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 rate samurai with a carreer break RAW novel - Chapter 36
00033 특별한 의뢰인 =========================================================================
나카마루가 뜻밖의 손님들에 놀랐는지 그 자리에 멈춰선 채 눈짓으로 미타니에게 누구냐는 사인을 보냈다. 미타니보다 먼저 대답한 건 해경이었다.
“종로서에서 나왔소.”
“경찰? 왜요?”
나카마루가 묻더니 안절부절못하는 미타니를 보고는 약간 주춤하는 표정을 했다.
“가와타 때문입니까?”
해경은 나카마루의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나카마루도 가와타가 죽은 것을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나카마루가 미타니의 눈치를 살폈다. 해경은 팔짱을 끼며 나카마루를 마주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나카마루가 입을 다물었다. 해경은 미타니 쪽으로 슬쩍 시선을 던졌다. 미타니는 연신 마른 입술을 축이며 해경과 소화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불안하고 초조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해경은 일단 나카마루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당신은 가와타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요?”
“그게, 그러니까……나흘 전 오전에 강의실에서 본 게 마지막입니다.”
“그 날 오후에 가와타가 의학부 이환과 싸웠다는데 그 자리에는 없었고?”
“네. 저는 일이 있어 오후에는 학교에 없었습니다.”
나카마루가 순순히 대답했다. 해경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최근 가와타에게 이상한 점은 없었나?”
나카마루가 그 물음에 멈칫했다. 해경은 나카마루의 시선이 다시 미타니 쪽으로 가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줄 마음이 없었던 해경이 날카롭게 나카마루를 다그쳤다.
“아까부터 계속 가와타 이야기가 나오면 이 친구 눈치를 살피는군. 가와타와 미타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아, 아닙니다.”
나카마루가 고개를 저었다. 해경은 미타니에게 시선을 돌렸다.
“본인이 직접 대답해 보게. 가와타와 무슨 일이 있었나?”
“그런 것은 없습니다.”
미타니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해경은 미타니가 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 소화가 가까이 다가와 해경을 살짝 잡아끌었다. 해경이 멈칫하며 소화를 보자, 소화가 들고 있던 책을 펼쳐 내밀었다. 무심코 내려다보니, 책 사이에 접어놓은 종이와 두 장의 표가 끼워져 있었다. 해경이 그것을 집어 들자 미타니가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해경은 그 표를 확인했다. 이틀 뒤 부산항에서 출발하는 동경행 배표 두 장이었다.
“이건 뭐지? 학기중에 일본으로 돌아가야 할 만한 일이 있나?”
해경이 표를 들어 보이며 묻자, 미타니가 눈치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본가에서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연락이 와서 급히 잡은 표입니다.”
“왜 두 장이지?”
“경성고보에 제 동생이 다니고 있어서 함께 가려고 한 겁니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기는 했지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도 아니었다. 해경은 일단 그 표를 다시 책 사이에 끼워 놓고는 접어놓은 종이를 가리키며 미타니를 보았다.
“봐도 되겠나?”
“……사적인 편지입니다.”
“누구에게 받은 건가?”
미타니가 침묵했다. 해경은 그것을 든 채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아니면, 누구에게 주려던?”
해경은 미타니가 말릴 틈도 없이 접힌 종이를 펼쳤다. 종이를 펼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청미’라는 글자였다. 하루미. 해경이 그 이름을 본 순간 미타니가 바로 해경의 손에 들린 종이를 잡아채 손 안에서 구겼다. 미타니의 얼굴은 몹시 상기된 채였다. 해경은 잠시 멈칫하다 미타니를 빤히 응시했다.
“마츠우라 하루미에게 보내는 편지군.”
해경의 입에서 나온 마츠우라의 이름에 미타니가 소스라쳤다. 해경은 가볍게 웃는 얼굴로 입매를 비틀었다.
“마츠우라는 가와타와 교제하고 있었다던데, 자네가 마츠우라에게 편지를 보낼 이유가 뭐지?”
