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 rate samurai with a carreer break RAW novel - Chapter 43
00040 나의 신부 =========================================================================
해경이 잠시 사무실을 비운 사이 소화는 며칠 사이 해경에게 온 편지들을 나누어 정리하고 있었다.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해경에게 오는 편지의 발신지가 워낙 다양해, 가끔 도대체 이것들은 다 무슨 편지일까 궁금해지는 적도 있었다. 편지를 정리해 두면 해경이 오후나 저녁때쯤 한번에 몰아서 읽고 답장을 쓰거나 간혹 드물지만 이삼일 정도 사무실을 비우는 일도 있었는데 그런 것을 보아 사건 의뢰와 관련된 일일 거라고 짐작만 할 따름이었다. 오늘도 평양이니, 개성이니, 대구니, 부산이니 하는 온갖 곳에서 온 편지들의 주소를 확인하고 칸막이를 해 놓은 함 안에 편지를 넣던 소화는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네, 하며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항상 오는 집배원이었다. 해경 앞으로 온 편지 몇 통을 꺼낸 집배원이 쪽지를 하나 내밀었다.
“오늘은 전보도 있습니다.”
“전보요?”
집배원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며 편지와 전보를 받아든 소화는 다시 사무실 문을 닫고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방금 온 편지를 함에 추가해서 넣은 소화는 전보를 들고 있다가 이건 그냥 책상 위에 올려둬야 하나 생각하며 무심코 전보의 내용을 보았다. 전보의 내용은 짧았다. ‘인천까지 추적 이후 행보 묘연’. 고작 열두 글자뿐이었으나 무언가 중요한 전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적이라면 해경이 무언가를 좇고 있는 것이 분명해 도대체 무슨 일일까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어차피 혼자 생각해 봐야 답이 없는 일이라 소화는 우선 전보를 해경이 잘 볼 수 있도록 책상 한가운데 올려놓았다. 소화가 전보를 놓기 무섭게 사무실 문이 열리며 해경이 들어왔다.
“별 일은 없었습니까?”
“네, 편지가 왔는데 전보도 하나 같이 도착해서 책상 위에 두었어요.”
해경이 묻는 말에 소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해경이 책상 위에 놓인 전보를 집어 들었다. 다음 순간 평소답지 않게 해경의 안색이 약간 달라졌으나, 착각인가 싶을 만큼 찰나의 것이라 소화는 잘못 본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뚫어지게 그 전보를 보고 있던 해경은 항상 열쇠로 잠가 두는 첫 번째 서랍을 열고 그 안에 전보를 넣었다. 그리고는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소화는 흘끔 해경의 눈치를 보다가 얼른 편지 정리한 것을 해경의 자리 옆에 놓아두며 공연히 정리할 것도 없는 책장의 먼지를 털거나 주전자에 물을 받아다 올리며 애써 분주한 척을 했다. 그러나 해경은 소화가 그러거나 말거나 이삼십 분 가량을 그렇게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었다. 한참 완전히 생각에 빠져 있던 해경을 현실로 돌려놓은 것은 한 방문자였다.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벌컥 열어젖힌 방문자에 깜짝 놀란 소화는 닦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가 간신히 잡으며 문을 보았다. 풍채가 좋은 중년의 남자가 얼굴이 몹시 상기된 채 안으로 들어왔다. 인기척에 고개를 든 해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가 탐정사무소라는 이야기를 듣고 왔소만, 당신이 탐정이오?”
눈을 깜빡이며 놀란 표정을 한 소화는 안중에도 없이 남자가 해경을 보며 물었다. 해경이 잠시 미간을 좁혔다가 소파를 가리켰다.
“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아직 그리 더울 날씨는 아니었는데도 남자는 해경이 가리킨 자리에 앉자마자 재킷을 벗어던져 놓고는 셔츠의 단추를 두어 개 풀며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어지간히 급하게 온 모양이었다. 남자의 맞은편에 자리한 해경이 남자를 유심히 보다 물었다.
“무슨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사람 찾는 일도 하나?”
초면부터 상당히 고압적인 말투였으나 해경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처럼 여상하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해경의 대답을 들은 남자가 벗어 놓은 재킷을 뒤지더니 안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탁자 위로 툭 던졌다. 해경은 그 사진을 집어 들어 유심히 보더니 다시 내려놓았다.
“무슨 사정이십니까?”
“그런 것까지 꼬치꼬치 캐묻는 이유가 뭐요? 돈이나 받고 찾아 달라는 사람 찾아 주면 그만이지.”
