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99
#299화. 원수의 노후는 그리 평안하지 않다(1)
베르게르 모헬은 새로 입주할 후임에게 예정대로 깔끔하게 실권을 넘겼으나 상황은 그리 만만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넘긴다고 넘겨도 때로 사람들은 믿지 않는 법. 어쩌면 국민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에 억지를 부리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양된 모헬의 권력은 역설적이게도 하늘을 찔렀다.
“반역자들이다! 각하 옆에서 보조하라고 뽑았더니 감히 자리를 탐내? 너희가 사람의 자식이냐!”
“다수 후보? 지금 분열하겠다고? 우리 의원들은 분열했던 프랑스의 과거를 잊은 거냐!”
“이거 오늘 퇴근길에 쟁기 하나 사야 하나….”
신호는 파리로부터 꾸준히 새어 나오고 있었으나 막상 결과가 들이닥치니 그 혼돈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전장에 나갔다 하면 이기는 지도자가.
무조건 옳은 방향만을 걷는 선구자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그것도 일말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은 채.
“어째서…. 이제 황좌에 오르셔서 세상을 호령하실 일만 남았는데!”
“그분은 보나파르트의 환생이시란 말이다! 필시 전생의 기억 때문이야! 이 프랑스가 자신의 뜻을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에 버리신 거라고!”
일부 극단적인 자들은 현실을 부정하는 수준에 이르렀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모헬은 미리 싸놓은 이삿짐을 챙겨 오를레앙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직 아무런 문제도 터지지 않았지만, 온 국민과 동맹들이 한 거인의 빈자리에서 느끼는 건 허탈감과 공허함뿐이었다.
“…정말 역겨운 자야. 기어코 죽는 날까지 소련의 목줄을 쥐겠다니.”
“서기장 동지, 악마가 실권에서 빠진다면 저희에게 좋은 소식 아닙니까?”
“아니지. 이제 저자는 돌아오는 순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쟁을 시작할 권한을 얻었네. 실권? 설마 10년, 20년이 지나면 프랑스 국민들의 뇌가 오븐에 구워져서 과거를 깡그리 잊을 것 같나?”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겠지요.”
“심지어 살아있잖은가. 그럼 끝났지.”
고작 법이 정해준 임기 따위에 속지 않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 자도 있었고.
“…나도 끝났군. 이 분위기에서 다음 선거에 출마했다간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겠어.”
“그렇지 않습니다! 위대한 파시스트 동지들은 여전히 두체를-”
“되었네. 이건 나뿐만 아니라 프랑스가 전 세계에 보내는 경고야. 자기도 내려왔는데, 너 따위가 감히 자리를 지키겠냐고.”
역사에 다시 없을 선례에 좌절하며 현실을 덤덤히 인정하는 자도 있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당 사건을 해석하고 반응하기 시작하던 차.
“독재자는 물러가라! 독재자는 물러가라!”
“불세출의 대영웅, 모헬 원수도 3선에서 멈췄는데 당신이 왜 또 집권해!”
“전쟁도 끝났으니 독재는 필요 없다! 독재는 오직 전쟁을 위한 도구일 뿐!”
벌써부터 세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
국토 절반을 내주고 파리 앞에서 남의 나라 군대까지 끌어들여 겨우 수복한 프랑스는 어떻게 단기간에 가장 빠른 패권을 만들었는가?
많은 학자들은 그 기점을 하나의 사건, 바로 조제프 조프르 총사령관의 실각이라고 말한다.
실질적으로 군권이 삼원수. 페르디낭 포슈, 필리프 페탱, 베르게르 모헬에게 넘겨진 사건.
조프르의 실각과 함께 다수의 내각, 의회 인사들이 쓸려 나갔고 그 틈에 클레망소 총리가 대통령을 넘어서는 권력을 쥐었다.
이러한 전후방의 합작은 대전쟁 3년 차가 넘어가는 시점에 강력한 힘을 발휘해 참호전으로 지지부진하던 전쟁에 가속도를 발휘했다.
권력의 이동. 그리고 자연스럽게 따라온 권력의 집중.
이것이 20세기 프랑스 독재의 시초였다.
비록 피해는 적지 않았지만 전쟁을 이겼다는 근거를 기반으로 삼원수는 차근차근 권력을 확장한다.
실제 여러 가지 기록이 1919년 삼원수는 다음 대전쟁을 확신하고 있었다고 증거한다.
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세상이 집중한 것은 그 방식이었다.
역성혁명이나 무력반역이 아닌 아주 단계적이고 명분이 가득했던 민주적 독재자의 탄생 과정.
아마 이러한 과정을 거쳤던 것이 프랑스가 타국의 독재에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이유로 보인다.
여하튼, 192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세계에는 독재자가 급증하게 된다.