곁에 서 있던 나카마루가 미타니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미타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눈치를 보던 나카마루가 미타니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냥 말해 버려, 하지메.”
그러나 나카마루의 채근에도 불구하고 미타니는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문 채였다. 그런 미타니를 보던 나카마루가 참지 못하겠다는 듯 먼저 앞으로 나섰다.
“마츠우라가 이 녀석에게 돈을 빌렸습니다. 편지는 그 때문에 썼을 겁니다.”
“유우타!”
미타니가 나카마루를 붙들었으나, 나카마루는 미타니의 손을 뿌리쳤다.
“애초부터 가와타 녀석이 잘못됐다고!”
나카마루의 말은 분명 가와타를 힐난하는 어조였다. 해경이 물었다.
“마츠우라가 돈을 빌린 까닭이 뭐지?”
나카마루가 소매를 잡아끄는 미타니의 손을 다시 한 번 떼어내며 대답했다.
“가와타는 돈으로 그 여자의 환심을 샀습니다. 얼마 전에 큰 돈이 생겼다면서 조지아 백화점에서 고급 기모노까지 맞춰 주기로 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뒤에 무슨 일이 났는지 급전이 필요하다면서 여기저기 돈을 빌렸는데 우리는 돈을 안 빌려줬습니다. 우리하고도 마작을 같이 쳤고 돈을 여러 번 빌렸는데 제대로 갚은 적이 없었고, 어차피 마작방에서 진 빚인 걸 아니까 빌려주지 말자고 결의했는데 친구들에게 돈을 못 빌리게 되니 자기 애인에게 돈을 빌린 겁니다. 사정을 모르는 여자는 그렇게 큰 돈이 없으니 이 녀석에게 돈을 빌려다가 가와타에게 줬다고요.”
나카마루의 말을 들은 해경은 가와타가 쓰다 만 편지의 구절들을 떠올렸다. 마지막에 쓰여 있던 기모노에 관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가와타가 마츠우라에게 고급 기모노를 맞춰 준 것이라면 납득이 갔다. ‘기모노는 약속대로’ 맞춰 주겠다는 뜻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은 따로 있었다. 해경은 눈썹을 좁히며 미타니를 보았다.
“마츠우라가 굳이 자네에게 돈을 빌린 이유가 뭐지? 같은 서클 사람들은 자네 말고도 많을 텐데.”
“……다른 사람들보다 저와 친해서 그렇습니다.”
미타니가 잠시 사이를 두고 대답했다. 해경은 그 말의 묘한 뉘앙스를 놓치지 않았다.
“학생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었을 텐데 그렇게 큰 돈을 빌려달라고 말할 수 있을 사이인가? 그것도 남녀 사이에? 가와타에게 줄 돈인 걸 알았다면 빌려주지 않았겠군. 그건 언제 안 거지? 그걸 알고도 가와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나?”
해경이 다그치듯 묻는 말에 미타니가 대답하지 못하자, 나카마루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그냥 말해 버려, 이 멍청아! 이러다 공연히 의심받겠다고!”
“무슨 의심을 말하는 거지?”
해경이 묻자 나카마루가 허리에 손을 짚은 채 해경을 쳐다보았다.
“가와타가 죽은 일 때문에 찾아오신 거 아닙니까?”
“그걸 어떻게 알았나?”
“미타니가 이야기했습니다. 사흘 전 새벽에 가와타가 학교 뒤편에서 시체로 발견됐다고요. 쉬쉬하고 있어도 이미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이환이 7호실에 갇힌 것도 가와타의 살인 혐의를 받아서지요? 조선인 놈들이 7호실에 있는 건 다른 사람이라며 병 때문에 격리한 거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안 믿습니다.”
해경은 나카마루의 말에 흠, 하며 고개를 살짝 까딱였다. 광문과 정훈에게 7호실에 격리된 것이 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소문을 내 시간을 잠시 벌어 달라고 한 것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오래 갈 거짓말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나카마루의 불신은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당장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미타니에게 그냥 말하라고 종용하던 나카마루의 태도가 심상치 않았다.