“그렇다면 동네 개라도 불러 모아 찾으시는 것이 빠를 텐데요.”
소화는 해경이 웃으면서 대꾸했으나 실은 불쾌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평소 바늘 끝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정중한 해경의 태도는, 반대로 상대방에게도 해경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위력이 있었다. 해경은 딱히 격렬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편이 아닌데다 속을 잘 알 수 없어 소화 역시 가끔 해경을 어찌 대해야 할지 난처할 때가 있었다. 그런 해경이 저 정도로 대놓고 비꼬는 말을 던질 정도라면 어지간히 기분이 상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남자는 당연하게도 해경의 기분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듯 팔짱을 끼며 내뱉었다.
“자련에게 소개를 받고 왔소. 실력은 경성에서 최고라면서?”
남자의 입에서 나온 인혜의 이름에 해경이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 올렸다.
“향운정의 자련께서 저를 소개하셨다고요?”
차를 끓이던 소화도 그 말에 귀를 쫑긋했다. 인혜가 워낙 발이 넓기는 했지만, 이 남자는 아무리 봐도 인혜가 좋아할 만한 부류의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굳이 그에게 해경을 소개했다면 이유가 없지는 않을 터였다. 소화가 그의 앞에 찻잔을 놓으려 하자, 남자가 소화를 쳐다보더니 손을 내저었다.
“냉수나 한 잔 가져와.”
자기 집 하녀를 부리는 듯한 말투에 해경이 뭐라고 한 마디 하려는 듯한 표정이 되었으나, 소화는 공연히 일이 커질까 싶어 얼른 네, 하고 대답하며 차 대신 냉수를 따라 남자의 앞에 놓았다. 남자는 숨도 쉬지 않고 물을 들이키더니 입가를 닦았다. 그리고는 주머니를 뒤적여 명함을 한 장 꺼내 해경의 앞으로 밀어 놓았다. 해경은 그 명함을 내려다보고는 남자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동신금융의 송광만 사장님이시군요. 이름은 익히 들었습니다.”
광만이라고 불린 남자가 해경의 말에 코웃음치는 듯한 소리를 냈다.
“무어, 그럼 말은 좀 통하겠구만. 내가 찾는 건 내 일과 관련된 사람이오. 가족들 말로는 일주일 전 대전에서 경성역으로 올라오는 기차를 탔다는데, 기차 안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거요. 그런데 내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단 말이야. 무슨 수로 사람이 기차 안에서 사라진단 말인가?”
“채무자입니까?”
“채무자라기보단 채무라고 해야겠지.”
광만은 나름대로 유머러스한 대답이라고 생각한 듯 껄껄 웃었다. 해경도 따라 웃기는 했으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광만을 보던 해경이 사진으로 다시 한 번 시선을 주었다.
“대전역에서 기차를 탄 것은 확실합니까?”
“가족들 모가지가 달랑달랑한데 제 한 몸 살겠다고 기차를 안 타지는 않았겠지.”
“채무액이 상당했던 모양이군요.”
“그 집 형편으로는 변제가 불가능한 수준이오.”
대답한 광만이 소화를 돌아보았다.
“거 물 한 잔 더 가져와 봐. 목이 타 죽겠구만.”
소화가 서둘러 주전자를 가져다 빈 잔에 물을 따랐다. 광만이 물을 따르는 소화를 아래위로 슬쩍 훑어보았다. 광만이 뭐라고 소화에게 말을 걸려는 듯 입을 열었으나 해경이 그보다 빨리 말을 가로챘다.
“소화 양, 아까 부탁한 신문 자료 좀 찾아 주십시오.”
“네? 아, 네.”
얼결에 대답한 소화는 무심코 신문을 모아 두는 서류철을 찾으러 갔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애초에 신문 자료 따위는 부탁한 적도 없었던 것이다. 광만이 하녀 부리듯 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건가 싶어 해경의 눈치를 본 소화는 서류철을 꺼내 뒤지는 척을 했다. 소화가 그러는 동안 해경이 광만에게 물었다.
“그럼 왜 변제가 불가능한 걸 알면서 돈을 계속 빌려주신 겁니까?”
“나야 무얼 받든 빌려간 돈에 상응하는 만큼만 받으면 그만 아니오?”
광만이 당연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해경은 그 말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을 참는 듯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뱉으며 사진 위를 손끝으로 톡톡 쳤다.
“기차 안에서 이 분을 본 사람은 없습니까?”
