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대전쟁 3년 차. 난 드디어 조금이나마 서부 전선이 이상 없이 잘 돌아간다고 여긴다.
언제나 그랬듯, 많이 죽이고 많이 죽어나가지만 베르됭 전투의 여파로 발악에 발악을 이어가던 독일의 몸부림이 조금은 줄었으며.
페탱의 시대가 열리자 모두 ‘큰 거 온다!’라고 생각하며 노심초사 한 방을 기다렸지만 그런 거 없었다.
나였어도 조금은 ‘다시 공세 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페탱은 굳건했다.
현상 유지.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옆에서 지켜봐온 내가 잘 안다.
페탱이 기침만 해도 산성 침이라도 튀는 것처럼 도망다니던 놈들이 고작 몇 달 지났다고 어깨 힘주고 나타나 총사령부에 기웃거린다.
“요즘 영 전과가 시원찮은 게….”
“역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니 조심스러워지는군.”
“필리프 페탱이라고 별다를 거 없구먼!”
미국이 돈 못 벌면 눈이 돌아갈 거라 했던가. 우리 프랑스 공화국은 안 싸우면 화병에 죽는 DNA라도 박혀 있나 보다.
프랑스인들. 우린 페탱 공세 이후로 마른의 공포를 깔끔히 뇌에서 지워버렸다.
수많은 사상자가 살아남은 이들에게 남긴 것은 분명 두려움과 주제파악이었을 텐데 어째 복수심과 전투 의지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지 모르겠다.
그리하여 오늘도 언론은 외친다.
[독일 영토 진입, 이젠 진짜 얼마 안 남았다!] [벨기에 완전 해방은 시간 문제.] [베를린까지 남은 거리, 고작 700km!]“시발, 마지막은 뭐야. 최전선에서 베를린까지 걸어서 고작 2주 거리라고? 뭐 전군 마라톤이냐.”
무슨 매진 임박처럼 써놨는데 작년 포슈 장군도 고작 4km 전진에 막대한 손실을 감안하고도 1주 걸렸다는 사실을 기억 하는 걸까.
이 모든 기대감은. 그러니까 망상 빵빵하게 채워 넣은 프랑스인들의 헛된 꿈은 아무리 봐도 내년 말까지 우릴 기다려 줄 것 같지 않다.
일개 참모의 시선에서도 이럴진대 과연 페탱 총사령관님이라고 모를까.
나의 불안감에 포슈 장군님은 간결하고 무책임하게 답하신다.
“다 자네 탓이야.”
“예? 아니 자아성찰 못 하고 날뛰는 국민들이 제 탓이라고요?”
“다양한 이유가 있겠네만. 일단 눈이 높아져 버렸잖은가.”
“와, 세상에 이런 논리가. 놀랍지도 않네요.”
이런 억까? 이젠 익숙하다구. 어제 길거리에서 넘어져 무릎이 까진 소녀도 내 탓이고 벗겨지는 모든 대머리들의 반짝임도 내 탓이지? 암, 그렇고말고!
“너무 꼬아 듣지 말게. 피를 흘릴 게 뻔히 보여도 때론 움직이는 게 사람이니. 모두가 자네처럼 생각할 거라 착각하지 말란 소리야. 만약 누가 자네 아들을 건드렸다면 한 아비로 가만히 있겠나? 상대한테 한 대 맞을까 봐?”
“그건 좀 다르지 않습니까. 죽음, 그리고 국가의 운명을 감정에 맡깁니까?”
“그게, 우리 국민들의 감정이라면 다르지.”
후우, 모르겠다. 우린 여전히 유리하지도 우세하지도 압도적이지도 않은데.
“이번이 마지막이네. 페탱 공세가 끝난 지 벌써 반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어. 다음 최고회의 때는 무조건 새로운 안을 들고 와야 할 거야.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더 없네.”
“…. 알겠습니다.”
그동안 누구보다 ‘공세 반대’를 앞장서서 외춰줬음을 알기에 난 조용히 알겠다고 수긍했다.
‘그렇다고 제가 장군님 뜻대로 엘랑 비탈 할 거라 기대하진 마십쇼.’
난 절대. 한 발자국도. 꿈쩍 안 할 테니까.
경고만 남기고 떠나면 내가 쫄 줄 아나. 난 정치인도 아니고 이 자리에서 잃을 것도 없다.