유럽,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어디 하나 할 거 없이 독재자들은 탄생하였고 심지어 소련마저 독재 체제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배워야 할 점은 바로 독재의 정당성이다.
“무스타마 케말께서 말씀하시길, 과거는 잊고 새 시대를 프랑스와 함께 열어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프랑스와 폴란드는 형제의 나라입니다! 우린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 것입니다! 이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베르게르 모헬 원수와 영원토록 함께하겠습니다!”
“스페인이 공산전복의 위기에 빠졌을 때 손을 내민 나라가 어디이던가? 바로 프랑스 아닌가?”
독재에 정당성 따위가 어디 있냐, 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독재는 민주주의 시민의 상식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는 추악한 행위이나 때론 그 필요성이 독재를 정당화 시켜준다.
예를 들면, 수천만이 죽는 전쟁이라든가.
“독재자면 어떻고, 왕정이면 또 어떤데? 전쟁만 잘하면 그만이지.”
“뭐라고? 좌우로 국가가 나눠져서 싸운다고? 지금 이 시국에? 그래서 둘 중 어느 놈이 잘 싸우냐?”
“아아, 독립을 보장받고 싶어? 그럼 군대부터 키워. 아니, 그걸로 독립전쟁하라는 게 아니라 키워서 우리한테 보내라고. 그러면 이 내가, 너희를 독립시켜준다. 내 이름 걸고 진짜로.”
그 과정이 어떻든 간에 강성하고 기존 체제만으로 전쟁에 대응할 수 있다고 여기는 나라. 그러니까 미국과 영국 정도를 제외하고 세상은 어느 정도 독재를 받아들였다.
많은 의심과 시험대에 오르고 국민들의 반감을 사는 독재는 많은 나라에서 대전쟁 이후 정착되었다.
시간이 흘러 또 한 번의 세계 대전이 터졌고.
전 세계가 이 전쟁에 뛰어들어 싸웠다. 식민지도, 약소국도 예외는 없다시피 했다.
그리고, 이겼다.
“뭐야, 군부의 힘이 필요하긴 한 건가?”
“독재자가 승전의 주역이 되었으니 이젠 끌어내리긴 글렀구나….”
“마, 만약에 이런 거대 전쟁이 또 터지면 어떻게 하지? 우린 과연 어떻게 대비하고 대응해야 하는 거지?”
독재자들에게 세계 대전의 승전은 평생권력보장 티켓과도 같았고 실제로 그들은 끌어내릴 수 없는 철옹성을 얻었다.
딱 7년짜리 철옹성이었지만 말이다.
“모든 책무를 다한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국민들께 전역을 신고합니다.”
최초 민주주의 국가 출신 절대권력자.
독재자들 위의 독재자.
모헬이 실권에서 물러나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가, 각하께서 이리 떠나신다고?”
“왜? 어째서? 혹여나 있을 다음 전쟁을 막지 않으시는 건가?”
“아, 아직 군권을 완전히 내려놓으신 게 아니니 언제든 돌아오실 거다! 분명 돌아오실 거야!”
어쩌면 누구보다 모헬의 퇴임에 반대한 것은 프랑스 국민들이 아닌 타국의 독재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롤모델. 그들이 지향하는 미래. 그들의 명분과 근간이자 정치적 기반 그 자체였던 인간이 물러났다.
“다, 다음 세계 대전이 있을지도 모르-”
“프랑스가 없다잖아! 있어도 모스크바 지우고 시작할 텐데 무슨 상관이야!”
“아직 미숙한 우리나라는 산업발전과 같은 많은 과제가 남겨져 있으니-”
“그건 군부보다 민간 정부가 더 잘할 텐데?”
그 어떤 명분도. 그럴듯한 변명을 가져다 붙여도 ‘너가 그리 떠들던 모헬도 퇴임했는데?’를 이길 논리는 없다.
모헬의 퇴임과 동시에 불이 붙기 시작한 도화선.
이를 막을지, 더 키울지, 아니면 아예 다른 국면으로 전환시킬지 결정할 수 있는 인간은 오를레앙에 있다.
세상의 시선은 여전히 오를레앙에서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
베를린 점령과 동시에 시작되었던 재건 프로젝트가 어느덧 재건위원회라는 이름 아래에 10년 가까이 이어져 왔으나 가스파르의 업무는 날이 갈수록 많아져만 갔다.
‘그간 전쟁 흔적을 지우고 건물 세우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부터는 정책으로 나가야 한다.’
프랑스의 패권이 워낙 강력해 프랑스와 독일을 섞는 것은 생각보다 순조로우나 여기에 폴란드까지 섞고 체코를 붙이며 저지대 연합국들까지 온건하게 끌어들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여전히 폴란드는 강박적으로 군대를 키우고 있으며 프랑스는 이를 방관하고 있다.