“내가 그걸 알면 댁한테 돈을 내고 의뢰를 하겠소?”
불퉁하게 대꾸하는 광만의 얼굴을 빤히 본 해경이 말했다.
“일단 가지고 계신 정보는 모두 저에게 주셔야 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사람이 사라진 경우에는 일각이 급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알 수 없으니까요.”
해경의 말에 광만이 끙, 하는 소리를 내며 소파에 등을 파묻었다.
“좋소. 뭐 이야기 못할 것도 없지. 채무 관계가 시작된 건 4년 전부터요. 애초 쥐뿔도 없는 집안인데 그래도 양반입네 하다가 집안 재산을 다 들어먹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뭐라도 해 보겠다고 나한테 돈을 빌린 게 시작인데, 요령이 없어 하는 사업마다 족족 실패를 했소. 이자도 갚지 못할 상황이 된 것을 알고 사람을 보냈더니 돈은 못 갚겠다 하고, 그럼 나더러 어쩌라는 거요? 나라고 땅 파서 장사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래서 돈 대신 사람으로 변제하는 걸 택하셨다는 거군요.”
해경의 말에는 미묘하게 가시가 돋쳐 있는 듯 했으나, 광만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뭐 피차 좋은 일 아니겠소? 어쨌든 본래 몸이 약해 요양차 대전에 가 있다면서 곧 상경하겠다기에 그때 얼굴이나 한 번 보자 했지. 그래서 일부러 경성역에 사람을 마중 보냈는데, 점심때면 도착할 거라던 사람이 저녁이 되도록 나타나질 않는 거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겠소? 당연히 이놈들이 빼돌렸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사람을 보내 몹시 족쳤더니 절대 아니라며, 차표까지 끊고 대전역에서 기차를 타기 직전 전보도 쳤다는 거요. 그럼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이야? 경찰에 신고를 해도 들은 체 만 체 하고 있고, 답답해서 향운정에 술이나 마시러 갔다가 속이 상해 한탄을 하니 자련이 댁을 소개시켜 주더구만.”
광만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언가를 적고 있던 해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면 일단 가족들부터 만나봐야겠군요. 성함과 연락처를 주실 수 있겠
습니까?”
광만이 재킷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하나 꺼내서는 손가락에 침을 발라 한참 여러 장을 넘기더니 한 페이지를 펼쳐 가리켰다.
“이 자요. 효자동 이십사번지 서한구.”
해경이 그 주소와 이름을 적어 놓고는 자기 명함을 한 장 꺼내 광만의 앞으로 밀어 놓았다.
“알겠습니다. 연락은 명함에 있는 연락처로 드리지요. 진행 상황이 궁금하시다면 직접 찾아오시거나 여기 있는 연락처로 연락을 주십시오.”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리겠나?”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찾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테고요.”
광만이 지갑을 꺼내 지전 몇 장을 세더니 탁자 위에 던지듯 놓고는 내뱉었다.
“착수금이오. 반드시 찾아 주면 좋겠군.”
그리고는 해경의 대답도 듣기 전 벗어 놓았던 재킷을 들고 사무실을 나갔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에 어깨를 움츠린 소화는 해경을 보았다. 탁자 위에 던져 놓은 지전 몇 장과 사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던 해경이 한숨을 내쉬며 한쪽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소화가 광만의 자리에 놓여 있던 잔을 치우며 물었다.
“어려운 사건인가요?”
“글쎄요, 시작해봐야 알겠습니다만…….”
말끝을 흐린 해경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의뢰받고 싶지 않은 일이로군요.”
광만이 상당히 무례하고 고압적이기는 했으나, 그게 의뢰받고 싶지 않을 정도의 일인가 싶어 무심코 탁자 위로 시선을 주었던 소화는 멈칫했다. 탁자 위에 놓인 사진을 본 탓이었다. 사진 속에 자리한 것은 한 소녀였다. 사진 속 소녀의 얼굴은 무표정했고 입으로 가볍게 불기만 해도 흩어질 듯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가냘프고 처연한 소녀였다. 열여섯, 열일곱쯤 되었을까. 마치 봄비가 내리기 직전, 낙화를 목전에 둔 꽃 같은 느낌이라 소화는 저도 모르게 그 사진을 뚫어지게 내려다보았다. 소화의 시선이 그 사진에 꽂혀 있는 것을 알아차린 해경이 서둘러 사진을 뒤집어 놓았다. 깜짝 놀란 소화가 당황하며 해경에게 사과했다.