국민들의 감정? 그게 뭔데 유사국가들아. 그거 먹으면 배부르긴 한 거야?
어디서 정신 만족하려고 우리 애들 모가지를 걸라는 거냐. 다 꺼져라.
“짜와.”
“싫어요.”
“해.”
“안 합니다.”
“더 준비 기간을 달라고 해보게. 조프르가 이 자리에 다시 앉는 꼴을 보고 싶다면.”
“아 진짜!”
아는데. 진짜 답을 아는데. 아예 오픈북으로 아는 답을 그대로 쓰기만 하면 되는 건데.
왜 주위 모두가 내 펜으로 오답을 칠하게 만들려는 건데.
“저한테 그러셨잖습니까! 고작 정치 따위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승전만을 바라보겠다고!”
“자넨 이게 정치로 보이나! 전쟁이야 전쟁! 대화나 타협이 안 되니까 무력으로 결론을 내는 최후수단이라고! 자네가 하려는 건 뭔가? 유예? 지금 결과를 미루는 거랑 뭐가 다른가? 가만히 이대로 있으면 더 고통스럽기만 하다는 걸 왜 모른단 말인가!”
“인내! 참을성! 신중함! 제가 바라는 건 가만히 있는 것 딱 하나란 말입니다.”
시간. 내게 필요한 건 시간이다. 가만히 숨만 쉬라고. 그게 가장 큰 선택이고 최고의 전술이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총사령관님도 안다. 그가 알고 있음을 나 또한 알기에, 그냥 믿고 있었는데…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더니 변했어!’
나의 작고 소중한 코인이… 온갖 작전 세력에 더럽혀 저버렸다.
“내 가치 투자가….”
“그 괴상한 눈빛은 제발 좀 치우게. 헛소리도 좀 그만하고 정신 차리길 바라.”
“다른 수단은 없는 겁니까.”
“적어도 내겐 없어. 난 프랑스의 총사령관이지 연합군의 총사령관이 아니니까. 그리소 설령 연합군 전권 총사령관이어도 불가능하지.”
“하지만 육군 작전지휘권은 분명 저희가 갖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겉으로만 그런 거고.”
가장 공세를 바라는 또 하나의 국가. 누구겠어, 바로 영국이지.
대규모 징집을 시작한 올해 초. 그 이후로 병력은 자꾸만 늘어가는데 움직일 기미가 안 보이는 우리가 얼마나 꼴 받겠나.
여전히 스스로를 파병군, 혹은 지원군이라고 부르는 꼴부터가 ‘우린 너희 싸움을 돕고 있는 거다!’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는 거다.
“모헬, 포루투칼이 참전하고 루마니아가 동맹국에 선전포고를 했네. 헌데 자네가 말한 미국은 뭐 하고 있는 줄 아나?”
“화가 끓어 오르길 기다리고 있겠죠.”
“자기들끼리 필리핀 자치법을 통과시키고 지구 반대편에서 식민지 놀이나 하고 있다네. 과연 이런데도 미국이 대서양을 건너 우리와 함께할 거라고 자넨 말할 수 있나?”
“그러니까 더욱 끌어들여야 합니다. 스스로 중립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 연합국에 매우 우호적이고 동맹국을 함께 배척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까? 가만히 기다리자는 게 아니라 우리가 끌어들이는 입장인 겁니다.”
물론 가만히 있어도 오긴 오겠지. 고작 프랑스군이 좀 더 이겼다고 미국의 역사와 미래 입장에는 변화가 없을 테니까.
난 안다. 비록 내 미국 역사를 달달 외워서 머릿속에 딱딱 정리해둔 건 아니다만 고작 나 따위가 천조국 역사의 모가지를 비틀었다고 자만하지 않는다.
총사령관님의 입장을. 우리 프랑스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만 난 끝까지 공세 반대를 외쳤다.
그리고 역시나.
미국의 역사는 안 변했다.
유서 깊은 먼로를 아직도 우려먹는 반전파 우드로 윌슨이 경선에서 이겨버렸다. 그것도 단 3%의 차이로.
근데 이건 건 좀 변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젠장.
***
우드로 윌슨이 미래에 어떤 사람으로 평가받는지 모르겠다만 지금 프랑스에서의 평가는 아주 확고하다.
