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74
74화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바짝 긴장하고 있던 남자는 입구에서 들어오는 재환을 보고 심장이 철렁했다. 그대로 급성 심장마비로 실려갔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다.
그의 머릿 속에는 몇 개의 단어가 문장이 되지 못한 채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 모든 단어를 모아 문장을 만들면 이러했다.
왜 강재환 회장이 이 자리에 나타났는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한 가지 떠오른 게 있다면 그와 마주쳐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그러면 모든 일이 꼬이게 될 거란 묘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또 뵙네요.”
“네, 반갑습니다.”
“YK 그룹의 이사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는 일전 중소기업 발전 지원 프로젝트 때문에 재환과 만난 적이 있다.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은 몰랐지만.
딱딱히 굳은 미소를 억지로 풀고 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급이 차이가 나는데 그냥 물러날 수는 없으니까.
“YK 그룹의 이사인 천진명입니다.”
“강재환입니다. 아, 이번 사업 설명회를 진명씨가 맡아서 하시나요? 자세한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서요.”
재환이 친근하게 접근하는 게 그로서는 불편하고 더부룩했다. 당장 소화제라도 찾아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이 자리를 빠져 나가고 싶었다.
“제가 지금은 준비로 바빠서 나중에 찾아뵈도 되겠습니까?”
“음…. 뭐, 바쁘시다니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나중에 투자 관련해서 얘기를 나누고 싶으니 잠깐 시간을 내주세요.”
투자!
천진명은 눈을 부릅떴다. 제약 회사와 달리 어플리케이션 회사는 유령 회사다. 따라서 투자자들의 손해는 확정된 사안이다. 문제는 개미 투자자가 아닌 KG가 끼어든다? 이건 얘기가 다르다.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큰일났다. 이건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없어!’
일단 알겠다고 답을 한 뒤 그는 급히 자리를 빠져 나갔다. 재환은 그 뒷모습을 보면서 비웃음을 띄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올 답은 정해져 있다.
KG 그룹의 돈을 빼먹을 기회를 놓칠 수 없을 테니 투자를 받으라고 할 테지.
그럼 거액의 돈을 걸고 YK 그룹과 딜을 건다. 지금 가진 몇 가지의 정보를 절묘하게 조합하면 큰 한 방을 먹일 수 있게 된다.
“곧 미노 소프트의 사업 설명회가 시작하겠으니 모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발언에 따라 어수선한 회장이 질서를 찾아갔다. 재환도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으니 회장의 불이 꺼졌다. 다른 사업설명회가 그렇듯 단상 위로 PPT가 떠올랐고, 설명회를 진행할 인사가 단상 위에 올라왔다.
재환은 귀에 쏙쏙 박히는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앉아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앉아 있는 이들 중 몇 명은 옆에 있는 사람에게 꽤 괜찮은 사업이라며 허울 좋은 말들을 늘어놨다. 아마 YK측에서 심어놓은 바람잡이가 아닌가 싶다.
“강재환 회장님?”
주위에서 들리는 말 들 중 쓸 수 있는 정보만 추려내고 있으니 누군가가 슬쩍 다가왔다. 이어피스를 끼고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그는 다른 이가 못 듣게 작게 말을 꺼냈다.
“위층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러죠.”
재환은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랐다. 옆에 있는 서진도 따라 오려 했지만 다른 가드가 막아세웠다. 명찰은 분명 안전요원이라 적혀있는데, 생긴 게 아무리 봐도 깡패다.
“모시고 오라 한 건 강재환 회장님뿐입니다.”
“제 비서실장인데요?”
“중요한 사업 이야기라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투에서 정중함이 묻어났지만 위험한 냄새도 같이 묻어났다. 그걸 느낀 서진이 가드의 팔을 내리며 딱딱한 어투로 답했다.
