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61
061화
바이킹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나조차 소화 못 한 것까지 붸에에엑 다 토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새해가 시작되고도 몇 주가 더 지나서야 베이강은 ‘음, 면발 굵기가 드디어 마음에 드는군’이라며 껍데기만 남은 날 석방해줬다.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다른 데 조금만 관심 보여도 책상 위를 새로운 서류로 채워 버리질 않나. 이젠 신문 스크랩도 못 하게 막질 않나.
전쟁 전 내가 우리 애들 키울 때도 그리 굴리진 않았다고.
‘일개 참모장 주제에! 감히 전쟁 영웅을 이리 학대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언제나 올라왔지만….
아서라. 저거 눈 돌아가면 페탱도 고개 절레절레 흔들며 슬그머니 도망치게 만드는 순도 100% 광기다.
심지어 포슈 장군조차 종종 마주칠 때마다 볼이 파인 날 봐놓고도 못 본 척하며 지나가는 모습.
난 그 눈물겹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허겁지겁 도망쳐 나왔다.
***
1915년 1월.
모든 게 새로웠던 1914년과 달리 나름대로 새로운 유형의 전장에 대한 이해도와 적응도가 올라가 연합군이 합리적 판단으로 병력을 이끌어 전선을 잘 틀어막고 있다….
라고 하면 쓰러진 몰트케가 벌떡 일어나 비웃다 다시 쓰러질 허언증이고.
“음, 배운 게 없군!”
이게 현 북부에 대한 나의 평가다.
지옥과도 같던 1914년. 돌아보면 땅을 치며 후회할 판단이 너무 많았던 그때의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전체 숫자로는 여전히 프랑스에 비해 부족하지만 적어도 북부 한정 영국군은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캐나다, 호주 같은 자치령 지원군에 인도 등의 식민지로부터 식민지군까지 끌어다 쓰기 시작했지만 내가 볼 때 다 똑같다.
원체 작던 섬나라 육군.
기본적으로 4개 중대가 1개 대대를 이루고 이러한 대대 기반 구조를 통해 구성되었던 소규모 육군은 비대해진 사이즈에 조금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연대급, 사단급, 나아가 군단급 작전에 영국군은 경험은커녕 교리조차 부실하다.
편제는 우리처럼 여단, 사단인데 하는 꼬라지는 대대만도 못하달까.
멸종 위기 직전의 영국 육군한테도 그나마 교리가 있긴 한데….
“그걸 만든 새끼가 헤이그였어?”
놀랍게도 진짜다.
차라리 몰랐으면 헤이그에 대한 평가가 더 올랐을 사실.
매일같이 독일한테 뺨 맞고 동맹한테 쫄래쫄래 찾아와 화풀이하는 저 새끼도 꼴에 엘리트 군인이라고 ‘Field Service Pocket Book’ 을 기반으로 한 규모에 따른 육군 교리를 1906년에 개발했단다.
그 결과가 지금 내가 보는 북부 전선 꼬라지라면… 진지하게 헤이그는 사실 독일 첩자가 아닐까 싶은데.
더 최악은, 이놈은 엄연히 동맹국 고위 지휘관이기에 포슈 장군조차 함부로 나대지 마라 할 수가 없다는 거다.
“아주 금쪽같은 느그 새끼가 따로 없네.”
말을 더럽게 안 듣잖아. 독일제 맴매로 처맞아도 들을 기미가 없어.
그러다 자기네 애들 죽으면? 그럼 또 괜히 우리 프랑스한테 와서 지랄하지.
이젠 사령부에 헤이그가 나타나기만 해도 베이강은 조용히 목을 가다듬으며 싸움을 준비한다. 나름의 전담 마크 대처랄까.
당연히 그들에게 참호전 기본 준비물인 수류탄, 기관총, 철조망 같은 물자 재고 따위는 없다.
참호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드러나는 대규모 포병? 그딴 게 영국군에게 있을 리가 있나.
그나마 본국 산업력이 받쳐주니 어찌저찌 뒤늦게 키우고는 있다만 독일군이 군화로 살포시 밟으면 죽을 새싹이다.
대전쟁.