“판초비야 하나 못 잡는 놈들인데 무슨!”
“자국민을 죽인 산적이랑 싸우는데도 반전을 외치는 놈이 대통령이라니.”
“아주 앉은 자리에서 돈만 세고 싶다는 소리지! 정의나 명예도 없는 더러운 국가야.”
미합중국이 제 3자의 위치에서 꿀만 빠는 모습에 반감이 섞였다만 틀린 말은 하나 없다.
애초에 선거 슬로건이 ‘그는 우리를 전쟁으로부터 지켜준다.’인데 누가 봐도 꼴통먼로잖아.
그래서 나와 일면식 없는 이 양반의 평가가 무슨 의미인가 하면.
“결국 돌고 돌아 야전으로 또 나와버렸어….”
누가 알았겠냐고. 미국 대선 결과가 내 다음 보직을 결정할 줄.
우리 페탱 중장님은 윌슨이 1만 자에 가까운 ‘지금까지 잘 먹었고 앞으로도 잘 먹고 잘살아보자!’라는 내용의 취임 연설을 듣고 바로 날 찾으셨다.
“최전선으로 가게.”
“하지만!”
“일단 가! 가라고! 내가 대공세를 하라는 것도 아니잖은가!”
“…. 히잉.”
“꺼저.”
확 드러누울까 싶기도 했지만 또 한 번의 겨울과 새해가 다가오니 점점 우리를 바라보는 눈초리도 매서워진다.
대놓고 뭐라는 못 하지만 차근차근 불평 불만 업보가 하나씩 쌓이는 기분. 터지기 전에 행동에 나서야 했고, 그게 내 다음 보직으로 연결된 거다.
나의 처량함을 모르는 이들은 드디어 총참이 움직였다고 환호하지만 난 보호의와 방독면 풀 세트로 입고 연변장에 서 있는 수준의 갑갑함을 느끼고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데….”
어딜 공세해? 설령 날 믿고 수십만 병력을 쥐여 줘도 제2의 베르됭이 될 뿐이다.
싸우는 즉시 나를 비롯한 주위 모두의 평판에 악영향만 끼치며 전술적으로도 조금의 이득이 없는 선택.
무의미한 소모전이 전부일 거란 소리다.
내심 정치에 굴복하는 기분이 들어 더욱 하기 싫지만 어쩌겠나. 현실에 사는 인간들은 언제나 이상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인데.
다만 누군가 그들의 입에 이상을 떠먹여줘야 한다는 점이 아주 개같다.
‘왜 하필 내가 이딴 보모짓을?’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도착한 북부 전선. 아니, 벨기에.
똑같다. 언제나 그랬지만 나 떠나기 전이랑 똑같다.
바퀴벌레처럼 영국군이 득실거린다는 점은 다르지만 여전히 톱니바퀴처럼 잘만 돌아가고 있다.
다시 제 위치를 찾은 북부군과 기존의 참호를 지키던 프랑스는 단순 병력 비율만으로도 포병이 4할을 넘는 기염을 토해버렸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려나. 이 정도 수치면 화력 비율로는 8할 이상이 우리 프랑스 포병일 거다.
기형적인 두 집단이 그래도 멀리서 보면 정상인처럼 보이지 않을까. 독일군 콩깍지엔 나름 합리적일 수도. 아님 말고.
아무튼, 결국 다시 왔다.
아미앵을 지나 아라스를 지나 과거 릴 전선을 통과해 샤를루아가 최전선이 되어버린 벨기에 전선으로.
활활 타서 재만 남은 그리운 집으로 돌아온 기분도 든다.
“허탈감? 박탈감? 죄책감? 그도 아니면 안타까운 상실감이려나?”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겠는 이 오묘한 감각. 죽어도 나와 함께 죽어야 하는 파비앵이 슬쩍 답을 내민다.
“딱 출근하기 싫어하는 제 친동생이랑 똑같으십니다. 혹시 찾으시는 단어가 ‘게으름’이 아니신지요?”
“아무리 삐졌다지만 이거 군기가 빠졌군. 자네 신병 교육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나.”
“오, 다시 후방으로 보내주십니까?”
“아니? 자네가 나 좀 신고해서 보내주게.”
“어허, 어찌 전쟁 영웅을 제가 신고하겠습니까?”
장난기 넘치지는 대화지만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내 어투부터 힘이 없다.
