게 눈을 돌렸다.
“야. 마력…”
“…필요 없어. 마력 회복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무리 하지말고 그냥 받지?”
난 베로니카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것을 쳐내려고 그녀가 손을 들었지만 난 가볍게 잡아챘다.
“아.”
내 손에 하얀 손이 잡히고, 은색의 실타래와 같은 머리칼이 다른 손에 쓰다듬어진다. 붉어진 얼굴로 입술을 꽉 깨문 채 날 올려다보던 베로니카는 결국 얌전히 내 마력을 받았고, 어느정도 마력을 넘겨 준 후 난 월광을 잡았다.
“너도 마력 꽤 썼네. 마력 부족하면 부담갖지 말고들 말해.”
“…..”
“….”
“대답은?”
“알겠어.”
“네에…”
좋아. 이정도면 충분하겠군.
이왕 쉬는 김에 밥도 먹고 가는게 낫겠다 싶어서 난 가방에서 아침에 만들어 놓은 샌드위치를 꺼냈다.
작은 바구니 안에 들어 있는 샌드위치를 하나씩 꺼내 내밀자 둘은 별다른 말 없이 받고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열심히 만든 거니까 팍팍 먹어둬.”
맛있는 요리를 먹을 경우 일시적으로 스탯이 상승한다.
아이스 골렘이 그리 강한 적은 아니지만, 이 게임은 방심 한번 했다가 파티가 전멸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최대한 준비를 하는 것이 나았다.
“용사님의 여정에서… 이런 일. 스승님께서 전부 도맡아 하셨던거에요?”
“그런 편이죠.”
“힘드셨겠네요.”
“하하. 지금에 비하면 그런 편이죠.”
지금이야 대부분의 스킬들을 어느정도 수준까지 올려놨으니 좀 편하지만, 옛날에는 그런 것도 아니라 꽤나 힘들었다.
용사 파티 애들이 메인 스토리 진행하는 동안 스킬 올리고 업적작 하느라 피토할 뻔 했던거 생각하면 나도 정신이 아찔할 정도다.
그 정도에 비하면 지금은 그냥 귀여운 정도지.
“그렇구나… 저, 스승님의 제자면서도 스승님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네요.”
“뭐, 나는 대부분 알지만 말야.”
베로니카가 툭 한마디 내뱉자 루실은 그녀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샌드위치를 다 먹은 베로니카는 빙긋 웃으며 내 손을 살짝 잡을 뿐 이었다.
“정말 고생이 많았지. 옆에서 볼때도 말야. 옛날 얘기하니까 그때 생각나네. 우리 같이 잤던 일.”
“가, 같이 잤다구요?!”
“후후. 현자가 성력을 높이려고 할 때… 후후후후.”
말을 줄이는 것 때문에 의미심장해보이지만 사실 별 거 없다. 그냥 신상 앞에서 성력 증가를 위한 작업 도중 옆에서 베로니카가 옆에 있다가 같이 자 준 거니까.
하지만 루실은 살짝 기분이 나쁜 듯 뾰로통해 진 얼굴로 나와 베로니카를 번갈아 응시하고 있었다.
“같이 자긴 했지만 별 일 없었지. 넌 옆에서 졸았고, 난 계속 명상했으니까.”
“윽. 야! 그, 그걸 말하면…”
“하아아아아…”
“자. 슬슬 가죠.”
난 베로니카의 이마에 딱밤을 날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서야 안도한 듯 루실은 한숨을 내쉬었고, 베로니카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이제 아이스 골렘 처치만 남았으니까 빨리 잡고 갑시다. 상대법은…”
“스승님께서 잡아두시는 동안 제가 계속 공격하는 거죠?”
“예. 잘 아시네요. 그럼 갑시다.”
던전의 보스인 아이스 골렘의 처치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어그로 관리를 철저하게 하며 웜 마법을 계속 썼고, 베로니카는 회복과 동시에 아이스 골렘이 소환하는 아이스 엘레멘탈을 능숙하게 잡았으니까.
그리고 루실 역시 마력을 효율좋게 사용하며 싸우게 되어 어렵지 않게 아이스 골렘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쿠구구구궁!!
커다란 얼음 덩어리의 골렘이 허물어지고, 그 잔해 위에 은은하게 빛나는 백색의 육각형 얼음이 모습이 보였다.
저게 교회의 의뢰 품목인 영원한 얼음이다.
교회에서 받아 온 상자에 그것을 담은 나는 던전 클리어의 보상인 상자가 나타나자 루실을 밀었다.
“예?”
“여시죠.”
“어… 제가 해도 되나요?”
“그걸 위해서 온 거니까요.”
내 허락에 루실은 조심조심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상자 안에 있던 백색의 빛은 그녀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안에는… 이거 하나 있네요.”
상자 안에 있는 것은 작은 팔찌였다. 빙계 마법의 위력을 높여주는 장비다.
가치는 그리 높지 않은 것이라 루실은 살짝 실망한 듯 보였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상자를 여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그 과정에서 빙계 친화력이 늘어나는 거니까요.”
“그렇군요…”
“그럼 나가서 빙계 마법을 사용해보도록 하죠.”
던전의 끝에 작은 문이 만들어졌다. 그곳을 향해 나가자 바로 던전의 입구로 이동할 수 있었고, 밖에서 기다리던 모험가들은 우리가 나온 것을 보고 외쳤다.
“어이! 현자!”
뭐지? 예상 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냥 진치고 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모험가들은 무기를 들고 누군가를 견제하고 있었다.
“저건…”
긴 귀를 가진 아름다운 여성들.
한때 나와 함께 다녔던 에반젤린과 비슷한 모습의 여인들.
엘프들이었다.
그 중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보라색 눈에 긴 귀를 가진, 갈색 피부의 노출 심한 갑옷의 미녀는 성큼성큼 내게 걸어와 오만한 눈으로 날 응시하며 말했다.
“그대가 현자인가?”
“댁은 뉘신지?”
“엘프의 숲, 빛의 날개 부족장 로렐리아다.”
빛의 날개 부족?
거기 에반젤린네 부족인데?
“그래서?”
“현자. 그대에게 제안하겠다.”
“제안이고 뭐고… 솔직히 엘프들과는 엮이고 싶지 않아서.”
대다수의 엘프들은 오만함과 선민의식이 기본장착된 자들이라 엮이면 피곤해서 말이지.
봐라. 내가 꺼려하는데도 저 노출증 다크엘프는 멋대로 말을 꺼내려….
“엘프의 숲에 역병이 돌고 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현자. 그대라면 그 역병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겠지?”
“당연히 알지. 가자고. 가자고.”
설마 역병처리 이벤트가 벌써 뜰 줄이야.
이것도 업적이니 당연히 해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진새고님 후원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말물말물입니다 ㅎ
날이 덥고 습하네요 다들 건강 조심하세요~
그럼 내일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