막 독립해 외부의 개입이 없다면 어떻게 성장할지 모르는 신생국들이 너무 많았고 프랑스는 덴마크를 교두보 삼아 북유럽도 끌어들이고 싶었다.
‘그나마 핀란드는 승전국 대우로 꽤나 친프랑스적이나 나머지는 아니야. 중립국 특유의 반항심이 너무 강하다.’
하다못해 스위스처럼 바다와 접점이 없는 내륙국으로 프랑스의 영향력에 둘러싸여 있다면 모를까, 유럽의 패권국치고는 프랑스가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가스파르에게 주어진 유예 기간은 겨우 6년. 다음 선거까지는 최소 아버지의 흉내라도 낼 수 있도록 성장해야만 했다.
하다못해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며 뒷배 노릇이라도 해주셨으면 내심 바랐으나 아버지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국정에 흥미를 떼고 계셨다.
그러다 보니 고향 오를레앙에 돌아와서도 가스파르는 일을 놓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갈레아초 치아노 장관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하하, 각하! 이번 주가 베르사유 조약 34주년이지 않습니까? 제가 이탈리아를 대표해 직접 축하하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아버지는 지금 다른 일로 바쁘십니다.”
차마 한량처럼 루아르 강에 낚시하러 갔다고 말은 못 한 가스파르는 이젠 오를레앙까지 찾아오는 손님맞이까지 떠맡았다.
“흠흠, 아실지 모르지만 제가 다음 선거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건승을 빕니다.”
“혹시 각하께서 이에 대해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을까요. 장인 어른께서 필시 각하께 찾아가면 조언을 해주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글쎄요.”
있을 리 없으나 가스파르는 말을 최대한 아꼈다. 치아노 장관의 기대 만발의 눈빛에 절망이 깃들게 만들 자신이 없었다.
“아, 이건 저희 이탈리아 피렌체 유명 예술가가 그린 ‘참호 위의 원수’라는 작품입니다. 전투가 끝나고 응징의 상징인 콜트 M1911권총과 던힐 담배를 피고 계시는 원수 각하의 모습을 그려봤습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천이 걷히고 일반인이 봐도 감탄이 나올법한 그림이 등장했으나 가스파르는 왜인지 모르게 저 아래에 이라고 설명이 적혀 있는 허상이 보이는 것 같았다.
비단 가스파르가 맞이해야 하는 손님은 치아노뿐만이 아니었다.
“장개석 총통께서 꼬옥 한 번만 부디 중화민국을 방문해달라고 하십니다. 본인은 정상선거를 통해 선출된 총통으로 정식으로 각하의 국빈으로 맞이하고 싶으시답니다.”
“아시아로요? 아버지가 가시려나?”
“부디 꼬옥! 이건 오실 때 항공유값 좀 보태-”
“어, 어. 치우세요!”
이미 확고한 권력을 쥐었든.
“언제라도 좋습니다! 그리스는 지금 또 한 번 좌우로 갈라져 내전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각하께서 딱 한 번만 나서주신다면 저 더러운 빨갱이들은-”
“그들은 극좌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개헌 포기하시는 게 나을 텐데.”
“어찌 중도좌파란 놈들이 승전 동맹을 버리고 유고슬라비아 연방과 친목을 도모한단 말입니까! 그것들은 발칸 반도 내에 새로운 패권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중해 전체가 위험하다, 이 말씀입니다!”
“글쎄요. 유고슬라비아는 어제 찾아와서 본 연방은 자치구까지 민주적 투표를 완료한 정상국가라고 말하던데….”
프랑스의 패권 형성 방식이 본디 공고한 동맹을 늘리는 것이었기에 어디 하나 버릴 수도 없으나 안타깝게도 그들이 찾는 것은 17대 대통령 샤를 드골이 아닌 베르게르 모헬.
그들은 짝퉁이 아닌 진품이란 증명서를 독재 전문가 베르게르 모헬로부터 발급받고 싶었다.
설령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젠장, 지금 프랑스는 미친 게 틀림없다! 감히 각하를 붙잡지 않고 떠나보내다니! 이 배은망덕한 족속들! 유다는 부끄러움에 자살이라도 했지 살아 숨 쉬고 있는 저것들은 뭐란 말인가!”
“카우디요, 지금 저희는 파리에 있습니다. 발언에 조심하셔야 합니다!”
“닥쳐라, 이 겉과 속이 다른 요물들의 도시! 대원수 페탱이 돌아가시고 모헬 원수마저 떠나셨으니 이 도시가 무슨 수도라는 건가! 우린 즉시 프랑스의 진짜 수도, 오를레앙으로 향한다!”
그냥 모헬의 진상팬들은 인정하기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