“미타니에게 뭘 말하라고 한 건가?”
나카마루가 팔짱을 끼며 될 대로 되라는 얼굴로 대답했다.
“이 녀석이 그 여자를 좋아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 여자가 가와타 때문에 자기에게 돈을 빌린 걸 알고, 가와타에게 따지러 무교정에 찾아갔었다고요.”
“언제?”
“나흘 전입니다. 가와타가 죽기 전날이요. 그래서 의심받기 전에 그냥 말하라고 한 겁니다. 이 녀석이 마작방에 가서 가와타와 그 일로 다퉜는데 가와타가 돈은 꼭 갚겠다고 해서 그냥 나왔다고 했습니다.”
해경은 그 말에 미타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 미타니는 분명 자신이 가와타를 마지막으로 본 건 가와타가 환과 식당에서 다툰 것을 보았을 때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카마루의 말대로라면 미타니는 그날 밤 다시 가와타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된다. 홍주는 가와타가 죽기 전날 밤 마작방에 왔다가 누군가와 크게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고, 정황상 그것이 미타니일 가능성이 높았다.
“내게 거짓말을 했군.”
해경이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내뱉자, 미타니가 사색이 되어 고개를 저었다.
“일,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솔직히 얘기하면 제가 가와타를 마지막으로 보았으니 살인범으로 몰릴까 두려워서…….”
나카마루가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미타니는 그날 열 시가 조금 넘어 돌아왔습니다. 그날따라 소등이 빨랐는데, 제가 막 잠들려던 참이라 몇 시인지 시계를 보아서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타니가 중간에 변소에 간다고 한 번 깨어 나갔다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때도 열한 시는 되지 않았어요.”
해경은 나카마루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기쿠치의 말로는 가와타가 방에 돌아온 건 소등 시간이 좀 못 되어서라고 했다. 소등 시간은 열한 시로 정해져 있었으므로, 가와타가 돌아왔을 때 미타니는 이미 자신의 방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카마루가 해경의 알 수 없는 표정을 보더니 이때다 싶었던 듯 흥분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이환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은 겁니다. 이환이 자정 무렵 기숙사 앞에 있는 걸 본 사람이 있어요. 기쿠치 말로 가와타도 그 시간에 나갔다고 했습니다. 이환이 찾아와 가와타를 불러내 죽인 게 분명합니다.”
해경은 나카마루가 떠드는 소리를 듣다가 손을 들어 보이며 나카마루의 말을 중단시켰다.
“가와타가 그 시간에 나갔다고 했다?”
“네. 기쿠치는 잠결이라 정확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누가 가와타를 불러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가와타가 돌아오지 않았다고요.”
환이 기숙사에 찾아왔던 건 분명 자정 무렵의 일이었다. 그 시간에 누군가 가와타를 방 앞까지 찾아와 불러냈고, 가와타는 그를 따라 나갔다가 살해당했다. 정말 환이 저지른 짓일까? 그러나 환은 기숙사 안까지 들어온 것이 아니라 정훈이 노트를 가져오는 것을 기다렸을 뿐이라고 했다. 환이 아니라면 누가 가와타를 방 밖으로 불러낸 것일까. 해경은 미타니를 보았다.
미타니는 가와타의 애인을 좋아했고, 가와타의 애인은 가와타를 위해 미타니에게 돈을 빌렸다. 그걸 안 미타니는 가와타에게 화를 냈다. 미타니는 자신이 그날 가와타를 본 건 식당에서가 마지막이라고 했고, 그건 살인범으로 몰릴까 봐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했다. 미타니에게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은 건 사실이었지만 결정적으로 시간이 맞지 않았다. 미타니는 가와타가 돌아오기 전 기숙사에 돌아왔고, 중간에 나갔다 돌아왔다고는 해도 그것조차 가와타가 방에서 다시 나가기 전이었다.