현대의 시작이라는 둥 역사의 변곡점이라는 둥 온갖 거창한 수식어로 점철되어 기록되지만 실시간 경험자로서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누가누가 덜 병신인가. 그거 가리는 전쟁이다.
언제나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진흙탕이고, 매번 적도 아군도 새로 써가는 역사에 나도 적응이 힘들다.
적응이 힘들든 말든 선택지는 없으니 난 다시 한번 조용히 최전선을 찾았다.
나 없는 동안 또 어찌 해괴하게 변했어도 안 이상하거든.
분명 마른 직후의 참호전과 지금의 참호전은 큰 차이가 있을 거다.
야전 떠난 지 몇 달 되었고, 슬슬 우리 33연대에 대한 압박감이 늘어나고 있다.
페탱에게 우호적이던 이들조차 출전하지 않는 6사단의 모습에 좋은 칼을 안 쓰고 썩히고 있다고들 한다.
‘양면성이지. 한번 지지를 바랐으니 그에 대한 먹잇감을 줘야 하니까.’
빠른 시일 내에 우리 6사단의 투입은 확정이다.
아라스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졌을 테고, 사망자는 단위부터가 다르다고 들었다.
조용히 도착한 릴 최전선.
오랜만에 복귀한 전선은 확실히 내가 알던 것과는 달랐다.
“광활하군.”
무지막지하게 넓다. 이 넓다는 의미는 그냥 넓이가 넓다는 게 아니라 전장의 끝을 눈으로 볼 수가 없다는 의미다.
“그에 비해 분위기는 삭막하네요.”
“한쪽이 나서지 않으면 서로를 죽일 수가 없으니까.”
그런 조건치고는 양측 다 쿨타임 돌 때마다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고 공격을 한다만.
“부관, 자네가 지휘관의 시선으로 보기엔 어떤가?”
“…일단, 우리 연대보고 여기서 돌격하라고 하면 항명할 자신 있습니다.”
“그럼 총살인데?”
“총살 때 날아오는 총알이 더 적으니 살 확률이 높겠군요.”
“그런가?”
요즘 들어 이놈도 베이강한테 물들었는지 항명에 거부감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면 착각이려나.
“6사단 전체가 오는 겁니까?”
“일단 우린 엄연히 상급 부대에 묶여 있으니 그렇긴 한데 아직 어찌 배치될진 몰라. 기갑 계획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6사단은 낭비해선 안 되는 패니까.”
포슈 장군이라면 당연히 안 그러겠지만 총참에서 우리 6사단을 죽을 자리로 보낼 걱정도 안 해도 된다.
페탱과 내가 나섰는데 대패한다? 연합군 사기와 군에 대한 시민들 지지가 시퍼런 음봉으로 묵직하게 나타날 거다.
그땐 떨어지는 칼날이라 아무도 못 막는 거여.
현재 릴에서 6사단 전체를 한곳에 몰아넣자니, 과투자이자 리스크고. 그렇다고 분산시키면 최대 장점이 사라지는 격이다.
여기에 전차 연대마저 붙여주겠다던 포슈의 약속이 실현되면 6사단은 보병도 포병도. 기갑 병과도 아닌 프랑켄슈타인이 되어 있을 것 같다.
-콰광.
멀리서 포탄 터지는 소리가 울려온다.
“저렇게 한 발씩 쏘는 건 뭡니까? 딱히 의미 있는 짓처럼 보이진 않는데.”
“잠들지 말라는 소리지. 아무리 참호여도 소리까진 막을 수 없으니까.”
고작 잠 못 들게 하는 데 비싼 포탄을 소모하는 게 어처구니없지만, 듣기론 저게 꽤 효과가 있다 들었다.
편안한 잠자리는커녕 제대로 된 수면조차 불가능한 상태가 하루 이틀을 넘어 몇 달씩 지속된다면 나라도 미쳐버리지 않을까.
몇 번 포격 소리를 듣고 나니 광활한 전장에서 딱 하나 들어차 있는 게 보인다.
극도의 스트레스.
전장의 모든 구조가 사람에게 매우 불친절하며 비인간적이다.
만약 사람이 발산하는 스트레스가 빨간색으로 눈에 보였다면 장담컨대 릴 전선에 푸른 하늘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하나 더 이상한 점은.