“죄,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아닙니다.”
잠시 말없이 앉아 있던 해경이 소화를 보았다.
“이번 일은 저 혼자 진행하지요.”
“네?”
뜻밖의 말에 소화가 되물었다. 해경은 대답 대신 탁자 위에 놓인 것들을 대강 치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효자동에 다녀올 테니 시간이 되면 퇴근하셔도 좋습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던 소화가 뭐라고 묻기도 전 해경은 바람처럼 사무실을 나갔다. 빈 사무실에 혼자 남겨진 소화는 해경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이번 일을 혼자 진행하겠다고 하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소화는 조금 전 광만과 해경이 나누던 대화를 되새겼다. 광만은 동신금융이라는 회사의 사장이라고 했고, 이야기로 미루어 보아 효자동에 사는 서한구라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 주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는 채무를 변제할 능력이 없어 다른 방법으로 빚을 갚으려 했고, 그것이……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소화는 방금 보았던 사진을 떠올렸다. 광만이 빚 대신, 어쩌면 그 소녀를 받으려고 했던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모든 이야기의 아귀가 들어맞았다.
“세상에…….”
소화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뇌리에서 사진 속 소녀의 처연한 인상이 떠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일이 종종 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지주들이 소작농에게 빚 대신 어린 딸을 받아 첩이나 후처로 삼는 것은 그리 드문 일도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다고 이야기를 듣는 것과 막상 눈앞에서 무례하고 불쾌한 중년의 남자가 자기 또래의 소녀를 빚 대신 받겠다고 찾는 것을 보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소화는 해경이 이번 일은 혼자 진행하겠다고 한 건 자신을 배려해서임을 깨달았다. 아휴,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쉰 소화는 들고 있던 잔을 치우며 자리를 정리했다. 나간 해경은 오후가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원래 사건 초반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정보를 얻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일이 많은가보다 짐작할 따름이었다. 퇴근 시간이 되어 소화가 옷걸이에 걸어 놓았던 겉옷을 막 내렸을 즈음이었다. 누군가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소화는 겉옷을 다시 자리에 걸어 두고는 문을 열었다.
“네, 무슨 일이셔요?”
소화는 다음 순간 눈에 들어온 얼굴에 깜짝 놀랐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이주였다. 그렇지 않아도 명희의 사건을 해결한 이후 소화는 가끔 이주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었다. 마지막에 사무실로 찾아왔을 때의 그 힘없고 수척했던 얼굴이 마음에 걸렸던 탓이었다. 이주는 예전에 비해 조금 마른 듯한 느낌이었으나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초조한 듯 교모를 만지작거리던 이주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에 뵙겠습니다.”
소화도 따라서 목례를 했다. 이주가 소화 너머로 사무실의 불이 꺼진 것을 보고는 약간 실망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은 지금 안 계신 모양이군요.”
“네에, 오늘 새로운 일을 의뢰받으신 것이 있어서……그 때문에 외출하셨어요. 오늘은 일찍 돌아오시지 않을 것 같은데 어쩌지요?”
소화가 미안한 얼굴로 대답하자 이주가 잠시 무슨 생각인가를 하다가 소화를 보았다.
“저, 그러면 혹시 나중에 이야기를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럼요.”
소화가 선뜻 대답하자 이주가 망설이는 듯 손끝을 만지작거리다 입을 열었다.
“제가 실종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종로통 가경상회의 우재영이라는 친구인데 사흘 전에 돌연 사라졌습니다. 저와 함께 경성제이고보에 다니고 있고 학교에는 병으로 결석 중이라고 하는데 집에 찾아갔다가 실종이 확실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경찰에 의뢰를 한 모양인데 실종인지 가출인지 알 수 없다고 해서 신고를 받아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댁에는 비밀로 제가 혼자 찾고 있는 것이라, 선생님께 도움을 약간 받고 싶어서요.”
소화는 이주의 이야기를 듣다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도 사람이 돌연 사라진 사건이라니, 경성에서 실종 사건이 유행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모를 노릇이었다. 소화의 표정을 본 이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러시지요? 아무래도 어렵겠습니까?”
소화는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어요. 제가 꼭 전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주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돌아섰다. 소화는 이주의 뒷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주가 도움을 받고 싶다는 사건에도 흥미가 생겼으나 해경이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여기저기서 사람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아무래도 오싹해져, 소화는 서둘러 겉옷을 가져다 입고는 사무실의 문을 잠그며 전차 정류장으로 종종걸음을 쳤다.