미타니의 말이 진실이라면 가와타와 관련된 제삼의 인물이 있는 것일 테고, 미타니의 말이 거짓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카마루가 미타니와 한패일 가능성도 물론 배제할 수는 없었지만, 만약 그랬다면 애초에 미타니에 대한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았을 리도 없었다. 해경은 책 사이에 끼워져 있던 두 장의 배표와 편지를 다시 떠올렸다. 미타니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경성고보에 다닌다는 동생에게 확인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일이었다.
“동생 이름은 뭐지?”
해경의 물음에 미타니가 주저하다 대답했다.
“……미타니 다케오[武夫]입니다.”
미타니 다케오, 하고 그 이름을 입 안으로 중얼거려 본 해경은 소화에게 손짓을 했다. 소화가 책상을 가리키며 고개를 살짝 저어 보였다. 더 이상 특별한 건 없다는 뜻이었다.
“협조해 줘서 고맙네.”
미타니와 나카마루에게 말한 해경은 소화와 함께 방에서 나왔다. 나오기 전 방 안을 한 번 더 돌아본 소화가 궁금한 표정으로 해경의 곁에 서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뭔가 진전된 게 있나요? 아주 심각하시던데.”
“미타니가 의심스럽지만 확실한 건 없군요. 미타니는 가와타의 애인이라는 마츠우라를 좋아했는데, 가와타가 도박빚을 갚으려고 마츠우라에게 돈을 빌렸고 마츠우라는 미타니에게 돈을 빌려 가와타에게 줬답니다. 미타니는 그걸 알고 가와타에게 따지러 갔었고……두 사람이 다툰 건 맞는데, 기쿠치와 나카마루의 말을 들어 보면 미타니가 가와타보다 먼저 기숙사에 돌아온 건 확실합니다. 기쿠치의 말로 가와타는 열한 시가 조금 못 되어 들어왔고 자정 즈음 나갔다고 하고, 나카마루는 미타니가 열 시쯤 기숙사에 왔다가 중간에 잠시 나갔지만 열한 시 전에 다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해경은 소화에게 사건의 내용을 대강 설명해 주었다. 곰곰 생각하던 소화가 해경을 올려다보았다.
“책에서 나온 표하고 편지는 뭔가요?”
“이틀 뒤 부산항에서 일본으로 돌아가는 배편이고, 편지는 마츠우라에게 쓴 겁니다.”
“이상하네요.”
“그렇지요.”
소화 역시 대번에 이상한 낌새를 챈 모양이었다. 그러나 증거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고개를 갸웃하며 건물을 나온 소화가 교문을 나서려다 말고 문득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몇 걸음 앞서 가던 해경이 소화를 돌아보았다. 소화는 교문 앞에 못 박힌 듯 서서 의학부 건물 근처의 시계탑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해경이 의아한 표정으로 소화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입니까?”
해경의 말에 대답도 않고 시계를 보던 소화가 해경에게 물었다.
“선생님, 혹시 시계 가지고 있으신가요?”
뜬금없는 질문에 해경은 잠시 멈칫하다 왼쪽 소매를 걷어 보였다.
“손목시계라면 있습니다만.”
대답하기 무섭게 소화가 해경의 손목을 덥석 잡고는 해경이 차고 있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해경이 당황한 표정으로 소화를 내려다보자, 소화가 해경의 손목을 잡은 채 해경을 마주보았다.
“이 시계 정확한 것인가요?”
“네.”
영문을 모른 채 해경이 대답하자, 소화가 주위를 둘러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아까 미타니의 방 말이에요, 선생님, 제가 나오기 전에 보았는데 시계가 맞지 않아요. 처음에 가와타의 방에서 시간을 보았을 때 분명 열한 시가 좀 못 되었는데, 미타니의 방에서 나올 때도 시간이 거의 지나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여기 이 시계와 선생님의 시계는 시각이 같은데, 거기 있는 시계는 한 시간 반쯤 느려요.”