“죄송하지만 최근 저희 회장님이 무뢰한에게서 피습을 당한 적이 있으십니다. 그 쪽에서 사업을 중요시 여기는 만큼 저는 회장님의 안전을 중요시합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진과 가드의 눈싸움이 이어지다가 가드가 위쪽으로 다시 무전을 넣었다. 곧 긍정적인 무전이 도착하고 나서야 가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서진은 당당히 재환의 옆에 섰고, 그걸 본 재환이 부드럽게 웃었다.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저들이 마음먹으면 사람 하나 묻나 둘 묻나 같을 건데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둘이면 살 확률도 두 배는 되겠죠.”
유하게 받아치는 그의 말에 재환은 싱긋 웃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투명한 회의실이 여럿 있었는데, 그곳에서 면대면으로 투자 상담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였다. 많은 회의실들을 지나 두 사람은 VIP룸이라 적힌 회의실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먼저 앉아 있던 청년이 일어나 재환을 반겼다.
“반갑습니다. 강재환 회장님. YK 그룹 이사 최남혁입니다.”
재환은 그를 보고 놀란 것도 잠시 손을 마주 잡았다.
“YK 그룹의 장남께서 이 자리에 나올 줄은 몰랐네요.”
“이번 소프트웨어 사업은 YK 텔레콤을 잇는 큰 사업으로 성장할 거라 믿고 있거든요. 저야말로 강재환 회장님을 직접 만나 뵐 줄은 몰랐습니다. 영광이네요.”
자리에 앉으면서 재환은 최남혁에 대한 정보를 떠올려봤다.
카르텔의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 YK 그룹이다. 하지만 회장인 최행열은 그 사실을 가족들이 알 지 못하도록 은밀히 처리하곤 했다. 그렇기에 최남혁은 최행열이 타계한 이후 그 사실을 알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술에 빠져 살았다. 나중에 가서 카르텔은 최남혁을 이용할 수 없다 여기고 YK 그룹의 중요 캐쉬 카우를 빼돌리거나 팔아버렸고, YK 그룹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조금 더 살아 있었으면 완전히 망했을 때의 모습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회장님?”
“아, 죄송합니다. 잠시 밑에서 들었던 말들을 곱씹어 봤습니다. 어떤 질문을 드려야 최남혁 이사님이 당황하실까 싶어서요.”
“하하, 짓궂으시군요. 걱정말고 생각나는 거 다 질문해보시죠. 어지간한 건 다 답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왜 당신이 이 가라앉을 배의 선장이 되었는지 말해봐.
재환은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을 뱉지 못하고 턱을 쓸었다.
뭐가 바뀌었길래 카르텔이 긴밀하게 엮인 이 자리에 최남혁이 있는가. 자진해서 온 건가 아니면 누군가의 모략에 의해서 이 자리에 놓인 건가.
재환의 고민을 알 리 없는 최남혁은 이번 사업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해 나갔다. 누군가에게 받은 자료로 답한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이것만으로 그가 이용당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
설명을 듣는 동안 재환은 밖에 있는 이들을 곁눈질로 살폈다. 여기가 사업 설명회 장소가 아니라 깡패들이 운영하는 대출 사무소라 해도 믿을 수 있을 거 같다.
“……여기까지 제가 준비한 사업 계획서입니다. 따로 알고 싶으신 부분이 있나요?”
어떤 질문을 해야 원하는 정보를 낚아 올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재환은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저희 KG 전자 아래에 소프트웨어 부서가 있는 건 알고 계시죠?”
“강재환 회장님이 KG 회장이 되기 전에 까톡을 만드셨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 아닙니까. 스마트폰 시장에 대한 선구안이 대단하다고 다들 입 모아 말했죠.”
“운이 좋았죠. 다만 운이 좋은 선에서 끝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여기까지 운을 떼니 최남혁의 엉덩이가 들썩들썩했다. 다른 투자자들의 자금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자본을 가진 게 재환이다. 그런 그가 이번 사업에 협력해준다면….