“아무리 두 참호 사이라고 하지만… 과하군.”
“뭐가 말씀이십니까?”
“포탄 구멍도. 치우지 못한 시체도. 양측 다 너무 많아.”
생긴 지 불과 석 달도 안 된 전장이다. 그럼에도 지금 내가 목격한 것들은 명백히 일개 전선치고 과하다.
“혹시 이곳이 가장 치열한 곳인가?”
“그러진 않을 겁니다. 다른 전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그럼 내가 보는 게 전부 다 최근에 생긴 거란 소린데….”
릴 전선. 원 역사에서는 없던 전선. 그렇다 한들 큰 틀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고 본다. 원 역사와 불과 몇십 km 차이니까.
그럼 눈앞의 광경은 그저 가혹한 현실을 내가 몰랐던 걸까.
‘그런 거치고 이건 마치 작년 아라스가 몇 번은 재현된 것 같은데….’
이곳 릴 전선은 아마 가장 크게 변한 전선일 거다. 그 변화가 과연 나한테 올해 어떻게 다가올까.
‘일단은… 군단장 페탱을 빛내줄 2차 아르투아 전투는 사라질 거고.’
아라스 인근은 이미 우리가 먹었거든. 그러니 아르투아 전투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게다가 아르투아 전투가 아니어도 이미 페탱은 조프르라도 잘못 손대면 데일 상황이니 딱히 아쉬울 것은 없다.
다만 내가 변한 역사로 우려하는 것은 딱 하나.
달라진 페탱과 조프르의 본격적인 대립이다.
내가 알기로 페탱은 올해 9월 조프르와 카스텔노 장군이 세운 샴페인 전투 계획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갈라선다.
지금 페탱은 설령 샴페인 전투가 아니어도 당장 내일 총참의 계획에 초를 쳐도 이상하지 않을 양반이다.
뭐랄까, 나야 매번 상부 욕이나 시원하게 뱉고 끝나지만 페탱은 꾹꾹 참고 있는 느낌이랄까.
뭐가 되었든, 저 인간. 분명 올해 내로 폭발한다.
“결국 릴 전선. 여기서 넘어지면 자칫 나중에라도 중앙 사령부한테 옆구리 물어뜯기겠네.”
“또 무섭게 무슨 소리를 그리하십니까. 그냥 가늘고 긴 게 좋은 겁니다.”
“그러게 말이다. 가늘고 길게라….”
근데 그러다가 끊어지겠는걸.
들이박는 페탱을 내가 가로막는다?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지금 꼬라지도 보면.
“파비앵, 저번 주 10분의 1형에서 죽은 병사가 85명 맞나?”
“…그렇습니다. 공격을 시행하지 않은 부대에서 무작위로 선정해서 1명씩 공개 처형 했습니다.”
“총참 지침이었지. 조프르가 직접 명령한.”
적 참호 앞에서 주저앉은. 혹은 이 미친 짓에 동참하지 않은 일부 부대에게 프랑스군 최고명령권자는 로마에서나 시행하던 형벌을 진짜로 썼다.
아군 병사에게 무력하게 묶인 아군을 쏘라는 미친 짓을 말이다.
사기는 떨어질지언정 군기는 챙기겠다는 마인드. 역겹기 그지없다.
병사 1인 1침상을 신봉하는 페탱은 거품을 물며 미친 짓이라고 날뛰었지만 어째.
우리나라 대가리들께서 결정하신 사항인데 따라야지.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조프르의 지휘력에 대한 의구심이 슬슬 사방에서 피어나기 시작할 거다.
그럴수록 페탱은 빛날 테고 포슈는 방관하겠지.
그러니까 이곳 릴 전선.
다시 한번 보여줘야만 한다.
독일군을 이기기 위해?
아니.
외부로 뻗어있는 칼을 내부로 돌려 수술을 시작하려면 말이다.
이젠 슬슬 나도 진심으로 무섭다.
지독히도 무능하고 시대착오적인 참모부에 대한 두려움이 멀리 떨어진 야전에서도 생길 거 같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5월 내로는 전쟁 못 끝낸다는 것을 잘 알 텐데도 참….”