해경은 놀란 눈으로 소화를 보았다. 미타니의 방만 시계가 느리다고 한다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해경은 기쿠치와 나카마루의 증언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기쿠치는 가와타가 소등 시간이 좀 못 되어 돌아왔다고 했고, 나카마루는 그날따라 소등이 빨랐다고 했다. 같은 날인데 방마다 소등 시간이 다를 리 없었다. 미타니의 방 시계가 한 시간 반 느린 거라면 나카마루가 소등이 빨랐다고 생각한 건 당연했다. 미타니가 열 시에 들어왔다가 열한 시가 못 되어 돌아왔다고 했지만, 사실은 열한 시 반에 들어왔다가 열두 시 반이 못 되어 돌아왔다면? 그 시각 방으로 돌아온 가와타를 불러낸 것이 미타니였다면? 벼락을 맞은 듯 서 있던 해경은 소화를 붙들었다.
“잠시만 여기서 꼼짝도 말고 기다려요.”
바로 몸을 돌려 기숙사 건물로 달려간 해경은 미타니의 방 문을 열어젖혔다. 방 안에 앉아 있던 나카마루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해경은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방 안에는 나카마루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미타니는 어디로 갔나?”
해경이 숨을 고르며 묻는 말에 나카마루가 놀란 눈을 껌뻑이다 대답했다.
“형사님이 나가신 직후에 일이 있다면서 급히 나갔습니다만.”
해경은 방 안을 둘러보다 미타니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책을 보았다. 배표가 끼워져 있던 책이었다. 그 책을 집어 들어 페이지를 넘겨 본 해경은 하, 하고 웃었다. 두 장의 배표는 사라진 채였다. 영문을 모르는 나카마루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해경을 보았다. 해경은 나카마루에게 물었다.
“정문 외에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있나?”
“네, 그럼요. 기숙사 건물 뒤편으로 후문이 있습니다.”
나카마루가 복도 쪽을 가리켰다. 복도로 나간 해경은 창 너머로 몸을 내밀었다. 당연하게도 미타니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바로 계단을 내려온 해경은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소화에게 다시 달려갔다. 초조하게 해경을 기다리던 소화가 달려오는 해경의 표정을 보고는 해경의 안색을 살폈다.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제일 가까운 공중전화가 어디 있는지 기억납니까?”
해경이 대답 대신 되물은 말에 소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길 건너편을 가리켰다.
“길을 건너면 있는 카페 앞에요.”
해경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동전이며 지전을 잡히는 대로 꺼내서는 소화의 손에 쥐어 주었다.
“교환수에게 운현궁으로 연결해 달라고 얘기해요. 정해경이 특무정교 서천욱을 찾는다고요. 서천욱 씨가 전화를 받는다면, 지금 당장 경성고보에 미타니 다케오라는 학생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그리고 내가 종로서에 가와타 유사쿠의 살인범 미타니 하지메를 수배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씀하십시오. 경성고보에 미타니 다케오라는 학생이 없다면 바로 경성역으로 경찰을 보내 달라고 했다고요. 전화를 마치면 사무실로 돌아가 기다리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소화가 길 건너편으로 달려갔다. 해경은 이쪽으로 오는 택시를 잡았다.
“경성고보입니다.”
행선지를 말한 해경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빠졌다. 만약 미타니의 동생이 실재하는 인물이라면 동생을 데리러 경성고보에 올 것이고, 그게 아니면……해경은 하루미의 이름으로 시작하던 편지를 떠올렸다. 사색이 된 미타니가 편지를 잡아채 내용은 읽지 못했지만, 배표와 그 편지를 같이 둔 까닭이 분명히 있을 터였다. 배표를 두 장 산 이유 역시도. 번뜩 스쳐가는 생각에, 해경은 택시 기사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 경성고보가 아니라 배화여고보로 가 주십시오. 최대한 빨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