잠깐 상상한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그 반응에 재환은 최남혁이 미끼를 물었다고 판단하고 살살 릴을 감아 올렸다.
“그래서 저희 까톡과 연계할 수 있는 다른 소프트웨어나 컨텐츠 사업을 찾는 중입니다. 제가 직접 여기까지 온 이유이기도 하죠.”
“그럼….”
“지금까지 본 결과 괜찮은 거 같네요. 저희 소프트웨어 팀장에게 연락해 두겠습니다. 앞으로 협력할 방안을 구색해 보도록 하죠.”
투자금을 주진 않겠다. 하지만 다른 투자자들이 내놓는 투자금 이상의 가치있는 협력을 하겠다.
최남혁은 표정 관리를 했지만 속으로 이게 뭐지 싶었다. 자신이 사냥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자신이 사냥감이 되어 있는 느낌.
재환은 최남혁에게 확인차원에서 넌지시 물었다.
“마음에 안 드십니까?”
이에 대한 대답이 궁색했다. 저쪽에서는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을 했는데, 그걸 두고 돈으로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선뜻 답하지 못하는 최남혁의 모습에서 재환은 확신했다.
‘전생과 달라졌네.’
최남혁은 확실하게 카르텔의 편이 되었다. 언제부터 그리 되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카르텔의 손을 들었다면 확실하게 밟아줘야지.
“아닙니다.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요. 부족할까봐 여분의 투자금도 준비를 하긴 했거든요.”
“아, 그렇군요!”
“이건 개인 투자로서 조금만, 한 2억 정도만 할까 싶습니다. 용돈 벌이란 느낌이죠.”
2억이면 개인 투자자 중 큰 손인 사람들이 딱 투자할 정도의 금액이었다. 그렇기에 최남혁 입장에선 약간 아쉬웠지만 더 바라진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주식을 뻥튀기하기엔 충분했고,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주식 상장은 모레입니다. 저희 제품은 다음 주에 발표될 테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큰 이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재환은 다음에 밥 한 끼 하자는 얘기를 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차에 탄 뒤 재환은 서진에게 간단히 지시했다.
“3억 태우시고요. 이번 주말 가기 전에 빼세요.”
“너무 빨리 빼시는 거 아닙니까.”
“그거면 충분해요.”
어차피 이번 일은 YK와 한성, 그들이 벌인 주가 조작에 초점을 맞춘 사건이다. 그러니 적당히 가격이 올랐을 때 이익을 보고 빠지면 된다.
“주식을 팔자마자 오늘의 신문의 경제 파트 기자랑 TBS의 경제 파트 기자 불러서 이번 YK 소프트웨어의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조사하라고 해주세요. 대략적인 방향만 잡아주면 금방 기사를 쓸 겁니다.”
“알겠습니다.”
“기사가 나가고 나면 한성에서는 이강철이 이번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밝힐 겁니다.”
이한철이 벌인 일이지만 이강철이 벌였다고 속이는 걸로 이강철을 위기에 몰아넣는다.
재환의 계획에 서진이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짚었다.
“이강철이 같이 죽자고 달려들 수도 있습니다.”
담그려다가 같이 담궈지면 피해가 막심하다.
재환도 그 사실을 알기에 다른 쪽으로도 언론을 쥐고 흔들 방법을 강구해 놨다.
“지금 한성 물산과 저희가 협력중이지 않습니까. 그 과정에서 얻은 정보가 몇 가지 있습니다.”
비리라고 말할 것까진 아니지만 소소하게 한성 물산에서 돌고 있는 찌라시들이 있다. 그 찌라시들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추가로 보도해서 한성 물산의 주가를 박살낼 수 있다.
“이 정도의 정보가 있으면 충분히 유리하게 딜을 이끌 수 있겠죠.”
서로 다시 동등한 위치에 놓이도록 판을 짠다.
이강철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니 몇 개의 대응책도 추가로 강구해놔야 한다.
재환은 창밖을 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날이 우중충하네요. 폭풍전야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