반년. 정말 딱 반년 그 아래에서 숨죽이고 살았는데도 역겹다.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조프르의 권력이 바닥으로 처박히는 시기가 언제더라. 1916년? 베르됭 전투 이후? 언제든 완벽히 자멸할 때까지 기다리긴 나도 힘들 것 같다.
“이번 릴 전선만 끝나면 불 좀 지펴줘야겠네.”
“…….”
파비앵이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역시 나의 부관답게 암묵적 동의를 하고 있는 듯하다.
***
음, 이게 종교의 자유를 찾는 신교도들이 세운 국가의 실태인가. 역사를 배우지 않았다면 절대 모르지 않았을까.
프레드릭은 근래 들어 진지하게 종교관까지 흔들릴 거 같았다.
“이보시오! 그냥 내게 팔란 말이오!”
“도크 위에 올라오지도 않았습니다만. 그냥 계약서일 뿐입니다. 언제 파기당해도 이상할 게 없어요.”
“설령 파기되어도 우선 수주권을 가지게 되지 않소!”
“쓰읍, 근데 이게 중도금이 곧….”
“그것도 내가 다 내겠다고 말하지 않았소! 그냥 그대로 넘겨만 주시오. 당신이 치른 계약금의 네 배. 아니, 다섯 배를 주지!”
“흠, 어차피 계약금은 얼마 안 되는데. 그럴 바엔 그냥 다 지어지고 나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게…”
“그냥 불러! 숫자 부르라고! 난 당장 저 배에 우리 물건 실어서 보내야겠으니!”
이게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슬그머니 찾아와 두 배에 넘기라고 거만하게 말하던 미국인들이 맞나.
프레드릭은 돌변한 저들의 태도에 확신이 생겼다.
‘설령 전쟁이 끝나더라도 재건까지 생각하고 있나 보군.’
1915년이 시작되고 얼마나 되었을까.
허덕이는 유럽과 참을성이 폭발해버린 미국 자본가들이 더해지니 비정상적인 수치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선적 운임비, 28배 상승.
이것이 진정 현실인가 싶지만.
“으아아! 내놔! 내 돈 가져가고 당장 계약서 내놔!”
“어허!”
도박 중독자마냥 계약서로 달려드는 상대로부터 프레드릭은 재빨리 책상 위에 놓인 계약서를 뒤로 뺐다.
수염에서부터 돈 찌든 내를 풍기는 자본가들이 네발 달린 짐승으로 돌변한 모습이 말해준다.
이건 진정 현실이라고.
12월 12일부터 다시 개장한 뉴욕 주식 시장도 얼마 전부터 불끈불끈거린다.
기대 심리.
거대한 전쟁에 차가워진 시장.
그곳에 유럽산 지폐가 불을 때고 있다.
국내산이 멸종하니 수입산이라도 부르짖는 구대륙의 비명에 미국도 화음으로 답한다.
아가리 벌리고 수출 받으라고.
상황이 이러하니 밥을 입으로 옳길 숟가락을 든 자가 곧 왕이 되어버렸다.
“젠장, 이럴 시간도 없는데!”
“허허, 그럼 어서 가보시지요.”
“후우, 프레드릭 사장, 내 긴말 않지. 10배. 대신 작년에 도크에 올라온 선박 두 개로.”
“…콜.”
어차피 이젠 중도금 못 내서 파기당할 판이기에 프레드릭도 계속 붙들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자유 무역의 성지, 미합중국.
50개 나라와 1억의 인간이 각자 1인 정당마냥 목소리를 높이는 국민 방목의 나라.
이곳은 나라 자체가 등사기임이 틀림없다.
돈을, 복사해준다.
“아, 대금은 현물도 받소. 대신 배달은 해줘야겠지만.”
“그럼 이야기가 길어지겠군. 일단 알콜 소비량이 급증한 유럽 대륙에-”
서비스도 참으로 좋다.
세상에, 돈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국가라니.
평화로운 오를레앙과는 너무 달라 적응이 쉽진 않지만….
“…좋군.”
보수적인 자신이라도 적응하긴 어렵지 않아 보였다.
미국, 비록 중립이라 말할지언정 그들은 형제의 나라가 틀림없다고 프레드릭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