어차피 난 페탱이 강제로 유배 보낸 거고 저놈은 내가 함께 끌고 온 거다. 같은 처지끼리 함께 부둥켜안고 따흐흑 우는 거지.
이젠 아라스 바로 앞 랑스로 옮긴 북부 사령부. 그곳에는 페탱과 비슷한 분위기를 내는 인간이 날 맞이한다.
‘우욱… 장군이다.’
벌써부터 토악질이 나오네. 별 달면 사람이 하나같이 수염이나 쓰다듬으면서 에헴 거리던데. 본능적인 거부감이 위액과 함게 위도를 등반할 거 같다.
총사령관이 가진 절대권력 중 하나.
바로 장군 임명권.
조프르와 쌍벽을 이루던 천하의 갈리에니도, 리보트 전 총리나 클레망소 현 총리도 가지지 못한 만능 정치권력의 은총을 내가 보고 있다.
“슈티른… 사령관님?”
“왜 이어서 말하질 못하나. 어색한가.”
“어우, 아닙니다. 이거 자리가 드디어 주인을 찾아 다행입니다.”
“내 태어나서 그리 영혼 없는 아부는 처음 듣는군. 어디 아픈가?”
“아픈 거 티 납니까?”
“아니. 사실 자네가 오기 전에 이미 총사령관님께 인수인계 다 받았네. 자넨 건강해.”
단정적으로 ‘너는 건강하다’ 발언은 진짜 너무하네. 아파도 말하지 말란 건가? 그리고 인수인계는 또 뭔데. 내가 뭐 짬통처럼 굴러다니는 기피 일감이야?
이거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 하는데. 날 우습게 봤다가는… 아무리 당신이라도-
“쓰읍, 이래서 북부 전역 작전권만 회수 안 하신 건가?”
“베르게르 모헬 대령, 새로운 북부 최고지휘관님께 다시 인사드립니다. 충, 성!”
뭐야, 우리 아직도 따로 놀아? 그거부터 말씀해주셔야지요. 탕아처럼 집 나가려던 예의가 이러면 대문 근처에 얼씬도 안 하지.
난 또 중앙에서 시키는 개짓거리 할 생각에 한숨부터 쉬고 있었네.
일단 인사부터 크게 박으니 만족하신 슈티른 사령관님이 다가와 한 가지를 더 말씀하신다.
“한 가지 더. 아직 전차 부대는 전부 내 손에 있다네. 다른 곳에 도입해주는 족족 다 말아먹으니 아예 북부 앞으로도 붙여주신다더군. 그리고 이건 비공식 소식인데 자네가 도착한 지금까지도 중앙에선 공세 지점을 정해주질 않고 있어. 어때, 이제 좀 이해가 되나?”
“…. 그냥 알아서 판단하고 성과만 내라? 아니지. 진짜 성과인지는 중요하지 않군요. 여긴 벨기에니까.”
이미 중앙 전선을 국경까지 다 밀어냈는데 굳이 벨기에를 통해서 뺑뺑 돌아 독일 영토에 진입할 리가.
물론 가능은 하지. 근데 중앙을 통해서도 베를린 당도는 불가능한데 벨기에? 베엘기이에에?
“난 아무 말도 안 했네.”
“전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만?”
“후후.”
“흐. 흐흐.”
그래, 이게 페탱의 정치지. 베를린 입성 같은 망상 펼치는 놈들에게 굳이 현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네.
프랑스인들이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망상에 허우적댄다면 난 굳이 머리를 잡은 채 정면을 보라 하지 않겠다.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이들의 입에 적당히 다음 꿈만 쑤셔넣어주면 되겠지.
어차피 이 나라는 전쟁 끝나고 정신 못 차릴 거 같으니 난 빨간약 먹으라고 안 한다.
그냥 파란약 먹어. 아주 배 터질 때까지 먹어서 그냥 현실로 깨어나질 마.
“제 전차 사단은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뭐, 마지막에 확인할 때는 제대로 움직이는 놈이 10대도 없던데.”
“사단? 아니 아니.”
“설마….”
“기갑 군단. 우린 기갑 군단이라 부르네. 나의 지난 7개월의 노력이 담겨 있는 곳이지.”
세상에, 이런 선물이라니.
슈티른 소장님….
볼따구 딱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